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1.7. ‘반 고흐’ 아닌 ‘환 호흐’를
작은불 하나만 켠 시골집은 그야말로 어둡다. 그러나 이 어두운 시골집은 “눈이 다치지 않을 만큼 밝”기에, 시골사람은 넉넉히 지내고 쉬고 일한다. 햇볕불(백열등)을 켠 작은 시골집일 텐데, 햇볕불을 노랗게 켠 작은 시골집을 서울사람 눈으로 보자면 너무 어두울 테지만, 시골사람으로서는 가장 아늑하면서 포근한 불빛이다.
햇볕은 눈을 갉지 않는다. 햇볕은 눈을 살린다. 햇볕불 작은빛은 햇볕처럼 눈과 몸을 살리는데, 반짝불(형광등·엘이디)은 눈과 몸을 갉는다.
네덜란드사람 ‘환 호흐(van Gogh)’ 님이 살던 무렵은 오늘날보다 훨씬 불빛이 적었고, 아예 없었다고도 할 만하다. 그때에는 해가 지면 모든 일을 접게 마련이다. 환 호흐 님이 살던 무렵 켠 촛불이나 작은불은 아주 조그맣게 둘레를 가벼이 밝히는 빛줄기였다. 그렇기에 “감자 먹는 시골 흙지기 살림집”은 “어두운 속마음”을 비춘다기보다는 “밤빛을 품은 포근하면서 고요한 사랑”을 담아내었다고 보아야 알맞지 싶다. 환 호흐 님이 동생하고 주고받은 글을 되읽고, 남긴 글을 돌아볼 적에도, 환 호흐 님은 “시골집에서 아늑한 사랑을 누리고 얻었다”고 밝힌다.
가만히 보면, 환 호흐 님이 살던 지난날에는 큰고장·서울(도시)에서 본 밤하늘도 별이 쏟아지는 하늘이었다고 느낀다. 말 그대로 “환 호흐라는 붓지기 스스로 본 눈부신 별밤”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담았달까. 맨눈으로 미리내를 볼 적에는, 별빛이 노랗기도 하고 하얗기도 하고, 붉거나 파랗기도 할 뿐 아니라, 빛줄기가 죽죽 뻗고 빙그르르 도는 모습까지 느낄 수 있다. “오늘날 서울내기 눈길(현대 도시인 관점)”으로만 환 호흐 님을 읽는다면, 아주 엉뚱하게 바라보기 쉽다고 느낀다.
별이 쏟아지는 밤에 다른 불빛이 없이 한나절쯤 바라보면 그야말로 별빛이 물결친다. 별이 쏟아지는 밤을 이 나라 이 땅 이 들숲바다에서 누리거나 느끼지 못 한 채 환 호흐 님 그림을 바라본다면, 참 뜬금없고 어이없는 짓이라고 느낀다. 그림보기에 앞서 별보기와 숲보기를 할 노릇이다. 그림읽기에 앞서 별읽기와 숲읽기를 할 일이다. 별을 담아내고 밤을 사랑한 붓지기 마음과 눈빛과 손길을 살피고 읽고 헤아리려면, 우리가 나란히 별과 밤을 온마음과 온눈과 온손으로 맞아들여야 한다.
땅에 씨앗을 심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씨앗’을 알 턱이 없고, ‘말씨(말씨앗)’와 ‘글씨(글씨앗)’도 까맣게 모르게 마련이다. 하루 내내 나무 곁에 서서 나무바람과 나무그늘과 나뭇잎빛을 마주하는 살림이 아니라면, 어떻게 나무를 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가?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