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시쓰기
숲노래 노래꽃 ― 58. 시든 풀
저는 동시라고 하는 글, 노래꽃을 늘 한달음에 씁니다. 밑글을 쓰고서 이모저모 손질하는 일이 없습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씁니다. 내처 쓰지요. 어떻게 이처럼 할 수 있을까요? 저도 잘 몰랐어요. 언제나 술술 이야기가 흘렀습니다. 어느 날 곁님이 제 동시를 듣더니 한 마디 하더군요. “그대가 쓰는 동시는 그대 머리로 쓰지 않아서 읽을 만하다”고요.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풀이 들려주는 말을 풀 목소리 그대로 옮기고, 돼지나 모기가 들려주는 말을 돼지나 모기 목소리 고스란히 옮길 뿐”이기에 읽을 만하다는 뜻이더군요. 우리는 누구나 이처럼 동시나 어른시를 쓸 수 있습니다. 머리로 짜맞춘다든지, 그럴듯하게 꾸미려 한다든지, 볼만하게 깎거나 다듬으려 하면 모두 재미없어요. 모든 시는 각운도 운율도 안 맞춥니다. 모든 시는 은유도 직관도 아닙니다. 모든 시는 언제나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오늘 이곳에서 고요한 숨결이 되어 꿈을 짓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나누는 말 한 조각, 씨앗 한 톨이에요. 포항 마을책집 〈민들레글방〉 곁에는 낡고 빈 집이 한 채 있습니다. 〈민들레글방〉이 문을 열기를 기다리다가 문득 빈집에 들어가서 이 칸 저 칸 들여다보고, 까치가 내려앉고 생쥐가 드나들고 마을고양이가 잠들던 자리를 하나하나 살피고 냄새를 맡고, 마당에서 싹튼 나무싹이며 푸성귀를 둘러보다가, 이곳에서 ‘시든 풀’ 한 포기가 저한테 속삭이는 말을 들었어요. 이 말을 수다판을 펴다가 문득 곧장 옮겨 보았습니다. ㅅㄴㄹ
시든 풀
죽었기에 시든 풀일까
잠자려고 시든 풀일까
더 살고픈 시든 풀일까
꿈꾸려는 시든 풀일까
겨울꿈 짓는 풀벌레랑
겨울나기 새근 나비랑
이곳을 덮는 해님이랑
여기를 달래는 별빛이랑
헌몸 내려놓고 나면
새몸 받아들일 나
옛몸 흙이 되면
새빛 눈부실 나
까치 찾아와 속삭여
오늘 돌아본 이곳저곳
생쥐 기어와 노래해
지난 한 해 즐거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