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스스로 아름답게 (2022.10.19.)

― 서울 〈뭐든지 책방〉



  어제 어쩌다가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라는 데를 아마 열다섯 해 만에 지나가 보는데, 이 앞에 선 ‘지킴이(경비원)’가 사람들을 매섭게 노려보면서 입가리개나 차림새를 꼬치꼬치 따지면서 윽박지릅니다. 어깨띠를 차면 스스로 대단하거나 잘난 줄 알며 ‘마름’질을 일삼는 허수아비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습니다.


  입가리개로 코를 옴팡 안 덮는 길손이 하나라도 있으면 〈교보문고〉에 큰일이라도 터질까요? 그런데 ‘교보문고 안쪽에 있는 찻집’에 바글거리는 사람은 아무도 입가리개를 안 하면서 재잘재잘 큰소리로 수다를 떠는데요? 이들더러 왜 ‘입다물고 입가리개 똑바로 써!’ 하고 윽박지르지 않을까요?


  우리는 넋나간 나날을 보냅니다. 고작 1미터도 아닌 10센티미터 옆에서는 깔깔깔 떠들면서 입가리개를 안 합니다. ‘어깨띠를 두른 지킴이’는 저쪽은 안 쳐다보면서 이쪽을 지나다니는 사람들한테 이 말 저 말 무섭게 읊습니다.


  ‘좋은책’을 읽기에 ‘좋은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좋은마음’이란 따로 없습니다. ‘좋은길’조차 없습니다. ‘좋음·나쁨’은 ‘옳음·그름’으로 가르는 굴레이자, 싸움(전쟁)을 벌이는 불씨일 뿐입니다. 우리가 ‘아름책’을 읽을 마음을 품지 않고서 자꾸 ‘좋은책’을 읽거나 알리려(추천) 한다면, 그만 끝없이 싸움을 걸면서 ‘니 쪽 내 쪽’으로 갈라치기를 하는 불구덩이에 잠겨듭니다.


  아름다움에는 좋음도 나쁨도 없습니다. 사랑에는 옳음도 그름도 없습니다. 아름다움과 사랑은 ‘니 쪽 내 쪽’을 안 가릅니다. 언제나 어깨동무로 포근히 다독이면서 돌아보는 숨결이기에 아름다움이요 사랑이고, 아름책이자 사랑책입니다. 다만, 아름책이나 사랑책은 ‘베스트셀러’도 ‘스테디셀러’도 ‘고전’도 ‘추천도서’도 아닙니다. 아름답기에 아름책이고, 사랑이기에 사랑책이에요.


  서울 바깥일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가려는 아침에 창신동 골목길을 걸어서 〈뭐든지 책방〉으로 찾아갑니다. 오랜만에 이 골목을 거닙니다. 동대문 쪽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지만, 창신동은 작은집이 옹기종기 햇볕을 나누며 차분합니다. 바람도 별빛도 누구한테나 찾아듭니다. 가을도 겨울도 어디에나 스며듭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사랑하면서 아름답게 북돋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어질게 읽고 새기면서 스스로 사랑씨앗을 심을 수 있습니다.


  어린이가 있기에 이 별이 살아나고 새 하루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 마음빛을 되새기는 어른이 있기에 이 별에 노래가 흐르며 하루가 반짝입니다. 어린이로 살던 지난날을 잊은 사람은 ‘어른 아닌 늙은이’로 뒹구는 꼰대짓을 합니다.


ㅅㄴㄹ


《식물 심고 그림책 읽으며 아이들과 열두 달》(이태용, 세로, 2021.11.2.)

《사이에서, 그림책 읽기》(김장성, 이야기꽃, 2022.1.31.)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김영화, 이야기꽃, 2022.8.8.)

《곁책》(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21.7.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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