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고무신 2023.11.13.달.
발에 신어서 바람처럼 다니는 연모인 ‘신’이야. 발을 신에 꿰기에 바람이 되어 가볍게 걷거나 달려. 곰곰이 돌아보면, 숲에서도 들에서도 바다에서도 하늘에서도, 신을 발에 안 꿰지. 사람도 처음에는 신이 없이 살았어. 그러나 어느 날 ‘실’을 알았고, 풀포기나 풀줄기나 털이나 고치에서 실을 얻을 수 있는 줄 알아보았지. ‘실’은 잇는 살림이지. 땅에서 자라서 하늘을 바라보는 길에 올라오는 ‘심(힘)’이 깃드는 실이야. 땅을 디디고서 하늘(바람)을 누리려는 길로 나아가는 ‘신’이지. 이런 신 가운데 고무로 지으면 고무신이야. 여러 가지 신 가운데 고무신은 바닥이 얇아서 발바닥이 땅을 느끼기 어울려. 짚신은 짚으로 엮어서 발바닥이 풀내음을 머금으니 즐거워. 나막신은 나무로 짜서 발바닥이 늘 나무를 품으니 느긋해. 그런데 요새는 땅이며 하늘을 느끼고 누리는 신하고 자꾸 멀리가네. 너희 가운데 누가 고무신을 누리니? 짚신이나 나막신(나무신)은 누가 누릴까? 오히려 땅을 등지거나 멀리하려고 ‘플라스틱으로 두꺼운 신’으로 발을 뒤덮지 않니? 흙(땅)을 잊고 바람(하늘)을 등지면서 볕(별)도 차츰 몰라가는 사람 같아. 발이 어떤 몫을 맡는 몸인지 잊고, 신을 삼거나 꿰면서 스스로 어디에서 어떻게 서는지 잊어. 살림을 멀리하니 삶하고도 멀어. 쳇바퀴로 똑같이 뒹굴거나 휩쓸 적에는 ‘휩쓸리는 치레’일 뿐이지. 맨발로 바위를 디디고, 바닷물을 가르고, 바람이 슥슥 스미던 나날을 떠올리렴. 맨손으로 냇물을 뜨고서 목을 축이던 하루를 되새기렴. 발과 손이 있는 곳에 따라서, 네가 이어가는 길이 늘 바뀐단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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