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9.1.12.
《아무튼, 서재》
김윤관 글, 제철소, 2017.9.25.
시외버스하고 기차를 거쳐 충남 아산이라는 고장에 왔다. 충청남도에서 교사로 일하며 어린이·푸름이하고 즐거이 배움살림을 짓는 길을 가꾸려는 분들하고 엊저녁을 보내고서 아침에 두 시간을 꽉 채워서 이야기꽃을 편다. 이야기꽃을 펴는 자리에 갈 적마다 느끼는데, 내 이야기이든 이웃님 이야기이든 이런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려고 눈빛을 밝히는 분들은 늘 홀가분하면서 즐겁게 배우시는구나 싶다. 이러면서 나도 같이 배운다. 한쪽에서 들이붓는 말이 아닌, 서로 오가는 말이 되기에 아름답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기차에서 읽은 《아무튼, 서재》를 돌아본다. 책칸이란 책만 놓는 칸일 수 있고, 책을 놓고서 삶을 느긋하게 돌아보거나 찬찬하게 헤아리는 칸일 수 있다. 책칸에 꼭 책을 꽉꽉 채울 일은 없다. 책 몇 가지만 있어도 좋다.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책을 놓고, 스스로 새로 쓰려는 종이꾸러미를 놓는다. 책을 고이 건사할 책꽂이나 책시렁을 짜고, 책을 손에 쥐고 앉을 걸상을 짠다. 책도 나무요 책걸상도 나무이며 책꽂이랑 책시렁도 나무이다. 가만히 보면 살림집에 두는 책칸이란, 숲을 새롭게 옮겨놓은 쉼터라 할 만하다. 책하고 책걸상하고 책꽂이가 되어 준 숱한 나무를 헤아리면서 숲내음을 맡는 배움터라 할 수 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