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내가 쓴다 2022.8.16.불.
남이 쓴 글은 남이 누린 삶이자, 남이 그린 꿈이요, 남이 걷는 길이야. 남이 쓴 글을 기릴 수 있을 테지만, 좋아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넌 너이니까 네 삶을 누리고 보고 느끼고 일구면서 네 살림을 그려서 담으면 돼. 네가 손수 차려서 누리는 밥은 ‘줄거리(내용)가 무엇이든 스스로 살찌우는 빛’이란다. 너는 ‘네가 차린 밥’만 보기를 바란다. ‘남이 차린 밥’하고 네 밥을 견주거나 대지 마. 남을 부러워하지도 비웃지도 마. 너는 네가 누릴 밥이 반짝거릴 수 있도록 가만히 보면서 빙그레 웃으면 넉넉해. 알겠니? 줄거리(내용)는 대수롭지 않아. ‘줄거리에 담는 알맹이(핵심)’가 대수롭단다. 그러면 알맹이는 뭘까? 알맹이란, 네가 스스로 차린 밥을 오롯이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망울로 빛살을 담아서 이루는 숨결이란다. 넌 무엇을 먹든 ‘네가 생각하고 말한 숨결’을 먹는 셈이지. 넌 무엇을 쓰거나 읽든 ‘네가 생각하고 말하려는 숨결이 흐르는 이야기’를 받아들인단다. 잔칫밥을 짓고 차리고 먹어도 자꾸 모자라거나 아쉽다고 느끼는 까닭을 스스로 알아차리기를 바란다. 넌 자꾸 ‘줄거리’를 너무 따지거나 높이 여기더구나. 그래, 오줌말이나 똥물을 먹기는 아직 힘들겠지. 그러나 겉모습에 휘둘리지 마. 옷도 글도 밥도 책도 이름도 돈도, 겉모습이 아닌 속내에 흐르는 빛을 볼 노릇이야. 네 이야기는 네가 쓰렴. 네 삶이야. 밉지도 곱지도 않은, 그저 네가 사랑할 삶이란다. 그러고 보니 너희는 ‘똥오줌’을 거름으로 삼은 푸성귀로 차린 밥을 ‘유기농’이라고 좋아하더라. 돌고도는 살림을 반긴다면서, 글은 왜 너희 삶을 스스로 돌고돌리는 길에 쓰지 못 할까?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