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숨은책 / 숲노래 책읽기 2023.3.19.
헌책읽기 7 한국과 西洋
이웃말(외국말)을 익히는 분이 부쩍 늘었고, 우리말을 이웃말로 옮긴다든지 이웃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는 분이 무척 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이라면 뜻밖일 텐데, 우리말을 제대로 익히거나 가다듬는 분은 영 안 늘어날 뿐 아니라, 외려 줄어들기까지 합니다. 스스로 살아온 나날을 글로 옮기는 분은 자꾸자꾸 늘어날 텐데, 막상 ‘글로 옮길 말’을 어떻게 다스리거나 살피거나 알 적에 비로소 ‘삶을 담는 말’이 피어나는가를 헤아리지는 않는 셈이라고 할 만합니다. 《乙酉新書 25 한국과 西洋》은 프랑스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에 오래도록 힘쓴 정기수 님이 갈무리한 꾸러미입니다. 이 땅에서 어떤 사람들이 프랑스말을 이웃말로 익혀서 프랑스사람들 삶과 마음이 흐르는 글을 이 나라에 알리거나 나누려 했는가를 차근차근 짚어요. 다만, 정기수 님도 이웃말은 무척 마음을 기울여 익히신 듯하되, 우리말은 썩 마음을 기울여 익히지는 않았다고 느낍니다. 갖은 옮김말씨(번역투)가 흐르거든요. 또한 쉬운말을 잘 안 씁니다. 세 살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하고 다섯 살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하고 일곱 살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에 쓰는 낱말은 같을 수 없습니다. 아홉 살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나 열한 살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에 쓰는 낱말도 다를 수밖에 없어요. 서울사람하고 시골사람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에 쓰는 낱말도 다르겠지요. 꼰대스럽게 말하거나 글을 쓸 적에는 고지식할 뿐 아니라 고리타분합니다. 스스로 꼬마가 되어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면서 말하거나 글을 쓸 적에는 어느새 꽃으로 곱게 피어나게 마련입니다. 어느 ‘꼬’를 바라보면서 어느 ‘고’로 갈는지 스스로 헤아릴 일입니다. 조선 오백 해는 비록 ‘훈민정음’이 태어났으나 ‘이씨 집안’에 벼슬자리를 맡기면서 위아래로 갈랐고, 중국 한문만 우러렀습니다. 조선도 고려도 ‘한겨레·한나라’가 아닌 ‘그들굴레’였어요. 이제 우리는 갇힌(쇄국) 틀을 벗고서 열린 눈빛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ㅅㄴㄹ
《乙酉新書 25 한국과 西洋》(정기수, 을유문화사, 1988.11.25.)
(조선) 역대의 국왕과 양반들은 자기들의 제도의 우월성을 확신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명·문화 및 정치적 완성의 수준에 도달해 있다. 이러한 결과를 박탈당하지 않게 하자.” (38쪽)
우리는 이 모든 번역들이 일본의 영향 아래서, 일본어 번역으로부터 중역하였거나, 그렇지 않고 만약에 프랑스어에서 직접 옮겼을 경우에는 일본어 번역을 참고하면서 옮겼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175쪽)
김억의 번역을 읽어 보면, 첫째 줄을 제외하고는, 무슨 뜻인지 통 알 수가 없으리라. 그리고 그가 프랑스어에 썩 능하지는 못하구나 하는 느낌이 들리라. 하지만 서구의 시를, 특히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를 맨 먼저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 그 자신도 시인이었던 바로 이 김억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 (190쪽)
우리는 한국에서의 번역 활동을 개관하고, 번역의 이론과 방법 및 전문교수의 몇 가지 번역의 실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대체로, 번역들이 문학예술 작품의 의미를 정확하게 옮기는 데 언제나 성공하지는 못하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했다. 그것은 무엇에 기인하는가? 첫째, 번역자들에 의한 작품의 이해가 충분히 깊지 못하다. 다음에, 그들 자신의 나라 말에 대한 지식이 충분히 견고하지 못하다. 끝으로, 때로는 그들에게 성실성과 정직성 그리고 세삼한 주의가 모자란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너무 많이, 따라서 너무 서둘러 번역을 한다. 출판사의 청탁에 응하기 위해, 자기들의 능력 이상으로, 독자들을 무시하고, 그리고 원작을 해치면서. (232쪽)
조선 교회는 이 나라에서 전통적인 사회 계급과 일부다처 제도를 배척하였는데, 이것이 억눌린 자들 사이에 기독교의 급속한 전파를 도운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 선교사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약국과 양로원과 고아원을 세웠으며, 조선의 젊은이들을 신학교에서 교육시켰다. 조선 교회는 천주교 교리의 번역에서 한글을 사용함으로써 한글의 대중화에 이바지하였다. (261쪽)
한국인들은 고통받은 사람들이요, 한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슬픔을 애틋이 사랑하고 있어서, 말하자면 그것을 먹고살아 가는 것과 같으며, 복수는 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비천한 자들과 불우한 자들을 불쌍히 여긴다. (26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