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영상을 보는 사람은 잔인해질까? 잔인한 사람이 잔인한 영상을 더 잘 볼까?
이 질문에 대한 속 시원한 답변을 듣고 싶다. 궁금하다.
최근에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보았다. R등급의 영화였다. 상당히 잔인한 장면이 많은 영화였다. 약간 불편할 정도였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잔인한 장면을 보여줘도 되나? 성인에게는 상관없나?
잔인한 영화나 잔인한 장면은 보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얼마나 끼칠까? 일단 선정성, 폭력성 등에 따라 관람등급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보면 분명 이런 장면들은 보는 이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서 최근에 읽었던 책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부탄은 불교국가이다.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지한다. 부탄은 살인사건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나라라고 한다. (기독교나 이슬람도 살생을 금지하지 않나? 아무튼) 이런 부탄에 텔레비전이 보급되자 역시나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개미 한 마리 죽이지 않는 국민들이 과연 TV에서 총질하고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봐도 괜찮을까 하는 우려였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부탄에서도 개봉했을까? TV 도입이후 부탄의 살인사건 발생률은 증가했을가?
아주 오래 전 있었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20살 때쯤 수능이 끝나고 잠시 영어 회화학원을 친구랑 다녔었다. <쿵푸허슬>이란 영화이야기가 대화 도중에 나왔다. 한 여성 분은 그 영화가 별로였다고 했다. 이유는 너무 잔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쿵푸허슬>을 무척 재밌게 봤었다. 그 정도의 잔인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각했다. 정도의 차이일까? 나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잔인함이 불편했지만 다른 이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철학자 칼 포퍼의 메스 미디어에 대한 우려가 떠오른다. 그는 메스 미디어의 악영향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했다. 그에겐 어떤 근거가 있었을까?
여러 심리학 실험을 떠올려보면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무의식 중에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노인이란 단어나 영상을 보면 우리의 걸음걸이는 느려진다. 설령 우리가 우리의 걸름걸이가 느려졌는지 왜 느려졌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인지할 수 없을 정도의 짧은 영상에 노출되도 그 영상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광고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잔인한 영화가 폭력을 조장하거나 살인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얼마만큼의 영향을 주는지 우리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의 잔인함이 있을까? 로마 시대 때 시민들은 검투사들끼리 서로 죽이는 것을 즐겨보았다. 순교자가 사자나 호랑이에게 뜯겨 먹히는 것을 보았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거리나 광장에서 죄인을 목 매달거나 갖가지 창의적인 방식으로 처형했다. 단두대와 화형도 있었다. 이는 훌륭한 구경거리였다.
우리는 이제 문명화 되어서 이런 것들을 허구적인 영상으로 즐기는 것일까? 아니다. 정신차리자. 너무 쉽게 일반화하려 하고 있다. 인류에겐 잔인한 면도 있지만 그 반대되는 면도 분명있다. 아마도 잔인한 영상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꺼려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애덤 모턴의 <잔혹함에 대하여>란 책에 눈이 간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에 소개되었다고 하고 AgalmA님의 리뷰를 보니 더욱 신뢰가 간다.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