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이효상문학상 작품집으로부터 옮긴다.

Image by ANDRI TEGAR MAHARDIKA from Pixabay






손보미의 작품 〈밤이 지나면〉은 스토리텔링의 긴장감이 살아 있고 심리 스릴러 같은 느낌이 재미있다. 성장소설의 틀을 갖추고 있지만 성장소설의 전형적인 교훈성을 뛰어넘는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이 있다. 마을사람들에게 ‘미친년’ 소리를 듣는 여인과 자발적인 실어증에 걸린 ‘나’라는 어린 소녀가 내통하여 ‘정상적인 세상, 사회화된 세계’를 벗어나려 하지만, 그런 시도는 와해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실패마저 아이에게 커다란 성장의 발판이 된다. -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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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손보미의 단편 '밤이 지나면'은 불길한 동화 같다. 어두운 밤이 무서운 아이들이 있는 법이다. 어쩌면 대부분.

Sleeping Child, 1961 - Will Barnet - WikiArt.org


소설집 '사랑의 꿈' 첫 수록작인 '밤이 지나면'은 문학동네 2019 여름호 발표작이다. 





"아줌마."

그녀가 약간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어둠은 무서운 게 아니라고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뭐라고?"

"몰라요? 밤은 지구가 자전하니까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구 반대편에서는 사람들이 깨어 있어요. 거기는 낮이거든요. 여기는 밤, 거기는 낮."

"그걸 누가 몰라."

나는 그녀가 여전히 이죽거리고 있지만 발음이 미묘하게 뭉개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근데 그게 무슨 소용이니. 너는 거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는데."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래도 잠깐 쉬었다 가야겠다." - 밤이 지나면 | 손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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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토요일 광복절이 지나고 오늘은 팔월의 일요일이다. 최근 읽은 산문집 '그리운 동방'(김소진) 3부 책글 편에 '팔월의 일요일들'(파트릭 모디아노) 서평이 실려 있다. 꼭 이십년 전 이 즈음 발표했다. 이제 팔월도 중순이다.


Image by G-tech from Pixabay


  





이따금씩 소설의 ‘소‘자에 대해 새삼스레 생각해볼 때가 있다. 굳이 대설이라 이름 붙이지 않은 것은 아마 소설이 우리의 삶이란 어떤 일사불란한 대의 명분과 명확한 의미의 사슬로 엮인 게 아니라, 사실은 덧없는 파편과 우연의 연속임을 잘 보여주는 장르이기 때문일까?

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팔월의 일요일들』은 그렇게 파열해버린 인간들의 희미한 삶의 자취를 가감 없이 더듬어보는 게 소설의 몫이자 잔잔한 감동의 원천임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표면적 모티프는 실종이다. 종적 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이 소설에서 실종은 인간 관계의 돌연한 단절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과거 속으로 파묻혔거나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람 사이의 관계망들을 새롭게 들춰보고 또 반추하는 계기가 된다.


줄거리나 구성은 몹시 통속적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철저히 기억의 힘에 의존해 빚어졌다는 점에서 비통속적이다. 왜냐하면 기억이란 너무나 배타적이며 개인적이어서 타자의 섣부른 개입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이란 사실에 대한 것이 아니고 이미 흘러가버린 어떤 막연한 느낌이나 인상에 대한 집착이어서, 장이 유일하게 행복감에 젖어 추억하는 팔월의 일요일들이란 어쩌면 가공의 시공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책을 덮으면서 막 떠오른다. (경향신문 1996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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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 산문집 '그리운 동방' 3부 책글 편에 단편소설 '돼지꿈'(황석영) 독후감이 있다.

사진: UnsplashOliver Sharp


cf.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에 '열린 사회와 그 적들'(김소진)이 포함되어 있다.





1970년에 발표된 황석영의 소설 『돼지꿈 』에는 이상하게도 뜻밖의 재물을 얻을 횡재수로 풀이되는 길몽인 돼지꿈이 묘사되거나 거론되는 대목이 한 군데도 없다. 오히려 돼지가 나와야 할 자리를 살집이 좋은 개가 대신 나와서 줄기차게 차지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어느 대학의 기본 열람실 개가식 서가에서 이 책을 뽑아 읽는 순간 한 미아리 산동네 출신의 문청은 이렇게 탄성을 베물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렇게 후줄근한 사람의 땀냄새와 구린내 나는 듯한 목소리 그리고 숨기고 싶은 속내들이 모여 감히 소설을 이루는구나! 그 순간 소설은 형이상학의 권좌에서 내 어깨 위로 내려와 소년기에 묻어둔 산동네의 기억을 흔들어 깨우는 손길로 변했다. 아마 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난 끝내 글쓰기의 길로 나서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돼지꿈은 바로 누추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70년대 민중이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던 보루였다. 작가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결국 아무한테도 돼지꿈을 화끈하게 꾸도록 배려해주지 않았다. 그건 개꿈보다 더 나쁜 가짜이니까. 이런 작가의 투철한 시선과 현실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70년대를 풍미한 황석영의 리얼리즘에 어거지가 없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한국일보 1997년 1월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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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기가 생겨 읽는 중인 김소진 산문집 '그리운 동방'에 고양이가 나오길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 후 엄마 생각이 나버린다. 대학 시절 과 학회지에 발표한 글이다. 2부 습작 편에 실려 있다.

사진: UnsplashFemke Beirens


삼십대에 요절한 고 김소진 작가가 참여한 '서른 살의 강'(1996)을 찾아둔다.







고양이의 눈동자를 자세히 들여다본 일이 있는가? 고것의 요상스런 눈빛만 아니었더라면 난 울 필요까진 없었을 텐데. 그놈이 꼼짝도 않는 게 수상쩍었지. 아, 그리고 고것의 눈동자를 안경도 안 쓴 눈으로 째려보자니 눈이 아려서 그득히 고인 시거운 눈물을 고개 돌려 찔끔 짜내고 보니 고놈의 얼굴이 누군가를 닮았다는 생각이 퍼뜩 스쳤던 거지. 바로 사람 말이야. 그러자 무심코 바라봤던 고것의 눈동자가 애처로운 빛을 띠고 있다는 생각이 덩달아 들지 뭐야그래. 이건 뭐 개떡같은 빌어먹을 건지,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지 또 뭐야. 엄마의 얼굴을 그때 떠올리다니.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내가 최면에 걸리고 있었다는 말이 맞대니까. 축 처진 눈꺼풀 아래 얼빠져 구르는 엄마의 퉁방울 눈이 어떻게 사람을 호리도록 야무진데다 칼날처럼 곧추 찢어진 그놈의 눈동자와 닮아 보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응, 그러고 보니 콧잔등은 좀 닮은 듯도 싶었다. 아무리 그렇지만……

항상 내가 잠이 드는 밤늦게야 노가다판에서 돌아오는 엄마. 먼지가 뽀얗게 앉은 머릿수건을 풀지도 않은 채 어느새 나를 안고 소리죽여 흐느끼던 엄마. 눈물은 째째한 장부나 흘리는 것이기 때문에 난 안 울었지. 그때 눈물을 간신히 참고 바라보았던 엄마의 눈물이 흥건했던 눈동자.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그놈의 눈동자에서 엄마의 눈동자를 연상해냈던 것은 인정해야만 되었다. 나는 소름이 온몸으로 퍼져가는 느낌을 전율하면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 소외(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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