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밭 1

 


  이장님 마늘밭 마늘 캐는 일을 거들다. 마을 할머님들이 먼저 바지런히 마늘을 캐셨고, 캔 마늘을 굵기에 따라 큰 녀석과 작은 녀석으로 가른다. 이 다음에 쇠끈이나 새끼줄로 마늘을 쉰 알씩 엮는다. 엮은 마늘은 굵기에 따라 짐차 앞뒤로 나누어 차곡차곡 눌러 싣는다. 마늘을 가르고 솎으며 엮다가 날라서 싣는 일을 하는 틈틈이 땡볕을 쉬려고 나무그늘에 모두 모여 앉는다. 마을 할머님들은 막걸리를 마시고 김치를 자시며 고된 일을 쉰다. 나도 곁에서 막걸리와 김치를 들며 고단한 허리를 쉰다.


  나는 서른여덟 해 살아오며 처음으로 마늘밭 일을 거들었다. 마늘을 캐는 일부터 해 보고 싶었으나, 마늘 캐기는 할머님들이 미리 다 해 놓으셨다. 캔 마늘을 가르고 솎으며 엮다가 날라서 싣는 일만 하는데 참 만만하지 않다. 마늘밭은 얼마나 넓은가. 마늘밭이 몇 백 평이나 몇 천 평이 되는가. 그닥 넓지 않다 할 만한 마늘밭인데, 이만 한 일을 하기에도 만만하지 않다고 느낀다. 아니, 마을 일꾼이 모두 할머니이기 때문에 이처럼 느낄는지 모른다. 마을 일꾼이 젊은 아줌마와 아저씨였다면, 또 마을에 열대여섯 살 푸름이가 얼마쯤 있었다면, 또 마을에 열 살 안팎 아이들이 얼마쯤 있었다면, 이리하여 마을 어느 집에서 마늘을 캔다 할 때에 모두 품앗이를 한다 하면, 모두들 즐거이 일노래를 부르면서 신나게 참을 먹고 하루를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는 모두 도시로 가서 돈을 벌 테지. 도시로 가서 돈을 버는 젊은이는 시골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내는 마늘을 느긋하게 먹겠지. 때로는 회사에서 동무들하고 고기집에 마실을 가서 마늘을 먹을 테고, 때로는 식구들과 회집에 나들이 가서 마늘을 먹을 테지.


  마늘을 먹을 때에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을까. 마늘을 캐고 다루어 내다 파는 시골 어버이와, 이 마늘을 사서 까고 다듬어 밥상에 올리는 밥집 일꾼들 땀방울을 생각할 수 있을까.


  따순 봄날 마늘밭 할머니들 손가락은 온통 멍투성이에 핏투성이에 흙투성이.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며 자장노래 부르고 나서 한숨을 돌린 다음 내 손을 들여다보니, 내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퍽 도톰하게 피고름 하나 맺혔다. (4345.5.2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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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꽃 책읽기

 


  지난주쯤부터 손톱보다 조금 크다 싶은 하얀 꽃송이 달린 자그마한 찔레나무를 보았다. 하얀 꽃송이가 달리고 나서야 비로소 찔레나무로구나 하고 알아채는 셈이지만, 하얀 꽃송이가 달린 모습을 보면서도 ‘응, 찔레 같은데?’ 하고 생각할 뿐, ‘이야, 찔레로구나!’ 하고 깨닫지 못한다. 네 식구 나란히 들길 마실을 다니면서 이 꽃송이를 바라보며 선뜻 ‘저기 보렴, 찔레꽃이란다!’ 하고 말하지 못한다. 요즈음 시골은 길이든 들이든 이웃을 만나기 어려우니, 막상 ‘찔레로구나 싶은 꽃을 보더라도 여쭈지 못한’다.


  어제 낮, 충북 음성에서 아이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찾아오셨다. 두 분이 하룻밤 주무시고 돌아가시기를 바라며 집 안팎을 며칠에 걸쳐 바지런히 치우고 쓸고닦았다. 그러나 두 분은 안 주무시고 바로 돌아가신다. 얼마나 서운하고 기운이 빠지는지 온 하루가 고단하고 슬프다. 그래도, 아이들 할머니한테 몇 가지 여쭈었다. 찔레꽃이 크기가 얼마만 하느냐 여쭙고, 요즈막 길에서 흔히 보는 하얀 꽃송이가 무슨 꽃이냐 여쭙는다. 아이들 할머니는 “아니, 찔레도 몰라?” 하면서 “바로 여기에도 있네. 저기에도 가득 폈네.” 하고 말씀하신다.


  어머니, 그럼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인천에서 찔레꽃을 구경했던 적이 떠오르지 않는걸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인천 골목동네에도 틀림없이 곳곳에 찔레꽃이 흐드러졌을 테지만, 찔레꽃이라 알려준 이웃 어른은 없었거든요.


  아이들 재우며 자장노래로 이원수 님 동시에 가락을 붙인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남모르게 하나둘 따먹었다오.” 하는 노래를 날마다 불렀다. 정작 아이들 어버이로서 ‘얘들아, 우리 찔레잎 따먹을까?’ 하고는 얘기하지 못했지만, 새해에는 찔레꽃을 제대로 알아보아야지 하고 다짐하며 이 노래를 늘 불렀다. 아이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금세 돌아가셔서 못내 서운했지만, 이제부터 아이들하고 찔레꽃잎 같이 따먹고, 밥에도 찔레꽃잎 얹어서 먹으려 한다.

 

 ..


  요즈음 사람들은 봄을 맞이하며 봄꽃을 기다린다 하지만, 막상 벚꽃이니 진달래이니 개나리이니 하고 말하는 데에서 그친다. 먼먼 옛날부터 여느 시골 사람들하고 살가운 벗이던 찔레꽃 구경하거나 즐기는 일은 거의 생각하지 못하거나 않는다. 아무래도, 요즈음 사람들은 몽땅 도시사람이기 때문일까. 요즈음 사람들은 고작 쉰 해쯤 앞서만 하더라도 이 나라 거의 모두 시골 흙일꾼 딸아들로 태어나 살아온 줄 잊기 때문일까.


  나는 봄을 맞이하며 다른 어느 꽃보다 살구꽃을 기다린다. 살구꽃이 질 무렵이면 딸기꽃을 기다린다. 딸기꽃이 저물 무렵이면 찔레꽃을 기다린다. 찔레꽃이 저물 무렵에는 감꽃을 기다릴까. 감꽃이 저물 무렵이면 어느 꽃을 기다리려나. 들에서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씨앗을 틔우며 씩씩하게 자라나는 찔레나무가 우리 집 뒤꼍으로도 날아들 수 있기를 빈다. (4345.5.2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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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맞이 바쁜 날 (도서관일기 2012.5.18.)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5월 19일 손님맞이를 앞두고 여러 날 아주 바쁘게 책을 치운다. 2012년 5월 21일은 둘째 아이 첫돌. 돌날이 낀 토요일, 충북 음성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찾아오시기로 해서, 찾아오시는 김에 도서관에도 들르실 테니, 도서관을 이모저모 바쁘게 치운다. 그러나 도서관만 치울 수 있나. 집안도 치우고 쓸고닦아야지. 아이 돌보랴, 아이 밥해 먹이랴, 아이들 옷가지 빨래하랴, 빨래한 옷 걷어서 개랴, 아이들 놀자고 달라붙을 때 놀랴, 나는 나대로 나한테 주어진 몫 일을 하랴, 여러모로 눈코 빠지고 등허리가 휜다.


  그러나, 이렇게 손님맞이를 헤아리며 바지런히 손을 놀렸기에, 도서관 모양새가 한결 깔끔하게 모양이 잡힌다.


  어르신들은 어떻게 여기실까. 아직 제대로 치우며 활짝 문열고 손님을 널리 받기까지는 먼 듯하지만, 그럭저럭 볼 만하다고 여기실까. 아직 갈무리를 마치자면 멀었지만, 이제부터 손님을 받을 만하다고 여기실까. 다음주에는 바깥에 이동화장실 하나를 들이려 한다. 이 학교 건물과 운동장을 우리가 통째로 쓸 수 있을 때에 전기와 물 시설을 들이고 싶다. 아직 반쪽도 아닌 반반쪽이거나 반반반쪽짜리 도서관이지만, 좁다랗고 찻길과 건물에만 둘러싸이던 인천에서 도서관을 하던 때하고 느낌이 사뭇 다르다. 흙이 있고 풀이 자라며 나무가 선 곳에 책터를 꾸리니 나부터 한결 맑아진다고 느끼며, 우리 책들도 더는 곰팡이가 피지 않으면서 맑은 숨을 마음껏 들이마시는구나 싶다. 참말, 도서관은 도시 아닌 시골에 있어야 한다. 참말, 사람은 도시 아닌 시골에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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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5-19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멋지네요.
사진을 볼 때마다 수많은 책에 감탄하기도 하고..
고생하셨어요.

그런데 보라의 수레가 정말 멋진걸요.

숲노래 2012-05-20 00:43   좋아요 0 | URL
보라에 앞서 벼리가 탔고, 벼리에 앞서 수천 권 넘는 책을 실어나른 수레랍니다~
 

 

 두 사람 네 손 책읽기

 


  2012년 5월 19일, 둘째 아이 첫돌 이틀 앞둔 날, 곰곰이 지난날을 되새기며, 새벽 네 시 오십팔 분부터, 우리 집 처마에 깃든 제비들 노래하는 소리를 듣는데, 인천에서 나고 자란 다음, 서울에서 아홉 해를 살고, 군대에서 스물여섯 달을 썩고서는, 돌아가신 이오덕 님 글과 책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느라 네 해 남짓 충주와 서울을 오가며 지냈는데, 서재도서관을 처음 연 2007년부터 인천에서 다시 살았고, 인천에서 옆지기를 만났고, 도시인 인천 골목동네에서 첫째 아이 낳은 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만, 이제 나는 도시에서 살던 일이 너무나 아스라한 이야기처럼 느낀다.


  시골에서 살아간 지는 이제 이태째. 우리한테는 작은 집 하나만 있고, 시골에서도 똑같이 꾸리는 서재도서관은 아직 빌려서 쓰며, 밭이나 논으로 삼을 우리 땅 또한 아직 없다. 땅 없고 밭일 제대로 못하는 우리는 시골사람이라 할 만하지 않다고들 말하는데, 나로서는 내가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아이들과 놀고 하루하루 지내는 터가 시골이라면, 이곳에서 꼭 하루만 살았더라도 시골사람이라고 느낀다.


  고향 인천에서 붙박이를 만나기란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나로서는 나부터 인천 붙박이요 내 동무들 모두 인천 붙박이인 터라, 여기를 가든 저기를 가든 몽땅 인천 붙박이였다. 조용히 살림 꾸리는 사람은 하나같이 붙박이였구나 싶다. 정치를 하거나 문화를 하거나 예술을 하거나 교육을 하거나, 또 돈을 벌려 하거나 하는 사람들은 으레 인천 아닌 다른 데에서 찾아왔구나 싶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인천에서 지낼 때에 ‘인천으로 옮겨 산 지 얼마 안 되었다’ 말하는 이들한테 ‘아니에요. 인천에서 하루를 살았더라도 인천사람이에요.’ 하고 말했다. 골목을 잘 모르고 역사를 잘 모른대서 인천사람 아닐 수 없다. 삶터가 인천이면 모두 인천사람이다. 삶터가 인천 아니면 인천사람 아닐 뿐이다. 곧, 잠자리는 인천이되 일하러 지옥철 타고 서울을 드나들며 서울에서 놀고 서울 동무 사귀는 이들은 인천사람 아닌 서울사람이다. 사는 곳(주소)은 인천이되 서울사람이다.


  이리하여, 나는 인천사람이었다가 서울사람이 되었고, 서울사람에서 양구사람이 되었으며, 양구사람에서 다시 서울사람이 되다가, 충주사람이 되기도 했지만, 이내 인천사람으로 돌아왔고, 다음으로는 음성사람이 되었는데, 이제는 고흥사람으로 살아간다. 내 마음도 내 생각도 내 사랑도 내 얘기도 온통 고흥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리며 잎을 틔운다.

 

 ..


  마당에서 마음껏 자라는 들풀에 판을 기대어 뜨개옷을 매만지는 두 사람 네 손이 곱다. 후박나무 밑 풀밭에서 후박꽃 내음과 들풀 소리를 함께 느끼며 뜨개옷을 어루만지는 두 사람 네 손길이 예쁘다. 예쁜 손을 바라보기에 내 손은 덩달아 예쁘게 바뀐다. 고운 손을 쓰다듬기에 내 손은 시나브로 곱게 거듭난다. (4345.5.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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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5-19 21:28   좋아요 0 | URL
뜨게옷 너무 이쁘네요.
무엇을 짜신건가요? 저렇게 판에 대고 다듬으시는건가봐요....

아하, 아래 그림 보고 답을 알았습니다.
너무너무 이쁘네, 벼리도 옷도..

숲노래 2012-05-20 02:00   좋아요 0 | URL
뜨개옷도 손길도 풀도 다 예뻐요.
좋은 하루랍니다.

저건, 어깨에 걸치는 '티핏'이라 하더라구요~
 


 푸른 빛 모 책읽기

 


  모내기를 앞둔 시골마을 논자락에는 모판에서 볏모가 푸르게 자란다. 볍씨에서 막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며 줄기를 올리는 볏모는 포근하며 시원한 논으로 옮기면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더 높이 줄기를 올리겠지. 푸른 들판은 푸른 숨결을 내뿜으며 여름을 난다. 가을에는 누렇게 익은 벼가 몸을 살찌우며 겨울을 맞이하도록 한다. 사람들은 벼에서 알맹이를 먹는다지만, 벼 알맹이를 먹기 앞서까지 논에서 푸른 빛깔 드러내던 볏잎 숨결을 먹었다. 벼 알맹이를 먹을 때에는 한 알이 뿌리내려 수백 알이 되는 너른 목숨을 먹는 셈이다. 한 포기씩 알뜰히 건사하며 모를 낸다. 열 포기 백 포기가 모여 논자락을 이룬다. 사람들은 벼 한 포기가 긴긴 여름부터 가을까지 받아들인 햇살을 함께 먹고, 벼 한 포기가 오래오래 마신 빗물을 함께 마시며, 벼 한 포기가 언제나 쐬던 바람을 함께 쐰다. 볏포기에 스미는 사랑은 숟가락 들어 밥그릇 비우는 사람들 가슴으로 새삼스레 천천히 되스민다. (4345.5.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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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5-19 08:01   좋아요 0 | URL
아, 벌써 모판이...
밥 먹을 때 쌀알에 숨어 있는 그 숨결, 바람결, 햇살을 느끼며 먹을 수 있는, 그런 마음결이면 참 좋겠습니다.

숲노래 2012-05-19 08:04   좋아요 0 | URL
날마다 잘 헤아려 보셔요.
그러면 더 즐겁게 밧맛이 나요.

..

눈치가 빠른 분은 알아보셨을 텐데,
이 글은 '사름벼리' 딸아이한테 바치는 글이에요.

사름벼리 이름 가운데 '사름'은 바로
모내기하고 얽힌 말이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