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나 - 왕을 만든 사람들 그들을 읽는 열한 가지 코드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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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권력자인 왕과 참모라 할 수 있는 신하는 기본적으로 갑을관계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킹메이커로 맹활약하여 왕이 즉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왕과 신하의 권력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는데 왕과의 관계를 적절히 지켜서 천수를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서 죽음을 재촉하는 사람도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왕과 미묘한 관계에 있는 참모의 입장에서 11가지 키워드를 선정해

여러 유형의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는데 김유신, 정도전 등 대부분 우리에게 친근한 인물들이 많았지만

박자청처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인물도 있었다.

 

먼저 포문을 연 인물은 신라의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이었다.

엄격한 골품제도가 유지되던 신라사회에서 가야 출신 2류 진골인 김유신은 사회적으로 출세에 한계가

있자 역시 하자 있는 왕족이었던 김춘추를 발판삼아 신라사회의 신주류로 부상하는데

삼국통일이라는 커다란 어젠다를 제시했기에 폐쇄적인 신라사회를 역동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여 고려를 반석에 올리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신숭겸, 배현경, 복지겸,

홍유는 대부분의 개국공신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개국공신들은 논공행상과정에서 더 많은 권력을

원하고 왕과 맞먹으려 들다가 결국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은데 위 네 명의 공신들은

마음을 비우고 오로지 충심으로 헌신했기에 당대는 물론 사후에도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관통 한국사'란 책에서 한국사의 주요인물로 선정되었던 소서노는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에 실질적인

주역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 세력이 없던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북부여에서 유리가 찾아오자 주몽은 유리를 태자로 삼는다. 자신의 아들이 주몽의 뒤를 이을 거라

생각했을 소서노로선 굴러 온 돌에게 왕위를 빼앗긴 형세라 주몽과 유리 부자에 맞서

권력투쟁을 할 수도 있었지만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선택한다.

보통 기득권에 집착해 좁은 시야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기 쉬운데

넓은 시야에서 한 대범한 결정이 결국 고구려와 백제 모두 윈윈하는 결과를 낳았다. 

요즘 혁명가로 주목받고 있는 정도전은 당대의 핵심 문제라 할 수 있는 토지개혁을 추진해

역성혁명의 토대를 제공했지만 사병혁파에는 실패하여 결국 이방원에 의해 제거된 반면,

황희는 자신을 믿어주는 군주들을 만나 평생 할 말 다하면서도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당파를 뛰어넘어 백성들을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었던 대동법의 전국 실시를 지속적으로 주장한 김육은 당리당략과 자기들 이익에만 골몰하는 요즘 정치인들이 꼭 본받아야 할 인물이었고,

불륜으로 낳은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선왕의 적자를 죽이려 한 천하의 악녀라는 누명을 쓴 천추태후는 사대주의에 매몰된 유학자들에 맞서 전통 풍습을 계승하고 고려의 자주성을 지켜려

한 인물이었다는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명청 교체기에 마지 못해 명나라 원군으로

파병된 병사들을 이끌어야 하는 악역을 맡은 강홍립은 원치 않은 일도 임무가 주어지면 해내야

하는 신하의 운명을 잘 보여주었는데, 재조지은 타령을 하며 이구동성으로 파병을 주장했지만

정작 파병군들의 지원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던 당시의 조정을 보면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이 책에서 가장 낯선 인물인 박자청은 경회루 등 조선 개국 당시 서울의 주요 건축물 공사에 거의 모두 관여한 인물이었는데 미천한 신분이라 양반들의 천시와 질투가 계속되었지만 탁월한 기술과

성실함으로 태종과 세종에게 인정받아 1품의 지위에까지 이르렀는데 조선 초기의 역동적인 사회상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오직 권력만을 탐하다 연산군의 패륜이라는 비극을 자초한 인수대비나

참모로서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서 왕의 역린을 건드려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만 홍국영까지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 인물들은 각자의 스타일대로 왕을 보필하거나 자신의 꿈을 추진하지만

자신과 궁합이 잘맞는 군주와 시대를 만나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지나친 욕심과 군주와의 코드가 맞지 않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인물도 적지 않았다.

이덕일이 쓴 역사책들을 이미 여러 권 읽었지만 그의 책은 늘 소설책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얘기들을 담고 있어 술술 읽히면서도 기존에 알던 사실과는 사뭇 다른 내용들을 새롭게 알게 된다.

이 책도 왕과 신하 사이의 미묘한 역학관계를 역사속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잘 조명해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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