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당에서 읽는 책 2017.9.6.


비가 온다. 작은아이는 아직 뒷간에 똥 누러 갈 적에 “똥 누러 같이 가자.” 하고 부른다. 작은아이가 뒷간에서 똥 누는 소리를 들으면서 비님 오시는 소리도 듣는다. 그리고 시집 《물에서 온 편지》를 읽어 본다. 물이 어떤 글월을 띄웠을까. 바다에서 하늘에서 골짜기에서 땅밑에서 저마다 어떤 물에 글월을 띄웠을까. 우리 몸도 거의 모두 물로 이루는데, 우리 몸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흘러서 글월에 사부자기 내려앉을까. 가만히 흐르는 싯말이 조용하다. 작은아이를 씻기고, 큰아이는 스스로 씻고, 두 아이 밥상을 차리고, 이 아이들을 이끌고 책숲집을 다녀오고, 비를 맞으면서 좀 걷기도 한다. 마당 한켠에 마을고양이가 비를 함께 긋는다. 마당 한쪽에 있던 풀개구리가 폴짝폴짝 뛰어서 다가온다. 무화과를 파먹던 말벌이랑 모기랑 멧새 모두 이 빗줄기를 그으려고 어디론가 숨는다. 비가 개면 모조리 무화과를 먹으려고 나무 곁에 모일 테지.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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