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인 레빈의 단상 또는 잡념이다.

안나 카레니나 영역본 삽화 By Tolstoy, Leo, graf, 1828-1910; Garnett, Constance Black, 1862-1946 tr.
5월 신간으로 노문학자 이항재의 '오늘 하루, 톨스토이처럼'을 발견했다.
〈이렇게 사는 건 좋지 않아.〉 그가 생각했다. 〈벌써 석 달이 다 되어 가는데, 한 게 거의 아무것도 없어.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진지하게 일을 시작했지만, 어떻게 됐지? 시작하자마자 내팽개쳤잖아. 심지어 일상적인 일들, 그것들마저도 손을 놓고 있어. 농사일을 거의 둘러보지도 않고 있다고. 아내를 혼자 두기엔 안쓰럽기도 하고, 심심할 것 같기도 하니까 말이야. 결혼 전에는 생활이야 어떻게든 굴러가는 법이고 별거 아니지만, 결혼하고 나면 진짜 생활이 시작될 거라 생각했었지. 그런데 벌써 석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이제까지 이렇게 무사안일하고 부질없이 시간을 보낸 적은 없었어. 아니야, 이래서는 안 돼. 일을 시작해야 해. 물론 아내는 잘못한 게 없어. 그녀를 탓할 건 없다고. 나 자신이 좀 더 확고해지고, 남편으로서 독립된 삶을 지켜 내야만 해. 안 그러면 이렇게 나 자신도, 그녀도 길들여질 수밖에……. 당연히 그녀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5부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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