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오래글 (2022.1.22.)

― 서울 〈글벗서점〉



  무슨 책을 늘 그렇게 사대느냐고 묻는 이웃님이 많아서 “읽을 책을 삽니다.” 하고 짧게 끊습니다. “그러니까 뭐 하러 그렇게 사서 읽느냐고요?” “아이들한테 물려줄 책을 사서 읽습니다.” “기준은요?” “아름다운 책이건 안쓰러운 책이건, 우리가 삶을 갈무리해서 얹은 이야기꾸러미인 책을 손으로 만지면서, 앞으로 새롭게 지을 이야기하고 책에 밑거름이 될 숨결을 헤아립니다.”


  모든 책은 손길을 타면서 빛납니다. 아직 손길을 타지 않으면 빛나지 않습니다. 모든 책은 우리가 손으로 쓰다듬기에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직 손으로 쓰다듬지 않으면 아무런 이야기가 싹트지 않아요.


  오늘날에는 ‘식물학자·생물학자·과학자’란 이름이 붙어야 풀이름·꽃이름·나무이름을 지을 수 있다고 여기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모든 풀꽃나무 이름은 먼먼 옛날부터 ‘숲을 품고서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 즐겁게 살림을 가꾸던 수수한 사람들이 가만가만 지었’습니다. 나무이름을 알고 싶으면 나무를 안아 보셔요. 풀이름을 알고 싶으면 풀잎을 훑어 혀에 얹어 보셔요. 꽃이름을 알고 싶으면 코맞춤을 하면서 마음으로 물어보셔요.


  모든 책마다 새롭게 품는 숨결입니다. 장삿속에 사로잡힌 책이건, 사랑을 오롯이 사랑으로 풀어내는 책이건, 다 새롭게 흐르는 숨결입니다. 아무리 봐도 딱한 글치레가 흘러넘치는 책을 눈앞에서 볼 적에 생각하지요. “이런 글치레 장사꾼 바보짓이 먹힐 만큼 우리는 이제껏 바보로 살아왔구나.” 여태 숨죽이며 빛을 못 보고 묻힌 책을 코앞에서 비로소 만나며 생각합니다. “내가 오늘 만났으니 나부터 사랑으로 품고서 느낄게. 오늘부터 함께 웃고 놀자.”


  마음으로 그리지 않으면 빈자리가 없습니다. 마음으로 그리기에 ‘없는 빈자리’ 한켠에 틈새자리가 나타납니다. 겨울은 봄으로 나아가는 길목이고, 봄은 여름으로 뻗는 너울목이고, 여름은 가을로 자라는 여울목이요, 가을은 겨울로 잠드는 나들목입니다. 오늘 선 이곳은 어떤 목인지요?


  하늘빛으로 살아가려고 우리말꽃을 짓고, 글을 여미고, 집안일을 합니다. 물빛으로 살림하려고 풀내음을 맡고, 이따금 낫을 쥐어 풀을 벱니다. 숲빛으로 감겨들려고 이야기를 펴고, 이웃을 만납니다. 오늘길을 차근차근 나아갑니다. 오늘 곁에 둘 오래책을 생각하면서 오달진 마음으로 서려 합니다.


  서울 〈글벗서점〉에 찾아들 적마다 쌈지를 탈탈 텁니다. ‘책숲마실 = 쌈지털이’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먼 앞날 아이들이 누릴 책밭·책뜰을 가꾸는 일이에요.


《아리랑 고개의 여인》(고준석 글/유경진 옮김, 한울, 1987.9.5.)

《佛敎 第三十七號》(권상로 엮음, 불교사, 1927.7.1.)

《あひるのアレックス》(三浦貞子·森喜朗 글, 藤本四郞 그림, フレ-ベル館, 2005.2.)

《The Grizzly Bear Family Book》(Michio Hoshino 글·사진/Karen Colligan Tayor 옮김, Picture Book Studio, 1993)

《廣辭林 新訂版》(金澤壓三郞 엮음, 三省堂, 1921.9.25.첫/1938.9.18.490벌)

《小學館世界の名作 11 フランダ-スの犬》(ウィ-ダ 글·森山京 엮음·いせひでこ 그림, 小學館, 1998.9.20.)

《舍廊房 이야기》(김영홍과 일곱 사람, 의학동인사, 1979.5.1.)

《杏林散稿》(강진성과 아홉 사람, 의학동인사, 1978.11.1.)

《나라건지는 교육》(최현배, 정음사, 1975.12.10.)

《영혼의 푸른 상처》(사강 글/이환 옮김, 서문당, 1972.7.25.첫.1977.7.10.5벌)

《新綠禮讚》(이양하 글, 범우사, 1976.6.25.)

《서울의 異邦人》(유진오 글, 범우사, 1977.4.5.)

《Pyramid Series 14 Grimm's Fairy Tales》(양병택 풀이, 계원출판사, ?)

《Pyramid Series 16 Biographical Stories》(양병택 풀이, 계원출판사, ?)

《이명박, 핵심 인맥 핵심 브레인 1》(중앙일보 정치부, 중앙books, 2008.1.3.)

《샘터 181호》(김재순 엮음, 샘터, 1985.3.1.)

《新東亞 359호》(권오기 엮음, 동아일보사, 1989.8.1.)

《아비 그리울 때 보라》(김탁환, 난다, 2015.9.15.)

《철학의 기초이론》(편집부 엮음, 백산서당, 1984.3.20.)

《韓國現代詩文學大系 8 李陸史 尹東株》(김종철 엮음, 지식산업사, 1980.11.25.첫/1984.11.25.4벌)

《신앙과 달란트 사상》(김재명, 태화출판사, 1970.10.30.)

《金南祚 詩集》(김남조, 서문당, 1972.10.25.첫/1978.3.25.중판)

《理性과 革命》(H.마르쿠제/김종호 옮김, 문명사, 1970.3.15.)

《‘아이큐 점프’ 1991년 20호 별책부록 1 드래곤볼 제2부 27》(서울문화사, 1991)

《‘아이큐 점프’ 1992년 1호 별책부록 1 드래곤볼 제2부 35》(서울문화사, 1992)

《‘아이큐 점프’ 1992년 47호 별책부록 1 드래곤볼 제2부 80》(서울문화사, 1992)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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