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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바라본 기자 - 전민조 포토 에세이
전민조 지음 / 대가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사진이 사진으로 되는 길을 찾기
[찾아 읽는 사진책 39] 전민조, 《기자가 바라본 기자》(대가,2008)
사진기를 손에 쥐고 사진을 찍지만, 막상 사진길을 걷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연필이나 자판을 손에 쥐고 글을 쓰지만, 정작 글길을 걷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 또한 무척 많아요.
사진길이란 돈을 버는 길, 곧 돈길이 아닙니다. 글길이란 돈을 벌어들이는 길, 그러니까 돈길이 아니에요.
어쩌면 누구나 다 알 만한 이야기라 할 테지만, 가만히 보면 누구도 모르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하는 길이란, 다른 한 사람한테 있는 돈을 보는 길이 아니에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돈이 있느냐 없느냐는 대수롭지 않아요. 내가 사랑할 만한 사람인지, 내 사랑을 듬뿍 쏟거나 바치거나 나눌 사람인지, 나와 함께 사랑꽃을 피우려는 사람인지를 바라볼 뿐입니다. 어느 한 사람을 만나서 함께 살아간다 할 때에는, 이이가 돈을 잘 벌든 못 벌든 그닥 대수롭지 않아요. 돈을 잘 벌면 잘 버는 대로 알뜰히 갈무리해서 내 둘레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하고 예쁘게 쓰면 됩니다. 돈을 못 벌면 못 버는 대로 허리띠를 졸라매거나 나 스스로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살림돈을 벌면 돼요. 사랑길이란 사랑을 보며 사랑을 믿는 길이에요.
사진길이란 사진을 바라보며 사진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사진을 찍어 돈을 번다거나 사진으로 예술작품을 만든다거나 사진으로 이름을 날리는 길이 아닙니다. 사진 강의를 한다든지, 사진학과 교수가 된다든지, 사진학 논문을 쓰는 길이 사진길이 될 수 없습니다. 사진기자가 되거나 사진작가가 되는 길 또한 사진길이지 않아요. 사진은 오직 사진과 내 삶을 하나로 그러모으면서 나와 이웃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기자가 아니어도 찍는 사진이고 작가가 아니라도 찍는 사진이니까요.
요리사가 아니어도 누구나 밥을 합니다. 요리사가 아니라지만 사랑스러운 손길로 사랑스러운 밥을 차려서 사랑스러운 살붙이하고 먹습니다.
교사자격증이 있어야 내 아이를 잘 가르치거나 키우지 않습니다. 한국어능력시험 몇 급 자격증이 있어야 내 아이가 한국에서 살아가며 이웃 한국사람과 주고받을 한국말을 알뜰살뜰 가르치거나 물려주지 않아요. 나 스스로 내 삶을 얼마나 사랑하며, 어떻게 아끼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 삶을 사랑하듯이 내 말을 사랑하고, 내 말을 사랑하는 만큼 내 삶을 사랑해요.
사진기자로서 이웃 사진기자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은 전민조 님은 신문사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기자가 바라본 기자》(대가,2008)라는 사진책을 내놓습니다. 전민조 님이 몸담은 신문사에서 마주한 숱한 기자들 모습과 삶과 이야기를 사진 하나에 글 하나를 엮어 사진책으로 내놓습니다.
이 가운데 “최일남 기자는 전두환 정권 때 특별한 이유 없이 해직된 기자였다 … 필자는 슬쩍 그의 인터뷰 노트를 보았다. 질문할 사항이 대학노트 한 권에 꽉 차 있었다. 그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기사 한 줄 한 줄에 목숨을 걸 듯 피로 글을 쓰는 것 같았다. 저렇게 지독하게 인터뷰 자료를 준비해서 글을 쓰는데 사진도 셔터만 눌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196쪽).” 하는 이야기를 곰곰이 되씹습니다. 사진기자였던 전민조 님은 이웃 기자를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살가웁거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기자한테서는 살가웁거나 아름다운 모습을 배웁니다. 어딘가 아쉽거나 어수룩한 기자한테서는 나 스스로 얼마나 아쉽거나 어수룩한가를 뒤돌아보며 배웁니다. 수없이 취재를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내 삶과 사진이 어느 만큼 내 삶과 사진을 빛낼 만큼 튼튼한가를 되짚습니다.
사랑이 좋으니 사랑을 합니다. 내 살붙이가 좋으니 내 살붙이가 먹을 밥을 차리고 입을 옷을 빨아서 개며 함께 지내는 집을 건사합니다. 사진이 좋으니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사진을 찍습니다. 더 낫다는 솜씨를 자랑하는 사진기를 장만해서 찍을 수 있고, 내 주머니에 걸맞게 값싼 사진기를 마련해서 찍을 수 있습니다. 값싼 사진기라서 사진이 더 돋보이지 않고, 값비싼 사진기라서 사진이 더 모자라지 않습니다. 필름이라서 더 훌륭하거나 디지털이라서 더 못나지 않습니다. ㄱ신문 기자이니까 보도사진이 더 알차지 않고, ㄴ잡지 기자이니까 패션사진이 더 예쁘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쥐는 사람 매무새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입니다.
“목숨을 걸 듯 피로 글을 쓰는” 취재기자는 목숨을 걸 듯 피로 글을 쓰는 느낌과 빛이 서립니다. 그때그때 마감에 쫓기어 턱걸이로 글을 채우는 취재기자는 마감에 쫓기어 턱걸이로 글을 채운 느낌과 결이 깃듭니다.
요즈음 수없이 떠도는 ‘서평단’ 사람들처럼 ‘주례사 서평을 쓰는 사람’은 주례사 서평 느낌과 무늬가 감도는 글을 쓸 뿐입니다. 학자가 되고자 글을 쓰는 사람은 학자 티가 물씬 나는 글을 쓰겠지요. 대중성을 바란다는 글쟁이나 지식인은 요즈막 이 나라 사람들 흐름 그대로 영어를 곧잘 섞으며 지식 자랑이 살며시 묻어나는 글을 쓸 테고요.
사진기자이기 때문에 로모사진기를 안 써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기자이면서 파노라마사진기를 쓸 수 있습니다. 집에서 내 아이를 사진으로 담으니 똑딱이로 쓸 수 있고, 손전화로 써도 즐겁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삶과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나는 내 삶을 아름답게 빛내고 싶어서 내가 사랑하는 살붙이하고 날마다 살을 부빕니다. 내 보금자리가 십 억 부동산 아파트이건 오천만 원 전세 아파트이건 대수롭지 않아요. 달삯 삼십오만 원을 치르는 골목집 2층 벽돌집이건 한 해에 오십만 원을 내며 살아가는 시골마을 외딴집이건 대단하지 않습니다. 내 사랑이 깃들고 내 사랑을 나누는 고운 짝꿍하고 어깨동무하면 즐겁습니다.
사진이 사진으로 되는 길은 사진으로 한몸이 되는 사랑길입니다. 사진으로 담을 이야깃거리를 멀디먼 나라밖이나 두메자락에서 찾아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을 이야깃거리는 커다란 도시 밤하늘을 빛내는 불빛에 있지 않고, 깊디깊은 숲속 높직한 늙은나무에 있지 않아요.
모두 사진이 됩니다. 내 삶을 함께하는 내 사랑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입니다. 사랑을 함께하는 사진인 줄 생각하며 느끼고 싱긋 웃을 수 있을 때에, 또 사랑을 나누는 삶이라고 헤아리고 느끼는 한편 가슴 에며 울 수 있을 때에, 바야흐로 사진 하나 씩씩하게 뜀박질을 하면서 태어납니다. (4344.7.3.해.ㅎㄲㅅㄱ)
― 기자가 바라본 기자 (전민조 사진·글,대가 펴냄,2008.8.25./2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