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읽는 책

 


  길 옆으로 흐드러진 나무숲과 논밭과 멧자락과 냇물과 갯벌이 펼쳐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버스를 달리기도 하고 기차를 달리기도 합니다. 자가용이나 자전거를 달릴 때에 이러한 숲과 들과 바다와 냇물을 보기도 합니다.


  길 옆으로 가득한 아파트와 아스팔트와 끝없는 가게와 사람들을 바라보며 버스를 달리기도 하고 기차를 달리기도 합니다. 자가용이나 자전거를 달릴 때에 이러한 도시 한복판을 보기도 합니다.


  숲을 바라보며 달리는 길은 어떤 마음이 될까요. 아파트를 바라보며 달리는 길은 어떤 넋이 될까요. 들이나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는 길은 어떤 꿈이 될까요. 끝이 보이지 않는 아스팔트길 끝없는 자동차 물결을 바라보며 달리는 길은 어떤 사랑이 될까요.


  자전거수레에 두 아이를 태웁니다. 옆지기와 나는 따로 자전거에 탑니다. 내 자전거에는 두 아이가 앉아 어버이와 함께 달립니다. 논둑을 달리고 멧자락 옆길을 달립니다. 논둑에서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고, 멧자락에서는 들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큰길로 나와 면소재지와 가까워지면 자동차 소리를 듣습니다. 자동차는 한 대만 지나가더라도 휘잉 바람을 일으키며 시끄럽습니다. 다른 모든 소리를 잠재웁니다. 들길과 숲길과 멧길에서는 자전거를 달리면서도 이야기를 이렁저렁 나눕니다. 자동차 드나드는 찻길에서는 자동차 배기가스 때문에라도 입을 닫아야 하지만, 말소리가 찻소리에 잠겨 하나도 안 들립니다.


  골목길을 두 다리로 걸을 때하고 공장 옆길을 두 다리로 걸을 때에는 아주 다른 느낌이요 삶입니다. 나무 우거진 숲 사이 흙길을 걸을 때하고 아파트 사이 돌길을 걸을 때에는 사뭇 다른 마음이며 하루입니다.


  사람들은 책을 읽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터전에 맞추어 책을 읽습니다. 사람들은 책을 씁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살아가는 터전에 걸맞게 책을 씁니다. 사람들 스스로 누구하고 이웃하며 무엇을 곁에 두느냐에 따라 책읽기가 달라집니다. 사람들 스스로 누구하고 벗삼으며 어떤 보금자리를 일구느냐에 따라 글쓰기가 바뀝니다. (4345.5.1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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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이야기책 《삶말》 2호를 내놓았습니다.

월요일에 빗길을 달려 우체국에서 부쳤습니다.

오늘부터 천천히 집에 닿으리라 생각합니다.

 

즐겁게 받아서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삶말》은 ‘도서관 지킴이’한테만 부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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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5-16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집에 들어오면서 편지함에서 꺼내 들고왔습니다.
블로그에서 낯익은 내용들이지만 다시 새롭게 잘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숲노래 2012-05-17 07:45   좋아요 0 | URL
소식지는 '인터넷 안 하는 사람'한테 맞추어 엮기 때문에, 서재에 올린 글이라 하지만, 꼭 더 읽히기를 바라는 글을 추려서 실었어요. 즐거이 사랑해 주셔요~~ ^^
 


 무화과 책읽기

 


  무화과나무에 꽃송이 달립니다. 무화과나무 꽃송이는 다른 나무 꽃송이하고 사뭇 다르게 생깁니다. 언뜻 보기에는 ‘꽃 같지 않다’ 여길 만합니다.


  무화과는 따로 꽃이 피지 않는다 하고 딱히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서 ‘無花果’처럼 한자를 써서 이름을 지었다고 하지요. 사람이 바라보는 눈으로는 ‘꽃이 따로 없고 열매 또한 딱히 없다’ 할 터이나, 무화과나무 삶으로 돌아보면, 사람 눈으로 볼 때에는 느낄 수 없는 꽃송이요, 사람 넋으로 헤아릴 때에는 알 수 없는 열매라 하리라 느낍니다.


  무르익는 한여름에 먹는 무화과 꽃송이(또는 꽃주머니)는 오월 한복판에 들어서자 통통하게 물이 오릅니다. 언제 이만큼 꽃송이(또는 꽃주머니)가 부풀었나 싶어 놀랍니다. 내가 날마다 틈틈이 들여다보더라도 무럭무럭 자랄 테고, 내가 따로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스스로 씩씩하게 자라겠지요.
  아이들은 날마다 자랍니다. 튼튼하게 잘 크는 첫째 아이 키를 다달이 재 보는데, 다달이 잴 때면 1센티미터씩 높아집니다. 따로 줄자로 키를 재지 않더라도 아이를 안거나 재울 때면 이 아이 키가 느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딱히 아이를 안지 않더라도 가만히 바라보며 이 아이 키가 자란다고 느낍니다.


  어른이 되면 키가 더 늘지 않습니다. 어른은 몸뚱이가 더 커지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면 바야흐로 마음이 자랍니다. 어른이 되었다 할 때에는 날마다 새삼스레 마음이 깊어지거나 넓어집니다. 아니, 마음이 자라고, 깊어지며, 넓어질 때에, 시나브로 ‘어른’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하다 싶습니다. 마음을 가꾸고, 돌보며, 사랑할 때에, 참말 ‘사람’이라는 이름이 걸맞다 싶습니다.


  햇살을 먹고 바람을 마시며 물을 받아들이는 흙땅에서 무화과나무가 자랍니다. 새잎이 돋습니다. 새 꽃봉우리 터집니다. 비가 멎은 새 아침 하늘은 파랗고, 들새와 멧새는 새벽 일찍부터 신나게 노래하며 먹이를 찾아 마을과 들판을 날아다닙니다. (4345.5.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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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5-15 07:06   좋아요 0 | URL
꽃 '봉우리'가 맞는가요? 저는 봉오리로 알고 있었는데...
무화과 꽃송이가 꼭 포도씨 확대해놓은 것 처럼 생겼네요.

숲노래 2012-05-15 10:0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때때로 잘못 적어요.
산봉우리, 꽃봉오리,
이렇게 생각하면 틀릴 일은 없는데,
새벽에 아기 안고 글을 쓰며 졸음을 참다가
잘못 적었네요 @.@

에구구~

기억의집 2012-05-15 13:40   좋아요 0 | URL
무화과는 꽃이 없다고 해서 무화과라고 알고 있었는데,
꽃송이가 피는군요. 색깔을 보니 나뭇잎하고 색이 같아 언뜻보면 잘 모르겠어요.
제가 알고 있던 지식을 수정해야겠는데요.
근데 왜 아직까지도 무화과로 이름지을까요?

숲노래 2012-05-15 15:44   좋아요 0 | URL
수술이며 암술이며, 저 '주머니' 같은 푸른 싸개 안쪽에만 옹크린 채 있어요. 그러니, 따로 꽃이 없다고도 말하고, 이 '수술 암술 덩어리'라 할 뭉치가 그대로 '열매' 노릇까지 하지만, 이 또한 이 모습 그대로 바알갛게 익으니, '무화과'라는 이름으로 말할 수도 있으리라 느껴요... @.@

노이에자이트 2012-05-15 14:34   좋아요 0 | URL
무화과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입니다.광주는 오래된 주택가에서 가끔 볼 수 있죠.우리동네 주변에도 있는데 무화과 딸 때 하얀 액이 나오죠.저는 껍질이고 뭐고 다 먹습니다.그런데 무화과 못먹는 사람들이 꽤 있더군요.고흥에도 대량재배하는 곳이 있나요?

숲노래 2012-05-15 15:44   좋아요 0 | URL
글쎄, 잘 모르겠어요. 어디엔가 있을는지 모르나, 다들 집에서 먹을 만큼만 몇 그루 두시지 싶어요~

인천에도 골목집마다 무화과나무가 꽤 있답니다~
 

 

 책을 읽는 뒷모습

 


  잠을 자는 아이 모습을 바라볼 때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그저 잠을 자기 때문에 사랑스럽지는 않습니다. 아이가 잠에 빠져들며 한창 뛰놀 꿈나라가 그윽하게 아름다우리라 느끼기 때문에 사랑스럽습니다.


  잠을 자는 사람은 아이가 되건 어른이 되건 맑고 귀엽습니다. 얼굴에 주름이 지지 않습니다. 이맛살을 찡그리지 않습니다. 고요하고 정갈합니다. 제아무리 모진 짓을 일삼는다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는 모습은 더없이 아늑하고 예쁩니다. 예쁜 사람도 예쁘고, 미운 사람도 예쁜 잠자리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쁜 짓을 하건 미운 짓을 하건, 잠자리 모습뿐 아니라 밥자리 모습도 누구나 예쁘구나 싶어요. 밥을 차릴 때를 비롯해서 밥을 먹을 때와 밥그릇 치울 때 모습을 살피면, 여느 때에 예쁜 짓을 하건 미운 짓을 하건, 그지없이 맑으며 곱구나 싶어요. 또한, 뒷간에서 볼일을 볼 때라든지, 호미를 들고 밭고랑에서 김을 맬 때라든지, 낫을 들고 논에서 벼를 벨 때라든지, 아이를 안고 들길을 거닐 때라든지, 어느 누구라도 어여쁜 빛 한껏 뿜는 아리따운 얼굴이 된다고 느낍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 붙인다면, 어느 누구라도 책을 읽으며 이야기에 폭 빠져들 때에는 가없이 어여쁘구나 싶습니다. 내 마음 사로잡는 책 하나 손에 쥐어 가만히 눈알을 굴릴 때에는 구부정한 허리가 곧게 펴지고, 흐트러진 매무새가 정갈해지며, 흐리멍덩하던 눈에 무지개빛이 감돈다고 느낍니다.


  사람들은 잠을 자야 합니다. 툭탁툭탁 다툼질이 그치지 않는다면 모두 한숨 자고 일어나도록 해야지 싶습니다. 사람들은 밥을 먹어야지 싶습니다. 치고받는 싸움질이 끊이지 않는다면 모두 한자리에 둘러앉아 밥을 먹어야지 싶습니다. 사람들은 똥을 누고 오줌을 누어야지 싶습니다. 전쟁터 군인들이 뒷간에 나란히 앉아 똥오줌을 누어야지 싶습니다. 사람들은 밭일을 하고 논일을 하며 들과 숲 품에 안겨야지 싶습니다. 돈도 이름값도 주먹힘도 내려놓고, 다 함께 작은 연장 하나 손에 쥐며 흙을 만지고 햇살을 누리며 바람을 쐬어야지 싶어요. 즐겁게 사랑하며 빛낼 좋은 지구별 한삶이에요. (4345.5.1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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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날 좋은 책 (도서관일기 2012.5.9.)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좋은 날씨가 이어지니 좋은 마음이 될까. 나 스스로 좋다고 여기는 책을 읽으며 나 스스로 좋은 삶으로 거듭날까. 첫째 아이와 함께 서재도서관으로 나와 책을 갈무리하며 생각한다. 내 마음이 좋은 날씨를 부를는지 모르며, 좋은 날씨가 다시금 나한테 좋은 넋을 북돋울는지 모른다. 내 생각이 좋은 삶을 부를는지 모르고, 좋은 삶이 새삼스레 나한테 좋은 얼로 책을 마주하도록 이끌는지 모른다.


  좋은 얼거리는 천천히 이어진다. 궂은 얼거리 또한 천천히 이어진다. 좋은 꿈은 차근차근 이루어진다. 얄궂은 꿍꿍이 또한 차근차근 얽히고 설킨다.


  내 삶을 어떻게 아로새기며 누리려 하는가는 내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 내 삶에 아름답다 싶은 책을 꽂으려 하는지, 내 삶에 이렁저렁 따분하거나 부질없는 책을 꽂으려 하는지, 내 삶에 사랑스러운 책을 꽂으려 하는지, 내 삶에 지식조각 책을 꽂으려 하는지, 나 스스로 생각하고 갈무리할 노릇이다.

 


  꿈을 꾼다. 이 땅에서 사랑스러운 이야기 꽃피우는 꿈을 꾼다. 꿈을 꾼다. 모과가 익고 매실이 익으며 오디가 익는 꿈을 꾼다. 꿈을 꾼다. 감자가 자라며 당근이 자라고 오이랑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리는 꿈을 꾼다. 꿈을 엮고 꿈을 빚으며 꿈을 들려주는 책이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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