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8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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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38

˝내게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필요해요. 저는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일부러 당신을 부른겁니다.˝


내가 책(특히 문학)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내면을 알수있기 때문이다. 반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내면에 대한 묘사가 아무래도 제한되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을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뇌를 다루는 내용을 좋아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러한 나의 취향에 딱 맞는 작가다. 그리고 <그 후>는 서구문물이 막 유입되는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한, 사랑과 우정에 관한 소세키의 내면 탐구가 극대화된 작품이다.

[그러자 미치요에 대한 자신의 감정도 이런 논리에 의해 그저 일시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의 머리는 당연히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틀림없이 그렇다고 인정할 용기가 없었다.] P.517




이야기는 간단하다. 부유한 집안의 ‘다이스케‘는 친구의 여동생인 ‘미치요‘를 마음에 두고 있었고, 그녀 역시 ‘다이스케‘에게 어느정도 마음이 있었는데, 또다른 친구이자 가난한 ‘히라오카‘ 역시 ‘미치요‘에게 마음이 있었고,


‘히라오카‘는 ‘다이스케‘에게 ‘미치요‘에게 마음이 있다고 고백하며 그에게 ‘미치요‘와 연결시켜달라고 부탁한다. ‘다이스케‘는 두 사람의 결혼을 주선하게 되고, 두 사람은 부부가 된다. 이후 ‘다이스케‘는 별다른 직업없이 유유자적하면서 결혼도 하지 않고 살아간다. 서구의 선진 교육을 받았지만 오히려 혼자서만 지식인척 살아간다.

[히라오카는 마침내 자신과 멀어지고 말았다. 만날때마다 멀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은 히라오카뿐만이 아니다. 누구를 만나더라고 그런 느낌이 들었다. 현대사회란 고립된 인간의 집합체에 불과하다. 대지는 자연과 이어져 있지만 그 위에 집을 지으면 금세 조각조각 나버린다. 집 안에 있는 인간 역시 조각조각 나버린다. 다이스케는 문명은 우리들을 고립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P.360



그리고 몇년 후 세사람은 재회하는데, ‘다이스케‘는 ‘히라오카‘와 ‘미치요‘ 부부가 행복하지 않고, 궁핍하게 산다는 걸 알게 된다. ‘다이스케‘가 보기에 두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다이스케‘는 자신의 마음이 여전히 ‘미치요‘에게 향해 있음을 느낀다. 왜 그때 나의 마음을 뒤로하고 사랑대신 우정을 택했던 걸까?

[다이스케는 백합을 바라보면서 방을 가득 채운강한 향기에 자신을 내맡겼다. 그는 그런 후각적인 자극 속에서 지난날 미치요의 모습을 분명하게 떠올렸다. 그 과거 속에는 떨쳐버릴 수 없는 자신의 옛 그림자가 연기처럼 휘감고 있었다. 그는 한참 후에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 처음으로 자연스러웠던 옛날로 돌아가는군.‘] P.697






뻔하고 뻔한 이야기지만 소세키의 문장은 뻔하지 않았다. 책을 읽다보면 사랑, 우정, 사회적 지위 그리고 경제적 지원이라는 문제 앞에서 고뇌하는 ‘다이스케‘의 모습에 동화될 수 밖에 없었다. 지식인이자 이성적인 ‘다이스케‘ 라면 당연히 ‘미치요‘를 선택하면 안된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그녀가 불행하면 할수록 더 끌리게 된다.

[˝난 미치요 씨를 사랑하고 있네.˝
˝남의 아내를 사랑할 권리가 자네에게 있나?˝
˝어쩔 수 없어. 미치요 씨는 물론 자네 소유야. 하지만 물건이 아닌 인간이니까 마음까지 소유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불가능하지. 본인 외에 그 어떤 사람도 애정의 정도나 대상을 명령할 수는 없지.˝] P.837




왜 그깟 마음 하나가 뭐길래 ‘다이스케‘는 안락함을 버리려는 걸까? 불행한 미래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저런 선택을 하려는 걸까? 그런데 난 ‘다이스케‘가 이해가 된다. 마음이란 원래 그런거니까. 명확하게 구분할수도, 쉽게 버릴수도 없고, 돌아서려고 하면 할 수록 끌리는게 마음이니까.

[그는 자신이 옳은 길을 선택했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그걸로 충분히 만족했다. 그 만족감을 이해해줄 사람은 미치요뿐이었다. 미치요 외에는 아버지도, 형도, 사회도, 세상사람들도 모두 적이었다. 그들은 시뻘건 불꽃속으로 두 사람을 밀어 넣어 태워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다이스케는 말없이 미치요를 부둥켜안고 그 불길이 자신을 빨리 태워 없애기를 간절히 바랐다.] P.869



Ps 1. <그 후>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지금 시기에 읽으면 딱 좋은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Ps 2. 역시 나의 소세키 최고의 작품은 <그 후>가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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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1-25 21: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설이 원작일 때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 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원작에 충실한 것도 좋고요.
문장으로 된 한 장면을 영상으로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라서요. 영화를 보고 나면 다시 원작인 책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잘읽었습니다. 새파랑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2-11-26 08:54   좋아요 0 | URL
저도 소설 읽다보면 이걸 영상으로 하면 멋지겠다 하는 작품을 만나기도 하고, 실제 영화로도 제작된 것도 있던데 저는 막 찾아서 보지는 않더라구요 😅

scott 2022-11-25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에게 앞으로 소세키 옹 작품은
<그후 >의 이전과 후로 나눠 질 것 같습니다 ^^

새파랑 2022-11-26 08:54   좋아요 0 | URL
전 <그 후> 이후 작품들이 더 좋은거 같아요 ^^

파이버 2022-11-25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역시 소세키 매니아시네요ㅎㅎ 말씀대로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물보다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는 법은 책이 더 섬세한 것 같아요. 각자 나름의 매력이 있네요ㅎㅎ

새파랑 2022-11-26 09:46   좋아요 1 | URL
전 영화보다는 책~!! <그 후> 재독인데, 처음 읽을때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바람돌이 2022-11-25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거 아닌 스토리를 이렇게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소세키옹 훌륭!
그 스토리로 이런 리뷰를 만들어내는 새파랑님도 훌륭! 👏👏

새파랑 2022-11-26 09:47   좋아요 1 | URL
소세키는 훌륭이지만 저는 그닥...😅 이 작품 바람돌이님은 싫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

페넬로페 2022-11-26 0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후도 넘 좋죠!
다만 다이스케가 조금 맘에 안들었는데 그래도 사랑을 선택하더라고요.
처음부터 용기내어 미치요와 결혼했으면 더 좋았을텐데요
새파랑님의 최애작품이군요^^

새파랑 2022-11-26 09:49   좋아요 1 | URL
제가 어렸을때 다이스케랑 비슷한(?) 경험을 한적이 있어서 그런지 더 공감되었습니다 ㅋ 저의 최애 작품이 맞습니다 ^^
 

오늘 택배 받자마자 바로 읽었다 ㅋ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라는 건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문제라는 겁니다 - P20

저는 그래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변화 가능성을 그렇게 쉽게 일축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인들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 P26

거리 두기. 이 네 글자.
바이러스 때문에 하는 거리 두기 말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 건강하게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 없이 가능한한 오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물리적, 시간적, 그리고 심정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 이게 이 세상 모든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P29

그래서 사랑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힘이 들 때가 많죠. 사람은 누굴 좋아하면 바라는 게 생기기 때문에. 그래서 아무 감정 없는 동료와 회사에서 종일 같이 있는 것보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한집에서 종일 붙어 있으면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생기게 되는 거죠. - P30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게 남한테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는 일이 죽기보다 어려울 수가 있는 거거든요. 그런 대화를 하는 순간의 그 불편한 공기를 참느니 차라리 인연을 끊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을 한다는 거죠. 또 애초에 그런 게 가능했으면 내키지 않는 일은 거절을 할 수 있는 용기도 있었을 테고요. - P43

누굴 미워하지 않게 된다는건 결국 나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인데, 그래서 이 사람과 사람 간의 일이라는 것은 정말 간단한게 아닌 것 같아요. 누가 누굴 알고 이해한다는 건 어쩌면 평생이 걸릴 수도 있는 긴 여정이기 때문에. - P47

요약이라는 건요, 당장 받아들이기에 간편할지는 몰라도 필연적으로 오해와 단정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글에는 행간이 있고 맥락이라는 게 있는 건데 그걸 다 생략하고 핵심만 남긴다? 지금 문제집을 푸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300페이지짜리 책 한권을 한두 개의 문장으로 압축하듯, 수십 년 사람의 인생 역시 한두 마디 말로 요약한다고 생각해보세요. - P50

인간의 삶에는 노력을 아무리 해도 닿을 수 없는 소위 말하는 운이 좌우하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걸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심지어 운조차 내 노력의 소관으로 이해를 해버리면 결국 세상만사가 다 내 탓이 되어버립니다. - P82

인생이라는 게 두 개를 다 가질 수는 없는 거니까요. - P96

이 세상은 사람의 지옥이다, 뭐 이런 말도 했었지만 인간은요, 사람한테 한 열 번 스무 번 데이다가 막상 한번 감동을 받잖아요? 그럼 그 힘으로 또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 P110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의심하고 외면하고 불러주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럴 때 어느 한 명, 나보다 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그 감동은 평생을 갑니다. 그때 그분이 저에게 그렇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아마 저에게 필요한 온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로 너무 춥게 살아왔을지도 모릅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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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25 1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새파랑님을 위해 출간 된 것 같습니다 ^^

새파랑 2022-11-25 12:12   좋아요 2 | URL
제가 북플에서 1번으로 읽은듯 합니다~!!
 
나를 위한 노래
이석원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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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37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이석원 작가님의 새 작품. 세 편의 강연을 책으로 펴낸건데, 책을 읽으면서 실제 강연을 듣는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작가님 특유의 솔직한 문장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전작인 <2인조> 보다는 이 책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그저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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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22-11-24 04: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가 이석원은 어쩐지 좀 바른사람이 됐네요. 그게 전혀 싫은건 아닌데 노래하는 이석원이 뭔가 투덜투덜하면서도 할말 다하는거같아 좋았거든요.

새파랑 2022-11-24 06:35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ㅋ 바른(?) 형님이 되셔서 약간 아쉽기는 이 책도 좋습니다~! 여전히 팬심을 담아서 전 별 다섯개~!

언젠가 음반도 다시 내셨으면 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11-24 14: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수로서의 이석원이 그립습니다. 마지막 앨범까지도 완벽했으니 팬들의 아쉬움도 큰 것 같아요. 노래를 들을 기회가 다시 있다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새파랑 2022-11-24 16:04   좋아요 2 | URL
마지막 6집이 너무너무 완벽했습니다 ㅜㅜ
들을때마다 놀란다는 ㅋ

저도 공연을 다시한번 봤으면 좋겠네요~!!

희선 2022-11-25 0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 보니 제목이 좋네요 나를 위한 노래라니... 나 자신으로 살기, 그게 가장 좋은데... 다른 거 많이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좀 더 보려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2-11-25 12:12   좋아요 0 | URL
가끔은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한게 필요한거 같아요~!!
 

역시 소세키는 너무너무 좋다. 그 후는 특히 완벽하다.

그가 보기에 이 청년의 머리에는 소의 뇌가 들어
있다고밖에는 할 수 없다. 이야기를 시켜보면
보통 사람의 절반 정도밖에 따라오지 못한다. - P44

다이스케는 꽃병 오른쪽에 있는 조립식 책장
앞으로 가서 위에 올려놓았던 무거운 앨범을 손에
들었다. 금으로 된 잠금 쇠를 풀고 선 채로 한
장씩 넘기기 시작했다. 중간쯤 이르러 갑자기
손을 멈췄다. 거기에는 스무 살쯤 된 여자의
상반신 사진이 있다. 다이스케는 눈을 내리뜨고
여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 P49

"곧 돌아오게"라고 말하며 히라오카의 손을
잡았다. 히라오카는 다이스케의 말에 "하는 수
없지. 당분간은 참아야지"라고 내뱉듯이 말했으나
그의 안경 너머로는 부러울 정도로 자신만만한
표정이 번득이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본 순간.
다이스케는 갑자기 친구가 미워졌다. - P59

이미 오래전에 세상에 발을 디뎠지. 특히 자네와
헤어진 뒤로는 세상이 아주 넓어진 느낌이야.
단지 자네가 살아가는 세상과는 성격이 다를
뿐이지."

"그런 식으로 허세를 부려봤자 곧 무릎 꿇고 말
걸세." - P69

"미치요(三千代) 씨는 잘 지내고 있나?"

"물어주니 고맙군. 여전히 잘 있네. 자네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하더군. 실은 오늘 함께 오려고
했는데 흔들리는 기차를 타고 오느라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여관에 있으라고 하고 나왔네." - P85

"조상이 만든 인연보다는 자신이 만든 인연으로
결혼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럼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씀이세요?"
다이스케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 P140

그는 인생에서 처세라는 사다리를 한두 계단
오르다가 헛디뎌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그 순간 너무 높이 올라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남의 눈에 띌 정도로
상처를 입지는 않았어도 실제로 정신적으로는
이미 큰 타격을 입은 듯했다. 처음 재회했을 때
다이스케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생각해봤을 때
어쩌면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든 것은 아닐까도 싶었다. - P159

‘그때는 아무래도 내가 미쳤었지.‘ - P162

미치요는 아름다운 선이 곱게 겹친 선명한
쌍꺼풀눈을 지녔다. 눈은 가늘고 긴 편이었는데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을 때면 눈이 굉장히 커 보였다.
다이스케는 검은 눈동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미치요가 결혼하기 전에 다이스케는 미치요의
그런 눈매를 자주 보았다. 그래서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미치요의 얼굴을 떠올릴 때면
얼굴 윤곽이 다 그려지기도 전에 검고 젖은 듯한
눈매가 퍼뜩 떠오르곤 했다. - P167

다이스케는 러시아문학에 등장하는 불안을 그
나라 특유의 날씨와 정치적 압박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했다. 프랑스문학에서 엿보이는
불안은 유부녀의 간통이 많기 때문으로 보았다.
단눈치오로 대표되는 이탈리아문학에서의 불안은
무절제한 타락으로 인한 자기결손의 감정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일본의 문학가가 굳이
불안이라는 측면에서만 사회를 묘사하는 것은
서구를 모방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 P226

오늘 두 사람 사이에 감도는 분위기는 그때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그 거리감을 메우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은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다. 도쿄에 도착한 다음 날 3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어느새 둘 사이에 상당한 거리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P254

결국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볼 여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야. 누구든 바쁠 때는
자신의 얼굴 따위는 잊어버리게 되지." - P269

일하는 것도 좋지만 일을 한다면 단지 생계만을
위한 일이어서야 명예로운 일이라고 할 수 없지.
모든 신성한 노력이란 빵과는 거리가 있는
법이네. - P270

"그것 보게. 먹고사는 것이 목적이고 일하는 것이
그 수단이라면 먹고살기 쉽게 일할 방법을
찾아가는 게 당연한 일이지. 그러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든 그저 빵을 얻을 수만 있으면 된다는
결론이 나지 않을까? 노동의 내용이나 방향,
순서가 다른 것의 방해를 받게 된다면 그런
노동은 타락한 노동이라 할 수 있지." - P272

다이스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의 신붓감으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떠올려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 그런 말을 듣자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미치요라는 이름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런 다음
‘그러니까 아까 말씀드린 돈을 빌려주십시오‘라는
말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그저 쓴웃음만 지은 채 형수와 마주
앉아 있었다. - P317

히라오카는 마침내 자신과 멀어지고 말았다. 만날
때마다 멀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은 히라오카뿐만이 아니다. 누구를
만나더라고 그런 느낌이 들었다. 현대사회란
고립된 인간의 집합체에 불과하다. 대지는 자연과
이어져 있지만 그 위에 집을 지으면 금세
조각조각 나버린다. 집 안에 있는 인간 역시
조각조각 나버린다. 다이스케는 문명은 우리들을
고립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 P360

그는 히라오카를 대할 때마다 느껴지는 원인 모를
불쾌감을 떠올렸다. 그렇다고 다만 미치요만을
위해 히라오카의 상황을 걱정할 만큼 히라오카를
미워하지도 않았다. 히라오카 자신을 위해 역시
그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 P414

조금 전에 미치요가 들고 들어온 백합은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있었다. 달콤하고 강한 향기가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다. 다이스케는 이 무겁고
고통스러운 자극을 코앞에 두고 참기 어려웠다.
하지만 멋대로 치워버릴 정도로 미치요에게
거침없는 행동을 하기는 어려웠다. - P434

다이스케는 그 답례로 대개는 새로 나온 서양문학
책을 보냈다. 그러면 답장에는 보내준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증거 같은 비평이 꼭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서신 교환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책을 받았다는 인사도 없었다. 자신이
일부러 물어보면 책은 고맙게 잘 받았다, 읽고
인사를 하려다 보니 이렇게 늦어졌다, 실은 아직
책을 읽지 않았다, 자백하면 읽을 시간이
없다기보다 읽고 싶은 마음이 없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읽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는 답장이 왔다. 다이스케는 그 후로
책을 보내는 대신에 최신 장난감을 보내기로 했다 - P512

그러자 미치요에 대한 자신의 감정도 이런 논리에
의해 그저 일시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의 머리는 당연히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틀림없이
그렇다고 인정할 용기가 없었다. - P517

그는 부자간의 인연을 끊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을
상상했다. 그러면서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그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로 인해서 경제적인 지원이 끊기는 점이
두려웠다. - P583

그는 현재의 미치요를 결코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는 병든 미치요를 예전의 미치요보다 가엾게
여겼다. 그는 아이를 잃은 미치요를 예전의
미치요보다 가엾게 여겼다. 그는 남편의 사랑을
잃은 미치요를 예전의 미치요보다 가엾게 여겼다.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미치요를 예전의
미치요보다 가엾게 여겼다. 다만 다이스케는 이들
부부 사이에 끼어들어 영원히 갈라놓으려 할 만큼
대담하지 않았다. 그의 사랑은 그렇게 무분별하지
않았다. - P604

그제야 다이스케는 미치요와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서로
자연스러운 애정에서 흘러나오는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그들이 무의식중에 세상의 속박을
뛰어넘는 데는 2, 3분의 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 P608

"자네도 많이 변했군."
"자네가 변한 것처럼 변해버렸지. 각박한 세상을
살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군. 그러니 좀
기다려주게." - P624

만일 이 부부가 자연의 도끼에 의해 둘로
갈라진다면 자신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미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부부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자신과 미치요는 그만큼 가까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P628

다이스케는 백합을 바라보면서 방을 가득 채운
강한 향기에 자신을 내맡겼다. 그는 그런
후각적인 자극 속에서 지난날 미치요의 모습을
분명하게 떠올렸다. 그 과거 속에는 떨쳐버릴 수
없는 자신의 옛 그림자가 연기처럼 휘감고
있었다. 그는 한참 후에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 처음으로 자연스러웠던 옛날로
돌아가는군.‘ - P697

"내게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필요해요.
저는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일부러 당신을 부른
겁니다." - P717

"너무하세요."
흐느끼며 말하는 목소리가 손수건 너머로
들려왔다. 그 말이 다이스케의 청각을 전류처럼
자극했다. 다이스케는 자신의 고백이 너무
늦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고백을 하려면
미치요가 히라오카와 결혼하기 전에 했어야 했다.
그는 흐느낌 사이로 띄엄띄엄 이어지는 미치요의
이 한마디를 듣고 견딜 수 없었다.
"3, 4년 전에 당신에게 그렇게 고백했어야
했습니다." - P719

‘모든 것이 끝났다.‘ - P731

"난 미치요 씨를 사랑하고 있네."
"남의 아내를 사랑할 권리가 자네에게 있나?"
"어쩔 수 없어. 미치요 씨는 물론 자네 소유야.
하지만 물건이 아닌 인간이니까 마음까지
소유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불가능하지. 본인 외에
그 어떤 사람도 애정의 정도나 대상을 명령할
수는 없지. 남편의 권리도 거기까진 아니야.
따라서 아내의 사랑이 다른 곳으로 옮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남편의 의무가 아닐까?" - P837

이제 와서 적당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세속적인
형에게 동정을 받으려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그는 자신이 옳은 길을 선택했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그걸로 충분히 만족했다. 그
만족감을 이해해줄 사람은 미치요뿐이었다.
미치요 외에는 아버지도, 형도, 사회도, 세상
사람들도 모두 적이었다. 그들은 시뻘건 불꽃
속으로 두 사람을 밀어 넣어 태워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다이스케는 말없이 미치요를 부둥켜안고
그 불길이 자신을 빨리 태워 없애기를 간절히
바랐다 - P869

나중에는 세상이 전부 빨개졌다. 그리고
다이스케의 머릿속을 중심으로 불길을 내뿜으며
빙빙 회전했다. 다이스케는 머릿속이 다 타버릴
때까지 계속 전차를 타고 가기로 결심했다. - P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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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21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옹의 <그후>는 명작 !^^

새파랑 2022-11-22 07:05   좋아요 0 | URL
아 오늘부터 <그 후>를 저의 소세키 원픽으로 ^^

레삭매냐 2022-11-25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선생 책들을
이책저책 수집해 놓았는데
미처 읽지는 못하고 있네요.
참 내...

어디 그런 책들이 한둘이
아니긴 하지만요.

새파랑 2022-11-25 12:13   좋아요 1 | URL
<그후> 리뷰 쓰려고 하는데 아직 못썼네요 ㅋ 저는 이 책이 소세키 책중 가장 좋은것 같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노먼 F. 매클린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N22136 읽기 전에는 기대가 컸었는데 약간 아쉽다. 자연 풍경에 대한 묘사는 좋았다. 이 책을 각색한 영화는 상당히 평이 좋던데 책으로 읽으니 감흥이 덜한것 같다. 게다가 낚시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낚시를 잘 모르다보니 빠져들기 힘들었다. 특히 갑작스러운 결말은... 저자의 회고록 느낌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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