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
백석 지음 / 열린책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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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17.

노래책시렁 475


《사슴》

 백석

 열린책들

 2022.3.25.



  제가 푸른배움터를 다니던 즈음에는 정지용·백석·김기림 같은 사람들 글이 풀려서 비로소 누구나 걱정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전두환을 끌어내렸을 뿐 아니라, 허울스럽더라도 1988년 여름마당(하계올림픽)을 편 나라였기에 북녘 글바치를 읽을 만했구나 싶습니다. 지난 서른 몇 해 사이에 북녘 글바치를 놓고서 여러모로 이야기가 늘었고, 이 가운데 백석 님이 남긴 글은 요즈막에 훅 바람이 불듯 널리 읽힙니다. 우리말과 텃살림을 널리 살렸다고 여기지요. 새로 나온 자그마한 《사슴》으로 새삼스레 다시 읽어 보는데, 예전에도 느낀 바대로 일본말씨나 한자말이 꽤 나옵니다. 아무래도 ‘일본 노래(시문학)’를 배운 티가 나기도 하지만, 여느 살림자리에 선 사람이 아닌 터라, 살림말을 제대로 쓰지는 못 하는구나 싶어요. 집안일을 하고 집살림을 맡고 아이를 돌보는 살림꾼이라면 ‘비·빗물’을 ‘비·빗물’이라 할 뿐입니다. ‘천상수(天上水)’라 하지 않습니다. 우리말 ‘담’을 한자로 옮기면 ‘벽(壁)’입니다. 따로 ‘담벼락’을 쓰기는 하되, 담이 깎아지른 듯하기에 ‘담벼락’일 뿐입니다. ‘밑의 산’이나 ‘떡의 내음’이나 ‘닭의 짗’이나 ‘아―’는 다 일본말씨입니다. 느낌말은 ‘아!’로 적어야 우리말씨입니다. ‘앙궁 위에 떡돌 위에 곱새담 위에’는 영어 ‘on’을 일본에서 한자 ‘상(上)’을 넣어 옮겼는데, 이 말씨를 그냥 ‘상’만 ‘위’로 바꾸었을 뿐인 일본옮김말씨입니다. 남북녘 글바치가 얼음나라(일제강점기)일 적에 우리말씨를 얼마나 잊고 잃은 채 일본말씨에 물들었는지 짚는 분이 있을까요? 글꽃은 글꽃이되, 글자락에 깃든 글씨앗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흐르는지 곰곰이 짚고서 가다듬는 어진 글빗은 언제쯤 만날 수 있으려나 궁금합니다.


ㅅㄴㄹ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라운 종이에 받아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수라修羅/44쪽)


어득한 기슭의 행길에 얼굴이 해쓱한 처녀가 새벽달같이 / 아 아즈내인데 병인은 미역 냄새 나는 덧문을 닫고 버러지같이 누웠다 (시기枾崎의 바다/52쪽)


+


《사슴》(백석, 열린책들, 2022)


가즈랑집은 고개 밑의 산 너머 마을서

→ 가즈랑집은 고개 밑 멧 너머 마을서

9


멧도야지와 이웃 사춘을 지내는 집

→ 멧도야지와 이웃을 지내는 집

→ 멧도야지와 이웃집


돌나물김치에 백설기를 먹으며

→ 돌나물김치에 흰무리를 먹으며

→ 돌나물김치에 흰떡을 먹으며

9


무명필에 이름을 써서 백지 달아서

→ 무명끝에 이름 써서 흰종이 달아서

10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 인절미 솔떡 콩가루차떡 내음새도 나고

13


닭의 짗도 개터럭도

→ 닭짗도 개터럭도

17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 선비도 웃늙은이도

17


앙궁 위에 떡돌 위에 곱새담 위에 함지에 버치며

→ 앙궁에 떡돌에 곱새담에 함지에 버치며

19


정한 마음으로 내빌눈

→ 맑은 마음으로 내빌눈

→ 깨끗하게 내빌눈

20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 서글퍼서 눈물이 난다

→ 서글프다

21


흙담벽에 볕이 따사하니

→ 흙담에 볕이 따사하니

25


돌덜구에 천상수(天上水)가 차게

→ 돌덜구에 빗물이 차게

→ 돌덜구에 하늘물이 차게

→ 돌덜구에 비가 차게

25


인가 멀은 산중에

→ 살림집 먼 멧골에

→ 집이 먼 두메에

28


순례(巡禮)중이 산을 올라간다

→ 떠돌중이 고개를 올라간다

→ 마실중이 멧골을 올라간다

31


묵은 초가지붕 박이

→ 묵은 지붕 박이

→ 묵은 시골지붕 박이

33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어 죽은 밤도

→ 홀어미 하나가 목을 매어 죽은 밤도

→ 홀몸 하나가 목을 매어 죽은 밤도

33


아―따르는 사람도 없이

→ 아! 따르는 사람도 없이

39


달빛은 이향(異鄕) 눈은 정기 속에 어우러진 싸움

→ 달빛은 낯설고 눈은 넋으로 어우러진 싸움

→ 달빛은 멀고 눈은 빛으로 어우러진 싸움

40


소는 인간보다 영(靈)해서

→ 소는 사람보다 거룩해서

→ 소는 우리보다 빛나서

49


지붕 위에 하늘빛이 진초록이다

→ 지붕 위에 하늘빛이 새파랗다

5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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