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3.4.17.
수다꽃, 내멋대로 37 강의
2023년 4월 15∼16일 이틀에 걸쳐 부산 망미동 마을책집 〈비온후〉로 이야기꽃(강의)을 펴러 다녀왔다. 다음달 5월 19∼20일에 새로 이틀짜리 이야기꽃을 펴러 간다. 엊그제는 ‘헌책집·자전거’를 열쇳말로 삼았고, 다음달은 ‘책마루숲(서재도서관)·골목빛(민중생활문화)’을 열쇳말로 삼으려고 한다. 그다음달은 ‘시골 살림빛(시골 아저씨 육아일기)·말과 빛(사전과 사진)’을 열쇳말로 삼을 테고. 언제 어디로 누구를 마주하며 이야기꽃을 펴든, 밑글(원고)을 미리 돌리기도 하지만, 되도록 밑글은 안 돌리려고 한다. 밑글보다는 숲노래 씨가 쓴 책이나 낱말책(사전)을 먼저 읽어 오시기를 바라고, 또는 이야기꽃 뒤로 책이나 낱말책을 사서 읽으시기를 바란다. 왜 그러한가 하면, 모든 이야기꽃은 ‘길잡이가 가르치는 마당’이 아니라, ‘너나없이 함께 배우는 수다판’이다. 둘레에서는 으레 ‘강의·강좌·특강·수업’ 같은 일본 한자말을 쓴다. 그렇다. ‘강의·강좌·특강·수업’은 그냥 일본 한자말이다. 이 한자말 가운데 중국에서 예부터 쓰던 낱말이 있을 만한데, 오늘날 이 나라에서 쓰는 ‘강의·강좌·특강·수업’ 같은 낱말은 일본이 총칼로 이 땅으로 쳐들어와서 뿌려놓은 ‘말씨앗’이다. 일본이 뿌린 말씨앗을 구태여 안 써야 할 까닭은 없다만, ‘총칼을 앞세우고 종살이(식민지 노예생활)로 짓밟으려고 노리면서 퍼뜨린 말씨앗’인 터라, 아무 낱말이나 아무렇게나 쓸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글손질(언어순화) 때문에 일본 한자말을 안 쓰려는 마음은 없다. ‘마음닦기(정신건강·정신수양)’를 헤아리면서 일본 한자말을 씻어내고서 우리 나름대로 우리 삶자리에서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쉽고 수수한 말씨앗(말씨)을 찾아내고 짓고 가꾸고 다듬고 여미고 풀어서 나누려고 할 뿐이다. 그렇기에 숲노래 씨는 ‘강의·강좌·특강·수업’이나 ‘클래스’ 같은 이름을 안 쓴다. ‘이야기꽃·수다꽃’ 가운데 골라서 쓴다. 우리말 ‘이야기’는 “서로 새롭게 생각을 잇는 길”을 속뜻으로 품는다. ‘이야기 = 잇는 말길”을 뜻한다. ‘수다’는 “서로 수수하게 수런수런 가벼우면서 즐거이 생각을 주고받는 길”을 밑뜻으로 담는다. ‘수다 = 수수한 말잔치’를 뜻한다. 모든 ‘강의·강좌·특강·수업·클래스’는 언제나 길잡이(교사·강사·지도자) 혼자 떠들면서 이끄는 얼거리이다. 이런 얼거리가 나쁠 일은 없지만, 길잡이 혼자 떠들 적에는 길잡이만 혼자 배운다. 길잡이도 떠들고, 사람들(청중)도 함께 떠들면, 둘은 서로서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 ‘이야기·수다’란 따로 누구를 길잡이로 삼기보다는 서로서로 이슬떨이가 되고 이웃이 되고 동무가 되어 홀가분히 생각씨앗을 심어서 마음날개로 피어나는 길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밑글을 미리 챙겨서 돌리기도 하되, 되도록 밑글에 얽매이지 않고서 이웃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궁금한 수수께끼를 그때그때 풀면서 새삼스레 생각을 지피는 즐거운 수다판에 이야기밭을 일구고 싶다. 비록 숲노래 씨 한 사람은 어느 곳을 가든 그 하루만 마주하는 글이웃이자 글동무이자 글스승 노릇일 수 있을 텐데, 우리가 마음으로 사귀고 어울리는 이웃이자 동무로 어울릴 수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책이나 글이나 누리집(블로그·SNS)으로 만나면서 새록새록 말씨앗을 즐겁게 심고 가꾸는 오늘을 지을 만하다. 전남 고흥이란 시골에서 살기에 하루 내내 새노래·풀벌레노래·개구리노래에 바람노래·구름노래·별노래에 풀꽃노래·나무노래·숲노래를 누린다. 이런 하루살림을 누리면서 ‘숲노래’란 이름을 스스로 붙이기도 했다. 한 사람은 ‘시골숲노래’를 부르면, 저쪽에서 이웃님이나 동무님이 ‘서울숲노래(도시숲노래)’를 맞가락으로 들려줄 만하다. 서로 숲노래로 바라보고, 함께 숲빛으로 눈망울을 반짝이는 자리를 살아내려는 꿈길이기에, ‘강의’라는 어울림판을 ‘수다꽃’으로 바꾸고 싶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