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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 당쟁사 - 사림의 등장에서 세도정치까지, 선비들의 권력투쟁사로 다시 읽는 조선 역사
이덕일 지음 / 인문서원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폐해 중 하나가 정당간의 막무가내식 폭로전과 죽기살기로 정쟁에 몰두하는
악습이라 할 수 있는데 하루 아침에 생긴 고질병이 아니라 붕당정치가 시작되면서부터 생긴 유구한
역사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정치라는 단어 자체만 들어도 신물이 날 정도라 할 수 있지만
이런 상태에 이른 역사적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면 그 해법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주류 역사학계에
반항하는 믿고 보는 작가 이덕일 선생의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학창 시절 국사를 공부할 때 동인, 서인, 남인, 북인으로 부족해 대북, 소북, 소론, 노론 등 워낙 파벌이
많다 보니 왠지 한국인의 패거리 문화를 그대로 입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들었는데,
훈구파와 목숨을 건 싸움으로 4대 사화를 거친 후 가까스로 정권을 장악하게 된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분당하게 되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얘기 이전인 4대 사회 등은 저자의 '조선 선비
살해사건 2'을 통해 잘 정리할 수 있었는데 훈구파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사림은 이조전랑이란
인사권의 요직을 둘러싼 갈등으로 선조 8년 김효원의 동인과 심의겸의 서인으로 갈라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감정싸움이 발단이 된 것 같은데 한 번 갈라선 이후론 정권을 두고 서로 죽고 죽이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발전하게 된다. 초창기에는 아직 누가 어디 소속인지 편가르기가 명확하지 않았는데
중립적 성향이었던 이이를 두고 동인이 집요하게 공격을 하자 어느 틈엔가 본의 아니게 서인으로
자리매김한다. 당쟁은 왕위계승과 연결되면서 정말 생사를 건 투쟁으로 변질되게 되는데 선조가
맘에 들어하지 않았던 광해군이 임진왜란 덕에 세자가 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즉위하면서
광해군을 지지했던 대북이 집권하게 된다. 그 이전에 광해군 세자 건저 문제로 실각한 서인 정철 등의
처벌을 두고 동인은 엄정한 처벌을 주장했던 북인과 관대한 처벌을 주장했던 남인으로 갈라섰고,
북인은 다시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과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으로 나뉘게 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어느 줄에 서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졌다. 서인이 광핵군을 몰아내고 인조반정에 성공하면서
이후의 역사에선 주로 서인이 여당을 남인이 야당을 맡게 되는데 숙종시대 이전까진 그래도 어느 정도
공존이 가능했지만 숙종의 연이은 환국정치로 집권 여당을 계속 갈아치우자 집권을 하지 못한
세력에겐 죽음만이 기다려서 각종 음모론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경종, 영조,
사도세자, 정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자기 편이 임금이 되지 못하면 죽게 되는 세상이 되자
서인도 노론과 소론으로, 노론도 시파와 벽파로 세분화되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조선시대의 당쟁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었는데
당쟁이라는 게 정말 가치 있는 주제에 대해 합리적인 논거를 바탕으로 하는 건설적인 논쟁이기보단
순전히 왕위계승이나 성리학이나 탁상공론적 주제를 두고 벌이는 그들만의 논란에 불과해서 과거나
지금이나 국민은 안중에 없는 건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소모적인 당쟁으로 왜란과 호란을 겪고
심지어 나라를 빼앗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지만 역사를 통해 배운 게 아무것도 없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현실 정치를 보면 결국 숙종때처럼 국민의 심판으로 정권을 계속 갈아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는데 한국정치의 폐단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게 조선시대의 당쟁사를 깔끔하게 잘 정리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