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문학동네 시인선 84
김민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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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29.

노래책시렁 476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문학동네

 2016.6.30.



  시골에서는 요사이(2024년)에 쉼날(일요일·연휴)에 아예 시골버스가 안 다니다시피 합니다. 하루에 하나 지나가는데, 그나마 이 시골버스를 타고서 읍내에 마실을 다녀올 수 없어요. 서울에서는 다리꽃(이동권) 이야기가 있는데, 시골에는 어떠한 다리꽃조차 없습니다. 저는 인천에서 나고자랐는데, 1982년에 여덟 살 어린이로서 처음 혼자 배움터에 가던 날, 어머니가 120원을 주면서 버스 타고 다녀오라 했는데, 먼저 60원을 내고서 마을앞에서 탔더니 또래와 언니가 바글바글했고, 길잡이(버스안내양)는 “웬 애새끼들이 이렇게 많이 탔어! 아, 짜증나!” 하고 윽박지르는 소리에 무서워서, 이날 저녁에 집으로 돌아갈 때부터 열세 살까지 늘 걸었습니다. 윽박소리도 고단하고 찜통도 괴로웠어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을 읽는 내내, 노래님 뜻 그대로 ‘영 아름답지는 않’으면서 ‘하염없이 쓸모없는 잔소리’를 물씬 느낍니다. 잔소리를 잔소리로 쓰려고 꾸린 글자락은 맨몸을 비춥니다. 맨얼굴을 숨길 까닭이 없고, 맨손이 창피할 까닭이 없습니다. 덧씌우니 마음을 감추고, 덮어씌우니 허울이 어느새 허물로 바뀌게 마련입니다. 어떤 글(문학)도 틀(형식)이 없습니다. 삶을 쓰기에 글이요 노래에 이야기입니다. 이다음에는 “굳이 안 아름다울 까닭도 영 쓸모없을 일도 없는 하루”만 읊어 본다면 더 빛나리라 느낍니다.


ㅅㄴㄹ


만나보라는 남자가 82년생 개띠라고 했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핏덩인데요, 이거 왜 이래 영계 좋아하면서 젖비린내 딱 질색이거든요. 이래 봬도 걔가 아다라시야, 아다라시. 두툼한 회 한 점을 집어 우물우물 씹는데 어느 대학의 교수씩이나 하는 그가 내게 되물었다. 아나, 아다사리? (그럼 쓰나/17쪽)


캐나다 사시는 박상륭 선생께서 한국에 들어올 때면 머무시던 댁이 광화문에 있을 적의 얘긴데 초대를 받아 찾아간 것이 토요일 이른 점심의 일이었고 사모님이 해주신 스파게티를 먹고 마신 술이라 하면 두 발로 걸어들어간 이들이 네 발로 기어다니는 진풍경으로 셀 수 없는 술병으로 가늠해보게 되는데, 해도 떨어지기 전에 허둥지둥 현관에서 신을 신긴 신는데 신은 좀처럼 신겨지지 않고 (시의 한 연구/21쪽)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어떻게 / 스님과 바람난 엄마 친구랑 셋이 그 영화를 봤는지 / 120년 전통의 〈애관극장〉이라고 들어는 봤나 / 뻔하잖아 보는 것을 사랑하라 / 사랑을 보기만 해야지 / 보는 것을 사랑하면 / 저렇게 얻어터지는구나 / 자개 문갑 속 겹겹이 들어차 있던 / 에로비디오테이프 케이스를 양손에 쥔 채 / 아저씨가 아줌마의 귀싸대기를 갈겨대기 시작했지 / 왜 맞을까 안 맞으면 또 어쩔 건데 (소서라 치자/54쪽)


+


《아름답고 쓸모없기를》(김민정, 문학동네, 2016)


탐은 벽(癖)인데 그 벽이 이 벽(壁)이 아니더라도 문(文)은 문(門)이라서 한 번은 더 열어보고 싶었다

→ 샘은 버릇인데 버릇이 이 벼락이 아니더라도 글은 길이라서 더 열어 보고 싶다

→ 시샘은 길드는데 길들면 담이 아니더라도 글은 길이라서 더 열어 보고 싶다

5쪽


밀폐용기 뚜껑 위에 김이 나갈까 돌을 얹어둔 건 나였다

→ 김이 나갈까 싶어 빗장그릇 뚜껑에 돌을 얹어두었다

→ 김이 나갈까 싶어 잠금그릇 뚜껑에 돌을 얹어두었다

9쪽


혹자는 대설주의보라 했고 잽싸게 그걸 싸고 그걸 닦은 증거라고도 말했으며

→ 누구는 눈벼락이라 했고 잽싸게 싸고 닦은 티라고도 말했으며

→ 누구는 함박눈이라 했고 잽싸게 싸고 닦은 자국이라고도 말했으며

40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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