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4.12.23. 이 새벽 저 새벽
우리는 나로 곧게 서면서 너를 즐겁게 만난다. 나부터 나로서 서지 않을 적에는 사랑을 이루는 씨앗을 안 보려고 등돌리는 굴레살이인 터라, 네가 바로 옆에 있어도 못 알아본다. 숱한 책이 끝없이 쌓인 데에서 어떻게 우리 스스로한테 어울리거나 반갑거나 알맞을 책을 알아차리거나 살필 수 있는지 곱씹을 일이다. ‘나보기’를 늘 하는 눈길이기에 ‘너보기’를 나란히 한다.
‘나보기’가 아니라 ‘나자랑’을 하려는 매무새라면 ‘눈뜨기’가 아닌 ‘눈가림’이다. 2024년 12월에 나라지기 자리에서 끌려내린 윤씨 같은 이를 바로 ‘나자랑’에 스스로 가두고서 눈가림을 하던 보기로 꼽을 만하다. 그런데 허수아비 윤씨만 나자랑이지 않다. 이이를 비롯해서 오늘날 거의 모두라 할 벼슬꾼이 죄다 ‘나자랑 + 눈가림’인데, 우리는 그만 ‘따라지(팬덤·추종)’에 스스로 가둔다.
내가 나사랑이고 네가 나사랑이면 너랑 나는 언제 어디에서나 그저 사랑으로 마주한다. 1950∼80해무렵에 멧골마을 작은배움터에서 늘 걸어서 바깥(면소재지.읍내)으로 오가던 이오덕 님을 떠올려본다. 이오덕 님은 긴긴 멧길을 그저 걸어내리고 걸어오르면서 멧소리에 숲소리를 고스란히 품었다. 시골에서 서울로 오가는 긴긴 버스와 기차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이웃아이를 눈여겨보고 이웃어른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새로 걸을 살림자리를 그렸다.
시골서 살며 바깥일을 보려면 이른새벽에 길을 나선다. 으레 첫버스를 타려고 첫버스보다 훨씬 일찍 움직인다. 고흥에서 어느 큰고장으로 오가든 하루를 01시부터 연다. 어제그제는 부산에서 묵으며 01시부터 06시 사이에 흐르는 거나꾼(주정뱅이) 아재에 젊은이가 멱따는 소리를 한참 들었다. 나는 시골집뿐 아나라 서울에서 미닫이(창문)를 열고서 잔다. 한겨울에도 이런다. 집에 바람이 스며야 숨을 쉰다. 아무튼 거나꾼은 순이돌이가 나란한데, 다들 서울살이(도시생활)가 죽도록 힘들구나 싶다. 그러면 마음이며 몸을 살리면서 느긋이 숲바람을 누릴 시골로 옮길 노릇이라고 본다.
시골에 일거리가 더 많다. 시골에서는 새일거리를 누구나 스스로 열 만하다. 그저 시골일은 돈이 덜 되거나 안 된다고 깎아치기를 할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사랑을 하려는 나보기를 할 적에는 기꺼이 서울과 큰고장을 훌훌 털어낸다. 나사랑은커녕 나보기를 안 하기에 서울과 큰고장에 주저앉고서 시골에는 뭐가 없네 시시하네 심심하네 돈거리가 없네 하고 핑계로 잔뜩 덮어씌운다.
오늘날 시골에 남아서 늙어가는 할매할배는 나보기와 나사랑을 하는 길과 많이 멀다. 시골 할매할배는 스스로 나보기부터 새로 여실 수 있을까. 돈을 모아 시골에 으리으리집을 세우려는 은퇴자가 아니라, 맨손으로 하나부터 온까지 손수 가꾸고 짓는 길을 열려는 나보기와 나사랑을 그릴 이웃은 어디 있으려나 하고 돌아보곤 한다.
서울로(또는 부산·광주로) 가는 길은 늘 붐비고 막히면서 매캐하다. 시골로 가는 길은 텅텅 비는데, 나라와 고을(지자체)은 빈 빠른길 옆으로 새 빠른길을 엄청나게 돈들여 때려짓고 기찻길과 하늘나루도 또 때려박고, 들숲에 이어 바다까지 햇볕판(태양광)과 바람개비(풍력)를 미친듯이 욱여넣었는데 아직도 더 욱여넣으려고 한다.
박정희부터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에 이르도록 삽질 아닌 놈이 없다. 이들 모두 삽질로 “경제개발 돈값”을 튕겼다. 이 민낯을 보자. 그리고 누가 국·영·수 과외와 강사로 목돈을 버는가? 아이를 과외학원이나 입시비리 없이 대학교를 보내거나 아무 학교를 안 보낸 글바치(작가·문인·기자·운동권)는 한 줌이나마 있으려나.
이제 시외버스에서 잠들 때이다. 한잠 들어도 한참 남을 테니, 푹 자고서 하루글을 조금 더 여미자. 별보기를 하는 우리 시골집으로 돌아간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