荒木經惟ト-キョ-·アルキ (とんぼの本) (單行本)
荒木 經惟 / 新潮社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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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나게 살아가며 재미나게 사진찍기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9]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經惟), 《ト-キョ-·アルキ》(新潮社,2009)


 1940년에 태어나 젊은 날부터 사진을 찍은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2009년에 《ト-キョ-·アルキ》(新潮社,2009)라는 자그마한 사진책 하나를 내놓습니다. 1964년에 사진상을 한 번 받고, 1971년에는 혼인나들이를 한 이야기를 당신 돈으로 1000권 내놓기도 했다니까, 2009년에 내놓은 《ト-キョ-·アルキ》는 어쩌면 ‘아라키 사진삶 쉰 해’를 기리는 자그마한 선물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보여준 사진삶을 다른 사진책으로 만난 이한테 《ト-キョ-·アルキ》는 좀 남다르다 싶은 사진책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ト-キョ-·アルキ》는 책이름 그대로 ‘아라키’가 여태껏 내 나름대로 재미나게 살아온 나날을 재미난 발걸음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책이라 느낄 수 있어요.

 사진기 하나 목에 걸고는 도심지를 천천히 거닐면서 사진을 찍은 이야기를 그러모아 책 하나로 묶었다고 볼 수 있는 한편, ‘아라키는 이렇게 걷고 이렇게 만나며 이렇게 느껴 이렇게 나눈다’고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땅한 이야기입니다만,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2007년에 내놓은 《ARAKI》(Taschen)를 읽는다 해서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알 수 없고, 1971년에 당신 돈을 들여 내놓은 《センチメンタルな旅》를 어찌저찌 찾아내어 읽는다 해서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요즈음 어떠한 삶을 일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와 함께, 《ARAKI》나 《センチメンタルな旅》를 읽지 않고서 아라키 노부요시 사진과 삶과 사랑과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없어요.

 사진책 《ト-キョ-·アルキ》를 읽을 때에는 오직 하나만 느끼면서 알 수 있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걸은 길은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걸었기에 뜻있거나 뜻깊지 않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사진으로 담는 사람들을 만나기 앞서 언제나 뜻있고 뜻깊던 길입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사진으로 담든, 다른 누군가가 사진으로 담든 한결같이 뜻있고 뜻깊은 길입니다. 왜냐하면 누가 어떠한 얼거리와 넋으로 사진으로 담든, ‘사진으로 담기는 사람들마다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저마다 다르게 아끼면서 보살피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들이 이제껏 살아오며 일군 이야기 가운데 한 자락을 고맙게 얻습니다. 사진쟁이가 고맙게 얻은 사진을 그러모아 내놓은 책을 읽는 사람은 이 사진책 하나에 그러모인 숱한 사람들 숱한 삶과 사랑 이야기를 고맙게 들여다보면서 생각날개를 펼칩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숱한 사람들 삶자락 이야기 가운데 귀퉁이를 예쁘게 바라보면서 담고, 아라키 노부요시 님 사진책을 읽는 사람은 아라키 노부요시 님 눈썰미 가운데 한 조각을 아리땁게 읽으면서 가슴이 벅찹니다.

 어느 누구 삶이라 하더라도 똑같습니다. 사랑스럽지 않은 삶이 없고, 사랑스레 담지 못할 삶이 없습니다.

 도쿄 한복판에도 있다는 가난한 사람들 뒷골목이라 해서 후줄근할 까닭이 없습니다. 돈이 적어 살림살이가 후줄근하더라도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들인걸요. 도쿄 변두리에도 있다는 돈있는 사람들 복닥거리는 눈부신 길거리라 해서 돋보일 까닭이 없습니다. 돈이 많아 한밤에도 불빛이 번쩍거리더라도 사랑스레 살아가지 않으면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한테서는 사랑스레 살아가는 기운을 느끼면서 사랑스레 살아가는 손길로 담은 사랑스레 나눌 사진이 태어납니다. 재미나게 살아가는 사람한테서는 재미나게 살아가는 얼을 받아들이면서 재미나게 살아가는 손놀림으로 담은 재미나게 나눌 사진이 태어납니다.

 주문을 받아 멋들어지게 찍어야 하는 사진이라면, 참말로 멋들어지게 보이는 사진이 태어나겠지요. 사랑하는 짝꿍이랑 살아가며 낳은 사랑스러운 아이를 담는 사진이라면, 참말로 사랑스레 보이는 아이 모습이 빛나는 사진이 태어나겠지요.

 사람이 선 삶자리에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람이 마주하는 삶자락에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삶터에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일본 도쿄라 해서 더 대단하다 싶은 사진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한국 괴산이라 해서 더 시골스럽거나 투박하다 싶은 사진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든, 내 넋과 얼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사진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찍는 사진이기에 꼭 도시스러운 사진이 되지 않아요. 멧골이나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찍은 사진이라서 반드시 멧골스럽거나 바닷가스러운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품는 꿈과 돌보는 넋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입니다. 좋아하는 길과 사랑하는 사람에 따라 바뀌는 사진이에요.

 제주섬에서 살아가거나 제주섬을 자주 찾아가지만, 정작 제주섬 속내를 사진으로 못 담고 글로 못 쓰며 그림으로 못 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지내거나 서울을 자주 들르지만, 막상 서울 속살을 사진으로 못 찍고 글로 못 옮기며 그림으로 못 보이는 사람이 있어요.

 늘 지내거나 오래 지내거나 자주 가까이한대서 더 잘 알지 않습니다. 늘 걷는 길이라서 더 꼼꼼히 잘 알아보지 않습니다. 처음 지나가거나 한 번 지나치는 길이라 하더라도 내 마음밭에서 사랑씨가 자라는 사람이라면, 날마다 수없이 지나가는 길이라 하지만 내 마음밭에 아무런 씨앗 하나 자라지 않는 사람보다 살뜰히 느끼어 꽃피우는 이야기열매가 있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 사진책 《ト-キョ-·アルキ》는 이야기합니다. 재미난 이야기를 재미난 눈썰미와 손짓과 발걸음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나저나, 큰아이를 짐받이에 붙인 걸상에 앉히고 작은아이를 등에 업은 채 바구니에는 먹을거리나 짐을 실은데다가 가방을 손잡이에 걸고 기어 없는 자전거를 달리는 아주머니는 언제 보아도 그지없이 아름답구나 싶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 가운데 이와 같은 자전거를 모는 분은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사진으로도 찾아보지 못합니다. (4344.7.10.해.ㅎㄲ
 

 

(최종규 . 2011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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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ra 2011-07-1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같이 비오는 날, 따뜻한 녹차와 함께 보고싶은 책이네요. 리뷰보고 구매하고 싶어졌습니다.^^

숲노래 2011-07-11 17:11   좋아요 0 | URL
일본말을 할 줄 아신다면, 글을 읽으면서 한결 재미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木村伊兵衛昭和を寫す〈1〉戰前と戰後 (ちくま文庫) (文庫)
木村 伊兵衛 / 筑摩書房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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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 찾기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5] 기무라 이헤이(木村伊兵衛),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1 戰前と戰後》(筑摩書房,1995)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어떤 나날인가를 돌아보면서 나눈 사진이 살포시 실린 사진책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1 戰前と戰後》(筑摩書房,1995)를 넘기면서 생각합니다. 소설 《스물네 개의 눈동자》에 나오는 쇼도지마섬 작은 학교 작은 아이들을 맡은 작은 교사는 스물네 눈동자를 맑게 빛나는 열두 아이하고 나란히 서서 사진 한 장을 찍습니다. 교사와 아이들은 사진 열석 장을 하나씩 나누어 갖고, 이 사진을 언제까지나 간직하면서 지난날을 그립니다. 일본 정부가 대동아전쟁이니 태평양전쟁이니 자꾸자꾸 일으키면서 아이들까지 ‘전쟁 바보’로 만들어 싸움터로 내몰아 죽고 죽이는 짓을 일삼도록 하지만, 작은 섬 작은 학교 작은 교사는 아이들한테 ‘충은 보국’이 아닌 ‘사랑과 믿음’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무렵 작은 섬 작은 학교 작은 교사 둘레에 ‘일본이 일으키는 전쟁이 얼마나 덧없으면서 나쁜가’를 함께 느끼면서 나무라는 이웃이란 없습니다. 초롱초롱 눈망울을 맑게 빛내던 열두 아이조차 저희 어버이가 ‘일본 정부가 시키는 제국주의 교육과 정책’에 젖어들며 저희를 키우기 때문에, 이러한 틀에서 쉬 헤어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기무라 이헤이 님이 빚은 사진으로 엮은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1 戰前と戰後》는 어떤 사진이라 할 만할까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기 앞서’와 ‘전쟁을 끝마친 다음’에 보이는 모습이 담긴 이 사진책은 사진쟁이 어떠한 넋을 실었다 할 만할까요.

 사진이란 ‘기록하는 사진’일까요. 사진은 ‘기록하는 구실’을 하도록 만들었을까요. 사진이란 ‘예술하는 사진’인가요. 사진은 ‘예술하는 노릇’을 하자며 만들었나요.

 어쩌면, 사진을 처음 만들어 널리 퍼뜨린 사람들은 ‘기록하는 사진’과 ‘예술하는 사진’을 함께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여기에 ‘돈을 버는 사진’이라든지 ‘외치는 사진’이 차근차근 샘솟았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은 이 가운데 어디 갈래에도 들지 않습니다.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1 戰前と戰後》에 담긴 사진은 ‘1920년대 일본’이나 ‘1940년대 일본’이나 ‘1960년대 일본’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기무라 이헤이 님이 찍은 사진을 그러모은 조그마한 사진책에는 ‘일본에서 살아간 사람들 나날’이 담길 뿐입니다. 기록도 증언도 인문지리도 아닙니다. 문화도 예술도 멋도 호사 취미도 아닙니다. 오직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사진으로 옮길 뿐이에요.

 원자폭탄을 맞아 송두리째 날아간 나가사키 천주교회당 사진을 보며 생각합니다. 나가카시 천주교회당과 천주교마을 이야기는 나가이 다카시 님이 쓴 《영원한 것을》이라는 이야기책에 잘 나왔습니다. 시골사람들이 조용한 시골자락에서 조용히 흙을 일구면서 천천히 일군 자그마한 마을 자그마한 예배당이 나가사키 천주교회당입니다. 남을 해코지하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으며 역사가 오래된 물건이라서 섬기지 않을 뿐더러, 곁에서 아파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옆에서 착하게 살아가는 이웃을 보살피는 믿음집이 나가사키 천주교회당이에요. 그런데, 이러한 곳에도 원자폭탄은 떨어져 너나 가리지 않고 하루아침에 사라집니다. 2011년 봄날, 후쿠시마 작은 마을이 난데없이 사라진 일하고 엇비슷합니다. 착하게 살던 사람도 밉게 살던 사람도 곱게 살던 사람도 짓궂게 살던 사람도 똑같이 하루아침에 사라져요. 폭격기에서 떨구는 폭탄 때문에 죽든, 바닷물이 크게 불어 마을을 휘감으면서 죽든, 죽음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 죽든, 차에 치어 죽든, 죽음은 사람을 고르지 않습니다.

 기무라 이헤이 님 손길을 거쳐 사진으로 옮겨진 삶이 그러모인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1 戰前と戰後》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을 다시금 헤아립니다. 바닷마을 사내들이 배를 바다에 띄우는 모습에서라든지, 바닷마을 아가씨들이 일손을 멈추고 쉬면서 웃음꽃을 피우는 모습에서라든지, 바나나송이를 이고 장마당을 걷는 뒷모습이라든지, 검불을 모으는 아이들 모습이라든지, 베틀을 밟는 젊은 여자와 늙은 여자 모습이라든지, 사진마다 이 사진에 깃든 사람들 이야기가 고스란히 어우러집니다. 돋보이고자 찍은 사진이 아니요, 내보이려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무슨 인문지리 연구를 한다며 찍는 사진이 아니며, 가난한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를 다큐멘터리로 보여주겠다는 사진이 아닙니다. 그예 나랑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차분히 마주하면서 이야기꽃 함께 피우는 사진입니다.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사진은 무엇을 하면 아름다울까요. 사진으로 무엇을 하자며 사진길을 걸을 수 있나요. 사진으로 무엇을 하면서 아름다움을 서로 나누는가요.

 역사에 길이길이 남아야 좋은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져야 훌륭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실린다거나 박물관 잘 보이는 자리에 걸려야 거룩한 사진이 되지 않아요. 웃음이 나게 이끌고 눈물이 나게 끌어당길 때에 사진입니다. 웃음이 나게 읽혀야 글이고, 눈물이 나게 보여져야 그림입니다. 웃으면서 부르는 노래요, 울면서 추는 춤입니다. 모든 삶은 모든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삶을 일구면서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2010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한국 사진쟁이는 어떤 길을 걷는지 궁금합니다. 2000년대에는 어떤 길을 걸었고, 1990년대에는 어떤 길을 걸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날은 어찌저찌 걸었을지라도 2010년대와 2020년대를 새롭게 걸을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2030년대에는 2030년대대로 아름다운 꿈을 찾고, 2040년대에는 2040년대대로 아름다운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곁에 있습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한테는 내가 아름다운 님입니다. 아름다운 사진은 내 삶자리에서 찍습니다. 내 삶자리를 사랑할 때에 내 둘레에서 사진길을 걷는 사람은 나한테서 사랑스러운 빛을 느껴 고운 사진을 시나브로 이룹니다.

 아름다운 사진을 찾아 멀리 떠날 수 없고, 나 스스로 아름답게 살지 않는다면 가까이에서든 멀리에서든 무엇이 아름다운지 깨닫지 못합니다. (4344.7.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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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바라본 기자 - 전민조 포토 에세이
전민조 지음 / 대가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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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 사진으로 되는 길을 찾기
 [찾아 읽는 사진책 39] 전민조, 《기자가 바라본 기자》(대가,2008)


 사진기를 손에 쥐고 사진을 찍지만, 막상 사진길을 걷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연필이나 자판을 손에 쥐고 글을 쓰지만, 정작 글길을 걷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 또한 무척 많아요.

 사진길이란 돈을 버는 길, 곧 돈길이 아닙니다. 글길이란 돈을 벌어들이는 길, 그러니까 돈길이 아니에요.

 어쩌면 누구나 다 알 만한 이야기라 할 테지만, 가만히 보면 누구도 모르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하는 길이란, 다른 한 사람한테 있는 돈을 보는 길이 아니에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돈이 있느냐 없느냐는 대수롭지 않아요. 내가 사랑할 만한 사람인지, 내 사랑을 듬뿍 쏟거나 바치거나 나눌 사람인지, 나와 함께 사랑꽃을 피우려는 사람인지를 바라볼 뿐입니다. 어느 한 사람을 만나서 함께 살아간다 할 때에는, 이이가 돈을 잘 벌든 못 벌든 그닥 대수롭지 않아요. 돈을 잘 벌면 잘 버는 대로 알뜰히 갈무리해서 내 둘레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하고 예쁘게 쓰면 됩니다. 돈을 못 벌면 못 버는 대로 허리띠를 졸라매거나 나 스스로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살림돈을 벌면 돼요. 사랑길이란 사랑을 보며 사랑을 믿는 길이에요.

 사진길이란 사진을 바라보며 사진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사진을 찍어 돈을 번다거나 사진으로 예술작품을 만든다거나 사진으로 이름을 날리는 길이 아닙니다. 사진 강의를 한다든지, 사진학과 교수가 된다든지, 사진학 논문을 쓰는 길이 사진길이 될 수 없습니다. 사진기자가 되거나 사진작가가 되는 길 또한 사진길이지 않아요. 사진은 오직 사진과 내 삶을 하나로 그러모으면서 나와 이웃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기자가 아니어도 찍는 사진이고 작가가 아니라도 찍는 사진이니까요.

 요리사가 아니어도 누구나 밥을 합니다. 요리사가 아니라지만 사랑스러운 손길로 사랑스러운 밥을 차려서 사랑스러운 살붙이하고 먹습니다.

 교사자격증이 있어야 내 아이를 잘 가르치거나 키우지 않습니다. 한국어능력시험 몇 급 자격증이 있어야 내 아이가 한국에서 살아가며 이웃 한국사람과 주고받을 한국말을 알뜰살뜰 가르치거나 물려주지 않아요. 나 스스로 내 삶을 얼마나 사랑하며, 어떻게 아끼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 삶을 사랑하듯이 내 말을 사랑하고, 내 말을 사랑하는 만큼 내 삶을 사랑해요.

 사진기자로서 이웃 사진기자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은 전민조 님은 신문사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기자가 바라본 기자》(대가,2008)라는 사진책을 내놓습니다. 전민조 님이 몸담은 신문사에서 마주한 숱한 기자들 모습과 삶과 이야기를 사진 하나에 글 하나를 엮어 사진책으로 내놓습니다.

 이 가운데 “최일남 기자는 전두환 정권 때 특별한 이유 없이 해직된 기자였다 … 필자는 슬쩍 그의 인터뷰 노트를 보았다. 질문할 사항이 대학노트 한 권에 꽉 차 있었다. 그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기사 한 줄 한 줄에 목숨을 걸 듯 피로 글을 쓰는 것 같았다. 저렇게 지독하게 인터뷰 자료를 준비해서 글을 쓰는데 사진도 셔터만 눌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196쪽).” 하는 이야기를 곰곰이 되씹습니다. 사진기자였던 전민조 님은 이웃 기자를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살가웁거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기자한테서는 살가웁거나 아름다운 모습을 배웁니다. 어딘가 아쉽거나 어수룩한 기자한테서는 나 스스로 얼마나 아쉽거나 어수룩한가를 뒤돌아보며 배웁니다. 수없이 취재를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내 삶과 사진이 어느 만큼 내 삶과 사진을 빛낼 만큼 튼튼한가를 되짚습니다.

 사랑이 좋으니 사랑을 합니다. 내 살붙이가 좋으니 내 살붙이가 먹을 밥을 차리고 입을 옷을 빨아서 개며 함께 지내는 집을 건사합니다. 사진이 좋으니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사진을 찍습니다. 더 낫다는 솜씨를 자랑하는 사진기를 장만해서 찍을 수 있고, 내 주머니에 걸맞게 값싼 사진기를 마련해서 찍을 수 있습니다. 값싼 사진기라서 사진이 더 돋보이지 않고, 값비싼 사진기라서 사진이 더 모자라지 않습니다. 필름이라서 더 훌륭하거나 디지털이라서 더 못나지 않습니다. ㄱ신문 기자이니까 보도사진이 더 알차지 않고, ㄴ잡지 기자이니까 패션사진이 더 예쁘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쥐는 사람 매무새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입니다.

 “목숨을 걸 듯 피로 글을 쓰는” 취재기자는 목숨을 걸 듯 피로 글을 쓰는 느낌과 빛이 서립니다. 그때그때 마감에 쫓기어 턱걸이로 글을 채우는 취재기자는 마감에 쫓기어 턱걸이로 글을 채운 느낌과 결이 깃듭니다.

 요즈음 수없이 떠도는 ‘서평단’ 사람들처럼 ‘주례사 서평을 쓰는 사람’은 주례사 서평 느낌과 무늬가 감도는 글을 쓸 뿐입니다. 학자가 되고자 글을 쓰는 사람은 학자 티가 물씬 나는 글을 쓰겠지요. 대중성을 바란다는 글쟁이나 지식인은 요즈막 이 나라 사람들 흐름 그대로 영어를 곧잘 섞으며 지식 자랑이 살며시 묻어나는 글을 쓸 테고요.

 사진기자이기 때문에 로모사진기를 안 써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기자이면서 파노라마사진기를 쓸 수 있습니다. 집에서 내 아이를 사진으로 담으니 똑딱이로 쓸 수 있고, 손전화로 써도 즐겁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삶과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나는 내 삶을 아름답게 빛내고 싶어서 내가 사랑하는 살붙이하고 날마다 살을 부빕니다. 내 보금자리가 십 억 부동산 아파트이건 오천만 원 전세 아파트이건 대수롭지 않아요. 달삯 삼십오만 원을 치르는 골목집 2층 벽돌집이건 한 해에 오십만 원을 내며 살아가는 시골마을 외딴집이건 대단하지 않습니다. 내 사랑이 깃들고 내 사랑을 나누는 고운 짝꿍하고 어깨동무하면 즐겁습니다.

 사진이 사진으로 되는 길은 사진으로 한몸이 되는 사랑길입니다. 사진으로 담을 이야깃거리를 멀디먼 나라밖이나 두메자락에서 찾아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을 이야깃거리는 커다란 도시 밤하늘을 빛내는 불빛에 있지 않고, 깊디깊은 숲속 높직한 늙은나무에 있지 않아요.

 모두 사진이 됩니다. 내 삶을 함께하는 내 사랑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입니다. 사랑을 함께하는 사진인 줄 생각하며 느끼고 싱긋 웃을 수 있을 때에, 또 사랑을 나누는 삶이라고 헤아리고 느끼는 한편 가슴 에며 울 수 있을 때에, 바야흐로 사진 하나 씩씩하게 뜀박질을 하면서 태어납니다. (4344.7.3.해.ㅎㄲㅅㄱ)


― 기자가 바라본 기자 (전민조 사진·글,대가 펴냄,2008.8.25./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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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Strand (Hardcover)
Mark Haworth-Booth / Aperture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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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홀로 거룩할 수 없습니다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7] 폴 스트랜드(Paul Strand), 《Paul Strand》(Aperture,1987)



 먹고 싶지 않은 밥을 먹으면서 맛을 살피거나 가누어야 하는 요리비평가라면 무척 따분하면서 괴로우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밥먹기나 맛보기를 즐기지 않으면서 요리비평으로 돈벌이를 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릅니다만, 오직 돈벌이로 요리비평을 하는 일이란 참 고단하겠지요.

 키우고 싶지 않던 아이를 낳았다는 어버이라면 어떤 마음일까 궁금합니다. 혼인을 해서 제금을 나면 두 어른이 집일과 집살림을 도맡아야 하는데, 제금을 나기 앞서까지 집에서 일이나 살림을 몸소 안 할 뿐더러 배우지 못하는 남자 어른은 집식구가 집일과 집살림을 나누어 맡으라 이야기할 때에 어떤 마음일는지 궁금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 가운데 스스로 쓰고 싶지 않으나 돈을 벌어야 하거나 이름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쩌면, 오늘날 적잖은 신문기자는 글쓰기를 좋아해서 기자가 되지는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나 만화를 그리는 사람 가운데 그림이나 만화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그림쟁이나 만화쟁이가 된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 가운데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사진찍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사진쟁이 한길을 걷겠다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진찍기를 돈벌이로 삼으면서 틈틈이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책 《Paul Strand》(Aperture,1987)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사진쟁이 폴 스트랜드 님은 1890년에 태어나 1976년에 숨을 거둡니다. 1987년에 나온 《Paul Strand》는 폴 스트랜드 님 사진삶을 기려 96쪽으로 간추린 작은 책입니다. 이 한 권으로 여든여섯 해에 걸친 폴 스트랜드 님 삶을 모두 그러모은다든지 낱낱이 보여준다든지 할 수 없습니다. 이 조그마한 사진책으로 폴 스트랜드 님이 ‘얼마나 거룩한 사진쟁이인가?’라든지 ‘새로운 사진밭을 어떻게 일구었는가?’를 밝힐 수 없습니다. 그저 ‘폴 스트랜드 님이 좋아하며 즐긴 사진’ 가운데 ‘폴 스트랜드 님이 죽고 난 다음, 뒷사람 눈으로 바라볼 때에 더욱 좋아하며 즐기는 사진’이 무엇인가를 몇 가지 들출 뿐입니다.

 1915년에 찍었기에 ‘첫무렵 사진밭을 일군’ 작품으로 여길 수 없습니다. 1953년에 찍었으니 ‘2053년에 누군가 찍을 사진’과 견주어 더 나은 작품이라 여길 수 없습니다. 폴 스트랜드 님은 1890년에 태어나 1976년에 숨을 거두었으니, 1915년에도 사진을 찍고 1953년에도 사진을 찍을 뿐입니다. 폴 스트랜드 님이 몸과 마음에 기운이 감돌며 한창 신나게 온누리 곳곳을 씩씩하게 밟으면서 마주한 사람과 삶과 사랑을 사진이라는 이야기로 갈무리했을 뿐입니다.

 어린이를 바라보면 보드랍고 탱탱한 살결이 아름답습니다. 늙은이를 바라보면 깊이 패거나 퀭한 주름살과 눈자위가 아름답습니다. 가느다란 풀잎에 살짝 생채기가 나는 버섯이 아름답습니다. 풀잎에 곧게 나는 무늬가 아름답습니다. 사람들 살림살이를 만들건 전쟁무기를 만들건, 무언가를 만드는 공장 기계가 아름답습니다.

 파란하늘 하얀구름이 아름답습니다. 돌길을 아이를 안고 맨발로 걷는 아주머니가 아름답습니다. 장님이라는 이름패를 목에 건 할머니 목 언저리에 붙인 인증딱지가 아름답습니다. 내리쬐는 햇살이 건물에 살짝살짝 가리며 새삼스레 이루어지는 그림자와 빛무늬가 아름답습니다. 울타리가 아름답고 살림집 창문과 문턱이 아름답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곳이 아름답습니다. 내가 뿌리내려 살아가는 보금자리가 아름답습니다.

 사진에는 무슨무슨 주의나 주장이란 부질없습니다. 패션에는 유행이 있어 열 해나 스무 해를 사이에 두고 돌고 돈다는데, 사진에도 이런 물결이 있어 돌고 돌는지 모르지만, 무슨무슨 주의나 주장에 따라 찍는 사진이란 참 덧없습니다. 내 삶이나 사랑이나 사람 이야기가 아닌 주의나 주장을 사진에 담으면 재미없습니다. 몸을 돌보려고 입는 옷이고, 몸을 살찌우려고 먹는 밥이며, 몸을 쉬려고 보살피는 집입니다.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며 집을 건사하는 사람들이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꿈과 땀으로 삶을 일굽니다. 다 다른 사진쟁이가 다 다른 사진기를 손에 쥐고는, 다 다른 삶을 어떠한 꿈과 땀으로 일구는지를 찬찬히 살피면서 천천히 담습니다.

 홀로 거룩할 수 없는 사진입니다. 거룩하게 살아가는 이웃과 함께 거룩한 사진입니다. 홀로 아름다울 수 없는 사진입니다. 아름다이 지내는 이웃과 어깨동무하며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맑은 눈으로 맑게 바라보는 사람이 맑은 사진을 얻을는지 모릅니다. 밝은 눈썰미로 밝게 알아채는 사람이 밝은 사진을 이룰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맑게 바라보든 흐리멍텅하게 바라보든, 내가 바라보는 곳에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자연이든 늘 그대로 있습니다. 밝게 알아채든 알아보든 알아내든, 내가 알아채거나 알아보거나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사람이나 사물이나 자연은 언제나 고스란히 있습니다.

 사진으로 찍어 놓았기에 더 거룩하거나 뜻있거나 값있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어 놓지 못했기에 아쉽거나 안타깝거나 슬프지 않습니다.

 가슴으로 느낄 사진이라면 가슴으로 찍으면 됩니다. 가슴으로 찍은 사진을 가슴으로 느끼면 넉넉합니다. 역사에 적바림하려고 찍는 사진이란 없습니다. 사진을 역사에 적바림하려 하지 말고, 내 마음에 찬찬히 아로새기면서 좋아하면 기쁩니다. 새로운 흐름이나 물결을 만들려고 찍는 사진이란 없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내 삶이라고 느끼면서 날마다 새롭게 바라보면 좋은 사진입니다. 새로운 바람이 되거나 새로운 주의나 주장이 되는 사진이란 없어요. 한 번 보고 휙 덮는 사진이 아닌, 우리 집 가장 시원한 벽 한켠에 예쁘게 붙여 언제까지나 바라볼 사진이 있습니다.

 어느 사진이든,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내가 좋아하면서 즐기는 어여쁜 삶을 사랑스레 담을 뿐입니다. 2500년대나 3000년대를 살아갈 뒷사람이 보기에는, 1900년대를 가로지르는 폴 스트랜드 님 사진이든 2000년대를 아우를 오늘 우리들 사진이든 똑같습니다. (4344.6.27.달.ㅎㄲㅅㄱ)
 

 

(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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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나's 서울놀이 - 배두나의 일상, 그리고 서울여행
배두나 글.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서울이 예쁘면 ‘예쁜 사진’을 보여주셔요
 [찾아 읽는 사진책 34] 배두나, 《두나's 서울놀이》(중앙북스,2008)



 140쪽이 되어서야 비로소 ‘예쁘게 찍어서 보여주려’ 했다는 서울 모습이 나오는 《두나's 서울놀이》(중앙북스,2008)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배두나 님은 “해외여행 후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볼 때면 느끼던, 그 설렘과 반가움, 되돌아와 쉴 수 있는 내 공간의 따뜻함과 편안함을, 사진에 남겨 두고 싶었다(17쪽).”고 이야기하며, “서울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나의 집이 있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있고, 행복한 추억이 가득한 곳(50쪽)”이기 때문에 “서울을 실제보다 더 예쁘게 보이도록 찍으려고 욕심을 부렸다(50쪽).”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배두나 님이 찍은 《두나's 서울놀이》에 나오는 서울은 참말 ‘예쁜 서울’이라 할 만할까요. 참으로 예쁘게 찍어 사랑스러운 서울이라 할 만한가요.

 《두나's 서울놀이》라는 책에는 ‘예쁜 서울’이 한 가지도 나오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두나's 서울놀이》라는 책에는 ‘배두나 단골가게’가 나올 뿐입니다. 책이름 그대로 ‘배두나가 서울에서 노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지, ‘예쁜 서울을 보여줄 만한 이야기’는 없는 책이에요.

 곧, ‘배두나 님 스스로 좋아하는’ 서울이기에 마냥 ‘스스로 예쁘게 바라보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글을 곁들여 묶은 《두나's 서울놀이》예요.

 이리하여, 배두나 님은 이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는 지하철을 타고 보니, 서울이 다시 보였다(212쪽).”는 말마디마따나, 배두나 님은 ‘여느 사람이 여느 삶을 여느 사람하고 사귀면서 보내는 서울(과 한국이라는 터)에서 퍽 멀리 떨어진’ 채 살아갑니다. 늘 자가용을 타야 할 테니까요. ‘여느 사람’한테 붙잡혀 사인공세에 시달린다든지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는 일에 시달리기 싫거나 힘드니까요.

 지하철이든 시내버스이든 ‘추억을 떠올리려’고 타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일터를 다니든 배움터를 오가든, ‘여느 삶(일상)’으로 타는 지하철이면서 시내버스이고, 이 지하철과 시내버스에서 아침저녁으로 오징어떡이 되도록 시달립니다. 도무지 추억으로 여길 수 없는 메마른 삶이고, 차마 추억을 떠올리기 벅찬 힘겨운 나날이에요. 배두나 님과 여느 사람은 퍽 일찍부터 ‘시달리는 삶’이 다릅니다. 시달리는 삶이 다르니 바라보는 삶이나 누리거나 즐기는 삶이 다릅니다. 누리거나 즐기는 삶이 다를 때에는 생각하는 삶이나 사랑하는 삶 또한 다를밖에 없어요.

 사진기를 쥔 사람이 같은 자리에 서서 같은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하더라도, 똑같은 사진이 나올 수 없습니다. 배두나 님은 배두나 님대로 재미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면 되고,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대로 재미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면 돼요. 그러니까, 《두나's 서울놀이》는 처음부터 굳이 ‘서울을 더 예쁘게 찍어서 내보일’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배두나 님 스스로 좋아하는 삶결대로 서울을 바라보면서 하나씩 담으면 됩니다. 나중에 이 책을 장만해서 사진을 들여다볼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보거나 말거나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좋게 봐주면 좋게 봐주니 고맙게 여기면 되고, 나쁘게 봐주면 나쁘게 바라보는 대로 나한테 모자라거나 아쉬운 대목을 고맙게 엿들을 수 있다고 여기면 됩니다.

 《두나's 서울놀이》라는 책은, 그예 배두나 님을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예쁘게 다가설 수 있으면 됩니다. 배두나 님을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누군가는 집안일이 힘들지 않으냐며 도우미 아줌마를 써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 누군가 나의 살림을 보는 것이 싫다. 그것도 우리 엄마 닮았다. 그리고 집안 청소는, 운동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나에겐 아주 유익한 아침 운동이다. 사방이 막혀서 답답한 피트니스 센터에서 러닝머신 위를 하염없이 달리는 것보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 적어도 나에겐 더 재미있고 보람 있다(31쪽).”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서로서로 삶을 한껏 사랑하면서 즐기는 길을 찾자고 말머리를 열면 됩니다.

 왜냐하면, 더 예쁜 삶터란 없거든요. 도쿄가 서울보다 더 예쁘지 않고, 런던이 도쿄보다 더 예쁘지 않으며, 파리가 도쿄보다 더 예쁘지 않습니다. 또한, 서울이 파리보다 더 예쁘지 않아요.

 도쿄는 도쿄대로 예쁘고, 서울은 서울대로 예쁘며, 런던은 런던대로 예쁜 한편, 파리는 파리대로 예쁩니다.

 춘천은 춘천대로 예쁠 테지요. 부여는 부여대로 예쁠 테고, 진주는 진주대로 예쁩니다. 더 하거나 덜 하지 않습니다. 보금자리로 여겨 따순 마음으로 어깨동무하려는 사람들 몸짓대로 예쁩니다.

 배두나 님은 처음부터 ‘배두나는 예쁜 삶과 예쁜 놀이와 예쁜 사람을 좋아해요’ 하고 한 마디를 읊으면서 나아가면 됩니다. ‘배두나 님 추억이 어린 곳은 배두나 님 눈썰미로는 하염없이 예쁠는지 모르나, 다른 여느 사람한테는 심심하거나 밋밋할 수 있다’고 느껴야 합니다. 나로서는 예뻐 보이는 모습을 남한테까지 예쁘게 여기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머리글에서든 몸글에서든 오붓한 삶과 호젓한 꿈을 사랑스레 즐기면서 머잖아 ‘뉴욕놀이’를 선물해 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러거나 저러거나 그저 ‘배두나대로 논 나날’을 보여주면 좋겠어요.

 《두나's 서울놀이》는 ‘배두나대로 논 나날’에도 미치지 못하고, ‘서울을 예쁘게 누리거나 즐긴 삶’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설픈 이야기로 두루뭉술합니다.

 서울이 예쁘면 참말 ‘예쁜 사진’을 보여줄 노릇입니다. 서울이 예쁘면 이 예쁜 서울 구석구석을 ‘마실하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내는 사람’으로 보여줄 일입니다. 구경하는 사진은 언제나 재미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습니다. 런던으로 찾아가든 도쿄로 찾아가든, ‘한두 번 찾아간’ 사람이 ‘오래오래 산’ 사람보다 덜 보거나 못 보지 않아요. 거꾸로, 서울에서 태어나 오래오래 살았대서 서울을 더 잘 바라보거나 즐기지 않습니다. (4344.6.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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