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푸른쉼터 (2022.7.27.)

― 인천 〈호미사진관 서점안착〉



  땀을 뻘뻘 흘리는 한여름이 흐릅니다. 시골에서 살기에 틈틈이 씻고 바람을 쐽니다. 여름이니 땀을 흘리고, 이 땀을 물로 씻고, 씻은 물은 바다로 흘러들고, 바다는 사람들이 흘리는 땀에 서린 기운을 느껴 아지랑이로 바뀌더니, 새삼스레 하늘로 천천히 올라가서 구름을 이루고, 이윽고 온누리를 훨훨 날다가 들숲마을로 사뿐히 내려앉는 빗방울로 찾아옵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건 물줄기로 몸을 씻건, 이 물방울이 푸른별을 고루 도는 하루를 되새깁니다.


  책짐을 이고 진 채 새로 책집마실을 다니며 길바닥에 떨어지는 땀방울은 시골과 다른 까만길(아스팔트 도로)을 적시느라 흙으로 스미지 못 하지만, 바퀴에 밟히다가도 새록새록 하늘로 오르는 아지랑이로 바뀌어 비구름하고 하나가 될 테지요.


  이제 인천지하철을 내려 걸어갑니다. 인천 서구 안골목에 담배꽁초가 많습니다. 고흥도 읍내나 면소재지 길바닥에 담배꽁초가 허벌납니다. 꽁초든 빈 깡통이든 어른부터 마구 버리고, 아이들은 ‘볼꼴사나운 어른 몸짓’을 늘 느끼면서 어느새 이 몸짓을 따라합니다. 어린쉼터가 없는 이 나라에는 어른쉼터도 없습니다. 푸른쉼터도 없어요. 작은 마을책집은 어린이도 푸름이도 어른도 땀을 훔치고 언손을 녹이는 조촐한 쉼터 노릇인 책터라고 여깁니다.


  책집 〈서점 안착〉에 닿습니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습니다. 다가가는 손길은 내려앉는(안착) 손길로 잇고, 옆자락 책을 다독이는 손빛으로 뻗고, 손끝으로 퍼지는 줄거리는 마음으로 감겨들면서 문득 이야기씨앗으로 자랍니다.


  한자말 ‘필사’는 우리말로 ‘베껴쓰기’입니다. 우리말 ‘베껴쓰기’는 “남이 써 놓은 글을 그대로 따라가는 길”입니다. 비슷하면서 다른 ‘배워쓰기’라 하면 “남이 일군 열매를 바라보고 살펴보면서 우리 나름대로 새롭게 가꾸어 받아들이는 길”을 열 만합니다. 아름답거나 훌륭하다고 여기는 글을 베껴쓰기(필사)를 해도 안 나쁘지만, 이보다는 ‘아직 덜 아름답거나 안 훌륭하더’라도, 우리 오늘 하루를 투박한 손길로 누구나 스스럼없이 ‘새로쓰기’를 하기를 바라요. 이름나야 아름다운 글이 아니라, 우리가 손수 적는 글이기에 즐겁습니다. 잘팔려야 훌륭한 글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걷는 오늘이기에 반갑습니다.


  책집을 새로 들를 적마다 등짐 무게를 더합니다. 묵직묵직 책짐을 지고서 걷다가 생각합니다. 걸어다니며 담배 태우는 아저씨·할배는 뭘까요? 이분들은 스스로 이녁 마을을 안 쳐다보기에 안 사랑하는구나 싶습니다. 우리가 우리 눈빛으로 우리 마을을 바라볼 적에 저마다 이 마을길을 가꿀 사랑씨앗을 심으리라 봅니다.


ㅅㄴㄹ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기사님 글, 서혜미 엮음, 2020.3.2.)

《두 아이와》(김태완, 다행하다, 2022.1.10.)

《이런 시베리아》(앵서연, 2020.9.8.)

《HOMIE》(미적미, 서점안착, 2020.6.7.)

《인천책지도》(퍼니플랜 엮음, 인천광역시, 2019.9.9.)

《COMMA 46 Dive》(강지원 엮음, COMMA, 2022.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