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쓴다. 오랜만에 책 한 권을 읽었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세계 2차 대전 당시의 처칠의 모습을 그린 영화 <디키스트 아워>를 재밌게 보고 처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그는 명연설가이자 노벨 문학상을 받은 명문장가가 아닌가. 그의 글을 직접 읽어보고 싶었다. 


 첫 책으로 <폭풍의 한가운데>를 골랐다. 다른 책들도 이어서 읽어보고 싶다. 


 




 











 <제2차 세계대전>은 처칠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하지만 두께가 만만치 않다. 일단 <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을 먼저 읽어봐야겠다. 


 처칠은 매력적이다. 영웅의 풍모를 갖추고 있다. 그의 글에서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당당함, 진솔함. 거침없이 시원시원하다. 그리고 유머까지. 



 <폭풍의 한가운데>를 읽으면서 좋은 문장, 좋은 문단들이 많았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해보겠다. 책 초반부는 전쟁 속에서 다양한 일화들을 이야기하는데 개인적으로 전쟁 이야기들 보다는 책 후반부의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이 좋았다. 


 그는 아이젠하워가 평했듯이 "처질은 위대한 인물이다. ..... 그는 단지 작은 섬나라의 입장뿐 아니라 ..... 서구문명이라는 큰 틀에서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이젠하워도 처칠을 과소평가했던 거 같다. 그는 단지 서구문명이라는 입장 뿐 아니라 지구와 인류의 운명이라는 틀에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처칠의 비행기 조종, 벽돌쌓기, 그림 그리기를 취미로 가지고 있었다. 그의 취미 이야기들이 재밌었다. 그의 취미에도 그의 가치관과 철학이 묻어난다. 특히 그림 그리기는 나도 취미로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림 그리기라는 취미를 찬양하고 매혹적으로 묘사하고 추천한다.



 이제 처칠의 문장 속으로 들어가보자. 


  두 가지 경우 모두, 구원은 언제나 내부로부터 성숙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외부와 바닥으로부터 강요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p198

 

 독일의 U보트 잠수함이 영국의 상선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영국 해군의 수뇌부는 해군이 영국 상선들을 보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호작전을 거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영국 해군 말단 장교와 영국 정치인들의 객관적인 근거와 논리를 토대로 치열한 회의와 싸움을 거쳐 해군 수뇌부를 설득한다. 그리고 효과적으로 독일의 공격으로부터 상선들을 보호해냈다. 


 모든 조직이 그렇지만 군대는 특히 상명하달식의 수직적 위계 구조가 강한 집단이다. 말단 장교의 발언권보다 장군급의 발언권이 강한 것이 당연시 된다. 소위 '내가 짬빱이 얼만데 내 판단이 옳지! 너까짓게 뭘 안다고 나서?' 이런 분위기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위계질서보다 객관적 근거와 논리들이 받아들여져 좋은 변화를 만든 이야기이다.  




 아래는 처칠이 아일랜드와 평화협상을 진행하는 이야기 속 문장들이다. 

 

 마이클 콜린스는 영국 정부와의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하게 자기가 한 약속을 지켰다. 그에게 가해졌던 긴장과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과거 동지들의 끊임없는 살해 위협과 그에게 씌워진 배신과 거짓의 누명, 열댓 번이 넘는 실제 살인 음모, 그리고 자신의 절박한 선택으로 인해서 생겨난 마음속의 갈등이 그의 격정적인 성격과 어우러지면서 엄청난 부담이 되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증오해왔지만 결국에는 신뢰하게 되었던, 영국 정부의 각료들과 맺은 약속만큼은 철저히 지켜나갔다. 신뢰와 선의를 바탕으로 해서 성립된 협정을 위반함으로써 아일랜드라는 이름이 더렵혀져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결의가 그에게는 서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잘 압니다." 그가 협상이 끝나갈 무렵 나에게 한 말이다. "얼마 못 가서 내가 살해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오. 내가 살아서 할 수 있는 것보다는, 나의 죽음이 평화를 위해서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줄 수 있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이로." 그는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화해의 조약' 에 자신의 생명이 담긴 피로 서명을 대신했다. -p326

 

 잘 알려지지 않은 처칠의 업적 중 하나가 아일랜드와의 평화협상을 성사시킨 것에 있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관계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가실 것이다. 아일랜드 정부에는 키플링이 얘기하는 "소총 개머리판의 쇠를 먹어 삼킬 만한" 증오심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일랜드 측의 마이클 콜린스는 평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과거 동지들에게 자신이 배신자로 낚인 찍히더라도 신뢰와 선의를 바탕으로 한 평화를 꿈꾸며 협상에 나선다. 감동적인 영웅의 모습이었다.


  

 아래는 민주주의에 대한 처칠의 견해를 엿볼 수 있는 문장들이다. 


 의회주의 체제하에서 이러한 엄청난 과학적인 발견들이 미칠 영향을 심각하게 고려해 본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일같이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이러한 천재지변에 해당하는 사항들에 대한 적절한 수용 방법을, 일반 대중이 선거에서 투표로 결정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미 세계 각국의 의회는 자국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안인 경제문제를 처리하는 데 매우 부적합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심각한 문제들을 놓고 벌이는 선거유세의 인기 발언이나 언론의 줄타기 논조들은 자연히 시들해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발전을 위한 동기나 견인차의 역할에는 비능률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검증된 지 오래다. 보통선거권에 의해 공동체 사회의 지혜나 힘이 집약적으로 표현되었던 사례는 세계 어느 강대국의 의회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강대국들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더 이상 유능한 인재나, 당면한 문제에 대한 전문가나 아니면 최소한, 일관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민주주의 정부는 최소한도의 반발과, 근시안적인 정책, 선심과 자선,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사탕발림 수법 등을 수단으로 삼고서 표류하고 있다. 정부가 이토록 자신들에게 맡겨진 업무에 지속적인 대안 없이 표류한 적이 없는 판국에, 한 편에서는 전세계의 경제구조뿐 아니라 모든 가정의 사회적인 행동 양식이나 도덕적인 관점에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대변혁이 물밀 듯이 빠른 속도로 밀려오고 있는 중이다. 공산주의자들만이 계획과 복음을 갖고 있는데, 불행하게도 인간의 자유를 질식시키는 계획이며 증오에 기초한 복음이니, 그것이 바로 문제인 것이다. -p402     


 처질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말들을 남겼다.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최고의 논리는 일반 유권자들과 5분간 대화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부 형태다. 그동안 채택되었던 다른 모든 정부 형태를 제외한다면."


 나도 처질의 생각에 동의한다. 민주주의가 최상의 제도이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채택된 것이 아니다. 다른 제도들이 더 최악이기 때문에 차선으로 선택된 것이다. 



 처칠이 취미생활에 대해 남긴 글 중 하나이다. 외국어 공부가 하고 싶게끔 만들어주는 글이다.


  하지만 외국어를 선택할 때에는 신중하고도 현명하게, 우선 한 가지만 고르는 것이 좋다. 일단 선택했으면 총력을 집중해서 연마하되, 그 외국어로 독서를 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전에는 절대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p437




 마지막으로 옮긴이의 말 속 한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처질 전문가 제임스 뮬러 교수가 처칠의 1953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을 두고, 노벨상이 그를 영예롭게 만들었다기보다는 처질이 오히려 그 상의 가치를 높였다고 하는 것이 더 공정할 것이라는 평을 하고 있을 정도로 그는 특이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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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2-06-08 16: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키스트 아워 재미있게 봤는데요 게리 올드만 못 알아보겠더라고요 킹스 스피치에도 처칠이 나오지요

고양이라디오 2022-06-08 18:01   좋아요 2 | URL
분장기술이 너무 뛰어나서 누군지 모르고 보면 절대 못 알아볼 거 같아요ㅎ

킹스 스피치도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mini74 2022-06-08 18: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처칠이 평생 품고 살았다는 검은개가 생각나네요. 소개해주신 책들 관심가네요 ~~

고양이라디오 2022-06-09 17:21   좋아요 0 | URL
검은개 이야기는 이 책에 없던데 자서전에는 있을지도 모르겠네요ㅎ

얄라알라 2022-06-09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 반가우세요.

말씀하신 것 처럼, 참으로 오래만이십니다!^^
영화와 책이 엮어 짜내는 양탄자, 진정 책읽기를 좋아하시는 분의 독서법이네요

잘 지내셨는지요?

고양이라디오 2022-06-09 17:34   좋아요 0 | URL
잘 못지냈습니다ㅎ 앞으로 잘 지내보려고요^^

다시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요^^

얄라님은 잘 지내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