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호빵맨입니다 - 세상에서 가장 약한 영웅이 전하는 정의와 용기의 말들
야나세 다카시 지음, 오화영 옮김 / 지식여행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297


‘영웅 없는’ 호빵맨 만화를 그린 할아버지
― 네, 호빵맨입니다
 야나세 다카시 글
 PHP연구소 엮음
 오화영 옮김
 지식여행 펴냄, 2017.3.17. 12000원


  테즈카 오사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숨을 거두는 마지막날까지 펜을 손에서 안 놓았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나서 몸을 내려놓은 뒤에라야 비로소 ‘새로운 만화 그리기’를 멈추었다지요. 테즈카 오사무 님은 ‘할아버지 나이’에도 어엿하면서 씩씩하게 늘 새롭게 만화를 그려서 아이들한테 웃음하고 눈물을 베푼 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호빵맨’이라는 만화를 그린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테즈카 오사무 님보다 나이가 더 위이면서 더 오래 살았다고 해요. 만화가 길을 걷고 싶었으나 막상 만화가로는 도무지 길이 트이지 않아 괴로울 적에 ‘무명인 이분’을 테즈카 오사무 님이 몸소 말을 여쭈며 만화영화 일에서 미술감독을 맡긴 적이 있대요. 그러나 이런 일을 맡으면서도 정작 이녁 스스로 만화가로서는 설 길을 찾지 못했다는데, 바야흐로 일흔이 넘은 나이에 ‘만화가’라는 이름을 얻었답니다.


뒤늦게나마 예순을 넘긴 즈음부터 욕심이 사라졌다. “만화는 예술이야” 하고 거들먹거리지 않게 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일까? 그것은 요컨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6쪽)

난해한 시에는 도무지 마음이 가지 않는다. 몇몇 사람만이 이해하는 시는 시가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두루 이해하며, 많은 사람에게 폭넓게 사랑받는 서정성 넘치는 시, 될 수 있는 한 그런 시를 써 왔다. (39쪽)


  야나세 다카시 님이 아흔 넘은 나이에 글을 쓴 《네, 호빵맨입니다》(지식여행,2017)라는 책을 읽는 내내 곰곰이 생각합니다. 저도 아흔 넘은 나이에도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아서 제 나름대로 걸어온 길을 젊은 뒷사람한테 즐겁게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아흔 살뿐 아니라 백 살이 넘은 뒤에도, 또는 백열 살이나 백스무 살에도, 어쩌면 이백 살까지 기운차게 살아서 젊은 뒷사람이 새롭게 기운을 북돋우도록 이끄는 말을 남길 만하면 신나겠구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야나세 다카시 님은 자그마치 일흔이 넘고서야 비로소 이녁 어릴 적 꿈인 ‘만화가’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흔넷 나이에 조용히 숨을 거두기까지 ‘만화 새롭게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해요. 《네, 호빵맨입니다》라는 책도 아흔을 훌쩍 넘은 나이에 썼으니 대단하지요. 이분한테는 ‘나이’가 조금도 걸림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분한테 나이는 ‘남들보다 더 오래 살면서 더 오래 삶을 지켜본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기쁨이라 할 만합니다. 더군다나 ‘남들보다 더 오래 꿈을 못 이룬 쓰라린 맛’을 삭히고 달랜 이야기까지 들려줄 수 있지요.


“호빵맨을 그린 게 저예요”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깜짝 놀란다. 아무래도 아흔 넘은 할아버지가 호빵맨을 그리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 드디어 인기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때가 일흔 살 고희를 맞이한 후였다. 적어도 1년은 채우자는 마음으로 시작했건만 벌써 20년이 넘었다. (49, 65쪽)

운이 그렇게 ‘나 몰라라’ 하는 식의 수동적인 개념이라면, 노력할 의미 따위 없어지고 만다. 운이란 스스로 불러들이고, 스스로 붙잡는 것. 자신의 힘으로 개척하고, 자신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67쪽)


  한국에서 예순 넘은 나이에 비로소 수채화라는 그림을 홀가분하게 그리고서,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즐겁게 이 수채화를 그리다가, 마지막 숨 한 번 들이쉴 때까지 붓을 놓지 않던 박정희 할머님을 떠올려 봅니다. 이 수채화 할머님이나 야나세 다카시라는 만화 할아버님은 이녁 스스로 이루려는 꿈을 늘 가슴에 품으셨어요. 비록 이 꿈을 예순 해나 일흔 해를 사는 동안 한 번조차 못 이루더라도 이 꿈을 고이 품으셨습니다. 품고 품으며 또 품어요. 다시 품고 새로 품으며 거듭 품어요. 언제인가 꼭 이루겠노라 하는 마음으로 참말 씩씩하게 삶을 일굽니다.

  우리 둘레에는 일흔뿐 아니라 여든이나 아흔이 되어도 꿈을 못 이루는 이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고 죽기를 되풀이해도 도무지 꿈하고 맞닿지 못하는 이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꿈은 어떻게 이룰까요? 꿈은 왜 못 이룰까요? 가난하기 때문에 꿈을 못 이루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힘이 들거나 나이가 많아서 꿈을 못 이루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꿈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 탓에 꿈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우리 스스로 꼭 하루라도 꿈을 놓거나 잊는 사이에 꿈하고 멀어지는구나 싶어요. 아흔넷이라는 나이까지 호빵맨 만화를 그린 만화 할아버지는 우리 젊은이한테 이 대목을 차분하게 짚어서 일깨우려고 합니다. 다만 가르침을 베풀지는 않아요. 이녁 스스로 아흔이라는 나이를 훌쩍 넘도록 살며 늦깎이 만화가 길을 이루어 살다 보니 ‘꿈은 젊은 날 이루든 늙은 날 이루든 모두 똑같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네 하고 밝힙니다.


모두 입을 모아 ‘한 치 앞은 어둠’이라고 말하지만, ‘한 치 앞은 빛’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구십 년 이상 살다 보니, 확실히 이 말의 의미가 온몸으로 전해진다. (87쪽)

한 걸음 한 걸음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기 힘들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을 수십 년이나 이어나가면, 언젠가 원대한 목표에 이를 수 있다. (105쪽)


  한 치 앞을 보아도 어둠일 수 있습니다만, 아흔 넘은 만화 할아버지는 이를 다르게 들려줍니다. 우리가 한 치 앞조차 제대로 못 보기 마련이라면서, 그 한 치 너머는 온통 눈부신 빛일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한 치를 넘어서기까지 일흔 해가 걸릴 수 있고 아흔 해가 들 수 있습니다만, 꿈을 바라보려는 마음을 즐거이 붙잡을 적에 꿈을 이룬다고 이야기해요.

  만화 할아버지는 아흔이 가까운 나이에 이녁 고향마을에 ‘만화 박물관’을 지었다고 해요. 다른 사람 돈을 빌리지 않고 ‘만화 할아버지가 만화를 그려서 번 돈’만으로 한갓진 이녁 고향마을 한켠 아주 고요한 곳에 만화 박물관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 만화 박물관은 도쿄 같은 도시하고 매우 먼 터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올는지 알 수 없었대요. 아니 이 외딴 시골마을에 지은 만화 박물관까지 애써 찾아올 사람이 있을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지요.

  만화 할아버지는 이녁 꿈이던 만화가 길을 일흔 해 남짓 고이 품으면서 이루었듯이 ‘즐겁게 만화를 그려서 기쁘게 벌어들인 목돈’을 고스란히 만화한테 바치고 싶다는 뜻으로, 또 고향마을에 선물을 돌려주고 싶다는 뜻으로 만화 박물관을 지었답니다. 그리고 이 만화 박물관은 아주 외진 시골에 있으나 늘 엄청난 손님 물결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해요. 호빵맨 만화 박물관은 박물관이면서 놀이터라는데, 만화 할아버님 뜻을 받들어 일본 곳곳에 새로운 ‘호빵맨 만화 박물관(+ 놀이터)’이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괴물을 때려눕힐 때도 마을이나 숲을 파괴하고 만다. 그걸로 정의가 이긴 것이 된다. 어딘가 영 석연치 않다. 아무리 결전을 벌여도 정의의 영웅은 옷이 찢어지거나 더러워지지 않는다. 이 역시 이상하다. 온갖 무기를 연달아 선보이면서 펑펑 요란하게 불길을 일으키는 영웅을 보고 박수 치며 흥분하다니. 일종의 ‘전쟁 찬미’처럼 여겨진다. 어린아이의 잠재의식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119쪽)


  일흔을 훌쩍 넘기고 만화가 길을 걸을 수 있던 할아버지는 호빵맨 만화에 ‘주인공’을 수없이 많이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호빵맨 하나만 주인공이 아니라 자그마치 2000이 넘는 주인공(등장인물·캐릭터)이 있다고 해요. 이녁은 ‘영웅’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이웃이나 동무를 그렸다고 해요. 어느 한 사람 영웅이 번쩍 나타나서 모든 ‘나쁜 놈’을 때려눕히거나 죽여 없애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들이 서로 아끼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평화로운 나라를 꿈꾸면서 ‘죽는 마지막날까지 힘이 닿는 대로 새로운 주인공을 그리려’고 했답니다.

  《네, 호빵맨입니다》를 읽으면 만화 할아버님 어릴 적 이야기도 살며시 흐릅니다. 1919년에 태어난 할아버님한테는 매우 똑똑하고 잘생기고 의젓한 동생이 있었다는데, 이 훌륭하고 멋진 동생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을 적에 군인으로 끌려가서 바다에서 하루아침에 죽었다고 합니다. 할아버님도 군인으로 끌려갔으나 용케 할아버님은 살아남았다고 해요. 끔찍한 전쟁을 겪으면서, 게다가 그 전쟁에서 ‘일본이 전범 나라’였던 대목을 치러내면서, 만화 할아버님은 이 전쟁이 얼마나 그악스럽고 끔찍한가를 뼛속 깊이 배웠다고 해요.

  이리하여 만화를 그리려는 꿈을 일흔 해 동안 품는 나날에도 ‘영웅은 그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답니다. ‘영웅 주인공’이 온갖 첨단무기를 내세워서 ‘나쁜 적’보다 훨씬 더 ‘파괴를 일삼는 짓’을 벌이는 그런 만화가 아니라, ‘작고 착하며 여린 이웃’이 주인공이 되어 서로 아끼고 보듬을 줄 아는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를 그리려고 했답니다. 호빵맨이 아톰 못지않게 아이들한테서 사랑받는 어여쁜 동무가 되는 까닭을 넉넉히 읽을 만합니다. 얼굴(호빵)을 가난하고 배고프며 고단한 이웃한테 떼어 주면 그만 힘을 잃는 호빵맨이요 다른 아무 재주가 없는 호빵맨입니다. 이 가녀린 호빵맨은 바로 아흔 고개 할아버지가 아이들한테 젊은이한테 우리 모두한테, 이녁 온몸과 온마음을 나누어 주고 싶은 사랑을 그린 빛줄기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2017.4.1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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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야샤 2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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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92



사람을 따뜻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는가

― 이누야샤 2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2.3.25. 4500원



  겉모습은 사람이지만 속으로는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몸뚱이로서는 틀림없이 사람이더라도, 속으로 따스한 사랑이 흐르지 못한다면 ‘사람 같지 않다’고들 해요.


  우리는 둘레에서 이런 사람을 곧잘 만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 스스로 ‘사람 같지 않은 꼴’이 될 수 있고요. 따스한 사랑이 없으면 차가운 몸짓이 됩니다. 차가운 몸짓은 메마른 몸짓으로 이어지고, 매몰차거나 딱딱한 몸짓으로 나아가기 일쑤입니다. 따스한 사랑이 아니기에 누구한테나 차갑거나 딱딱한 몸짓이나 말씨로 마주하겠지요.



“흥. 역시 반요는 별 수 없다니까. 딱하게도, 이걸 써서 진짜 요괴가 되고 싶었지?” (39쪽)


“우라란 놈, 빗에 자기 혼을 옮겨 놨었군. 그래서 베어도 찔려도 반응이 없었던 거야.” (60쪽)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어.” “그게 어땠는데?” “조금은 사이좋게 지낼 생각이 든 거야?” (62쪽)



  만화책 《이누야샤》는 긴 이야기를 통틀어 언제나 한 가지를 되새겨 줍니다. 바로 ‘사람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되새겨요. 사람이면서도 사람한테 따스하지 않은 사람들 이야기가 흐릅니다. 사람이 아니기에 사람한테 따스하지 않은 목숨들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리고 사람이 아니되 사람한테 따스한 목숨들 이야기가 흐릅니다. 덧붙여 사람이기에 사람으로서 사람한테 따스한 사람들 이야기가 있지요.


  네 갈래 길이라 할 텐데, 이 네 갈래 길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우리가 나아갈 길을 이 넷 가운데 골라 본다면 어느 길이 즐거울까요? 어느 길이 아름다울까요? 어느 길에서 기쁘고, 어느 길에서 사랑이 싹틀까요?



‘왜 저러지? 뭔가 기분 상할 말을 했나? 난, 어머니에 대해 물었을 뿐인데. 아버지가 요괴고, 이누야샤는 반요. 설마, 이누야샤의 어머니는 인간이라거나.’ (77쪽)


“보이되 보이지 않는 장소. ‘진짜 문지기’는 결코 볼 수 없는 장소. 그것이 네 오른쪽 눈에 봉인된 흑진주였을 줄은.” (121쪽)


“셋쇼마루 님, 당신은 철쇄아를 뽑지 못했습니다! 그렇지요?” “이누야샤라면 뽑을 수 있다, 라는 말이냐?” “당연하죠! 아버님께서 이누야샤 님께 무덤을 맡기신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142∼143쪽)



  제아무리 대단한 재주가 있더라도 따스한 마음이 없다면, 이 대단한 재주는 무시무시한 곳에 쓰이거나 휘둘리기 쉽습니다. 제아무리 아무런 재주가 없더라도 따스한 마음이 있다면, 이 따스한 마음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보듬는 살림으로 이어집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머리가 있더라도 따스한 마음이 없다면, 이 뛰어난 머리는 무서운 곳에 섣불리 쓰이거나 휘둘리기 쉬워요. 제아무리 뛰어난 머리가 없더라도 따스한 마음이 있다면, 이 따스한 마음은 모든 것을 녹이고 달래면서 우리 삶에 기쁜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지요.



“푸하! 죽는 줄 알았네. 너! 나까지 진짜 죽이려고 했지? 톡톡히 반성하게 해 줄 테니까, 각오해!” (161쪽)


“힘내, 이누야샤! 방금 한방 들어갔어!” “이거 봐, 들어가긴 뭐가 들어가?” “

그치만, 그건 네 칼이잖아? 난 네 힘을 믿어.” (168쪽)



  사랑을 믿기에 사랑을 바라봅니다. 꿈을 믿기에 꿈을 마주합니다. 《이누야샤》에 나오는 카고메와 이누야샤는 서로 다른 몸이고 마음이지만, 앞으로 크게 하나가 될 꿈을 생각하면서 새로운 길을 갑니다. 엄청난 시간을 가로질렀다고 하지만, 어느 모로 보면 그 엄청난 시간은 아무것이 아닐 수 있어요. 지난날도 오늘날도 앞날도 따로 쪼개지거나 갈라진 따로따로가 아닐 수 있어요.


  우리는 늘 같은 때를 살고 같은 곳에 있을는지 모릅니다. 마음이 있기에 이어지고, 마음을 아끼기에 만납니다. 마음으로 함께하며, 마음으로 노래해요. 마음으로 손을 내밀고, 마음으로 어깨동무를 하지요.



“어떻게 카고메가 철쇄아라는 검을 뽑았는지. 역시 네게는, 어떤 신비한 힘이 있는 것일까?” “음.” “내 생각에는, 카고메가 인간이기 때문에 뽑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지. 본디 철쇄아는 이누야샤 님의 아버님께서, 인간인 어머님을 지키고자 만든 요도라오. 따라서 인간을 자비롭게 여기고, 지키려는 마음이 없으면 쓸 수 없는 검.” (184∼185쪽)



  온누리에 있는 모든 돈이 오직 하나 ‘사랑’에 따라 흐를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온누리 모든 사람이 오직 하나 ‘사랑’을 그리면서 마음밭을 살뜰히 가꾼다면 참 아름답겠지 하고 생각해 봅니다. 누구보다 제가 먼저 사랑을 보고 생각하고 그리고 품으면서 하루를 짓자고 새삼스레 다짐합니다. 저는 따스한 마음으로 하루를 열고 하루를 닫으면서 활짝 웃음짓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2017.4.10.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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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7-04-12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니메이션 성우분의 연기도 볼만합니다~

숲노래 2017-04-12 09:0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일본판에서 그런가요, 한국판에서 그런가요?
저는 일본판 만화영화로만 보았습니다 ^^
책도 만화영화도
모두 훌륭하지요!

만화애니비평 2017-04-13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판 애니 맞습니다. 카고메 성우분이 실력이 대단한 분이라..ㅎㅎ

숲노래 2017-04-13 11:0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나중에 그분이 목소리를 낸 다른 작품도 찾아보아야겠네요 ^^
말씀 고맙습니다
 
아르슬란 전기 6 - 만화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다나카 요시키 원작 / 학산문화사(만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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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97



‘핏줄’이 아닌 ‘따스한 슬기’여야 할 우두머리

― 아르슬란 전기 6

 타나카 요시키 글

 아라카와 히로무 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7.2..25. 5500원



  한국에서 2017년에 새로운 물결이 일었습니다. 아마 한국처럼 이런 물결이 이는 나라도 지구별에서는 드물리라 생각해요. 한때 독재 권력자가 새마을운동이라는 물결로 사람들 머릿속을 휘저었고, 한때 남북녘이 서로 미워하며 총칼로 죽이는 물결이 일었으며, 한때 축구 하나로 온누리에 붉은 물결이 일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런 물결하고는 사뭇 다르게 독재 권력자 한 사람을 끌어내리는 촛불 물결이 일기도 했습니다.



“원한으로 따지면 그대보다 내가 더 먼저일 걸세.” “어떤 원한인데?” “나를 돌팔이 화가라고 불렀거든.” (36쪽)


“죄 없는 파르스 백성의 마을을 불태우고, 엑바타나를 혼란에 빠뜨린 이유가 무엇이란 말이오?” “정통한 왕위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의식이었다! 곧 가면을 벗고 정통한 왕 히르메스가 루시타니아로부터 파르스를 해방할 것이다!” (43쪽)



  한때 한겨레는 총칼을 두려워했습니다. 총칼을 두려워하면서도 서로서로 총칼을 겨누어 다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총칼이 무엇인가를 차츰 깨닫다가는 굳센 너울로 거듭나서 따사로운 촛불이라는 새로운 너울이 되기도 해요.


  촛불이 무너뜨린 것은 독재 권력자 한 사람만이 아니라고 느껴요. 우리 마음속에 모든 일은 우리 작은 손으로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일으켰구나 싶어요. 남이 해 주어야 하는 일이 아닌, 스스로 하는 일이라는 대목을 일깨웠지 싶어요. 남한테 기대는 마음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일어서는 마음을 세웠다고 느껴요.


  이러한 흐름을 돌아보면서 만화책 《아르슬란 전기》(학산문화사,2017) 여섯째 권을 읽습니다. 어느덧 여섯째 권에 이르는 이 만화책은 ‘핏줄’ 이야기를 다룹니다.



“설령 파르스 왕가의 피를 잇지 않은 자라 해도 선정을 베풀고 백성의 지지를 얻는다면 어엿한 샤오일 것이오! 달리 또 무슨 자격이 필요하단 말이오!” (47쪽)


“왕자님은 나 같은 아랫것까지 걱정을 다 해 주네.” “그런 분이시지.” (84쪽)



  ‘아르슬란’은 임금 핏줄 가운데 ‘적통’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리하여 스스로 ‘적통’이라고 일컫는 이가 군대를 일으켜 숱한 마을을 불사르면서 ‘적통 임금’이 되겠노라 하고 외칩니다. 이런 외침을 들은 적잖은 이들은 이 ‘적통 권력자’ 둘레에 모여듭니다. 그러나 이이 둘레에 모이지 않는 몇몇 이들은 아르슬란 곁에 있습니다. 아르슬란 곁에 있는 이는 ‘핏줄’이 아닌 ‘따스한 슬기’로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는 작고 여린 임금을 모시려 합니다.



“나르사스처럼 똑똑한 사람이 왜 그런 것도 모르지?” “그럴지도 모르지. 허나 그대의 나르사스라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네.” (98쪽)


“하물며 전하 자신은 이 사정이나 비밀에 아무 책임이 없지 않으신가.” “그렇군. 자네에게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지 … 자네라면 이해할 테지만, 전하는 부하에게 질투라는 것을 하지 않으시지.” (173쪽)



  위가 있기에 아랴가 있습니다. 아래가 없다면 위가 없겠지요. 거꾸로 위가 없으면 아래도 없을 테고요. 서로 동무가 되고 이웃이 된다면 위아래로 나뉘지 않습니다. 서로 손을 맞잡아 동무나 이웃으로 지낸다면 평화롭습니다.


  온누리에서 불거지는 모든 전쟁은 서로 동무나 이웃으로 여기지 않은 탓입니다. 너랑 내가 동무나 이웃이 아니기에 전쟁무기를 손에 쥐고 맙니다. 너랑 내가 미움으로 가득하니 싸우고야 말아요.


  아무리 ‘적통이라는 핏줄 임금’이라 하더라도 위아래를 갈라서 권력을 휘두른다면 이이는 안 아름답습니다. 나라를 이끌 사람이라면, 마을을 이끌 사람이라면, 또 한 집안을 이끌 사람이라면 ‘핏줄’이 아닌 ‘사랑’이 있을 노릇이에요. 오직 따스한 마음과 슬기와 사랑일 적에 집안도 마을도 나라도 이끌 만합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미움과 싸움만 있겠지요. 사랑이 없는 곳에는 새로움도 넉넉함도 즐거움도 피어나지 못한 채, 그저 싸움이랑 다툼이랑 겨룸만 판치겠지요. 2017.4.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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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포 시노부의 보석상자 3
니노미야 토모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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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96



돌을 보는 마음하고 보석을 보는 눈

― 전당포 시노부의 보석상자 3

 니노미야 토모코 글·그림

 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7.4.15. 5000원



  아이들은 돌을 주워서 놉니다. 아이들 손에 보석을 쥐어 주더라도 아이들은 이 보석을 돈으로 따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소꿉 가운데 하나로 여길 뿐입니다. 보석을 돈으로 따지는 눈이란 사회에 길든 어른들 눈입니다. 예쁘기에 걸친다든지 즐겁게 만지면 좋을 테지만, 예쁘거나 즐겁다는 마음보다는 돈이라는 값으로 따져서 높으니까 거머쥐려고 할 적에는 늘 얄궂게 달라지는 보석이지 싶습니다.


  이러다 보니 ‘비싼’ 보석하고 ‘싼’ 보석이 갈리고 말아요. 마음에 드는 보석이 아닌 ‘더 비싸면 더 좋은’ 보석인 줄 잘못 알고 말지요.



“그녀에게도 이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보여주면 되잖아?” “응. 하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건 ‘보석’이지, ‘광물’이 아니거든.” (5쪽)


“난 보석을 좋아해. 그러니까 내가 착용하는 건 내가 고르고 싶어. 그리고 그 비싼 명품 주얼리는 누구 돈으로 샀을까? 물론 너희 집이 부자인 건 알지만 넌 알바도 안 하잖아.” (7쪽)



  니노미야 토모코 님 만화책 《전당포 시노부의 보석상자》(대원씨아이,2017) 셋째 권은 ‘돌·보석’ 사이에서 오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리고 돌이랑 보석 사이를 오가면서 보석을 마주하는 마음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대목을 다룹니다.


  곰곰이 따지면 ‘돌’이 ‘보석’으로 이름을 바꾸는데, 돌이든 보석이든 그저 ‘소꿉’일 수 있어요. 보석뿐 아니라 돌도 ‘돈’으로 따질 수 있어요. 돌이거나 보석이거나 ‘살림’으로 삼을 수 있어요. 때로는 ‘선물’로 바라볼 수 있고, 때로는 ‘즐길거리’나 ‘이야깃거리’로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 남자는 남친이 아니야. 그냥 보석 가게 외판원이지.” “뭐?” “그리고 그 강가에 떨어진 돌멩이의 매력을 타카코 씨도 알아줬으면 하는 게 아니었어?” (26쪽)


“이건 에메랄드 원석. 전 늘 가게에서 근사한 보석만 보니까, 이렇게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28쪽)



  빵 한 점이나 밥 한 그릇을 어떻게 바라볼 만할까요. ‘먹을거리’로 볼 수 있고, ‘끼니’로 볼 수 있습니다. 하루에 두끼나 세끼 채우는 먹을거리인 빵이나 밥일 수 있습니다만, 때로는 ‘영양소’만으로 볼 수 있어요. 또 누구는 이를 ‘선물처럼 고맙게 찾아든다’고 볼 수 있으며, ‘먹기 싫은데 귀찮아’ 하고 여길 수 있어요.


  책 한 권이 누구한테는 아름다운 길벗이나 이슬떨이가 될 수 있습니다. 책 한 권이 누구한테는 불쏘시개일 수 있고, 냄비 받침일 수 있습니다. 누구한테는 지겨운 짐이나 숙제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한테는 심심풀이가 되고, 누구한테는 가벼운 일거리가 됩니다. 누구한테는 돈벌이가 되고, 누구한테는 아무것이 아닐 수 있어요.



‘이 사람이 평범한 센스를 기뻐할까? 하지만 평범하지 않다는 건 뭐지?’ (62쪽)


“좋은 돌인데 제대로 평가도 안 하고. 다른 것들도 그래. 낡았네, 어쩌네 그렇게 안 좋은 말을 들을 물건이 아니라고!” (105쪽)



  바라보는 마음에 따라 돌도 보석도 값어치가 바뀝니다. 바라보려는 눈길에 맞추어 돌이든 보석이든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얼마든지 지겹거나 고달플 수 있습니다. 《전당포 시노부의 보석상자》에 나오는 가시내는 돌이든 보석이든 숱한 물건이든, 이러한 것에 깃드는 ‘우리 마음’을 읽으려 하고 느끼려 하며 헤아리려 합니다. 이와 달리, 이 만화책에 나오는 사내는 아직 ‘우리 마음’이 무엇인가를 읽으려 하지 않고, 무엇보다 사내 스스로 ‘내 마음’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지켜보지 못합니다. 두 마음은 머잖아 슬기로우면서 아름답게 만날 수 있겠지요? 2017.3.3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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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야기 1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 길찾기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마을살림'입니까, '막삽질'입니까?

[책으로 읽는 대선주자] 막개발 멈출 공약이 있나요?

 

 오제 아키라 글·그림, 길찾기 펴냄



얼핏 잠이 들려고 하다가 찍찍 하고 제법 크게 우짖는 새소리를 듣고 번쩍 눈을 뜹니다. 아, 새로구나, 새가 한 마리 나무에 앉아서 놀다가 가는구나. 이 새는 무엇을 생각하면서 나무에 앉았을까요. 이 새는 어떤 먹이를 찾아 우리 집 둘레 나무에 앉았을까요.


나무 한 그루는 천천히 자랍니다. 새가 앉았다가 가는 나무 한 그루는 천천히 자랍니다. 새 한 마리가 앉을 만한 나무라 한다면, 새 한 마리가 어른으로 큰 뒤 새끼를 낳아 새로서는 기나긴 삶을 모두 누리고 흙으로 돌아갈 만한 나날을 살았지 싶어요. 새 한 마리는 나무 한 그루가 갓 싹이 돋고 줄기가 오를 즈음부터 지켜보았을 테고, 흙을 돌아갈 무렵 나무 한 그루가 우람히 자란 모습을 보고는 빙그레 웃음을 지을는지 모릅니다.


새는 나무를 바라보며, 이만큼 잘 컸구나 하고 생각하겠지요. 나무는 새를 바라보며, 네 새끼들이 내 가지에 앉아서 쉬겠구나 하고 생각하겠지요. 우람하게 선 나무에 처음으로 새가 찾아와서 내려앉을 때부터 새와 나무 사이에 이야기 하나 태어납니다.


“아버지 말이야. 전에는 공항이 지역발전에 도움될 거라고, 도미사토 마을의 공항 반대 서명을 거절했잖아.” “그, 그거야.” “남의 땅이라면 찬성해도 우리 땅엔 안 된다, 라니. 좀 그렇잖아?” (1권 59쪽)


“헤헤헤, 찬성도 반대도 아니라고요? 바보같이!” “겐지.” “태평스럽게 그런 말 하고 있을 때, 불도저가 와서 학교를 싹 쓸어버릴걸요! 어때요, 선생님. 그렇게 돼도 찬성도 반대도 아니라고 할 거예요? 이런 학교 부서져 버리라지!” (1권 154∼155쪽)


“뎃페이. 도모노 지사는 말이다, 여기를 공항으로 만들어도 좋겠습니까, 라고 우리에게 물어 보러 오는 게 아니여. 이미 결정된 것이니까 이해해라, 협력해라, 땅을 팔아라, 이거여.” (1권160쪽)


“히로시. 땅은 말이여, 원래 그 누구의 것도 아니란다. 이 땅은 우리의 것도 공단 것도 아니여. 옛날부터 그저 여기에 있었을 뿐. 그것을 인간이 제멋대로 선을 긋고 제것이라고 우기기 시작한 거여. 우리도 마찬가지여. 하지만 말이다, 누구의 것도 아닌 땅을 일구고 갈고 씨앗을 뿌려서 비옥한 흙으로 만든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여.” (1권 184쪽)


나무가 있는 곳에서 사람이 살아갑니다. 나무가 없는 곳에서도 사람이 살아갈는지 모릅니다만, 사람은 으레 나무가 있는 곳에서 보금자리를 가꾸려 합니다. 섬에서든 뭍에서든, 이 나라에서든 저 나라에서든, 나무가 있을 때에 비로소 집이 섭니다. 그리고, 집이 한 채 선 뒤에 다른 집이 두 채 석 채 찬찬히 섭니다. 다른 집이 하나둘 새롭게 서면 어느새 마을이 섭니다. 서로 돕고 아끼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마을입니다. 한집 사람으로 지내는 마을입니다. 한마음이 되고 한몸이 되는 마을입니다. 기쁠 때에 함께 웃는 마을입니다. 슬플 때에 함께 우는 마을입니다. 서로 아끼면서 즐거운 마을입니다. 같이 도우면서 사랑스러운 마을입니다.


이곳에 마을 하나가 서듯이 저곳에 마을 하나가 섭니다. 곳곳에 마을이 섭니다. 마을은 서로 가까운 자리에 서기도 하지만, 꽤 떨어진 자리에 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마을은 없기 때문에, 마을마다 말이 다릅니다. 다만 말이 아주 다르지는 않아요. 웬만큼 다릅니다. 이럭저럭 다르지요. 마을과 마을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스스로 제 마을에서 쓰는 말로 이야기를 해요.


우리 마을에서 쓰는 말이기에 더 낫거나 훌륭하지 않습니다. 이웃에서 지내는 마을더러 우리 마을에서 쓰는 말로 바꾸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웃에 있는 마을도 우리 마을더러 우리 마을 말을 버리고는 저희 마을 말을 쓰라 할 수 없습니다. 다 다른 마을은 저마다 다른 마을빛을 건사하면서 마을살이를 이룹니다. 다 다른 마을은 서로서로 아름답게 살림을 꾸립니다.


“도깨비가 우리 편이면 든든한데!” “도깨비뿐만이 아냐. 숲 속에 사는 원령들과 나무와 물의 정령들, 부엉이, 하늘다람쥐, 뱀들도 모두 우리 편이다.” (2권 72∼73쪽)


일본은 그 전쟁(베트남전쟁)에 가담하고 있어. 이 나라도 가해자란 거지. 그러니까, 이 나라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 우리도, 베트남의 어린이들을 죽인 가해자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 이 전쟁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일본인 모두가 B52에 폭탄을 채워 넣고 있는 건지도.” (2권 169∼170쪽)


“공항은 어른들 문제다! 애들은 공부나 해라! 그런 소리 이제 지긋지긋해요! 하지만, 공항이 생기면 사라지는 건 우리 집이라고요! 우리 마을이라고! 우리 학교라고요!” (2권 39쪽)


“근데, 우리 마을, 우리 집, 우리 밭이 사라진다고, 빼앗겨 버린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던 우리 보리밭이랑 땅콩밭들이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 그렇게 싫어했던 밭일도 더는 싫지 않고. 이 싸움이 논밭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그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비료를 주고 잘 키워서 수확하고, 하는 것이 가장 커다란 반대운동이 아닐까 생각했어. 땅에 대한 애착이나 그런 건 아직 모르겠지만, 내가 지켜야 할 것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이 싸움은 의미가 없지.” (2권 130∼131쪽)


오제 아키라 님이 빚은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 일곱 권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만화책을 여러 차례 읽었고 이웃님한테 이 만화책을 읽어 보시라고 곧잘 이야기합니다. 군수님이나 시장님도 읽어 보기를 바라고, 여느 공무원도 읽어 보기를 바라며,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이들도 읽어 보기를 바랍니다.


이 만화책에는 일본 산리즈카 시골마을 사람들이 일본 정부가 밀어붙이려 하던 나리타공항 때문에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으며 힘들었는가 하는 이야기가 깃듭니다. 오늘날 우리는 일본 나리타공항이 그냥 그렇게 덩그러니 있는 줄 여기기 쉽지만, 아직도 나리타공항 옆에 있는 산리즈카마을에서는 ‘공항한테 오랜 터와 땅과 보금자리를 빼앗길 수 없다’면서 맞서는 시골지기가 있다고 합니다.


가만히 돌아봅니다. 저는 산리즈카 사람들처럼 공권력 때문에 두들겨맞지 않으니, 그럭저럭 지낼 만할까요? 하루아침에 난데없이 땅도 집도 모두 빼앗긴 채 다른 고장으로 쫓겨나야 하는 일이 없으니, 이냥저냥 살 만할까요?

우리 식구가 지내는 전남 고흥을 되새겨 봅니다. 고흥 군수와 군청 공무원은 포스코와 손을 맞잡고 엄청나게 큰 화력발전소를 끌어들이려고 했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화력발전소는 마을사람 힘으로 막아냈습니다만, 예전에는 엄청나게 큰 핵발전소를 고흥에 끌어들이려고 했어요. 지난해에는 폐기물발전소를 고흥에 끌어들이려고 했지요. 이 모두 마을사람이 막아냈습니다.


그런데 고흥군은 다도해 국립공원 바닷가와 맞닿은 숲을 광주시 교육청에 강제수용을 해서 팔았어요. 여러 해 된 일입니다. 이러고는 갑작스레 청소년수련원 공사를 밀어붙였지요. 아름드리 숲을 하루아침에 밀어 없앴습니다. 국립공원이던 곳을 조용히 풀더니 하루아침에 강제수용으로 팔았을 뿐 아니라, 숲도 바다도 몽땅 어지럽혔어요. 아름다운 바다라고 해서 해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전남 고흥 발포 바닷가를 찾아왔으나, 이제 발포 바닷가에 가는 발길은 뚝 끊어집니다. 청소년수련원 건물을 와장창 지으면서 숲과 바다를 모조리 어지럽히니, 사람들 발길이 뚝 끊어져요. 다른 고장 사람들뿐 아니라, 고흥사람인 저희조차도 아이들하고 발포 바닷가에 안 갑니다. 무시무시한 짐차가 수없이 오가는 길이 안 좋기도 하고, 바닷물이 공사장 때문에 더러워져요. 이런 곳에 갈 까닭은 없습니다.


일본 산리즈카에서 일본 정부가 ‘덜 민주스럽게’ 몰아붙였으면, 나리타공항은 짠하고 곧장 태어났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 영종도와 용유도에서처럼 한국 정부가 ‘우악스레 강제수용을 해서 밀어붙’이면, 척하고 공항 하나 쉬 들어섭니다.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 얼마나 ‘인천공항 반대’를 외쳤을까요. 예쁜 갯벌을 없애고 예쁜 섬을 밀며 예쁜 소금밭을 망가뜨리면서 공항을 지었을 뿐 아니라, 용유와 영종에 깃든 시골집을 모조리 없애고 아파트로 바꾸었어요.


“정부가 우리를 대등하게 보지 않는 것에는 우리들에게도 책임이 있어. 농업 보호의 미명 하에 정권은 농민들을 꼭두각시로 삼아 왔다. 농민들도 그걸 받아들이고 오랜 시간 의지해 왔던 거지.” “윗대가리들이 지들 마음대로 우리를 죽이고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여. 여태 우리가 알아서 기었잖여.” “여기까지다! 권력자들의 그런 생각을 부숴 버리는 건 우리가 정권에 의지하는 모습을 버리고 자립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그건 어쩌면 공항을 저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지도 몰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투쟁하는 농민이다!” (3권 85∼86쪽)


‘우리 마을에 공항이 들어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6년 동안 늘 자상하고 따뜻하게 우리를 대해 주었던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결국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선생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길 뿐이었다. 문제의 본질에서 애써 눈을 돌린 채, 그저 동정을 보낼 뿐이었다 …… 우리가 정말로 가르쳐 줬으면 했던 것, 정말로 배우고 싶었던 것,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 문제를 다뤄 주는 것을 끈질기게 피하기만 했던 그 학교에, 나는 그날, 작별을 고했다.’ (3권 75, 78쪽)


한국이라는 나라에 ‘민주’가 있을까요. 한국에서는 ‘민주’가 어느 만큼 힘을 낼까요.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민주’에 얼마나 눈길을 둘 겨를이 있을까요. 저마다 제 코가 석 자는 아닐까요.


집이 있고 마을이 있은 뒤에 고을이 있습니다. 비슷한 마을이 곳곳에 모여 고을을 이룹니다. 고을로 아우르는 마을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서로 어깨를 겯을 만큼 살갑거나 가까운 삶입니다. 저마다 다른 삶터에 맞추어 저마다 다르게 삶을 가꿉니다.


고을이 있으면, 고을을 아울러 고장이 있습니다. 고장과 고장은 사뭇 다르다고 할 만합니다. 이를테면 경상도와 강원도는 사뭇 다르고, 충청도와 전라도는 사뭇 다릅니다. 꽤 높다란 멧줄기가 고장과 고장을 가릅니다. 퍽 깊고 넓은 냇물이 고장과 고장을 갈라요.


우리 마을과 우리 고을로도 넉넉하면서 즐겁기에 굳이 이웃 고장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웃에서도 괜히 우리 고장으로 넘어오지 않습니다. 서로서로 제자리를 지킵니다. 서로서로 제길을 알뜰살뜰 가꾸는 살림을 짓습니다.

바다가 너른 고장이라서 숲이 너른 고장보다 아름답지 않습니다. 멧골이 깊은 고장이라서 들이 넓은 고장보다 아름답지 않습니다. 어느 고장이든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겨울이 더 춥든 여름이 더 덥든, 고장마다 사랑스러운 삶이요 나날입니다. 굳이 여러 고장을 하나로 뭉뚱그려야 하지 않아요.


“(조건파는) 왜 일부러 집을 부수고 가는 거야?” “나도 잘 모르는데, 자기 집을 부수고 가는 게 조건이래. 여기에서 더 이상 사람이 살지 못한다는 증거로.” (4권 20쪽)


1969년 9월 9일. 426㎡나 되는 면적으로 공항 용지의 40%를 차지하는 고료목장의 나무 10만 그루에 대한 벌목이 시작됐다. 그것은, 수령 200년의 고목을 매일 천 그루씩 베어내는 작업이었다. (4권 124쪽)


“시끄러운 공항 문제를 축제 분위기로 덮어버리려는 속셈이야.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없는 치들이 분위기에 휩쓸리겠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들떠서 웃고 춤추고 노는 사이에, 나라는 개차반이 되는 거다.” (4권 44쪽)


불도저로 파헤쳐진 논밭과 삼림은 이미 공단이 매수한 땅이었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집과 논밭, 그리고 우리 마을과 이어져 있었다. 거칠게 파헤쳐진 붉은 땅을 보면, 우리의 땅이 투영되어 보였다. 우리들이 엄연히 여기 살고 있는데도, 이 나라에서 산리즈카는 이미 ‘공항 용지’일 뿐이었다. (4권 162쪽)


스스로 즐겁게 살림을 가꾸는 사람은 ‘우리 보금자리’에서 모든 삶을 이룹니다. 먼저 밥을 짓습니다. 남한테 기대지 않고 스스로 밥을 지어서 이룹니다. 다음으로 옷을 짓습니다. 남한테서 얻으려 하지 않고 스스로 옷을 지어서 이룹니다. 그리고 집을 짓습니다. 집을 지을 적에는 이웃 손길을 받을 수 있으나, 혼자서도 너끈히 집을 짓습니다. 다만 혼자 집을 지을 때에는 퍽 오래 걸리지요. 그러나 오래 걸린다는 생각을 할 일이 없어요.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이루는 삶이니, 집을 천천히 지으면서 즐겁습니다. 조금씩 마무리를 짓는 모습을 살피면서 기쁩니다.

스스로 즐겁게 살림을 가꾸는 사람이 ‘우리 보금자리’를 이루는 결대로 하나씩 모여 이루는 마을입니다. 한 집만 있어도 이 한 집은 스스로 삶을 이룰 뿐 아니라, 스스로 삶을 이루는 집들이 모인 마을이니, 마을은 언제나 스스로 삶을 이루어요.


모자랄 일이 없고 아쉬울 일이 없습니다. 집집마다 오순도순 지냅니다. 집집마다 사랑스러우면서 따사로운 노래가 흐릅니다. 노래가 흐르고 이야기가 태어나는 집이 모인 마을이니, 마을살이란 ‘온누리’라고 할 만합니다. 모든 것을 가장 넉넉하고 즐겁게 이룬 삶이니, 언제나 사랑을 길어올립니다.


그러니까 ‘보금자리·집’이라고 할 적에는, 스스로 모든 삶을 이루는 살림을 가꾼다는 뜻입니다. 나이가 찬 사람이 제금을 나서 지내는 터가 집이 아닙니다. 아파트 한 채나 다세대주택 한 자리가 집이 아닙니다. 모든 삶을 이룰 수 있는 데가 집입니다. 커다란 장비를 써서 수만이나 수십만 채 집을 똑같이 찍어내듯이 만들어야 집이 아닙니다. 집은 나라에서 지어서 줄 수 없습니다. 집은 장사꾼이 지어서 팔 수 없습니다. 나라가 짓거나 장사꾼이 파는 것은 언제나 ‘부동산’이나 ‘재산’입니다.


“교장 선생님, 당신네 학교는 방음교사의 건설이 예정돼 있지요?” “소음으로부터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게 어째서 아이들을 지키는 일입니까? 왜 교육환경을 파괴하는 공항 건설에 반대하려고 하지 않는 겁니까? 바깥 공기가 차단된 방음교사에 아이들을 가둬 놓는 것은 차별이 아니란 말입니까? 공항 건설이 진행되면 등교길이 끊겨서 아이들은 먼 길을 돌아서 다니거나 전학을 해야 해요! 이건 차별 당하지 않는 평등한 교육입니까?” (5권 82∼83쪽)


“똑똑히 봐 두는 거여, 뎃페이.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죄다.” “할아버지.” “그리고 잘 생각해 보는 겨. 네 할애비랑 아버지, 어머니가 여기서 살아온 세월을. 흉작에 울고 풍작에 웃으면서 조금 조금씩 쌓아 온 이 마을의 역사를. 그것들이 죄다, 이 땅과 함께 콘크리트 밑으로 묻혀버릴지도 모르는 지금 이 사태를 말이여.” (5권 21∼22쪽)


“선생님은 기동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응? 아니.” “기동대한테 맞거나 발로 차이거나 체포되거나 해 본 적 있어요? 우리 부모님과 형처럼요. 지금 저의 의무는 투쟁에 참가하는 거예요. 전 산리즈카 소년행동대장이니까요. 전 가 보겠습니다!” (5권 26∼27쪽)


“공항 문제는 정치도 사상도 아니오. 우리들의 생명에 관한 문젭니다. 친권 남용이라고요? 그거 당연한 거 아닙니까? 농가가 바쁠 때는 어린 애들에게도 하루 종일 일을 시켜요! 아이들을 투쟁에 끌어들이지 말라고? 강도가 집을 빼앗아 가려고 하는 마당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부모가 어디 있답디까? 그렇게 우리 자식들이 걱정된다면…….” (5권 84∼85쪽)


“그래요. 아무리 많은 사람이 편리해진다고 해도, 그것을 위해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해진다면, 공항 같은 건, 만들면 안 돼요. 누군가가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 그건 공항을 만드는 인간들이 지어낸 말이에요.” (5권 212∼213쪽)


경상도 밀양에서 송전탑 때문에 벌어진 일을 돌아보면, 한국에는 민주도 평화도 평등도 없구나 싶은 모습을 잘 읽을 만합니다. 그런데 밀양 송전탑에 앞서, ‘핵발전소’를 보면, 또 수많은 막개발을 보면, 또 4대강을 망가뜨린 막삽질을 보면 이 나라가 얼마나 반민주에 반평화 반평등인가를 알 만합니다.


핵발전소 하나만 놓고 생각해 봐요. 이런 시설을 처음 지을 적에 한국 정부는 어떻게 했을까요. 핵발전소를 처음 지을 적에 신문·방송은 무엇을 했을까요. 핵발전소를 처음 지을 적에 글쟁이와 교사와 교수 같은 이들은 무슨 말을 했을까요. 핵발전소를 처음 지을 적에 학교는 무엇을 했을까요.


모든 언론과 학교는 중앙정부 권력을 등에 업고 ‘핵발전소는 깨끗하고 안전하며 돈이 적게 드는 전기’라고 떠벌였습니다. 가장 비싸며 가장 무시무시하고 가장 끔찍한 전기인 줄 가르친 학교는 없었다고 느낍니다. 핵발전소가 어떤 곳인지 낱낱이 밝히거나 알린 신문이나 방송은 없었다고 느낍니다.


커다란 발전소를 짓고 송전탑을 박을 돈이라면, 집집마다 ‘자가 발전’을 하는 시설을 갖추고도 돈이 아주 많이 남습니다. 집집마다 전기를 스스로 빚어서 쓰도록 시설을 갖추는 데에 들이는 돈은 아주 적습니다. 집집마다 전기를 스스로 빚어서 쓰면 송전탑을 세울 까닭마저 없어요. 대형발전소가 없어도 될 뿐 아니라, 이 나라를 아주 깨끗하게 가꾸는 길을 열지요.


게다가 쓰레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흙도 바람도 물도 더럽히지 않습니다. 공장이나 아파트나 큰 건물에서도 전기를 스스로 빚어서 쓰도록 하면 됩니다. 못할 일이란 없습니다. 집집마다 빚어서 쓰는 전기가 남으면 이를 모아서 큰 건물이나 공장이나 아파트에 보낼 수 있어요. 이런 장치는 어렵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앙정부는 이런 일을 안 했어요. 아직도 안 하며 앞으로도 안 할 듯합니다. 오늘날 전기는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집집마다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서 쓰면 ‘권력 통제’가 안 되어요. 커다란 발전소를 세워서 중앙정부가 ‘통제’를 해야 사람들을 마구 휘어잡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하면 전기만 뚝 끊어도 돼요. 도시에서는 전기와 가스와 물을 뚝 끊으면 아마 도시사람 모두 며칠 만에 모조리 죽을 수 있어요.


“아빠가 말했어요. 땅을 지키는 것은 바로 저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고. 나는 계속 아빠하고 함께 싸워 나갈 거예요! 공항에 비교하면 우리 밭 같은 건 상대가 안 되겠지만, 하지만 그것이 나를 지금까지 키워 준 걸요. 엄마 아빠의 소박한 농사꾼의 마음이 거대한 공항이라는 괴물을 이길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6권 7∼8쪽)


“우리 학교는 도쿄의 한가운데 있어서 나무나 풀도 없고 하루 종일 자동차 소음과 배기가스 냄새에 휩싸여 있어요. 공항이 만들어지면 여러분의 학교도 이렇게 되겠지요. 저는 산리즈카의 어린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요.” (6권 13쪽)


“근데 말야, 도쿄에서는 선생님이 공항에 대해 얘기해 주신다는데, 아이들도 우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말야, 왜 우리 학교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걸까? 공항은 도쿄가 아니라 여기, 우리 마을에 만들어지는데.” “맞아.” “우리 선생님은 찬성도 반대도 아닌 중립이라고만 해.” (6권 14쪽)


“하하핫! 까불고들 있어! 농사꾼 두들겨패고 땅 빼앗고, 임산부의 배를 걷어차면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거여! 국제공항이라고 했냐! 웃기고들 있네! 농사꾼이 땅을 지키고 체포당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해 주지! 여보! 죽어도 밭을 내주면 안 돼!” (6권 80∼81쪽)


“교장선생님, 선생님이 만약 우리들의 입장이라면, 선생님의 부모가 피투성이가 되어 기동대한테 붙잡혀서 유치장에 갇힌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척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입장이 공무원이다 보니.” “……. 공항이 들어서면 이 학교도 당연히 방음교사가 됩니다. 선생님은 하루 종일 창문도 열 수 없는 어두운 교실에 들어가고 싶습니까?” “아니, 들어가고 싶지는 않지요. 학생들을 들여보내고 싶지도 않아요.” “그러면 공항에 반대하시는 거네요? 중립이 아니라. 방음교사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어째서 반대하지 않는 건가요? 왜 싸우지 않는 건가요?” “그러니까, 공항이 만들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교장선생님! 학생들을 방음교사에 가두고 싶지 않다고 하시면서 공무원이기 때문에 공항을 반대하지 않는다든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선생님! 선생님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뿐이에요. 그것이 교육자로서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있습니까?” (6권 177∼179쪽)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는 오랫동안 ‘자급자족’을 하던 조용한 시골마을 사람들한테 들이닥친 막삽질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보여줍니다. 시골사람은 처음에는 ‘나라가 시킨’ 일이니 고분고분 따라야 한다고 여깁니다. 이러다가 이 일이 ‘시골을 모두 등지거나 버리고 쫓겨나야’ 하는 일인 줄 깨닫고는 처음으로 들고 일어섭니다.


권력이 싫어하는 것은 딱 하나이지 싶습니다. 바로 ‘자급자족’이에요. 사람들이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지으면서 삶을 가꾸는 일을 권력이 아주 싫어합니다. 사람들이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지을 줄 알면, 권력은 아무 힘을 못 써요. 정치권력뿐 아니라 경제권력도 힘을 못 씁니다.


시골사람은 대통령 이름이나 군수 이름을 굳이 알아야 하지 않아요. 예부터 시골사람은 임금 이름을 몰라도 흙살림을 일구며 모두 스스로 지어 스스로 얻으며 이웃하고 나누었어요. 권력자 자리에 선 이들은 스스로 지을 줄 모르기 때문에 세금을 걷으며 시골사람한테서 집도 옷도 밥도 얻어다가 누렸지요.


정치나 사회나 경제 얼거리를 보면, 사람들이 밥이며 옷이며 집을 ‘회사에서 번 돈을 써서 가게에서 사다 쓰도’록 틀을 짜야, 비로소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과 행정과 과학을 비롯한 모든 권력이 힘을 얻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모시와 삼에서 실을 얻어 옷을 지어 입는다면, 옷공장이나 옷회사는 모두 무너집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숲을 가꾸어 숲에서 나무를 몇 그루 얻은 뒤 집을 지으면, 건설회사와 자동차회사와 석유회사 모두 무너집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제 터를 집숲으로 가꾸어 밥을 손수 지어서 먹으면, 식품회사와 약품회사와 병원과 백화점뿐 아니라 모든 도시 얼거리가 무너집니다.


권력은 도시를 지키려고 사람들한테서 ‘자급자족’이라는 열쇠를 빼앗습니다. 권력은 도시를 키워 사람들을 바보나 노예나 부속품으로 만들려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학교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도시에 가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거나 전문직이 되거나 운동선수나 예술가 따위가 되어 돈을 버는 길’을 찾도록 이끕니다. 학교에서는 어느 누구도 밥·옷·집을 스스로 짓는 길을 안 가르칩니다. 교과서나 참고서나 문제집은 밥이나 옷이나 집에 아이들이 눈길을 못 두도록 가로막습니다.


더 헤아려 본다면, 인문책도 사람들한테 길을 보여주지 않지 싶어요. 어떤 인문책도 사람들한테 밥을 스스로 짓고 옷을 스스로 지으며 집을 스스로 지으라고 알려주지 않습니다. 어떤 인문학자와 철학자와 교육자도 사람들한테 밥·옷·집을 스스로 가꾸어 누리면서 살아가라고 말하지 않을 뿐더러, 말할 만한 슬기나 깜냥이 없지 싶어요. 학자는 학문을 할 뿐이거든요. 학자는 ‘자급자족’을 하지 않아요.


이러다 보니, 이 땅에서 태어나는 인문책뿐 아니라 이웃나라에서 나오는 인문책도, 그저 지식조각이기 일쑤입니다. 사람들이 머릿속에 새로운 지식조각을 채우도록 이끌 뿐입니다. 사람들이 머릿속에 지식조각만 가득 채워서 스스로 밥도 모르고 옷도 모르며 집도 모르게 내몹니다. 사람들이 그저 돈을 벌어 돈으로 밥과 옷과 집을 사서 쓰도록 이끌듯이, 모든 인문책은 사람들이 ‘자꾸 새로운 인문책을 사서 새로운 지식조각을 머릿속에 쑤셔넣도’록 살살 꼬드깁니다.


“선생님! 그렇게 걱정이라면 같이 싸워 주세요!” “요새에 들어가서 함께 싸워요! 다칠 염려는 없어요. 우리가 지켜 줄 테니까!” 30분도 안 돼서 선생들은 도망치듯 돌아갔다. 주위에서 비웃음이 일었다. 선생들은 말로만 우리를 이해하고 동정했을 뿐, 결국 우리를 저버렸다. 아니, 우리가 선생들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7권 12∼13쪽)


할머니네 집은 흔적도 없이 무너지고 없었다. 비겁한 눈속임으로 치러진 대집행은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피붙이도 없고 아무런 힘도 없는 고독한 할머니의 자그마한 논과 집을 국가가 무력으로 뿌리째 뽑아 앗아갔다. 아니, 빼앗긴 것은 그냥 논과 집이 아니다. 그곳은 할머니에게 있어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그 작은 생명을 지켜 주는 단 하나의 보금자리였던 것이다. 피곤할 때는 해님에게 인사하고, 빨래해 널고 목욕하고, 술 두 잔 정도 하고 자면……. (7권 176∼177쪽)


“거기서는 화학비료도 농약도 쓰지 않고 훌륭한 수확을 거두고 있더라.” “그런 게 가능해요?” “가능하니까 신기한 게지. 아니, 신기할 것도 아니여. 나도 요 몇 년 논과 밭의 지력이 떨어진 원인이 뭔지 생각하고 있었다. 흙이 점점 모래처럼 되고 작물도 생생함을 잃고 있어. 농약을 써도 안 써도 해충이 줄어들 기미가 안 보여. 이러다가 논밭이 못 쓰게 되고 먹고살 수 없게 되면 투쟁이고 뭐고 다 소용 없는 겨 …… 그게 말여, 미생물농법이라던가, 유기농법이라던가, 퇴비 만들기부터 시작하는 손이 많이 가는 농사여. 보람이 있을 겨. 잘 봐둬라, 뎃페이. 내가 모두에게 이 농법을 전파시킬랑께. 산리즈카에서 공항 이상으로 가치 있는 농업을 만드는 거여.” (7권 214∼215쪽)


우리 마을을 지키는 힘이란 우리 집을 지키는 힘입니다. 우리 집을 지키는 힘이란 우리 삶을 스스로 지키는 힘입니다. 밥 한 술을 뜰 적에 남이 내 몫을 먹어 주지 못합니다. 내 몫을 남이 먹어서 배가 부르다 하면 그이가 배가 부르지 내가 배부르지 않아요. 옷 한 벌을 입을 적에 남이 내 몫을 입어 주지 못합니다. 내가 내 몸에 옷을 걸쳐야 따뜻합니다. 남이 내 옷을 그이 몸에 걸치면 그이가 따뜻하지, 내가 따뜻하지 않습니다.


마을을 지키려면, 먼저 내가 스스로 내 집을 가꾸는 슬기를 찾아야 합니다. 내가 오롯한 삶을 가꾸는 집을 지켜야 합니다. 내가 이곳에서 튼튼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보금자리 하나’로 있을 때에, 내 이웃은 이웃 나름대로 저곳에서 튼튼하고 씩씩하게 살아요. 내가 있고 네가 있어서, 서로 이웃이 되어서, 천천히 마을로 거듭납니다.


마을이란 사랑입니다. 집집마다 다 다르면서 모두 새로운 사랑이 있을 적에, 이러한 사랑이 하나로 모여 마을이 됩니다. 마을이란 노래입니다. 집집마다 다 다르면서 언제나 새로운 노래가 흐를 적에, 이러한 노래가 하나로 모여 마을이 됩니다.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는 산리즈카라고 하는 아주 조그마한 시골마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중앙정부 권력에 맞서면서 스스로 ‘집을 지키’고 ‘삶을 가꾸’며 ‘사랑을 노래했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리타공항 반대 투쟁기’가 아닙니다. ‘시골에서 삶을 찾고 깨달아 스스로 사랑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입니다.


부디 작은 이웃님을 비롯해서 여느 공무원도 군수나 시장도 대통령 후보도 이 작은 만화책을 곰곰이 읽어 볼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나아갈 길은 ‘경제발전’이나 ‘일자리 만들기’가 아닌 줄 느낄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가 서로 아끼며 걸어갈 길은 ‘마을살림’이요 ‘집살림’이라는 대목을 헤아릴 수 있기를 빕니다. 돈을 들이는 개발사업이나 개발정책이 아니라, 스스로 짓고 스스로 나누며 스스로 사랑하는 ‘마을살이’를 바라볼 수 있어야 마을도 작은 집도 나라도 함께 살아나리라 생각합니다. 마음을 따사롭게 덥히는 슬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ㅅㄴㄹ

덧붙이는 글 | <우리 마을 이야기 1-7>(오제 아키라 글·그림 / 이기진 옮김 / 길찾기 펴냄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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