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 - 문장으로 쌓아 올린 작은 책방 코너스툴의 드넓은 세계
김성은 지음 / 책과이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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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25 책읽는 사람은 밥도 잘 먹지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

 김성은

 책과이음

 2020.2.12.



변두리에도 삶이 있다. 다들 중심을 보느라 정신이 없지만, 변두리에도 분명한 존재들이 있다. (16쪽)


책방을 열기 전까지는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느껴 본 경험이 별로 없다. 굳이 떠올리자면 첫 손녀가 딸이라는 소리에 충격을 받아 수화기를 놓쳤다는 할머니의 대사 정도. (28쪽)


그렇게 두 사람에게 시집을 한 권씩 팔아, 첫날 16000원의 매출을 만들었다. 처음인데, 첫날인데, 이 정도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다. (47쪽)


꽤 많은 사람이 어설프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회사 일을 멈추고 책방을 열 수 있었다. 너르고 멋진 공간에 화려한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비싼 가구들로 채우는 일이 아니어도 괜찮겠다고. (108쪽)


마음이 조급한 시기엔 음식뿐 아니라 글자도 제대로 먹고 소화하지 못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 더 많이, 더 빨리 읽고 싶은 마음으로 자신을 닦달하던 계절이 있었다. (116쪽)



  서울이란 고장이 가운데를 차지하면 어쩐지 다른 모든 고장은 바깥이나 테두리나 언저리가 되는구나 싶습니다. 왜 서울은 “인천 언저리”나 “동두천 바깥”이나 “수원 귀퉁이”나 “하남 구석”이 아닌 이 나라 한가운데를 차지해야 할까요. 서울에 들어가야 내세울 만하고, 서울에 못 들어가면 초라할까요?


  인천이란 고장에서 나고 자라며 어릴 적부터 “서울로 가라. 구석빼기 인천에 남지 마라.” 같은 말을 귀에 신물이 나도록 들었습니다. 서울로 못 가고 인천에 있으면 뭔가 재주가 없거나 덜떨어지거나 어수룩하거나 바보이거나 멍청하거나 모자라다고 여기는 눈치였습니다. 이때마다 되물었어요. “그러면 시골에서 인천으로 온 사람한테 인천은 뭐지요?”라든지 “이 고장을 사랑해서 뿌리를 내리려는 사람한테 인천은 뭐지요?” 하고.


  이렇게 되물으면 “네가 뭘 몰라서 하는 소리야. 앞에서는 ‘이 귀퉁이가 좋아서 뿌리내린다’고 하지만, 돈을 벌고 이름을 얻으면 하나같이 여기를 뜨고 서울로 갈 텐데?” 하면서 비웃는 말을 들었습니다.


  돈이며 이름이 있기에 더더욱 서울로 안 갈 만하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돈이며 이름이 없더라도 즐겁게 서울 아닌 곳에서 하루를 노래하고 사랑하면서 살림을 지으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김성은, 책과이음, 2020)은 처음에는 ‘귀퉁이·끄트머리·언저리·바깥·구석’이라고 여기던 동두천에 어느새 스며들면서 이 고장을 아끼는 손길로 마을책집까지 연 이야기를 다룹니다.


  참말로 어느 날 갑자기 동두천에 꽂혔다고도 할 만합니다. 비록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마을책집을 척 열고서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갖추고, 여러 손님을 마주하며, 이런저런 책수다를 꾀하고, 영화를 함께 보기도 하며, 바야흐로 주섬주섬 갈무리한 글을 조곤조곤 엮어서 책까지 내놓았으니, “어느 날 갑자기”란 이름이 어울립니다.


  한국이란 나라에서만 보자면 서울은 틀림없이 가운데일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시아란 눈으로 본다면? 뭍하고 바다를 품은 지구라는 별로 본다면? 지구를 비롯한 숱한 별이 가득한 온누리라는 눈으로 본다면?


  곰곰이 보면 복판도 귀퉁이도 없습니다. 가운데도 바깥도 없어요. 모든 곳은 스스로 복판이면서 귀퉁이로구나 싶어요. 우리가 스스로 마음을 어떻게 품느냐에 따라서 가운데도 되지만 구석빼기도 되는구나 싶습니다.


  우리는 이쁘장한 사람을 흉내내어 얼굴이나 몸매를 뜯어고쳐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름값 높은 사람들이 쓴 글을 흉내내어야 글쓰기를 할 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가용을 안 몰아도 됩니다. 우리는 오 억원이든 십 억원이든 이런저런 아파트에 안 살아도 됩니다.


  동두천 마을책집 〈코너스툴〉처럼 스스로 일어나는 마음으로 보금자리를 가꾸면 될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너스툴〉이 길어올린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이란 책처럼 마음에 와닿는 책을 마주하고 오늘 하루를 우리 손으로 또박또박 글로 여미면 넉넉하다고 생각합니다.


  남한테 잘 보이려고 책을 읽지 않습니다. 멋져 보이려고 옷을 입지 않습니다. 자랑을 하려고 자동차를 몰까요? 마음을 살찌우는 이야기를 만나려고 책을 쥡니다. 마음을 사랑하는 빛을 스스로 지으려고 오늘 이곳에서 밭자락을 일구거나 책집을 돌보거나 집안일을 붙잡습니다.


  책읽는 사람은 밥을 잘 먹습니다. 다만 남들이 많이 읽으니 따라 읽으려고 하면, 이런 몸짓으로는 밥을 못 먹겠지요. 얹히겠지요. 멧새 소리를 마음으로 품고, 바람에 날리는 풀잎에서 피어나는 푸른 내음을 마음으로 담습니다. 앞으로 남북녘이 하나되는 날에 동두천이란 고장은 북녘 고장하고 남녘 고장을 잇는 살뜰한 징검다리가 될 만하리라 생각해요. 아름다운 고장에 아름답게 마을책집이 깃듭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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