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제임스가 쓴 '여인의 초상' 서문을 읽었다. 완독 의욕은 없지만. 그는 4월 15일 생이다.

Portrait Of A Lady, 1890 - William Merritt Chase - WikiArt.org






내가 말하려는 요지는, 자신의 운명에 감연히 맞서는 한 젊은 여자에 대한 착상이라는 단 하나의 작은 초석이 『여인의 초상』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쌓아 올리는 유일한 장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하찮은 〈인물〉, 대수롭지 않은 비전에 불과한 이 영리하지만 건방진 아가씨가 어떤 논리적 집적 과정에 의해서, 스스로가 〈주체〉의 고귀한 속성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인가?

영리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매일 자신의 운명에 감연히 맞서는 수많은 건방진 아가씨들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이런 과도한 생각을 충분히 직시했던 듯하고, 결과적으로 그런 문제의 매력을 정확히 인식했던 것 같다. 이 문제에 조금이라도 지성적으로 도전해 보라. 그러면 그것의 내용이 얼마나 풍부한 것인지를 즉시 알게 된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줄곧 놀라운 일은, 이사벨 아처 같은 여자나 그보다 더 시시한 여자들도 매우 단호하게, 매우 터무니없이,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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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ark Theatre - The Cherry Orchard 2015년 4월






엄마, 우리 함께 여러 가지 책을 읽도록 해요……. 그럴 거죠? (어머니의 손에 입맞춘다.) 가을 밤이면 우리 책을 읽어요.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나면 새롭고 경이로운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질 거예요……. (꿈꾸듯) 엄마, 빨리 돌아오세요…….

작년 이맘때엔 눈이 왔었지요, 기억하십니까? 그런데 금년은 조용하고 해가 나는군요. 아직 쌀쌀하긴 합니다만……. 영하 3도쯤 될까?

벽이며 창문이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겠어……. 돌아가신 어머니는 이 방에서 거니는 걸 좋아하셨지…….

살긴 살았지만, 도무지 산 것 같지 않아……. (눕는다.) 좀 누워 있을까……? 기운이 하나도 없군.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어. 아무 것도……. 에이, 바보같으니……! (미동도 없이 누워 있다.)

마치 하늘에서 울리듯 멀리서부터 줄 끊어지는 소리가 구슬피 울리고 나서 잦아든다. 정적. 동산 멀리서 나무에 도끼질하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 4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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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다시 보기를 권함'(페터 볼레벤)에서 벚나무를 찾다가 올되기새와 늦되기새란 말을 발견했다. 흥미롭다.


Precociality and altriciality -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Precociality_and_altriciality

Cherry blossoms, 1953 - Pyotr Konchalovsky - WikiArt.org


이 저자가 쓴 '숲, 다시 보기를 권함'란 제목의 책도 발견했다.





동물의 왕국에는 올되기새와 늦되기새라는 개념이 있다. 늦되기새란 부화 후 얼마 동안 부모 곁에 살면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새를 일컫는다. 반면 올되기새란 부화 직후 둥지를 떠나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새를 말한다. 올되기새들은 자기 힘으로 먹을 것을 구하고 홀로 삶을 개척한다. 어린나무와 올되기새의 성장 과정은 비슷하다. - 느리지만 자유롭게 자라나는 나무

첫 개화 시기는 종마다 다르다. 가령 자작나무, 벚나무, 과일나무, 버드나무와 같은 올되기새 유형의 나무들은 일찍 꽃을 피우기 때문에 생후 10년이 되기 전에 자손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반면 폐쇄된 숲을 대표하는 늦되기새 유형의 나무들은 좀 더 늦게 꽃을 피운다. - 나무의 세대교체,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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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플이 알려준 작년의 오늘, 모비 딕(이종인 역) 연보를 읽었다.

By Museon - Moby Dick





1890년(71세) 가을 뉴욕 앤더슨 서점에 들름. 다음은 당시 그 서점에서 견습 점원으로 근무한 오스카 베이걸린이 1935년 여름 『콜로폰』 잡지에 기고한 글.

무더운 어느 오후, 한 노신사가 나소 스트리트 99번지의 존 앤더슨 서점에 들렀다. 원래 다른 서점에 갔으나 찾는 책이 없자 앤더슨 서점에 그 책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 왔다고 했다. 신사가 찾던 책의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바다와 관련된 책이었던 것 같다. 어느덧 신사와 사장인 앤더슨 씨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바다와 선원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너무 흥미진진해서 가게 손님들은 물론이고 점원들도 다들 귀를 쫑긋 세웠다. 신사는 뱃사람들과 그들이 타고 다니는 배에 대해 누구보다 상세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침내 앤더슨 씨가 우리 모두의 궁금증을 대신해 물어보았다.

‘선생님, 아직 성함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가게를 방문한 분은 누구신지요?‘

‘내 이름은 허먼 멜빌입니다.’ 앤더슨 씨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아, 이제야 모든 것이 설명되는군요.’ -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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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ark Theatre - The Cherry Orchard (2015년 4월 16일)







난 자유로운 인간이오. 부자든 가난뱅이든 당신네들 모두가 고귀하다고 여기는 것이 내게는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솜털같이 하찮을 뿐이오. 난 당신네들 없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네들에게 태연할 수 있지요. 그렇게 난 강하고 당당합니다. 인류란 이 지상에서 가장 고귀한 진리, 행복을 향해 나아가죠. 난 그 맨 앞에 있습니다.

우린 남들 앞에서 잘난 체하지만 현실은 무심코 흘러갈 뿐. 난 피곤한 줄도 모르고 오랫동안 일을 할 때면, 마음이 가벼워져 내가 왜 존재하는지 알 것 같다오. 그런데 이 러시아에는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엄마가 떠날 때까지만이라도 정원을 벌목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세요.

피르스는 너무 오래 살아 이번에는 수리한다 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이젠 선조들 곁으로 갈 때가 됐어요. 그렇지만 난 그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트렁크를 모자 상자 위에 올려 놓고 찌그러뜨린다.) 이렇게 끝나는 겁니다. 다 그런 거죠. (퇴장.) - 4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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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5-04-16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벚꽃동산이네요. 저 지난 달에 부산에서 공연한 <벚꽃동산> 예매했다가 결국 취소했답니다. 너무 바빠서 연극 보러 갈 시간이 없어서요ㅠㅠ 전도연 배우 정말 궁금했는데...ㅠㅠ 너무 아쉽습니다.

서곡 2025-04-17 11:54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전도연 주연 벚꽃동산 궁금합니다 저도 전엔 가끔 연극을 봤는데 요샌 통 .......온라인 연극 풀영상 같은 거라도 찾아서 틀어봐야겠습니다 집중적으로 보긴 쉽지 않지만요 꼬마요정님 남은 사월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