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품 : 나는 1992년부터 헌책집을 다녔고, 바로 이해부터 고등학교 동무를 헌책집으로 어떻게든 끌고 가서 책맛을 새롭게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새책집에는 같이 책마실을 다니던 동무들은 얄궂게도 헌책집을 가자면 하나같이 안 가려 했다. 이런 모습을 보다가 1994년부터 헌책집을 알리는 글을 써야겠다고 느꼈다. 1994년 12월부터 혼자서 ‘우리말+헌책집’ 소식종이나 잡지를 사흘마다 엮어서 내놓아 거저로 돌리고, 헌책집을 함께 찾아가서 신나게 책을 장만하고, 또 헌책집을 다녀온 이야기를 저마다 남기자고 북돋았고, 헌책집 찾아가는 길그림을 손으로 그려서 뿌렸고, 헌책집을 사진으로 아름다이 찍어서 널리 알리자고 했고, 서울·전국 헌책집 목록을 엮어서 누구나 곳곳 헌책집을 잘 찾아가도록 이바지하지고 했다. 이런 일을 열 몇 해쯤 하던 어느 날 부산에 있는 헌책집지기가 사진책 하나를 고맙다면서 건네셨다. 그분이 건넨 사진책은 이일라(Ylla) 님 사진책이었고, 아직 한국에 거의 안 알려졌던 분이며, 이분 책도 안 나오던 무렵인데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매우 값비싼 사진책이었다. 이러고서 여러 해 지나니 이일라 님 사진책이 한국말로 나온다. 그리고 2018년에 일본 도쿄로 이야기마실·책마실을 다녀오며 〈姉川書店〉에서 이일라 님 사진책을 새삼스레 만난다. 일본에서는 이분 사진을 제대로 알아줄 뿐 아니라 꾸준히 오래도록 책으로 내놓는구나. 이분 사진책을 오늘날에 이르도록 지며리 읽고 보고 장만하는 손길이 있구나. 반짝거리는 새책으로도 이일라 님 사진책을 장만하고 싶었지만 이날 일본에서 주머니가 간당간당했다. 나한테 있는 낡은 사진책을 앞으로도 고이 건사하자고 생각하며 새책은 살살 쓰다듬고서 내려놓았다. 애틋한 사진책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책집을 다니면서 책집을 사랑하는 이웃님한테 징검다리를 놓으려는 품을 들였기에 어느 날 이일라 님 사진책이 나한테 왔고, 내 품에 안긴 낡은 사진책 하나를 오래도록 책상맡에 두면서 지켜본 어느 날 이웃나라에 와서 새로운 빛을 보았네. 품이란 뭘까. 앞으로 들일 품이란, 앞으로 이 품에 담을 숨결이란 무엇일까. 2018.4.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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