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꼭 쓰고 싶었으나 시간도 없고 리뷰를 잘 쓰지도 못해서 간략하게 최근에 완독한 작품들을 정리해 본다.


N25083 컬러 퍼플 by 앨리스 워커 ☆☆☆☆☆

정말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잘 쓸 자신이 없어서 미루고 미루다 간단 리뷰를 남긴다. 어떤 알라디너의 인생작이라고 봐서 구매했는데 적극 동의한다.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흑인 여성의 억압과 해방을 그린 작품인데, 일단 가독성이 좋고 비참한 흑인 여성의 삶을 사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묘사하여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비슷한 작품으로 토니 모리슨의 빌리비드를 예전에 읽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컬러 퍼플이 훨씬 좋았다.



N25084 어느 존속 살해범의 편지 by 프루스트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하기 전에 발간된 초기 산문을 모아놓은 책이다. 어머니를 살해한 어느 청년의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은 좋았으나 나머지 산문들은 그저 그랬다.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나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재독하고 싶어졌다.



N25085 편의점 인간 by 무라타 사야카 ☆☆☆

전형적인 일본 현대문학 느낌의 작품이었다. 가독성도 좋고 재미는 있었지만 재미를 빼면 남는게 없었다. 설정도 너무 극단적이고 인물들도 비현실적인데다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북으로 읽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N25086 예수의 아들 by 데니스 존슨 ☆☆☆☆

한번 읽고 재독하는 중인데... 이해력이 짧아서 그런지 다른 분들의 극찬과는 다르게 대단함은 잘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마약을 마신(해보진 않았지만..) 느낌이었고, 화자가 마약중독자이다 보니 이야기도 뒤죽박죽에 혼란스럽고 상황도 비정상적이었다. 세기말적인 감성이라고나 할까. 두번 읽으면 좀 좋아지려나...


Ps. 티보네 사람들 상권 읽고 있는데 좋습니다. 가방에 넣고 다니는 중. 다만 너무 벽돌책이어서 언제 완독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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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0-23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예수의 아들> ˝마약을 마신(해보진 않았지만..)˝ 느낌이라는 표현에 적극 동의합니다.
근데 재독 중이면... 완전 마약에 취해 뿅가시는 거 아닙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5-10-23 18:43   좋아요 0 | URL
ㅋㅋ 예전에 읽은 <퀴어>도 비슷한 분위기인데, 그작품은 줄거리라도 있지 이작품은 단편인데다가 느슨하게 이어져 있어서 이해하기 힘들더라구요. 하긴 약쟁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긴 하죠...

blanca 2025-10-23 18: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티보네 사람들 다시 분권해서 나오더라고요. 저는 회색노트 예전에 읽었는데 다시 따라 읽을까 고민 중이에요.

새파랑 2025-10-23 19:08   좋아요 1 | URL
아하 그런가요? 분권이 맞은거 같아요. 너무 무겁습니다 ㅜㅜ
회색노트 재미있더라구요. 청소년기의 미묘한 감정들을 잘 느낄수 있었습니다. 티보네 사람들 이야기도 흥미롭고 등장인물도 복잡하지 않아 읽는 재미가 있더라구요~!!

blanca 2025-10-23 19:20   좋아요 1 | URL
미행에서 나오는데 열 권이 넘네요.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데 새파랑님 추천하시나요? 추천하시면 강행하겠습니다. ㅋ

새파랑 2025-10-23 19:32   좋아요 0 | URL
거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급이네요~!! 저도 아직 읽는 중이지만 잃시찾보다는 재미있습니다 ㅋ 추천합니다. 함께 읽으시죠~!!

독서괭 2025-10-26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컬러퍼플이 빌러비드보다 좋으셨다고요? 찜해둡니다~

새파랑 2025-10-27 17:24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 강추합니다~!! 읽다보면 안타까우면서도 재미있으실 겁니다~!!

하나의책장 2025-10-27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티보네 사람들> 아직 안 읽어봤는데 새파랑님이 추천하니 올 겨울에 꼭 읽어봐야겠어요^^

새파랑 2025-11-01 09:57   좋아요 0 | URL
이번에 새로 나왔던데 소장욕구 생기게 출판되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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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82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어.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는 것뿐이야. 그러다가는 결국 실망할 뿐이니까."


최근에 책태기가 왔다. 책보다 더 좋은게 생겨서이다. 그렇다고 책에 대한 애정이 사라진건 아니다. 다만 분산됐을뿐. 게다가 야구도 포스트시즌이다보니 책읽을 시간이 줄었다. 그리고 최근에 읽은 책들이 좀 난해해서 리뷰를 쓸 수도 없었다. 역시 이럴때는 하루키의 작품이 적합하다. 정말 오랜만에 노르웨이의 숲을 꺼내서 읽었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바로 다 읽었다.


하루키 마니아로서 하루키 작품중 안좋은게 없지만 그중 가장 좋은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노르웨이의 숲은 언제나 후보중의 하나이다. 하루키 장편중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작품이기도 한 노르웨이의 숲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어떤 인물에 대입해서 읽어도 재미있고, 단순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담고 있는 의미가 많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인 와타나베에게는 어린시절 기즈키라는 친구가 있었고, 기즈키에게는 나오코라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세사람은 다른사람들과의 관계를 확장하지 않고 세사람 끼리만 친하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날 와타나베와 기즈키는 당구를 치고, 그날 밤 기즈키는 차안에서 자살을 한다. 이후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상실의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나는 그 공기덩어리를 내 속에 느끼면서 열여덟 살 봄을 보냈다. 그렇지만 동시에 심각해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심각해진다고 반드시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생각하든 죽음이란 심각한 하나의 사실이었다. 그런 숨 막히는 배반 속에서 나는 끝도 없이 제자리를 맴돌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기묘한 나날이었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모든 것이 죽음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P.49



나오코는 기즈키가 죽기전 많났던 사람이 여자친구인 자신이 아닌 와타나베라는 사실에 상처를 입고, 또한 와타나베의 자살의 이유가 자신 때문은 아닌지 자책하며 힘겹게 살아간다. 와타나베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하나 소중한것 없이 허무하게 될대로 되라는 식의 냉소적인 방식으로 고독하게 살아간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그렇게 주변을 병들게 한다.

[4월 중순에 나오코는 스무 살이 되었다. 나는 11월생이니까 그녀가 나보다 일곱 달 정도 빠르다. 나오코가 스무 살이라니,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나 나오코는 언제까지고 열여덟이나 열아홉 언저리를 왔다 갔다 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느낌이었다. 열여덟 다음은 열아홉이고, 열아홉 다음은 열여덟. 그렇다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녀는 스무 살이 되었다. 그리 고 가을이면 나도 스무 살이다. 죽은 자만이 영원히 열일곱이었다.] P.70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우연히 도쿄의 거리에서 마주친다. 기즈키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두 사람이 함께하게 된 것이다. 나오코에 대한 연민을 느낀 와타나베는 그녀에게 다가가지만 나오코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와타나베에 대한 끌림과 기즈키에 대한 미안함 등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고, 사람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던 나오코는 결국 대학을 휴학하고 요양원에 들어간다.

[이 편지를 몇백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그것은 나오코가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보았을 때 느꼈던 슬픔이었다. 나는 그 애달픈 마음을 어떤 다른 것으로 바꾸어 버릴 수도, 마음속 어떤 장소에 간직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내 몸을 스쳐 가는 바람처럼 아무런 윤곽도 없고 무게도 없었다. 나는 그것을 몸에 두를 수조차 없었다. 풍경이 내 눈앞을 천천히 지나쳤다. 그들이 하는 말은 내 귀에 닿지 않았다.] P.80



동시에 와타나베는 자신과 같은 대학을 다니는 미도리라는 여학생을 알게 된다. 죽음에 가까운 나오코와는 다르게 미도리는 통통 튀는 생명이 느껴지는 밝은 사람이었다. 와타나베는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보이는 미도리에게 끌리면서도 나오코를 버릴 수 없다는 책임감 사이에서 고민을 한다.

[하나는, 이렇게 나를 만나러 와 준 것에 대해 내가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하는 거, 굉장히 기쁘고, 정말로 구원받은 기분이야. 혹시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말 그래. 다른 하나는 나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내가 존재하고 이렇게 네 결에 있었다는 걸 언제까지나 기억해 줄래?"] P.20



와타나베는 요양원에 있는 나오코에게 계속 편지를 쓰고 구애를 지속한다. 요양원에도 찾아가 그녀를 만난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와타나베는 지속적으로 현실을 살아가라고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하지만 결국 나오코는 기즈키가 있는 죽음을 택한다. 이후 와타나베는 나오코의 자살에 충격을 받고 방황한다. 와타나베 역시 나오코 처럼 죽음을 택할까? 아님 미도리가 있는 현실을 택할까?

[어이, 기즈키, 나는 생각했다. 너하고는 달리 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고, 그것도 제대로 살기로 했거든, 너도 많이 괴로웠을 테지만 나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야. 정말이야. 이게 다 네가 나오코를 남겨 두고 죽어 버렸기 때문이야. 그렇지만 나는 그녀를 절대로 버리지 않아. 왜냐하면 난 그녀가 좋고 그녀보다는 내가 더 강하니까. 나는 지금보다 더 강해질 거야. 그리고 성숙할 거야. 어른이 되는 거지. 그래야만 하니까. 지금까지 나는 가능하다면 열일곱, 열여덟에 머물고 싶었어.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난 이제 십대 소년이 아니야. 난 책임이란 것을 느껴. 봐, 기즈키, 난 이제 너랑 같이 지냈던 그 때의 내가 아냐. 난 이제 스무 살이야. 그리고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대가를 제대로 치러야만 해.] P.415



청춘은 방황할 수 밖에 없다. 10대 시절에 느낄 수 밖에 없는 어른이 된다는 두려움도 크다. 대부분은 그냥 넘어가지만 누군가는 두려움을 느끼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의 극단적인 선택은 주위에도 위험을 줄 수 있다. 나오코는 삶(와타나베)과 죽음(기즈키) 사이에서 죽음을 선택했다. 이제 3인방 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와타나베에게도 삶(미도리)과 죽음(나오코)이라는 선택지가 주어진다.


방황하는게 어디 청춘 뿐일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상실되어 가는건 늘어난다. 결국 한때 가깝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의 몸과 마음도 예전같지 않다. 그래도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사랑과 상실 사이에서 대부분은 전자를 택할것이다. 잃더라도 괜찮다, 삶과 사랑은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끝나지 않으니까.

["비스킷 깡통에는 여러 종류 비스킷이 있는데 좋아하는 것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먹어 치우면 나중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는 거야. 나는 괴로운 일이 있으면 늘 그런 생각을 해. 지금 이걸 해 두면 나중에는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깡통이라고."]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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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 2025-10-23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구도 포스트시즌!!!

새파랑 2025-10-23 18:38   좋아요 0 | URL
야구보면서

책을 읽을수는 없더라구요 ㅋ 응원하는 팀은 없지만 보는건 재미있더라구요~!!

페넬로페 2025-10-23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는건 좋은데 맘 잡아 리뷰 쓰기는 정말 힘들어요. 노르웨이의 숲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질 것 같아요.

새파랑 2025-10-23 18:39   좋아요 1 | URL
20대때랑 30대때랑 40대때랑 느낌이 다릅니다 ㅋ 리뷰 쓰는건 진짜 힘든데 페넬로페님은 대단하신거 같아요~!!!
 

읽을때마다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내 부탁 두 가지만 들어줄래?"

"세 가지 들어줄게."

나오코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두 가지면 돼. 두 가지로 충분해. 하나는, 이렇게 나를 만나러 와 준 것에 대해 내가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하는 거, 굉장히 기쁘고, 정말로 구원받은 기분이야. 혹시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말 그래."

"또 보러 올게. 다른 하나는?"

"나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내가 존재하고 이렇게 네 결 에 있었다는 걸 언제까지나 기억해 줄래?"

"물론 언제까지나 기억할 거야." - P20

그런데도 기억은 어김없이 멀어져 가고, 벌써 나는 많은 것을 잊어버렸다. 이렇게 기억을 더듬으며 문장을 쓰다 보면 때때로 격한 불안에 빠지고 만다. 불현듯, 혹시 내가 가장 중요 한 기억의 한 부분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몸속 어딘가에 기억의 변경이라 할 만한 어두운 장소가 있어 소중한 기억이 모두 거기에 쌓여 부드러운 진흙 으로 바뀌어 버린 게 아닐까 하는. - P21

결국 글이라는 불완전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은 불완전한 기억이나 불완전한 생각뿐이다. 그리고 나오코에 대한 기억이 내 속에서 희미해질수록 나는 더 깊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왜 나에게 "나를 잊지 마." 라고 말했는지 지금은 그 이유를 안다. 물론 나오코는 알았다. 내 속에서 그녀에 대한 기억이 언젠가는 희미해져 가리라는 것을, 그랬기에 그녀는 나에게 호소해야만 했다. "나를 언제까지나 잊지 마. 내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줘." - P22

나는 그 공기덩어리를 내 속에 느끼면서 열여덟 살 봄을 보냈다. 그렇지만 동시에 심각해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심각해진다고 반드시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생각하든 죽음이란 심각한 하나의 사실이었다. 그런 숨 막히는 배반 속에서 나는 끝도 없이 제자리를 맴돌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기묘한 나날이었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모든 것이 죽음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 P49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이나 읽을 정도면 나하고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10월 어느 날의 일이었다. - P58

남들과 똑같은 것을 읽으면 남들과 같은 생각밖에 할 수 없잖아. 그딴 건 촌놈이나 속물의 세계야.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그런 부끄러운 짓은 안 해, 와타나베, 알겠어? 이 기숙사에서 조금이나마 제대로 된 인간은 나 하고 너뿐이라고, 나머지는 모두 쓰레기나 같다고 보면 돼. - P59

4월 중순에 나오코는 스무 살이 되었다. 나는 11월생이니까 그녀가 나보다 일곱 달 정도 빠르다. 나오코가 스무 살이라니,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나 나오코는 언제까지고 열여덟이나 열아홉 언저리를 왔다 갔다 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느낌이었다. 열여덟 다음은 열아홉이고, 열아홉 다음은 열여덟. 그렇다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녀는 스무 살이 되었다. 그리 고 가을이면 나도 스무 살이다. 죽은 자만이 영원히 열일곱이었다. - P70

이 편지를 몇백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그것은 나오코가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보았을 때 느꼈던 슬픔이었다. 나는 그 애달픈 마음을 어떤 다른 것으로 바꾸어 버릴 수도, 마음속 어떤 장소에 간직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내 몸을 스쳐 가는 바람처럼 아무런 윤곽도 없고 무게도 없었다. 나는 그것을 몸에 두를 수조차 없었다. 풍경이 내 눈앞을 천천히 지나쳤다. 그들이 하는 말은 내 귀에 닿지 않았다. - P80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어.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는 것뿐이야. 그러다가는 결국 실망할 뿐이니까." - P96

"설마요. 난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에요. 아무도 이해 안 해줘도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서로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은 상대도 있는걸요. 다만 그 외 다른 사람한테는 별로 이해 받지 못한다 해도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체념하는 거죠. 그러니까 나가사와 선배가 말하듯이 아무 한테도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 P353

어이, 기즈키, 나는 생각했다. 너하고는 달리 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고, 그것도 제대로 살기로 했거든, 너도 많이 괴로웠을 테지만 나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야. 정말이야. 이게 다 네가 나오코를 남겨 두고 죽어 버렸기 때문이야. 그렇지만 나는 그녀를 절대로 버리지 않아. 왜냐하면 난 그녀가 좋고 그녀보다는 내가 더 강하니까. 나는 지금보다 더 강해질 거야. 그리고 성숙할 거야. 어른이 되는 거지. 그래야만 하니까. 지금까지 나는 가능하다면 열일곱, 열여덟에 머물고 싶었어.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난 이제 십대 소년이 아니야. 난 책임이란 것을 느껴. 봐, 기즈키, 난 이제 너랑 같이 지냈던 그 때의 내가 아냐. 난 이제 스무 살이야. 그리고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대가를 제대로 치러야만 해. - P415

"비스킷 깡통에는 여러 종류 비스킷이 있는데 좋아하는 것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먹어 치우면 나중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는 거야. 나는 괴로운 일이 있으면 늘 그런 생각을 해. 지금 이걸 해 두면 나중에는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깡통이라고."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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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80,  N25081

˝나는 분명히 살아있다. 그리고 내가 살아 있음을 확실히 느낀다. 그것으로 충분치 않은가.˝


인생작을 만났다. 반전문학하면 떠오르는 작가로 대부분의 사람이 레마르크를 떠올릴거다. 나는 <서부전선 이상없다>와 <사랑할때와 죽을때> 두 작품을 읽고 <개선문>을 세번째로 읽었는데, <개선문>이 단연 최고였다. 두권으로 구성된 압박 때문에 쉽게 손이 안갔었는데 이제서야 읽다니 후회하면서도 그나마 지금이라도 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재미와 교훈이 완벽한 작품이었다.

[두어 시간 전에도 그는 지금처럼 그렇게 서 있었다. 그동안 한 인간이 죽은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순간순간 몇천명씩 죽어 나가지 않는가, 거기에 대한 통계도 있다. 그런건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죽은 그 인간에게는 그 순간이 전부이며,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는 온 세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1권 39p



<개선문>은 1차 세계대전 종료 후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파리를 배경으로, 독일 출신 의사이자 피난민인 라비크의 이야기이다. 패전국인 독일에서도 쫓겨나고, 프랑스에서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야 했던 라비크는 어느곳에서든 이방인이었다.

[˝이전에 우리를 붙들어 매고 있던 것이 지금은 파괴되고 말았소. 우리는 이제 줄 끊어진 유리알처럼 산산이 흩어져 있어요. 단단하게 고정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어요.˝]  1권 120p



의사였던 그는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어서  파리에서 대리수술을 하면서 살아간다. 다른 피난민들보다는 경제적으로 상태가 좋았지만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불안전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고 그에게는 허무함만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배우 지망생인 조앙 마두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함께 하기에는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신분운 숨겨야만 하고 언제 추방당할지 모르는 라비크, 반면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조앙 마두는 잠시는 몰라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결국 라비크는 신분이 밝혀져서 프랑스에서 추방당하게 되고, 조앙 마두는 그가 돌아올때까지 기다린다고 그에게 말한다.

[그는 다시 담배를 한 개비 꺼냈다. 내 형편만 달랐다면 그 여자를 붙들어 둘 수 있었을까?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붙잡아 둔단 말인가? 오직 환영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환영이라도 충분하지 않은가? 언제 그 이상의 것을 얻기라도 했던가? 그 누가 이름도 없이 감각의 밑바닥에서 넘쳐흐르는 생명의 시커먼 소용돌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단 말인가?] 2권 1p



조앙 마두를 찾기 위해 라비크는 다시 파리로 돌아왔지만 그녀는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를 보고 흔들린다. 사랑과 안정적인 삶 사이에서 갈팡질팡 한다.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흔들릴 수 밖에 없는 두사람의 사랑은 지속될 수 있을까?

[˝전 억제할수가 없어요, 라비크. 무언가가 나를 몰아 가요. 마치 무언가를 늘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것을 붙들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요. 그리고 내 것으로 만들고 나면 그걸로 끝이에요. 그래서 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해요. 그렇게 해도 결국 이전과 마찬가지라는 것도 이미 알아요. 하지만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어요. 그것이 나를 몰아가고 어딘가로 내동댕이처요. 그러면 한동안은 그것이 나를 가득히 채워 줘요. 그리고 다시 그것이 놓아주게 되면, 나는 다시 굶주린 것처럼 팅 비어 버려요. 그리고 같은 짓을 반복한다고요.˝]  2권 228p



게다가 다시 파리로 돌아온 라비크는 자신의 원수인 하케를 우연히 만난다. 라비크는 독일에서 게슈타포에 쫓기는 친구를 숨겼다가 체포된 적이 있는데, 이 사건으로 그는 하케에게 고문을 당하고 연인이었던 시빌은 그 과정에서 자살을 하였으며, 그는 강제수용소에서 탈출하여 파리로 망명한 것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평생의 원수였던 하케는 라비크를 알아보지 못한다. 하케에게 라비크는 많은 고문 대상자 중 한명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라비크는 하케를 유인하여 그를 처단한다. 오랜시간 동안 꿈꿔왔던 복수를 이룬것이다. 하지만 라비크는 여전히 소용돌이 속에 있을 뿐이었다. 전쟁의 기운은 고조되고 여전히 이방인으로 도망쳐야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머무를 곳을 찾을 수 있을까?

[그는 한 인간을 사랑했고, 그 인간을 잃었다. 그는 또한 한 인간을 미워했고, 그 인간을 죽였다. 두 인간이 다 그를 해방해 주었다. 한 사람은 그의 감정을 다시 살아나게 했고, 다른 한 사람은 그의 과거를 씻어 주엇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소망도 미움도 비탄도 없었다. 새로운 시작이라면, 바로 이런 것이다.]  2권 336p




이 작품이 사랑만을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다. 레마르크는 전쟁이라는 비극속에서도 사람들은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국적을 넘어서는 우정이 있다는 것을, 절망속에서도 작은 행복이 있다는 것을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준다.

전쟁의 폭력 앞에서 사람들은 괴물이 되고, 무력해지며, 헤어지고, 비참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사랑과 우정을 계속해야 한다. 그게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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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름
체사레 파베세 지음, 이열 옮김 / 녹색광선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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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79

"그 시절의 삶은, 마치 끝도 없는 축제 같았다. 집을 나서 길을 건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곧잘 제정신을 잃었다. 모든 것이 경이로웠다. 특히 밤은 더욱 그러했다."


어떤 사랑은 깊어질수록 외로워진다. 내가 원하는대로 해주지 않기 때문에, 계속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더 좋아할수록 비참함을 느끼게 된다. 이런 사랑의 대표적인 예가 첫사랑이다.


지난 주말에 이름도 낯선 이탈리아 작가인 체사레 파베세의 작품인 <아름다운 여름>을 읽었다. 언제나 믿고 구매하는 녹색광선 출판사의 신간은 나올때마다 재빨리 구매해서 읽는데 이번 작품역시 나오자 마자 구매해서 읽었다. 작품도 좋았지만 표지가 너무 아름답고 내가 좋아하는 민트색이어서 그런지 더 좋았다.


아름다운 표지와 아름다운 제목과는 다르게 내용은 엄청 아름답진 않았다. 16세 소녀인 지니아의 성장과 첫사랑은 풋풋하면서도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의 첫사랑이 그렇듯이. 지나고 나면 그 여름을 아름답게 떠올릴 수 있을까?

[그해 여름은 너무나 뜨거웠기에, 매일 저녁 집을 나서야만 했다. 지니아는 여름이 어떤 것인지 지금껏 전혀 알지 못했던 것 같았다. 밤마다 가로수 아래를 거니는 일이 그저 황홀했다. 때로는 이 여름이 영원할 것만 같다가도, 계절이 바뀌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서둘러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 P.39



옷가게에서 일을 하는 소녀 지니아에게 하루하루는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10대들이 그렇듯 사소한것에도 웃고 별것 아닌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이성에 대해 설렘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지니아 앞에 미술모델을 하고 있는 아멜리아가 나타난다. 지니아는 자신보다 성숙했고 자유로운 영혼인 아멜리아를 동경하게 된다. 그녀처럼 미술모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니아는 귀도의 그림을 다시 보고 싶었다. 낮의 햇빛 아래서만 색이 제대로 드러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로드리게스가 없다는 확신만 있었다면 용기를 내어 혼자 찾아갔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계단을 올라가 문을 두드리고 군복 바지 를 입은 귀도가 나오는 모습을 상상했다. 어색함을 깨기 위해 그에게 농담을 하고 미소 짓는 장면까지.] P.70



비오던 어느날 지니아는 아멜리아와 함께 화가인 귀도의 집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귀도와 로드리게스를 알게 된다. 지니아는 군인이자 화가인 귀도에게 반하게 되고 첫사랑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귀도와 아멜리아의 관계를 의심하고, 귀도에 대한 상상을 펼치며, 그의 한마디 한동작에 기뻐하고 슬퍼하며 그리워 한다.

["넌 절대 여름이 아냐, 넌 그림을 그린다는 게 어떤 건지 몰라. 내가 널 사랑하게 되어야 비범한 화가가 될 텐데, 그렇게 되면 시간을 낭비하겠지. 네가 알아야 할 게 있어. 예술가는 자기 작업을 이해해 주는 친구가 있어야 일할 수 있어."] P.120



결국 지니아는 귀도에게 자신을 허락한다. 하지만 귀도는 지니아가 사랑하기에는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니아는 그토록 원했던 귀도의 모델이 되지만 환멸감을 느끼고 그렇게 첫사랑은 끝난다. 하지만 첫사랑이 끝났다고 인생이 끝난건 아니다.



이 작품은 첫사랑에 빠진 10대 소녀인 지니아의 감정기복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해설에 써있는것처럼 남성작가가 이정도까지 그렸다는데 대해 놀라웠다.



불꽃같은 첫사랑과 여름은 어딘가 닮았다. 한참 뜨겁다가도 어느순간 끝나 있으니까. 그리고 첫사랑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해보다는 동경이라는 감정이 앞서는 시기이니까. 그럼에도 첫사랑의 경험은 성장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작가는 첫사랑을 아름다운 여름으로 표현했나 보다.


아직도 여름인것 같은 요즘 시기에 읽기 좋은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영화로도 제작되었다는데 찾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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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09-29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께서 딱 좋아하실 내용 같습니다. 표지가 여름에 어울립니다.

새파랑 2025-09-30 11:14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ㅋ 제 취향의 작품이었습니다. 제목에 여름이 들어간 작품중 두번째로 좋은거 같아요~! 첫번째는 김연수 작가님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 ㅋ

그레이스 2025-09-30 0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녹색광선은 표지가 맘에 들죠!
내용을 보니 4부작으로 이탈리아 소설이 생각나는데,,, 제목이,,, ㅠㅠ

새파랑 2025-09-30 11:15   좋아요 1 | URL
모아놓고 보면 알록달록 예쁩니다. 혹시 옐레나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 아닌가요? ㅋ 전 아직 못읽었습니다...

그레이스 2025-09-30 12:39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자랑 작품이 생각나지 않았는데,,, 새파랑님은 바로 기억하시네요.
제겐 조금 충격적인 작품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