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문화유산답사의 매력을 제대로 알려주면서 국내 여행의
개념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라 할 수 있다. 첫 책이 1993년 5월에 출간된
후 국내편 12권, 일본편 5권, 중국편 3권까지 총 20권이 발간되었고 작년에 출간 30주년 기념으로 국내편
중 다이제스트편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을 내놓았다. 나도 1, 2권은 당시 베스트셀러라 구입해 놓고
읽다 말다 하다가 6권부터 10권까지는 정주행을 했는데 비교적 최근에 나온 11, 12권은 아직 보질
못했다. 이 책에선 10권까지의 글 중 베스트(?) 14편을 선정해 다시 소개한다.
크게 1부와 2부로 나눠 7편씩 수록하고 있는데 먼저 1부 '사랑하면 알게 된다'에선 영암 도갑사, 강진
무위사편으로 시작한다. 이 부분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의 첫 번째 글로 역시 이 책에서도 포문을
여는 역할을 맡았다. 저자가 '남도답사 일번지'가 아니라 '남한답사 일번지'라 부를 정도의 답사의
진수처라고 하는데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이라 책으로나마 여행하는 재미가 솔솔했다. 안동 병산서원을
거쳐 드디어 내가 가본 담양 소쇄원과 옛 정자와 원림이 등장하는데 '정원'이란 말이 일본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져 일제시대에 이식된 단어임은 이번에 알게 되었다. 청풍 한벽루는 내가 읽은 8권에 나오는
내용이라 복습하는 셈이었는데 읽은 지 좀 지나서 다시 보는 지루함이 거의 없었다. 다음으론 강원도
지역이 연이어 등장하는데 평창, 정선 지역과 설악산 일대의 관동지방 폐사지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7권에서 봤던 한라산 영실로 1부를 마무리하는데 벌써 5년 전인 영실 등반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2부 '검이불루 화이불치'에선 남한의 5대 명찰(서산 개심사, 강진 무위사, 부안 내소사, 청도 운문사,
영주 부석사) 중 저자가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한 영주 부석사로 시작한다. 부석사는 국내 건축가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가장 잘 지은 고건축으로도 압도적인 1위였다고 한다. 다음은 문화유산에서
수위를 다투는 경주에서 대왕왕, 감은사터, 불국사를 차례대로 다룬다. 특히 불국사는 국내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사찰이지만 건축가들에겐 오히려 높게 평가를 못 받는 듯하지만 저자는 사찰 건축에
있어 영주 부석사, 순천 선암사와 함께 3대장으로 꼽을 수 있다고 한다. 한국 사람은 부석사의 호방
스러운 기상을, 일본 사람은 선암사의 유현한 분위기를, 서양 사람들은 불국사의 공교로운 인공의
멋을 높이 평가한다고 하는데 저자는 부석사나 선암사와 비슷한 절은 많지만 불국사는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구한 독창적이고 독특한 건축이라고 평가한다. 이제 백제의 문화유산으로 넘어가 서산 마애불과 부여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터를 둘러본다. 서산 마애불을 필두로 백제의 미소를 담은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국보 제293호인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은 '미스 백제'라고 불릴 정도지만
아직 직접 보진 못했다. 그나마 얼마 전에 호암미술관에서 봤던 '백제 금동관음보살 입상'을 통해
백제의 미소가 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제 마무리는 서울에 있는 종묘와 창덕궁으로 하는데 둘 다
9권에 수록되어 있고 내가 직접 가본 곳들이라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이렇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고갱이를 맛볼 수 있는 책이었는데 아직 안 읽은 책들도 어서 빨리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