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수학 역사상 최대의 난제였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책입니다. 페르마라는 위대한 수학자는 정리 하나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 정리에 대한 증명 방법을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이런 내용입니다. x의 n승 + y의 n승 = z의 n승 을 만족하는 정수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n은 3 이상의 정수)
페르마는 자신의 책에 이런 글을 남겨놓습니다.
임의의 세제곱수는 다른 두 세제곱수의 합으로 표현될 수 없다. 임의의 네제곱수 역시 다른 두 네제곱수의 합으로 표현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3 이상의 지수를 가진 정수는 이와 동일한 지수를 가진 다른 두 수의 합으로 표현될 수 없다.
나는 경이적인 방법으로 이 정리를 증명했다. 그러나 책의 여백이 너무 좁아 여기에 옮기지는 않겠다.
얼마나 약 올리는 글인가요. 수많은 수학자가 이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 뛰어들었지만 실패를 맞봐야 했습니다. 350년간 이 난제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앤드류 와일즈가 나타나기 전까지는요.
아래는 종교로 인해 수학의 암흑기가 도래하는 상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종교가 나쁜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지하고 악한 종교인들이 나쁜 것이지요. 분서갱유는 진시황 때도 있었습니다.
그 뒤, 4세기 동안 이 초대형 도서관(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는 유럽 각지에서 출판된 책들이 계속 쌓여가면서, 기원후 389년 까지 '세계 최대' 라는 명성을 누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두 차례의 종교전쟁을 겪으면서 도서관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당시 로마제국 황제인 테오도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테오필루스에게 이교도들의 신전을 모두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불행히도 재건된 도서관은 세라피스 신전 내부에 있었기 때문에 테오필루스의 공격을 고스란히 받게 되었다. 몇 명의 뜻있는 학자들이 6세기 동안 보관되어 온 지식의 보고를 지키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그들 역시 기독교도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다. 중세의 암흑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식의 가치를 알고 지키려던 학자들의 마음을 알 거 같습니다. 얼마나 안타깝고 분했을가요? 인류의 소중한 유산을 얼마나 지키고 싶었을까요?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기독교도들의 무자비한 공격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책들은 복사본의 형태로 살아남아, 지식을 추구하는 학자들은 계속해서 알렉산드리아로 모여들었다. 그러던 중 기원후 642년, 회교도들의 침략으로 인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기어이 파괴되고 말았다. 침략에 성공한 칼리프 오마르가 도서관의 처리 문제를 놓고 고심하다가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코란에 위배되는 책은 우리의 적이므로 모두 폐기한다. 또한 코란에 위배되지 않는 책들 역시 읽을 필요가 없으므로 폐기처분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코란뿐이다!" 그의 명령에 따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모든 책이 아궁이 속으로 던져졌고 그리스 수학자들은 화형에 처해졌다. 그리고 이때 디오판토스의 책들도 함께 소실되었다. 이토록 끔직한 '분서갱유'가 자행되던 와중에 열세 권의 <아리스메티카> 중 여섯 권이 살아남은 것은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웃지 못할 역사 속 해프닝입니다. 코란에 위배되는 책도 폐기하고 코란에 위배되지 않는 책도 폐기하고.
이후로 1,000여 년간 서양 세계의 수학은 참담한 암흑기 속에서 거의 발전을 멈추었으며 인도와 아랍 지역에 살던 소수의 수학자들에 의해 '수학' 이라는 학문의 명맥이 간신히 유지되었다. 인도와 아랍의 수학자들은 알렉산드리아에서 흘러들어온 복사본을 토대로 하여 수학의 체계를 재구성했고, 유실된 정리들을 찾아내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증명했다. 이들은 또한 기존의 수학체계에 새로운 요소들을 첨가했는데, '0' 이라는 숫자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1,000년 동안 수학의 발전이 정체되었다니 실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래는 오일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일러는 60대에 두 눈을 모두 잃은 뒤에도 7년 동안 수학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그가 수학계에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것도 이 무렵입니다.
1776년, 백내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뒤 오일러의 눈은 잠시 회복되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또다시 병원균에 감염되어 그의 시력은 영영 회복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도 연구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1783년 9월 18일에 치명적인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수리철학자였던 콩도르세후작은 그의 죽음을 이렇게 세상에 알렸다. "오일러는 삶과 계산을 멈추었습니다."
"오일러는 삶과 계산을 멈추었습니다." 멋진 표현입니다.
아래는 갈루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천재였지만 불운했습니다. 그는 데르벵뷰의 약혼녀 스테파니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격분한 데르벵뷰는 갈루아에게 결투를 신청했습니다. 프랑스 제일의 명사수였던 데르벵뷰의 명성은 갈루아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결투를 치르기 전에 갈루아는 이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아래는 그 편지의 내용입니다.
여러 우국지사와 친구들에게 간곡히 바라건대, 제가 조국을 위해 죽지 못하고 엉뚱한 일로 죽었다 하여 비난하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한 간교한 여자의 정숙치 못한 행실을 미리 간파하지 못한 어리석음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저의 삶이 이렇게 끝나는 것은 정말 불명예스러운 일입니다. 아! 저는 왜 이토록 하찮고 사소한 일로 죽어야 하는 겁니까? 제가 이 대결을 얼마나 피하고 싶은지는 하늘도 알고 계실 겁니다. -p306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는 수학에 대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불운으로 인해 맘껏 그 재능을 꽃 피워보지도 못했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아버지를 잃고 자신도 고난을 겪어야 했던 한 젊은이는 하찮고 사소한 결투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이 결투를 피하고 싶었는지는 위 편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지금의 관점에서는 목숨을 건 결투를 받아들지 않는게 마땅한 처사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관점으로 저 시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당장 결투를 거절하라고 뜯어 말리고 싶지만 그는 이미 결투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는 결투 전날까지 자신의 수학을 세상에 남기기 위해 처절한 마음으로 노트에 적어나갔습니다. 그의 노트에는 복잡한 수실들 사이에 간간이 '스테파니' '여인' 등과 같은 단어가 낙서처럼 적혀 있고,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다구!' 처럼 절망 섞인 절규를 휘갈겨놓은 페이지도 눈에 띕니다. 그날 밤, 계산을 끝낸 뒤 갈루아는 친구인 오귀스트 슈발리에에게 마지막 편지를 씁니다. 아래는 그 편지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에게
계산 도중에 나는 몇 가지 새로운 발견을 했다네. 그중 하나는 5차 방정식의 풀이법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는 적분함수에 관한 발견이었지.
그동안 나는 근호를 이용하여 방정식의 풀이 가능성을 판정하는 방법에 대하여 연구했었다네. 그러다 보니 방정식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풀이가 가능한 방정식을 변환시키는 방법도 알게 되었지. 함께 동봉한 세 편의 논문에 이 모든 내용을 적어놓았네...
그동안 나는 종종 나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수학명제들을 만들어내곤 했었는데, 여기 적힌 내용들만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네. 모든 것은 1년여에 걸친 심사숙고 끝에 완전하게 정립된 결과이며, 증명되지 않은 정리를 주장하여 논리의 맥이 끊어진 곳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야코비나 가우스에게 이 논문들을 보여주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게. 계산의 타당성을 논하지 말고, 이 논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물어보게나. 훗날 누군가에 의해 나의 방정식이론이 유용하게 쓰이기를 기대하며 이만 줄이기로 하겠네.
깊은 애정을 보내며,
E. 갈루아.
다음날 아침, 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결투장소로 홀로 나갔습니다. 결투 전 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논문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어떤 마음가짐이었을까요?
마지막은 와일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와일즈는 8년 간의 연구 끝에 마침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해냈습니다.
와일즈의 다음 관심사는 무엇일까? 그는 7년 동안 은거해 온 학자답게 앞으로의 연구 계획에 대해서도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일을 한다 해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할 때처럼 열성적으로 매달리지는 못할 것 같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대신해 줄 만한 문제는 없습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저의 꿈이었고, 이제 저는 그 문제를 풀었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문제를 풀어야겠지요. 개중에는 너무나 어려워서 풀고난 뒤에 커다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문제도 있겠지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비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어린 시절의 꿈을 어른이 되어서도 추구할 수 있는 아주 귀한 특권을 누린 행운아입니다. 그러나 성인이 된 뒤에 어떤 문제에 도전을 시작한다면 그 의미는 더욱 클 것이고 성취감도 그만큼 깊을 것입니다. 무언가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에는 일종의 상실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는 8년 동안 한 가지 문제만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단 한시도 그 문제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한 가지 생각만으로 보낸 시간치고는 꽤 긴 시간이었지요. 저의 여행은 이제 끝났습니다. 마음이 아주 편안하군요." -p405
수학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재밌는 이야기가 가득했던 책이었습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얽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