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지 모르겠다
사람은 사람. 사람이 짓는 책은 사람들 삶이 담기지. 그래서 모든 책은 쪽이며 두께이며 짜임새가 다르다. 쉰 쪽짜리 책이 있고 삼백 쪽짜리 책이 있고 천 쪽짜리 책이 있다. 삼백 쪽짜리 낱권이 열 자락이 모이는 긴긴 소설이 있고, 이백오십 쪽짜리 낱권 쉰 권이나 백 권이 모이는 긴긴 만화가 있다. 자, 생각해 볼까? 쉰 권이나 백 권짜리 긴긴 만화를 다루는 글을 쓸 적에 어떻게 쓰면 좋을까? 쉰 권을 하나씩 따로 다루는 글을 쉰 자락에 걸쳐서 쓸 수 있겠지? 긴긴 만화 쉰 권이라면 적어도 열다섯 해나 스무 해라는 긴긴 나날을 쏟아부어야 가까스로 이룬다. 긴긴 소설만 긴긴 나날을 들이지 않아. 긴긴 만화도 어마어마하다 싶은 나날에 걸쳐서 어마어마하다 싶은 땀이며 품을 쏟아붓지. 이런 긴긴 만화책을 몇 줄로 간추릴 수도 있지만, 있는 그대로 느낀 이야기를 쏟아내어 조금 길다고 느낄 만하게 쓸 수도 있겠지. 생각해 봐. 종이신문은 글길이를 늘리기 힘들어. 그러나 누리신문은 글길이를 그렇게까지 얽매지 않아도 돼. 무척 길다 싶은, 책을 이야기하는 느낌글로 자그마치 글종이 쉰 쪽이나 백 쪽이나 이백 쪽짜리를 써 볼 수 있어. 생각해 봐. 논문만 길게 쓰거나 책 하나가 되어야 하니? 만화책 하나를 놓고도 논문을 쓸 수 있고, 책 하나뿐 아니라 두어 권이 될 만한 느낌글을 쓸 수 있어. 거꾸로 보면, 스무 해에 걸쳐 쉰 권이 나온 만화책을 놓고서 고작 다섯 줄로 느낌글을 갈무리할 수 있지. 이처럼 고작 쉰 쪽자리 작은 만화책을 놓고서 자그마치 오백 쪽짜리 느낌글을 새롭게 쓸 수도 있어. 뭐가 길지? 뭐가 긴지 모르겠어. 뭐가 크지? 뭐가 큰지 모르겠다. 2007.3.21.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