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밝다 (2021.2.6.)

― 목포 〈고호의 책방〉


  요즈음 어른들은 아이들이 손전화만 주무른다면서 걱정하거나 나무랍니다만, 이렇게 말하는 어른을 보면 딱할 뿐입니다. “여보셔요, 어른 여러분, 그대들이 아이들 놀이터를 몽땅 빼앗은 다음에 손전화만 쥐어 주고서 뭔 소리랍니까?” 하고 외치고 싶어요. 아이들은 따로 놀이터가 있어야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좋은 장난감이 있어야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어디에서나 맨발에 맨손으로 뛰고 달리고 노래하고 춤추고 깔깔거리고 떠들면서 놉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손전화만 주무를 수밖에 없는 이 나라꼴을 고스란히 보아야 합니다. 어느 곳을 가도 아이들이 숨통을 틔울 자리가 없는 판입니다. 서울뿐 아니라 시골도 똑같습니다. 시골은 풀밭이나 논둑에 앉을 수 없어요. 어떤 풀죽임물(농약)을 마구 뿌려대었는지 모를 뿐더러, 자동차로 들길을 달리는 서울내기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고, 시골 어르신 스스로 빈병이나 비닐을 나란히 어디에나 버리거나 태우거든요. 큰고장은 모든 곳을 자동차가 잡아먹었고, 가게가 빼곡하고, ‘학교 + 학원’으로 꽁꽁 틀어막혔습니다. 뛰놀 빈터를 하나도 안 남기고 손전화만 쥐어 준 어른인 주제에 아이들 탓을 하는 모습이란 볼썽사납습니다. 그나마 ‘마당 있는 집’에서 살림을 꾸리면 아이들이 해바라기라도 하겠으나, 겹겹이 쌓인 잿빛집에서 살림을 꾸리니, 아이들은 집에서조차 못 뛰고 못 달리며 소리도 못 질러요.


  목포 기차나루 앞으로 유달산이 있고, 둘 사이에 저잣거리가 있으며, 이곳에 〈고호의 책방〉이 있습니다. 아침부터 일찍 여는 이곳 알림판에 “고호의 책빵”이란 이름이 나란히 붙습니다. 잔글씨로 “빵은 옆집에서 팝니다” 하고 덧붙입니다. 알림판에는 ‘환 호흐(van Gogh) 아저씨’가 두 손에 빵하고 책을 쥔 그림을 담습니다. 뭐, 우리는 일본 말씨대로 ‘고호(고흐)’라 말하지만, 네덜란드말로는 ‘환 호흐’입니다. ‘Ruud Gullit’란 사람을 ‘루드 굴리트’라고들 하나, 네덜란드말로는 ‘륏 훌릳’입니다. 그나마 ‘Den Haag’는 이제 ‘헤이그’ 아닌 ‘덴 하흐’라 말하는 사람이 좀 늘었어요.


  걷거나 달리고 싶어 근질거리는 작은아이하고 길손집을 나서자마자 만난 〈고호의 책방〉으로 들어서지 못합니다. 이다음 목포마실길에 들르려 합니다. 아침햇살이 곱게 퍼지는 책집 앞에 살그마니 서서 이곳으로 찾아들 여러 마을손님이며 먼 마실손님을 생각합니다. 두 손에 빵이랑 책을 쥘 만하고, 두 손에 호미랑 책을 쥘 만하며, 두 손에 붓이랑 책을 쥘 만합니다. 두 손에 바람이랑 별을 쥘 만하고, 두 손에 풀꽃이랑 나무를 쥘 만해요. 오늘 저는 한 손에 작은아이 손을 쥐고, 다른 손에는 이야기를 쥐기로 하고서 호젓한 곳을 찾아서 뚜벅뚜벅 걷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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