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이야기를
이제 매듭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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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되읽기 되쓰기 (2020.3.7.)
― 전남 순천 〈도그책방〉
글쓴이나 엮은이는 책 한 자락을 끝없이 되읽습니다. 적어도 열 벌쯤은 되읽으면서 손보고 다듬고 고치고 추스릅니다. 때로는 한 벌만 읽고서 태어나는 책이 있을 텐데, ‘한벌쓰기’로 그친 글은 아무래도 빛이 바랜다고 느껴요. 풀이며 나무는 날마다 새로 자라기에 짙푸릅니다. 사람도 밤에 잠들어 꿈을 그린 다음에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기에 싱그러워요.
글을 마치고서 몇 벌쯤 다시 읽어 보나요? 책을 다 읽고서 몇 벌쯤 다시 읽어 보나요? 말을 마친 뒤에도 “내가 아까 한 말이 얼마나 알맞고 알뜰했나?” 하고 끝없이 돌아보아야 말빛이 살아납니다. 이미 한 말을 못 주워담는다고 여기지만, 그렇지 않아요. 앞서 잘못 말했으면 이제 새로 말할 노릇입니다. “잘못했습니다!” 하고 고개숙이고서 새롭게 “잘 말하”면, 예전 말을 바로잡을 수 있어요.
글손질은 끝이 없되, 끝이 없기에 끝없이 빛납니다. 가랑잎으로 지기 앞서까지 모든 나무는 마지막까지 푸른숨을 담고 새로 담고 거듭 담아요. 잘 빚은 책이란, 찍음터(인쇄소)로 보내기 앞서까지 더 살피고 더 손본 꾸러미입니다.
순천 〈도그책방〉으로 책마실을 합니다. 마을 앞을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타고서 고흥읍으로 갑니다. 고흥읍에서 순천 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립니다. 순천나루에서 내리면 시내버스를 기다려서 탑니다. 저잣길 들머리에서 내려 천천히 걷습니다. 부릉부릉 내달리면 1시간도 안 걸린다지만, 다리품을 들이면 3시간 남짓 걸려요.
시골에서는 어디를 가든 먼길이요 하루를 온통 씁니다. 시골에서 나들이를 하자면 길에서 한참 보냅니다. 그래서 버스나 길에서 노래를 쓰고 하루글을 씁니다. 혼자 움직일 적에는 책도 곁들입니다. 걸으면서 책을 읽어요.
똑같은 길은 없어요. 늘 지나다니더라도 언제나 철이 다르고 날이 달라요. 모든 풀꽃나무는 씨앗이 싹터서 다시 씨앗을 내기까지 날마다 새롭고 다릅니다. 그래서 똑같은 글이며 책을 되읽고 되쓸 적에도 늘 새롭게 배우고 다르게 익혀요.
글쓰기를 하고픈 이웃님이 있으면 꼭 “다 마친 글은 늘 적어도 다섯 벌을 천천히 되얽어 보셔야 합니다.” 하고 여쭙니다. “다 쓴 글을 곧장 되읽기는 힘들 수 있습니다만, 스스로 다 쓴 글을 한 벌 두 벌 석 벌 되읽어 가는 동안 손보거나 다듬을 곳을 찾아낼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내가 쓴 글을 바로 나부터 사랑하고 배우는 밑거름으로 삼지요.” 하고 보탭니다.
그림책을 둘 장만합니다. 다시 천천히 고흥으로 돌아갑니다. 시외버스에서 살짝 쉬고서 기운을 차립니다. 쓰고 읽고 새기고 하늘을 보며 집으로 걸어갑니다.
ㅅㄴㄹ
《왜요?》(린제이 캠프 글·토니 로스 그림/바리 옮김, 베틀북, 2002.10.15.)
#Why? #LindsayCamp #TonyRoss
《치티뱅 야옹》(기쿠치 치키/김난주 옮김, 시공주니어, 2018.6.2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