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바다아이 : 일본에서는 2007∼2012년에, 한국에서는 2008∼2013년에 나온 만화책 《해수의 아이》가 있다. 2019년에는 만화영화로 나왔다. 이가라시 다이스케 님 《리틀 포레스트》가 상큼했다면, 《해수의 아이》는 아름다웠다고 할 만하다. 다만, 두 만화 모두 군소리가 살짝 흘러서 조금 아쉬웠는데, ‘군소리’가 무엇인가 하고 낮에 등허리를 펴면서 꿈을 꾸고 보니 문득 알겠더라. ‘군소리’란 ‘이 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요, 상큼함이나 아름다움이란 ‘이 별에 찾아와서 노래하는 사랑’이더라. 두 아이하고 저녁에 만화책 《해수의 아이》를 오랜만에 다시 펼쳤다. 이제 큰아이는 이 만화에 흐르는 빛살을 읽어낼 만하지 싶다. 아니, 예전부터 읽어냈을 테지만, 빛살을 읽어낸 다음에 ‘제 말로 나타내기’를 할 만하지 싶은, 아니 예전부터 빛살을 읽어내고 아이 말로 나타냈을 테니, ‘스스로 글씨로도 옮길 수 있다’고 해야겠네. 두 아이가 잠든 밤에 먼저 만화영화 《해수의 아이》를 천천히 본다. 이튿날에는 곁님이랑 아이들하고 다같이 만화영화를 보아야지. 2020.2.2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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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 ‘made in China’가 언제부터 이 나라를 휩쓸었는가를 돌아본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made in Korea’가 여러 나라로 퍼졌고, 이 나라는 ‘한국 곳곳에 엄청나게 때려지은 공장에서 빨리빨리 많이많이 만들어서 내다팔기’에 바빴다. 이때에 이 나라는 돈은 제법 벌었으리라. 그리고 돈을 버는 만큼 아픈 사람이 부쩍 늘었고, 아파서 죽는 사람도 참으로 많았다. 다만 그때에 ‘환경병’으로 죽는 사람은 통계로 안 잡았을 뿐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미나마타병이나 이타이이타이병을 치르고서 조금씩 달라졌다. 이 나라 한국은 온산병을 치르고도 달라지지 않아 페놀사건도 터졌고, 아직까지도 썩 달라질 낌새가 안 보인다. 이제 ‘우한 폐렴·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돌림앓이가 빠르게 번진다. 이 돌림앓이가 아직 서울에는 안 퍼진 듯하지만, 다른 어느 곳보다 서울에 퍼지지 않고서야 나라가 안 바뀔는지 모르겠구나 싶다. 중국 탓을 할 일이 아니다. 왜 중국이 그렇게 망가졌을까? ‘made in China’ 때문 아니겠는가. 중국은 ‘농민공’이라고 해서, 시골일을 쉴 적에 도시로 나와서 공장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중국은 그야말로 공장이 어마어마하게 돌아간다. 중국 공장은 한국뿐 아니라 온누리 구석구석으로 공산품을 내다파는데, 공산품이란 무엇인가? 화학소재를 다루어 물건을 만들면, 바람하고 물하고 흙을 얼마나 더럽히겠는가? 중국은 오늘날 돈은 많이 벌 테지만, 중국이란 터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더러워진다. 중국에서 비롯하는 환경병이 생길밖에 없다. 이 나라는 지난 스물 몇 해 사이에 값싼 중국 공산품을 터무니없이 썼고, 값싼 중국 푸성귀를 암청나게 사들였다.  그렇다면 이제는 모두 멈추고 생각할 노릇이다. ‘made in China’를 들여오지 않을 수 있을까? 중국사람이 이 땅에 못 들어오게 막는대서 될 일이 아닌, ‘made in China’를 끊고서 ‘made in Korea’도 아니라 ‘스스로짓기’하고 ‘파란하늘을 되찾아 푸른숲을 가꾸는 조그마한 마을살림’으로 생각을 지필 수 있을까? 방역을 하고 문을 닫고 학교나 일터를 쉬는 일은 반짝질이다. 반짝질로는 달라지지 않고 잠재우지 못한다. 밑뿌리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대통령이며 청와대이며 국회이며 행정얼개를 모조리 뜯어고칠 뿐 아니라, 이제는 학교교육·졸업장·대학교도 몽땅 갈아엎을 일이다. 돌림앓이 하나로 가게가 다 문을 닫고 학교를 쉰다면, 이제는 스스로 생각해야 하지 않나? 무엇을 먹고 어떤 살림을 꾸리며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면서 앞길을 함께 살아가도록 이끌어야 할까? ‘made in China’를 ‘made in Korea’로 바꾸면 또다시 새 환경병이 생긴다. ‘스스로짓기’를 작은 마을에서 조촐히 가꾸는 길을 갈 때이다. 스스로짓기를 하나도 할 수 없는 서울 같은 큰고장을 잘게 가르고, 서울에 넘치는 아파트를 하나하나 허물어서 숲으로 바꿀 노릇이다. 이러면서 군부대를 논밭과 숲밭으로 갈아엎을 줄 안다면 훨씬 좋을 테고. 2020.2.24.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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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 우리가 마시는 숨은 모두 바람이고, 이 바람은 언제나 하늘이다. 우리는 하늘숨을 먹는 사람이다. 우리가 몸이 아프다면 새파랗게 눈부신 하늘숨이 아닌 매캐한 먼지구름을 자꾸 먹기 때문이겠지. 우리 몸이 튼튼하고 싶다면 새파랗게 눈부신 하늘빛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면 되겠지. 우리가 튼튼한 몸이면서 마음일 적에는 어떠한 돌림앓이도 생기지 않고, 아플 일이란 없다. 우리가 하늘빛을 먹지 않고서, 그러니까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을 파랗게 돌보지 않고 하늘을 그저 어지럽히기만 한다면, 우리 몸이나 마음은 튼튼한 길하고는 동떨어지면서, 자꾸자꾸 새로운 돌림앓이에 휘둘리고 만다. 하늘이 깨끗한 곳에서 누가 아플까. 하늘이 지저분한 곳에서 튼튼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무엇을 하고 무엇을 그쳐야 할까?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어떤 터전에서 살면서 어떤 하루를 그려야 할까? 2020.2.23.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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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1992년부터 헌책집을 다녔고, 바로 이해부터 고등학교 동무를 헌책집으로 어떻게든 끌고 가서 책맛을 새롭게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새책집에는 같이 책마실을 다니던 동무들은 얄궂게도 헌책집을 가자면 하나같이 안 가려 했다. 이런 모습을 보다가 1994년부터 헌책집을 알리는 글을 써야겠다고 느꼈다. 1994년 12월부터 혼자서 ‘우리말+헌책집’ 소식종이나 잡지를 사흘마다 엮어서 내놓아 거저로 돌리고, 헌책집을 함께 찾아가서 신나게 책을 장만하고, 또 헌책집을 다녀온 이야기를 저마다 남기자고 북돋았고, 헌책집 찾아가는 길그림을 손으로 그려서 뿌렸고, 헌책집을 사진으로 아름다이 찍어서 널리 알리자고 했고, 서울·전국 헌책집 목록을 엮어서 누구나 곳곳 헌책집을 잘 찾아가도록 이바지하지고 했다. 이런 일을 열 몇 해쯤 하던 어느 날 부산에 있는 헌책집지기가 사진책 하나를 고맙다면서 건네셨다. 그분이 건넨 사진책은 이일라(Ylla) 님 사진책이었고, 아직 한국에 거의 안 알려졌던 분이며, 이분 책도 안 나오던 무렵인데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매우 값비싼 사진책이었다. 이러고서 여러 해 지나니 이일라 님 사진책이 한국말로 나온다. 그리고 2018년에 일본 도쿄로 이야기마실·책마실을 다녀오며 〈姉川書店〉에서 이일라 님 사진책을 새삼스레 만난다. 일본에서는 이분 사진을 제대로 알아줄 뿐 아니라 꾸준히 오래도록 책으로 내놓는구나. 이분 사진책을 오늘날에 이르도록 지며리 읽고 보고 장만하는 손길이 있구나. 반짝거리는 새책으로도 이일라 님 사진책을 장만하고 싶었지만 이날 일본에서 주머니가 간당간당했다. 나한테 있는 낡은 사진책을 앞으로도 고이 건사하자고 생각하며 새책은 살살 쓰다듬고서 내려놓았다. 애틋한 사진책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책집을 다니면서 책집을 사랑하는 이웃님한테 징검다리를 놓으려는 품을 들였기에 어느 날 이일라 님 사진책이 나한테 왔고, 내 품에 안긴 낡은 사진책 하나를 오래도록 책상맡에 두면서 지켜본 어느 날 이웃나라에 와서 새로운 빛을 보았네. 품이란 뭘까. 앞으로 들일 품이란, 앞으로 이 품에 담을 숨결이란 무엇일까. 2018.4.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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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알글 : 이제 한국에서도 거의 모든 마을책집은 손글씨로 책을 하나하나 알린다. 일본에서는 진작부터 이러했다. 1999∼2000년에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일하며 길거리에서 책장사를 할 적에, 또 책잔치에 나가서 책팔이를 할 적에, 기계글씨 아닌 손글씨로 골판종이에 적어서 척 책상에 올려놓았더니 “야, 손글씨가 뭐니? 컴퓨터 있잖아? 컴퓨터로 뽑지, 손으로 그게 뭐니?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했다. 그때에는 교보·영풍을 비롯해서 어느 책집에서도 ‘손글씨로 책을 알리는 글종이’를 마련하면 죄다 손사래를 치거나 치우거나 내다버렸다. 그러나 책집에서든 길에서든 책잔치에서든 사람하고 사람이 만나서 책을 주고받는 장사를 하니, 책을 사 가는 분들한테 ‘이 책을 땀흘려서 꾸미고 펴낸 사람 숨결’을 보여주면서 건네고 싶었다. 책살림이 그렇게 앞선 일본이란 나라에서 굳이 예전부터 손글씨로 책알림글을 쓴 까닭을 헤아려 본다. 한국은 이제라도 이러한 살림결에 흐르는 마음빛을 찬찬히 나누면서 누릴 수 있으니, 이러한 모습도 좋다고 생각한다. 문득 생각하기로 ‘깨알같이 쓴 손글’이라고 말하려 했는데, 다시 보니 깨알은 너무 작아서 보기 어렵고 ‘콩알같이 쓴 손글’이라 말해야 옳겠구나 싶다. 동글동글 콩알글. 흙을 살리고 몸을 살리며, 새도 벌레도 한 톨씩 나누어 먹는 콩알 같은 콩알글. 그래, 콩알글이로구나. 2020.2.2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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