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가 보통은 이런 생각으로 글을 쓰진 않습니다.) 제 글을 읽어보시고 의견이나 본인의 생각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다른 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정말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질문은 간단합니다. 그 때 그 당시의 홀로코스트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옳은가 그른가?

 

 오늘 인문학 모임을 했습니다. 오늘의 선정도서는 <죄와 벌>, 그리고 영화는 <시카리오>를 다뤘습니다. 정의에 대해 이야기나누고 토론했습니다.

 

 자려고 누웠다가 오늘 나눴던 이야기들이 떠올라서 이걸 빨리 글로 쓰지 않으면 잠 못 이루고 계속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것 같아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글을 씁니다.

 

 

 윤리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칸트로 대표되는 절대론적 윤리관과 공리주의로 대표되는 상대론적 윤리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적인 도덕법칙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토론 도중에 저는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다면 홀로코스트도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저는 사례를 통해서 상대방의 논리를 무너뜨리려는 생각으로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인데, 상대방의 대답은 "그 당시, 그 상황을 고려해봤을때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였습니다. 여기서 제가 무어라 더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저 대답이 미친 대답이라고 생각하고, 미친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걸 입 밖으로 내뱉을 순 없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모임인원이 5명이었는데, 2명이 이런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저와 입장을 같이한 나머지 두 명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 두 명은 그다지 충격을 받은 눈치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그 상황에서 홀로코스트가 정당화된다고 생각하는 두사람을 타임머신에 태워서 그 당시 그 상황 속 홀로코스트로 보내고 싶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홀로코스트가 정당하다고 생각할까요?

 

 

 사실 저는 하소연을 하기 위해 여기 글을 올린 것입니다. 저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싶어서 말입니다. 사실 누군가가 제글에 댓글로 "홀로코스트는 정당했다." 라고 글을 올리고 저를 설득하기 위해서 논리적으로 설명을 한다고 해도 제가 설득당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홀로코스트는 정당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홀로코스트는 정당하지 않았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여기가 만약 프랑스나 독일 등의 유럽국가였다면 저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저는 열심히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하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이야기를 통해 악의 평범성, 시스템화된 악, 무사유의 위험성을 이야기하고 강조해도 소귀에 경읽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나타나서 산파술을 통해 그 두 명의 생각을 검증해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서는 포기가 빠른 편입니다. 저의 능력부족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 능력으로는 그 두 명을 설득할수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말문이 너무 쉽게 막혀버립니다. 그리고 감정이 앞서다보니 오히려 침묵하게 됩니다. 더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생각밖에 안드는 거지요. 그러고보면 소크라테스는 참으로 끈기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소크라테스 선생도 저처럼 놀라서 말문이 막혀버렸을지도요.

 

 

 글을 이렇게 써놓고 각자의 의견에 대해 말씀해달라고 하다니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되었네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정말로 궁금합니다. 정말 대국민투표라도 해보고 싶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홀로코스트도 정당했다." 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설마 5명 중에 2명, 40%는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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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9 2016-03-13 0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라디오님의 생각에 동조합니다. 홀로코스트가 용납될 수 있는 상황이 있을까요? 굳이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관을 따르지 않더라도 절대 없겠죠.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란 책을 썼던 지그문트 바우만은 홀로코스트가 아이히만에게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도 같이 어떤 괴물성, 어떤 예외가 아니라 현대성 자체에 내재된 보편성의 결과로 봐야만 제2의 홀로코스트를 막을 수 있다고 봤었죠. 그는 악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때, 타인에 대한 이해를 거부할 때, 말 없는 윤리적 시선을 외면하는 눈길과 무감각이 바로 악이라고 말이죠. 악이란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나보다 약한 타인의 윤리적 호소에 대한 무시나 거부도 악으로 봐야한다는 것이죠. 상황에 따라 홀로코스트를 긍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제겐 아직 홀로코스트가 절멸된 것은 아니며 다시 반복될 위험을 알려주는 것 같네요. 더구나 소귀에 경읽기라니! 두서가 많이 없습니다만 고양이라디오님 지지를 위해 감히 말해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3-13 11:05   좋아요 0 | URL
헤르메스님 좋은 말씀 격하게 감사합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단비같은 댓글이네요. 하지만 상대방의 이런 답변이 예상됩니다.

첫째, 홀로코스트가 용납될 수 있는 상황이 절대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느냐? 미래 사회의 특별한 상황에 처하면 정당화 될 수도 있지 않느냐?

혹은 둘째, 왜 지그문트 바우만의 악의 정의를 내가 받아들여야 되느냐? 그 정의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개인의 정의일 뿐 그것이 모든 시대 모든 사람 모든 상황에 통용되는 절대 진리는 아니지 않느냐? 충분히 다른 악의 정의가 있을 수 있고 지그문트 바우만과 상반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생각이 보편타당하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느냐?

라고 나올 것입니다. 저도 어느정도 학습효과가 있어서 이제는 상대방의 반응도 예상이 되네요. 저는 알파고는 아니지만 1초 만에 `더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 라는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저는 하루키의 소설의 이런 문구를 좋아합니다. ˝설명하기 전에 모르는 사람은 설명해도 모른다.˝ 개인의 양심이나 도덕성을 설명하기 전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아무리 설명해봐자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을 바꿔야 되는데, 그 독을 바꾸기는 너무도 어렵습니다.

저도 그들의 논리에 홀로코스트나 폭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겠지만요...

ICE-9 2016-03-13 12:39   좋아요 1 | URL
실은 고양이라디오님이 생각하신 상대방의 반박이 2차 대전 전에 법철학의 주류이기도 했습니다. 근대 이후 법철학사는 자연법과 실정법의 투쟁 그 자체였습니다. 특수한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법을 인정해야 하는가가 근본이었죠. 그런 보편적인 법을 자연법이라고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가 가장 대표적인 자연법이죠. 반면 시대와 지역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게 실정법입니다. 근대엔 자연법 부정론자들이 우세했죠. 고양이라디오님을 반박했던 이들처럼 말이죠.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홀로코스트 때문에 자연법이 다시금 강하게 요청되었고 지금은 자연법적 가치가 보편이 되고 있습니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학살자에 대한 국제재판이 가능했던 것도, 북한인권법 같은 것도 2차 대전전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만 이제 가능하죠. 다들 자연법이 실정법에 우선한다는 사고가 깔려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특히 미국의 법철학자 존 피니스는 과연 정말 이런 자연법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를 반박하기 위해 고대부토 현재까지 전 세계 모든 자료를 모아 검증한 바 있습니다. 그러다 인류 보편으로 인정되는 자연법적 명령(칸트의 의무 명령 같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것을 실정법이 반드시 지켜야 할 9개의 자연법적 가치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반박하는 상대주의, 특수주의는 현재까지 충분히 반박되어온 상황이고 현재는 적어도 학계에서는 아무도 거기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장하는 것은 독단이고 아집일 뿐이죠. 그러므로 고양이라디오님 말씀대로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한 목적이 악한 수단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한 것이 독일의 나치를 만들고, 아도르노가 비판했던 도구적 이성이었죠. 목적 자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완수할 수 있느냐에만 이성을 사용할 뿐, 목적 그 자체가 정당한지를 판단하는 데 사용하지 않으니까요. 상황에 따라 살인도 허용된다는 것은 사실우리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만날 수 있습니다. 본 아이덴티티 같은 영화에서 많은 이들을 지키기 위한 임무 때문에 일반인들이 사건에 휘말려 희생되는 것 같은 장면이죠. 전염병이 창궐하는 사태를 다룬 영화에서도 이런 상황은 자주 등장합니다. `콜레트럴 데미지`란 말도 있듯이 말이죠. 다수의 사람을 살리기 위해 소수의 사람을 위험에 빠뜨려도 좋은가? 안되는 일이죠. 필요불가결할 일일 수는 있어도 결코 정당화되어선 안되는 일이죠. 문제는 정당화에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다수의 이익을 구했기 때문에 이 일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 그 자체가 문제라고 봅니다. 설령 그런 이유로 소수를 희생시켰더라도 거기에 대한 책임과 사죄가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런 일을 당연시여기는 게 정말 커다란 문제라고 봅니다. 댓글이 너무 길어집니다만 라캉은 유토피아의 추구 자체에 이런 폭력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유토피아 때문에 이런 폭력성이 정당화되고 있다고 했었죠. 실은 알고보면 우리의 문명 자체가 이런 폭력성을 한 축으로 해서 존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보다 열등한 타자에 대한 폭력적 배제가 늘 상존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독일 나치가 예외적 현상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종북몰이, 색깔론 많잖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전 더욱 바우만의 악에 대한 정의가 보편 윤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분명 주제넘지만 그런 취지로 댓글을 달고 있는 것입니다. 실은 여기엔 오직 하나의 마음 밖에 없습니다. 고양이라디오님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으며 언제까지나 그것을 밀고나가셨으면 좋겠다. 그것 뿐이지요. 잡설이 너무 길었습니다. 그럼, 휴일 잘 보내세요^^

고양이라디오 2016-03-14 20:05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자연법이 실정법에 우선한다.˝ 라는 의견에 학계에서 동조하고 있군요. 점차 일반인들의 의식에도 스며들었으면 좋겠네요.

저도 헤르메스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필요불가결한 상황이라고 해서 소수의 피해를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피치 못하게 소수에게 피해를 줘야하는 상황이라면 충분한 협의와 논의를 해서 동의를 구하고 책임의식과 사죄, 보상 등이 주어져야지, 어쩔 수 없다라고 당연시해서는 절대 안 될 일입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03-13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3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3-13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뒤 맥락이 없어서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홀로코스트를 지지한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아닙니까 ? 뭐라 하던가요 ?

고양이라디오 2016-03-13 10:49   좋아요 0 | URL
정확한 맥락은 생각나질 않고요. ˝선한목적은 악한 수단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란 주제로 토론을 나눴습니다. <죄와 벌>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었고요. 두 명은 정의나 선, 악의 개념은 상대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살인하면 안된다.` 라는 명제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때문에 홀로코스트도 정당하다는 논리까지 가게되는 것이고요. 특별한 시대에 특별한 상황에 특별한 논리였으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3-13 11:30   좋아요 1 | URL
글쿤요. ㅋㅋㅋㅋㅋㅋ.

선한 목적을 위한 악한 수단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항상 도덕적 딜레마를 다룰 때 나오는 소리입니다만.. 이 논리를 확대해서 홀로코스트도 정당하다, 라고 말한다는 그것는 논리 박약`인 것이죠. 홀로코스트란 집단성을 의미합니다. 대량 학살이잖아요. 이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죠.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테러했다. 이것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씁니다.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이토 한 명을 죽이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안중근이 일본 전체에 핵폭탄을 떨어트려서 홀로코스트를 감행한다면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 그런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나찌와 다름없죠. 그 논리에 대해 찬성한다면 그 사람은 나찌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3-14 19:56   좋아요 0 | URL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은 정당화 될 수 있을까요? 전쟁에서 살인은 정당화 될 수 있는가처럼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한 명을 암살해도 되면, 두 명도 될까요? 이런식으로 연속성 문제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홀로코스트도 600만명이라는 수치로 양적으로만 접근하면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유대인 한 명이 살해당했다고 해도 결코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되선 안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토 히로부미 암살도 어려운 문제같습니다.

yamoo 2016-03-13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라디오 님은 항상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면서 책을 보시는 듯해서 리뷰 보기에 아주 좋습니다! 쓰신 논조에 동의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3-14 19:51   좋아요 0 | URL
칭찬에 동의까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16-03-14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극적인 제목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