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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사회 -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충동인류의 미래
폴 로버츠 지음, 김선영 옮김 / 민음사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나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면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란 말인가?"
-고대 랍비 장로 힐렐(본문에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 책의 요지이기도 하다. 현대사회는 공익보다는 사익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도덕적 가치보다는 이(利)를 추구하는 사회가 되었다. 저자는 그렇게 된 원인과 현재 실태를 보여주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리고 행동에 나서야할 때는 바로 지금이라고 강조한다.
저자 폴 로버츠는 <석유의 종말>, <식량의 종말>을 집필한 저널리스트이다. <근시사회>의 원제는 <충동사회>라고 한다. 어떤 제목이 더 나은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겨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둘다 좋은 제목이라 생각한다. <충동사회>가 책의 내용과 저자의 의도와 더 적합한 것 같지만, <근시사회>도 내용과 의도에 크게 어긋나지 않고, 제목으로서도 좀 더 근사한 느낌이다.
최근에 사회학 문제를 다룬 책들을 몇 권 봤었다. 오찬호교수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와 장하성 교수의 <왜 분노해야하는 가>였는데, 이 책은 그 책들 보다 개인적으로 더 만족스러웠고 좋았다. 이 책은 미국사회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책이지만, 우리나라에 적용해보아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미국사회와 유사하다. 신자유주의, 점점 원자화되어가는 개인, 일그러진 기업윤리, 포퓰리즘(인기에 영햡하는 정치형태)의 정치까지 너무도 유사하다. 때문에 폴 로버츠가 진단과 해결책이 굉장히 공감갔다.
이 책은 3부로 나뉘어 있다. 매우 적절한 구성이고 배분이라 생각한다. 1부 나 중심 사회 에서는 우리 사회가 충동 사회가 된 원인에 대해서 밝힌다. 그 원인은 자본주의의 효율성이 개인에게 내면화되어서 개인이 곧 시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많이' 의 시장논리가 개인의 논리가 되어버렸고, 개인은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변모했다. 때문에 자아실현은 멈춰버렸고 욕망과 불안한 열망만이 가득해졌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의 욕망을 비집고 들어간 것 역시 자본주의였다. 기업은 끊임없이 새롭고 더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고 광고했고, 금융은 신용카드와 부동산대출로 개인의 욕망을 부채질했다. 스마트폰과 SNS는 그러한 개인의 욕망을 비집고 들어간 좋은 예이다. 우리는 점점 디지털화되어가고 점점 원자화, 파편화되어간다. 점점 더 충동적이 되어가고 근시안적이 되어간다. 공동체로부터 멀어지고 자아에만 몰두하게 된다.
2부 깨진 거울 은 충동 사회의 실태를 고발한다. 개인은 점점 더 나르시스트가 되어간다. 기업은 주주가치를 올리기 위해 기업이윤을 자사주 매입에 쏟아붇고 직원복지와 신기술개발에는 뒷전이다. 그리고 직원을 해고하거나 외국에 외주하고 기계를 도입한다. 점점 더 근시안적인 경영으로 기업의 발전보다는 단기적 수익을 위한 주식을 끌어올리는 경영에만 몰두한다. 의료역시 돈이 되는 질병에만 몰리고 건강보험의 혜택도 부익부 빈익빈이 극심하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지만 7명 중에 1명의 의료보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사회병폐를 해결해야할 주체인 정치조차도 포퓰리즘에 빠져버렸다. 얼마만큼의 선거비용을 쓰느냐가 선거의 당락을 결정짓는다. 정치가는 오로지 선거자금을 모으기 위해 그리고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만 심혈을 기울이고 그리고 정치는 점점 극우와 극좌로 양극화 되어간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바로 자본주의 논리, 그리고 금융의 논리 때문이다. 자본주의 논리는 눈 앞의 이익만 추구하는 근시안적 논리와 충동적 논리를 부추긴다. 정치조차도 금융화되어서 경제논리에 종속되고, 기업과 금융의 로비에 좌우된다. 월가와 거대 은행이 정치권마저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자본주의의 병폐는 소수에게 독점적 이익을 선사하고 다수에게 폐해를 전가한다. 너무 거대해져서 쓰러지면 국가 경제와 국민이 함께 휘청거리기 때문에 국가보조금, 지원금과 여러 혜택들을 받고 있다. 국민들의 월가 시위도 있었지만, 여전히 강대하다.
3부 더 나은 세상을 향하여 에서는 이러한 문제점들의 해결책을 여러 방면에서 꼼꼼하게 다룬다. 나는 이 점이 가장 좋았다. 그동안 본 책들은 문제점만 늘어놓고 끝내버리거나, 문제점은 9할 정도 다루고 해결책은 1할 정도 다루는 용두사미의 형태였는데, 이 책은 해결책에 대해서 충분한 분량을 다루었다. 저자의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느껴졌다. 사실 책에서 꼭 해결책까지 다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누구보다 그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한 사람이라면 해결책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문제와 해결책은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 문제가 보이면 해결책도 보이기 마련이다. 저자는 자신이 제기한 문제점과 그 실태들에 대해서 다시 꼼꼼하게 하나하나 해결책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게 나는 무엇보다 좋았고 만족스러웠다. 그동안에 쌓여왔던 불만족이 해결되는 것 같았다.
해결책은 우리 스스로가 일단 소비문화에 저항하고 벗어나야 한다. 잠시 스마트폰을 끄고 소셜 네트워크가 아닌 가족, 사회공동체의 화목함을 되찾아야 한다. 현 경제체제가 종착지이고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대안 모델을 생각해 봐야한다.(저자는 이를테면 독일이나 싱가포르를 들고 있다). GDP를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건전성을 측정하는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무엇을 측정하느냐가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줍니다. 올바로 측정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올바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p308)
빌 매키번은 '심오한 경제' 라는 개념을 통해 현재 GDP 개념에서 제외되는 세 가지 종류의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경제활동을 구상했다. 그 세가지는 바로 장기적이고 생태적인 지속성, 평등한 소득, 인간적 행복이다. (p309)
그리고 시장과 금융들을 규제할 수 있는 각종 제도들을 만들고 직원 교육을 장려하고 은행을 쪼개라고 이야기한다. 정치에서는 초당파적인 가치를 우선하고, 전체사회를 위한 중도정치를 지향하자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국민들의 요구라고 결론짓는다. 국민들이 깨어나고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핵심이 될 것이다. 공동체가 무너지면 그 폐해 역시 다시 개인에게 돌아온다. 근시안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지 말고, 좀 더 크고 넓게 바라보자. 다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분명 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