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새터 (2022.8.28.)
― 제주 〈책대로〉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건너옵니다. 저녁빛이 돌기 앞서 책집을 들르고서 길손집으로 가려고 합니다. “산들보라 씨, 너희 숲노래 씨는 집을 떠나 밖으로 일하러 나올 적에는 언제나 책집에 다닌단다. 오늘은 이 한 곳만 들르고서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려고 해.” “음, 알겠어요. 그렇게 해요.”
제주시 골목을 걸어서 〈책대로〉에 닿습니다. 지난해에 찾아간 자리가 아닙니다. 그동안 자리를 옮겼군요. 책집지기님은 〈책대로〉를 2021년 11월부터 새터로 옮겼다고 합니다. 새터는 예전보다 작다고 말씀하시지만, 제가 느끼기로는 작다기보다 알뜰하면서 고즈넉한 골목빛이 흐르는 곳입니다. 예전 자리는 큰길하고 가깝지만 부릉부릉 오가는 쇳덩이가 둘레에 많았다면, 새터는 큰길하고 조금 멀면서 마을 안쪽으로 포근히 안깁니다.
요 몇 달 동안 한자 ‘민(民)’이란 무엇인가 하고 곰곰이 짚고 돌아보았습니다. 둘레에서는 ‘국민·시민·서민’에 ‘민중·민초·인민’ 같은 한자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지만, 저는 ‘민’이 들어간 모든 낱말이 껄끄럽습니다. 한자 ‘민(民) = 눈먼 사람 = 우두머리·힘꾼한테 눈을 빼앗긴 나머지 장님으로 살아가는 사람 = 위에서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아니 ‘민 = 종(노예)’인 속내요 밑뜻입니다. ‘국민 = 나라종(국가노예)’이고, ‘시민 = 서울종(도시노예)’이고, ‘인민 = 무리종(집단노예)’입니다. ‘민주·민주주의’는 “종(노예)이 살아가는 틀”을 가리킬 텐데, 우리는 “눈을 힘꾼한테 빼앗긴 채 끌려가는 굴레”가 아닌 “스스로 눈뜨고 살림짓고 사랑하는 새길”로 나아갈 적에 위아래 담벼락을 허물면서 힘·이름·돈을 모두 물리치는 어진 숨빛으로 거듭나겠지요.
한자말이나 영어가 나쁠 일은 없습니다. 그들(우두머리·힘꾼·글바치)은 무시무시한 굴레를 낱말마다 숨겨서 사람들을 길들이려 할 뿐입니다. 숱한 한자말이며 영어이며 어려운 낱말은 그들이 우리를 가두려는 ‘말굴레(언어지옥)’입니다.
요즈막에 자꾸 드는 생각 가운데 하나인데, ‘시골아이’뿐 아니라 ‘시골어른’도 ‘사라질 판(멸종위기종)’입니다. ‘착한어른’과 ‘참한어른’도 사라질 판이요, ‘착한아이’와 ‘마음껏 뛰노는 아이’도 사라질 판이라고 느껴요.
삶을 누리고서 멍울만 키우면 미움이 자랍니다. 삶을 맛보고서 사랑을 키우면 기쁘게 나누는 살림꽃이 핍니다. 티없는(솔직한) 마음이 잘못(죄)이라고 여기기는 어려워요. 티없는(솔직) 마음을 티있는(안 솔직한) 눈으로 바라보기에 잘잘못으로 가르고 말아요. 이제는 누구나 새말을 품고 새빛으로 노래할 때입니다.
ㅅㄴㄹ
《모든 것은 흙속에 있다》(이영문, 양문, 1999.2.28.)
《숨은 질서를 찾아서》(R.파인만/박병철 옮김, 히말라야, 1995.7.12.)
《제주문화자료총서 8 제주여성문화》(문화예술과·제주도지편찬위원회, 제주도, 2001.12.10.)
《개미》(베르나르 베르베르 글·파트리스 세르 그림/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2000.1.10.첫/2007.11.30.고침1벌)
《위대한 탄생 19 벽장 속의 괴물》(머서 메이어/이현주 옮김, 보림, 1989.9.15.첫/1995.3.15.15벌)
《오늘 날씨는 물》(오치 노리코 글·메구 호소키 그림/김소연 옮김, 천개의바람, 2020.1.20.첫/2021.9.1.2벌)
《香港, 路面電車の走る街》(永田幸子 사진·小柳 淳 글, 春陽堂, 2015.6.20.)
《Stormy, Misty's Foal》(Marguerite Henry 글·Wesley Dennis 그림, Scholastic, 1963.)
《하급반 교과서》(김명수, 창작과비평사, 1983.5.25.)
《쿠바혁명사》(레오 휴버만·스위지, 지양사, 1984.9.25.)
《군부독재, 그 붕괴의 드라마》(니코스 풀란차스/강명세 옮김, 사계절, 1987.8.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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