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흐르는 카페 두 번째 이야기'(이재천) 중 'III 야만의 시대 - 전쟁과 선거' 로부터 옮긴다. 저자는 영화모임을 오래 했다.

레바논 (사진: UnsplashTatiana Mokhova)



끔찍한 영화 '그을린 사랑'의 원작은 희곡 '화염'이다.





"나는 이런 영화는 절대 혼자서는 안 봐요."

영화가 끝난 후, 뒷자리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함께나 보니까 보았다는 말이다.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래, 맞아. 이런 영화를 어떻게 혼자 봐.’

‘나와 함께 7년 넘게 영화를 보아 낸 사람들이라면 이 〈그을린 사랑〉도 보아야 한다.’

끝까지 영화의 배경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줄거리는 전쟁이 보여 주는 것 자체, 아니 그 이상이었다. 우리는 황석영의 소설 『손님』에서 어떤 전쟁보다도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것이 내전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을린 사랑〉은 레바논 내전이 배경이었다.

원작자와 감독은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했다고 강조한다. 정치적 갈등을 피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풀어가기 위해서 익명의 공간으로 설정했다지만 영화의 실제 사건은 70년대 이후의 레바논 내전이다. 한 국가 아래 기독교도와 모슬렘이 40년에 걸쳐 수백, 수천, 수십만 명의 사람을 죽여 왔다. 지긋지긋한 전쟁.

가장 종교적인 지역에서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전쟁이 그치지 않는 것은 인간과 종교의 제대로 된 단면을 보여 준다. 종교적 삶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배타적인 용기는 타 종교를 절멸시키기 위해 신명을 다하게 한다. 그런 분쟁의 핵심에는 정치와 종교와 권력이 일체가 된 정치인들의 땅따먹기식 패권 싸움이 있을 것이며 석유와 돈을 좇는 서방세계의 이권개입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자녀를 낳고 그 땅에서 뿌리를 내려 번영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은 교육을 받아야 하고 청년들은 사랑을 나누어야 하고 부모들은 일하고 노인들은 존경을 받으며 집안에 기거해야 하지만 레바논의 땅에서 그런 것은 철저히 파괴되고 불살라졌다. 콘크리트 건물은 화염과 총탄에 뒤덮였던 때를 말해 주듯 해골의 눈처럼 새까맣게 뚫린 창들과 그을린 벽체로 서 있다. 그런 집들, 빌딩들이 가득한 저곳은 분명 수만 명이 살던 도시일 것이다. - 복수의 고리를 끊는 처참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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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로베르트 발저) 수록작 '산불'(1907)이 아래 글의 출처이다.

사진: UnsplashPatrick Konior


어서 전쟁광을 끌어내리고 얼른 전쟁의 화염을 끄자.





지금껏 굳게 닫혀 있던 창문들도 오늘만큼은 열렸다. 창문으로 어느 늙은 남자와 어느 늙은 여자, 이제껏 세상 구경을 한 적이 없는 충직한 하녀, 혹은 매부리코에 머리가 하얀 신사까지 고개를 빠끔 내밀고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눈과 귀를 열었다. 그것 말고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는 모른 채. 보이지 않는 익숙한 공포가 골목길을 달려가다가 오래된 정원 문을 두드렸고, 담장을 넘어 창가에서 수를 놓는 한 처녀의 이마에 명중했다. 목공은 대패질을 중단했고, 철물공은 망치질을, 제화공은 두드리는 작업을, 재단사는 바느질을, 공사장의 인부는 삽질을, 무덤 파는 사람은 땅파기를, 시계공은 광내는 일을, 학자는 연구를 멈추었다. 대신 이들 모두에게는 이 일이 어떻게 끝날지 불안하게 기다려야 하는 새로운 소명이 주어졌다.

들판과 언덕에 산재한 인근 마을들에서도 야단법석이 일었다. 곳곳에서 마차와 수레가 덜커덩거렸고, 자전거를 탄 사람은 열심히 페달을 밟았으며, 여자들은 비명을 질렀고, 북새통에 어른들에게 부딪혀 넘어진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다시 일어났다. 철도 건널목에서야 사람들의 행렬과 자전거, 욕설이 정체되었다. 기차가 지나가 다들 건널 수 있을 때까지. 쉴 새 없이 울리는 이 종소리와 끔찍한 붉은색! 마치 약탈이 벌어지는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어느 못된 초자연적인 악동이나 신이 세상에 불을 지른 듯했다. 게다가 마치 붉은색이 없으면 종소리도 결코 울리지 않을 것 같고, 분노한 수치심에 휩싸인 얼굴 같은 한낮이 마치 이 불타는 붉은색으로 무조건 뒤덮여야 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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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로베르트 발저)에 실린 '숲'의 마지막 대목이다. 


아, 고요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고요와 숲은 하나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안한 마음으로 고요와 숲을 묘사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이제 나는 나의 가장 훌륭한 생각들이 숨어 있는 곳에서부터 숲에 안녕을 고한다. 그래야 한다. 나는 숲이 그토록 단단하고, 크고, 넓고, 힘이 세고, 씩씩하고, 화려하다는 사실이 기쁘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1903년 -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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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르누아르의 이 그림을 보았다. 쌀쌀한 삼월초의 금요일이다. 시공디스커버리총서 '르누아르'로부터 옮긴다.

Auguste Renoir - Two Young Girls at the Piano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https://www.metmuseum.org/ko/art/collection/search/459112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http://www.xn--py1bj4cn3i1pc87b78mwwep52a.com/sub02/object34 이 달 16일까지 우리 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한다.





1892년 말라르메는 국립 미술학교 교장인 앙리 루종에게 <피아노 앞의 소녀들>(1892)을 사서 국가에 기증하라고 설득했다. 말라르메는 "미술관에 걸기 위해 원숙한 경지에 이른 이 명쾌하고 개운하고 대담한 작품을 선택한 데 대해 당신께 어떤 말로 축하를 드려도 충분치 않다는 것이 제 생각이자 다른 이들의 한결같은 의견입니다"라고 루종에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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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로베르트 발저) 수록작 '헬블링 이야기'로부터 옮긴다.

사진: UnsplashNadiia Ganzhyi


오디오북이 있다.






겨울에 그녀는 내게 말한다. "봄이 돼서 함께 공원 오솔길을 산책하면 정말 좋을 거예요." 그리고 봄에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랑 있으면 지루해." 그녀는 결혼해서 대도시에서 살고 싶어 한다. 아직도 삶에서 바라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극장과 가면무도회, 예쁜 옷, 와인, 웃음과 여흥, 즐겁고 활기찬 사람들, 그녀는 그런 것들을 사랑하고 그런 것들을 동경한다. 나도 동경하긴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것들을 얻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아마도 다음 겨울에는 일자리를 잃을 것 같아!" 그러자 그녀는 커다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왜?" 하고 물었다. 그녀에게 무슨 대답을 해줬어야 하나? 나는 그녀에게 내 성격적 특징에 관해서조차 한 번에 다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녀는 나를 경멸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녀는 내가 어느 정도는 능력 있는 남자라고 믿고 있다. 좀 이상하고 좀 지루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세상에 자신의 자리를 확고하게 갖고 있는 남자라고 말이다.

만약 그런 그녀에게 "네가 착각하는 거야. 내 자리는 불안하게 흔들려"라고 한다면 그녀가 나와의 관계에서 품었던 모든 희망이 산산조각 나버릴 것이며, 따라서 더는 내 주변에 머물고 싶어 할 이유가 사라진다. 나는 그냥 내버려둔다. 나는 어떤 일이 썰매처럼 미끄러지게 하는 데는 선수다. - 헬블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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