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4.24.


《혼란 기쁨》

 김비 글, 곳간, 2025.1.31.



어제까지 비로 흠뻑 젖은 날이다. 아침에 우리 책숲에 가서 빗물을 치워야 할 텐데, 곧 태어날 《미래 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거의 끝손질’을 하느라 집에서 꼼짝을 못 한다. 이제 개구리는 밤에도 아침에도 낮에도 운다. 풀벌레소리도 섞이고, 멧새소리가 어울린다. 오늘은 바람이 휘몰아친다. 바람이 휘몰아치니 마을도 조용하다. 얼핏 보면 ‘널뜀날씨(기후이변)’일 테지만, 널뛰는 날씨가 ‘봄날씨’나 ‘여름날씨’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을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심을 적에, 늘 가만히 제자리를 찾게 마련이다. 우리는 글(언론보도)이 아니라 길(마음에 새길 꿈)을 볼 노릇이다. ‘남이 쓴 글’보다는 ‘이 삶을 스스로 갈무리한 글’부터 읽고 돌아볼 때에, 집과 마을과 나라를 함께 사랑으로 돌볼 만하다.


《혼란 기쁨》은 ‘몸바꿈’으로 살아가며 쉰고개 한복판을 지나는 길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적은 꾸러미이다. 사람은 ‘몸을 입은 넋’이라서, 사람을 알려면 ‘겉몸’이 아닌 ‘속빛인 넋’을 들여다볼 노릇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 즈믄해에 걸쳐 나라가 사람들을 옥죄는 구실을 하느라 속빛이 아닌 겉몸으로 가두거나 몰아세웠다고 할 만하다. 마음을 틔울 길이 없을 뿐 아니라, 몸을 사랑하는 길이 무엇인지 스스럼없이 나누는 길도 가둔 얼거리이다. 나무는 암나무하고 수나무가 있어서, 둘은 다르되 하나인 빛으로 나아간다. 사람도 암사람하고 수사람이 있어서, 둘은 다르되 하나인 빛으로 마주한다. 어느 몸이기에 낫거나 나쁘지 않다. 그냥 다르기에 다른 결을 바라보고 받아들여서 맞이하는 삶이다.


그런데 ‘작은이(소수자)’를 말할 적에 어쩐지 예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소수자’만 가리키는 듯하다. 이 나라에서 참말로 ‘작은이’라면 ‘시골사람’과 ‘시골아이’이지 않을까? 그리고 ‘헌책집 일꾼’도 거의 눈에 안 뜨이는 ‘작은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집살림과 아이돌봄을 도맡는 아버지’도 그야말로 ‘작은이’라고 해야 맞다.


사람은 짝찟기만 하려고 태어나지 않는다. 풀벌레와 새와 벌나비와 나무와 풀도 짝짓기만 하려고 살아가지 않는다. 어느 숨붙이를 보아도 짝짓기는 아주 짧다. 짝을 짓는 뜻은 ‘나와 너라는 두 사람 숨빛을 하나로 모은 우리 사랑’을 새롭게 빚어서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면서, 이제부터 두 사람 삶과 살림과 사랑을 처음부터 다시 지으려는 길이라고 느낀다.


우리는 ‘놀이’나 ‘노닥거리기’를 하려고 짝짓기를 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나라이건 이웃나라이건 ‘아기낳기’를 할 뜻이 아니라, 그냥 놀거나 노닥거리는 짝짓기가 지나치게 넘치고, 이런 줄거리로 소설·영화·연속극·만화가 지나치도록 많다. 이와 달리 ‘아기를 기다리는 기쁨’과 ‘아이를 돌보는 사랑’을 다루는 소설·영화·연속극·만화는 한 줌조차 안 된다.


일본말 ‘성소수자(성적 소수자)’를 언제까지 써야 할까? 우리는 우리말로 ‘나란사랑’으로 풀어낼 수 있다. 나란히 서는 짝짓기이니까. 어떤 짝짓기이건 대수롭지 않고 대단하지 않다. 한집안을 이루더라도 짝짓기를 안 하는 사람이 많고, 아기를 낳을 때에만 짝짓기를 한 사람도 많고, 굳이 한집안을 안 이루면서 짝짓기를 아예 안 하면서 고요히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이제는 ‘몸뚱이’와 ‘살점’은 덜 말해도 된다. 이제는 ‘몸을 입은 넋’을 말할 때라고 본다. ‘우리는 왜 다 다른 넋’이면서 ‘두 몸 가운데 하나인 몸’을 굳이 골라서 입는지 돌아보면서 말할 때라고 본다. 몸에 칼을 댈 적에 우리 넋이 얼마나 아파하는지 돌아볼 때이고, 우리 몸은 어떤 ‘죽임물(화학약품·항생제·호르몬제)’도 안 바라는 줄 헤아릴 때이며, 이런 이야기를 펼 때이다.


바야흐로 사람으로서 ‘사람’이라는 말뜻을 새기고서, ‘사랑’과 ‘사이(새)’와 ‘살다·살리다(살림)’와 ‘삼·삼다’라는 낱말을 곱씹을 일이라고 느낀다. 스스로 사람인 줄 알면 어지럽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는다. 스스로 사람이라는 빛을 바라볼 때에는 북새통이 아닌, 물결치고 바람이 부는 하루라는 삶이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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