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
이한구 지음 / 눈빛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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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잡지 <포토닷> 2014년 11월호에 함께 싣는 글이다


..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86



온마음 다해 사랑하는 사진

― 군용

 이한구 사진

 눈빛 펴냄, 2012.10.16.



  들꽃을 사진으로 찍으려면 들꽃이 핀 곳으로 가야 합니다. 들꽃이 피는 곳으로 가지 않으면 들꽃을 사진으로 못 찍습니다. 왜냐하면, 들꽃이기 때문입니다. 동백꽃을 사진으로 찍으려면 동백나무가 자라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동백나무가 자라는 곳에 가서 동백꽃이 피는 이른봄을 맞이해야 비로소 동백꽃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동백꽃이기 때문입니다.


  사진만 헤아린다면, 옷이나 가방이 새긴 들꽃 그림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들꽃’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찻잔이나 책에 새긴 들꽃 사진을 다시 사진으로 담으면서 ‘들꽃’하고 잇닿는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들꽃을 그림으로 그린다든지 찻잔에 들꽃 사진을 새기려면, 맨 먼저 들꽃한테 찾아가서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린 사람이 있었을 테지요.


  내 아이를 낳지 않아도 이웃에 아이가 있으면,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과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사로잡혀 골목에서 놀지 못하지만, 아시아 여러 나라를 찾아다니면서 골목놀이 어린이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한편, 골목동네를 밀어내고 들어선 아파트를 사진으로 찍고 아파트 놀이터를 사진으로 찍으면서, 이러한 것을 빗대어 ‘골목놀이 어린이’ 이야기를 곰곰이 짚을 수 있습니다.



.. 군입대 통지서가 나왔다. 잠잘 때도 카메라를 머리맡에 두고 자던 스무 살 무렵이었다. 예상했던 일이기에 놀라진 않았으나, 몇 년 동안 사진을 찍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절망감이 들었다. 늘 해 오던 대로 카메라를 들고 종로와 청계천 일대를 어슬렁거렸는데 유독 휴가 나온 군인들이 눈에 띄었다 ..






  이한구 님은 《군용》(눈빛,2012)이라는 사진책을 선보였습니다. 이한구 님이 겪은 군대 이야기를 담은 사진책입니다. 이 사진책에 깃든 군대 모습을 돌아보면, 함부로 찍을 수 없는 모습이라든지, 군대에서 바깥에 비밀로 감추는 모습을 엿볼 만합니다. 이한구 님은 책끝에 몇 마디를 붙이면서 “촬영한 필름들이 하나둘 늘어 갔다. 피엑스에서는 흑백 필름의 현상이 불가능했다. 비닐봉지로 싸서 땅속에 묻었다. 비가 오면 필름에 빗물이 스밀까 봐 잠이 오지 않았다. 휴가 때마다 혼자만의 수송작전을 펼쳐서 집까지 공수했다.” 하고 밝힙니다. 군대에서 현상이나 인화를 하기 힘들기도 했을 테지만, 현상과 인화를 했더라도 이 사진을 섣불리 다른 사람한테 보여줄 수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군대 바깥에서는 ‘아무것 아니네’ 하고 여길 수 있지만, 군대에서는 ‘군사기밀 위반’이라고 할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군사기밀을 들먹이는 군대에서도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계급이 있는 간부가 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사진을 찍습니다. 비무장지대에서건 철책에서건 참호에서건 지오피 초소에서건 수색이나 매복을 하는 때이건 깊은 두멧자락에 천막을 치고 여러 날 묵으며 훈련을 할 때이건, 간부들은 거리끼지 않고 사진을 찍습니다. 사열을 사진으로 찍기도 하고, 대대장이나 연대장이나 사단장 상장을 줄 적에도 사진을 찍으며, 단체행사나 진급신고를 할 적에도 사진을 찍어요.


  여느 사병은 사진기를 몰래 숨겨서 사진을 찍습니다. 하사관이나 중대장이 틈틈이 관물검사를 하지만, 사병끼리 숨긴 사진기는 거의 들통이 나지 않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함께 숨깁니다. 서로서로 아주 깊은 곳에 사진기와 필름을 감춥니다.


  내가 군대에 있을 적을 돌이키면, 필름 한 통조차 군대에 못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내가 있던 군대는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원당리라는 곳에 있었는데, 지도로 보면 남녘 땅이 아닌 북녘 땅이었습니다. 지오피에서 내려와 주둔지에 있더라도 외출이나 외박을 ‘리 단위 작은 마을’ 언저리에서 맴돌았고, 이곳에서 몇 곱에 이르는 바가지를 쓰곤 했습니다.





.. 가자, 최전방으로. 어차피 가야 하는 군대라면 후방에서 뭉개지 말고 최전방을 겪기로 마음을 굳혔다. 역으로 생각하면 입대는 내 삶에서 최전방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다. 군대. 외부에서 주어진 의미 외에, 나만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보병이면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는 ..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군대에서 찍는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돈과 이름과 힘이 없으면 모두 끌려가는 군대라는 곳에서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회에서 민주다 평등이다 평화다 하고 외치더라도, 군대에서는 민주도 평등도 평화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군대라는 곳은, 전쟁훈련과 살인훈련을 시켜서 적군을 무너뜨리려는 뜻으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줄을 대어 널널한 곳으로 빠지는 사람이 많고, 아무런 줄이 없는 사람은 가장 막다르거나 고된 멧골짜기 추운 곳으로 가기 일쑤입니다. 내가 군대에 있던 1995∼97년만 하더라도 도시 인구가 아주 많았고,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은 매우 적었는데, 내가 있던 군대에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들어온 사람과 여느 공장 일꾼으로 있다가 들어온 사람이 아주 많아 ⅔를 차지했어요.


  사내는 군대에 가야 사람이 된다는 얘기가 떠돌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군대에 들어가서 겪기로는, 군대에 가면 거친 말을 배우고 주먹질에 길들며 계급과 신분에 따라 고분고분 따라야 하는 제도권 질서에 얽매입니다. 서로 사람답게 아끼는 사랑이나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슬기로운 삶을 가꾸는 길을 배우지 못합니다. 게다가 젊은 사내를 꽁꽁 틀어막은 뒤 곧잘 성인비디오를 틀어 주는 군대이니, 학교나 사회에서 제대로 성교육이나 사랑교육을 받지 못한 젊은 사내는 가시내를 가시내가 아닌 성 노리개로 바라보는 눈길에 젖어듭니다.


  사회에 환하게 드러나지 않은 군대 모습이라고 할 텐데, 영화를 찍는 이는 군대에서 겪은 이야기를 무대나 장치로 되살려서 보여줄 수 있습니다. 글이나 그림은 군대에서 겪은 대로 머릿속으로 되살려서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진은 어떻게 군대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이루는 이야기인 사진은, 사진기도 필름도 못 들여오도록 하는 군대에서 어떤 이야기를 담아서 보여줄 수 있을까요.


  나는 군대에서 1회용사진기를 썼습니다. 소대나 분대에서 돈을 모아 1회용사진기를 한 대 장만하기로 말을 맞춥니다. 그러고는 꼼꼼하게 계획을 세웁니다. 누군가 휴가를 나가거나 외출을 나갔다가 돌아올 적에 1회용사진기를 챙겨서 가져와야 하는데, 휴가자나 외출자가 부대로 돌아올 때에 경계근무를 서는 사람이 누구인지 찬찬히 따집니다. 경계근무 서는 이가 가까운 사이라면, 이녁한테 줄 선물을 미리 챙겨 사진기를 봐 달라 말합니다. 경계근무 서는 이가 깐깐하다면, 1회용사진기를 비닐봉지로 싸서 땅에 파묻고 부대로 돌아갑니다. 그러고는 밤에 경계근무를 서러 나올 적에 ‘아까 파묻은 자리’로 몰래 조용히 가서 캡니다.





.. 1989년, 원하던 대로 최전방 15사단 승리부대에 배치됐다. 찍고 싶은 것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크고 극적인 것들을 찍게 되리라 여겼는데, 시간이 갈수록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작고 애잔한 것들이었다 ..



  분대와 소대마다 몰래 들여와서 찍은 사진은 다시 몰래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는데, 면소재지에 있는 문방구에 맡겨서 필름을 찾고 사진을 뽑습니다. 원본필름은 문방구에서 바로 불살라 없앱니다. 우리는 사진 몇 장만 챙깁니다. 비무장지대 안쪽 지오피와 선점에서 내내 있었기 때문에, 사진기나 필름이 사열이나 검열이나 검사에서 걸리면 바로 영창으로 잡혀갔어요. 그런데, 몰래 사진기를 들여와서 몰래 찍고 몰래 찾은 사진은 하나같이 ‘금강산을 뒤로 하고 손가락 브이를 그린 모습이거나, 눈을 쓸다가 찍은 모습, 비가 내려 길이 깎였기에 곡괭이와 삽을 들고 길을 다시 닦으려고 일하던 모습, 얼굴을 재로 새까맣게 발라서 야간행군을 하다가 찍은 모습, 내무반에서 깔깔거리며 놀던 모습’입니다. 이른바 군사기밀에 걸릴 만한 모습은 처음부터 찍을 일이 없습니다. 젊은 사내들이 사회와 아주 동떨어진 데에 갇혀서 쓸쓸하게 지내며 끼리끼리 웃고 노는 모습만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계급과 신분에 따라 거친 말과 주먹과 발길이 오가지만, ‘군대 기념’으로 찍는 사진에는 웃고 놀며 까부는 모습만 가득합니다. 고작 스물을 살짝 넘긴 앳된 사내들이 개구지게 뒹구는 모습입니다.






.. 결국 카메라를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은 상병이 되고 나서였다. 그러나 자유로운 촬영은 불가능했다. “이한구 상병의 방독면은 카메라인가? 카메라가 너를 살려 주나?” 방독면 케이스에 카메라를 넣고 화학전 대비 야간훈련을 나갔다가, 부대장으로부터 가스실에 맨 얼굴로 들어가는 처벌을 받기도 했다 ..



  사진은 언제 어디에서나 찍습니다. 사진은 온마음을 다해 삶을 사랑하면서 찍습니다. 이한구 님이 겪은 군대 이야기가 깃든 《군용》에도, 사진가 아닌 여느 군인이던 젊은 사내가 군대에서 끼리끼리 어울려 웃고 울며 찍은 ‘기록’에도 애틋한 삶이 흐릅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군대에서 온갖 폭력과 살인 사건이 끊이지 않는데, 군인한테 사진기를 손에 쥐어 주고 스스로 군대살이를 사진으로 담으라 하면 어떤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을 수 있을까요. 군대는 전쟁훈련을 시키는 곳이라 평화와 동떨어지지만, 군인이 되어야 하는 젊은 사내한테 사진기를 손에 쥐어 주면, 평화나 사랑이라는 싹이 살짝 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4347.10.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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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타래 푸는 글쓰기



  오랫동안 엉킨 실타래를 푼다. 아마 이 실타래는 스무 해 동안 얽혔으리라 느낀다. 스무 해에 걸친 실타래가 어젯저녁에 비로소 풀린다. 아니, 엊저녁에 비로소 나 스스로 실타래를 푼다.


  어떤 실타래를 풀었는가 하면, ‘짓다(짓기·지음)’와 ‘만들다(만들기)’가 서로 어떻게 얽히는가 하는 실타래를 풀었다. 어릴 적에 학교에서는 ‘글짓기 숙제’와 ‘만들기 숙제’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글짓기’라는 이름을 썼지만, 글을 짓도록 하지 않았다. 글을 억지로 짜맞추거나 만들도록 시켰다. 예나 이제나 똑같은데, 학교에서 시키는 짓은 ‘글 짜맞추기’나 ‘글 만들기’이다. 그러니, ‘공작 숙제’만 ‘만들기 숙제’로 이름을 붙일 노릇이 아니라, ‘글 쓰는 숙제’도 ‘글 만들기 숙제’로 이름을 붙여야 올바르다.


  요즈음은 ‘글쓰기’라는 낱말을 두루 쓰는데, 요즈음 학교나 사회나 문학에서 떠도는 ‘글쓰기’도 참다운 글쓰기는 아니다. 요즈음 떠도는 글쓰기는 허울만 글쓰기일 뿐, 속살을 살피면 ‘글 엮기’라고 느낀다.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글을 엮도록 이끄는 요즈음 ‘글쓰기 교육’이다. 많이 읽히거나 잘 팔리는 글이 되도록 글을 엮게끔 가르치는 오늘날 ‘글쓰기 강의나 교재’이다.


  예전에는 ‘글짓기’라는 이름을 엉터리로 썼다면, 오늘날에는 ‘글쓰기’라는 이름을 엉뚱하게 쓴다. 예나 이제나 똑같다. 이름은 바꾸었으나 속살이나 알맹이는 그대로라 할 만하다.


  글짓기는 삶을 새로 짓듯이 쓰는 글이다. 글쓰기는 삶을 수수하게 밝히면서 쓰는 글이다. 이 두 가지를 제대로 모르고서 글을 만지겠다고 한다면, 언제나 ‘글 만들기’나 ‘글 엮기’ 두 가지 가운데 하나에서 맴돌고 말리라. 4347.1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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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63) 속의 11


타임 캡슐 속의 필통

《남호섭-타임 캡슐 속의 필통》(창비,1995) 책이름


 타임 캡슐 속의 필통

→ 타임 캡슐에 넣은 필통

→ 타임 캡슐에 있는 필통

→ 타임 캡슐에 담긴 필통

→ 타임 캡슐에 들어간 필통

 …



  토씨 ‘-의’를 붙이면 뜻이나 느낌이 두루뭉술합니다. 무엇을 가리키거나 나타내려 하는지 제대로 안 드러납니다. 이 글월은 무엇을 말하려는 뜻이었을까요? 타임 캡슐에 ‘넣은’ 필통일까요, 타임 캡슐에 ‘있는’ 필통일까요, 타임 캡슐에 ‘담긴’ 필통일까요, 타임 캡슐에 ‘들어간’ 필통일까요?


  ‘-의’를 붙이면 이 모두를 뜻하지 않습니다. ‘-의’를 붙여서 이 모두를 뜻하려 했다면, 글을 엉터리로 쓴 셈입니다. 이것도 뜻하고 저것도 뜻하며 그것도 뜻하는 말씨란 없습니다. 타임 캡슐과 필통이 서로 어떻게 얽히는지 똑똑히 밝혀서 적어야 제대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4347.1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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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424) 속의 8


일본에서는 1967년에 마지막으로 황새가 자연속의 자라는 나무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김황/김정화 옮김-황새》(우리교육,2007) 100쪽


 자연속의 자라는 나무

→ 자연에서 자라는 나무

→ 숲에서 자라는 나무

 …



  “자연속의 자라는 나무”는 어떤 나무를 가리킬는지 궁금합니다. 알쏭달쏭합니다. “자연 속의 나무”도 아닌 “자연속의 자라는 나무”는 무엇일까요? 설마, ‘自然中の成長の木’을 고스란히 한글로만 옮겨적은 글은 아닐까 궁금합니다.


  이 보기글이 글다우려면 “자연 속에서 자라는 나무”로 고쳐써야지 싶습니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자라는”도 올바르지 않습니다. “자연에서 자라는”으로 적어야 알맞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하면, 나무가 ‘자연’에서 자라지, 어디에서 자랄까요? “자연에서 자라는 풀”이나 “자연에서 자라는 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숲에서 자라는 풀·꽃·나무”입니다. 또는 “들에서 자라는 풀·꽃·나무”입니다. 때로는 “시골에서 자라는 풀·꽃·나무”입니다.


 시골에서 자라는 나무

 숲에서 자라는 나무

 들에서 자라는 나무


  이 보기글은 동물원에서 태어난 황새나 동물원에서 돌보는 황새 이야기를 다룹니다.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사람이 부러 심지 않고 스스로 자라난 나무에서 보금자리를 튼 황새 이야기를 하려고 “자연에서 자라는 나무”라고 적었구나 싶습니다만, ‘숲’이라고 적어야 제대로 어울리겠다고 봅니다. 4341.6.16.달/4347.11.2.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일본에서는 1967년에 마지막으로 황새가 숲에서 자라는 나무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자연(自然)’은 그대로 두어도 될 만하지만, ‘사람이 따로 나무를 심어서 가꾸는 공원’이 아닌 곳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는 보기글이니, ‘숲’으로 손볼 때에 잘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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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607) 속의 9


이 사진집 속의 사진들에 대략적인 순서를 부여해 봤다

《드레이튼 해밀튼/권희종 옮김-한 미국인이 렌즈로 바라본 20년 간의 한국풍경》(생각의나무,2008) 9쪽


 이 사진집 속의 사진들

→ 이 사진책에 실린 사진들

→ 이 사진책에 담은 사진들

→ 이 책에 실은 사진들

→ 이 책에 담은 사진들

 …



  사진책이니 사진이 실립니다. 사진책이니 사진을 싣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사진책에 실린”이나 “사진책에 실은”으로 고쳐야 알맞을 텐데, 사진책에는 으레 사진을 담기 마련인 만큼, ‘사진책’이라 하지 않고 ‘책’이라고만 해도 넉넉합니다. 이리하여 “이 책에 실은 사진”이나 “이 책에 싣는 사진”처럼 적으면 한결 단출합니다. 4341.11.18.불/4347.11.2.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 책에 실은 사진에 얼추 차례를 매겨 보았다


‘대략적(大略的)인’은 ‘얼추’나 ‘엉성하나마’나 ‘성기게’로 다듬고, “순서(順序)를 부여(附與)해 봤다”는 “자리를 잡아 보았다”나 “차례를 매겨 보았다”로 다듬어 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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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217) -의 : 19살의 사회인


육상에선 무명인 19살의 사회인이야

《하야세 준,야지마 마사오/문미영 옮김-제3의 눈 1》(닉스미디어,2001) 98쪽


 19살의 사회인이야

→ 열아홉 살 사회인이야

→ 열아홉 살 일반인이야

→ 열아홉 살 보통 아이야

→ 열아홉 살 여느 아이야

→ 아직 선수가 아니고 열아홉 살이야

 …



  보기글에서 말하는 ‘사회인’은 ‘운동선수가 아닌 사람’을 가리키지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사회인’이라고 할 때에는 “사회에 있는 사람”이나 “군대 같은 곳에 매이지 않은 여느 사람들”을 가리킬 때입니다. 보기글에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일본에서는 ‘여느 자리에 있는 사람’을 ‘사회인’으로 가리킬는지 모르는데, 한국에서는 ‘일반인’이나 ‘보통 아이’로 적어야 잘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아니면 ‘선수가 아닌 사람’이라고 적습니다. 4341.1.27.해/4347.11.2.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육상에서는 안 알려진 열아홉 살이고 아직 선수가 아니야


‘무명(無名)인’은 ‘이름이 없는’이나 ‘알려지지 않은’으로 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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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202) -의 : 유디트의 달아오른 뺨


소피는 유디트의 달아오른 뺨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케 드브리스/박정화 옮김-두 친구 이야기》(양철북,2005) 63쪽


 유디트의 달아오른 뺨을 바라보며

→ 유디트 뺨이 달아오른 모습을 바라보며

→ 뺨이 달아오른 유디트를 바라보며

 …



  서양말을 한국말로 옮기든, 일본말을 한국말로 옮기든, 중국말을 한국말로 옮기든 늘 마찬가지입니다. 바깥말을 한국말로 옮길 적에는 우리 말법과 말씨와 낱말을 헤아려야 합니다. 거꾸로, 한국말을 서양말이나 일본말이나 중국말로 옮길 적에는, 서양 말법이나 낱말이나 말씨를 헤아려야겠지요. 일본 말법과 낱말이나 말씨를 헤아리고요.


  보기글을 봅니다. 서양 문학을 한국말로 옮긴 책에 나온 글입니다. “유디트의 달아오른 뺨”이라고 적는데, 이런 말씀씀이가 한국말이나 한국 말씨나 한국 말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이 나라에서는 입시교육만 있고 말 교육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적어 놓고도 무엇이 어떻게 뒤틀렸는지 못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옆에서 누군가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도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어요.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x)

 책을 읽으면서 (o)


  보기글을 곰곰이 뜯어 봅니다. (1) 소피는 유디트를 바라본다. (2) 유디트는 뺨이 달라올랐다. (1) + (2) = 소피는 유디트를 바라보는데, 유디트는 뺨이 달아올랐다. → 소피는 뺨이 달아오른 유디트를 바라보았다. ‘안긴 월’입니다. 4341.1.10.나무/4347.1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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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209) -의 : 간만의 차


배라고는 하지만 나룻배 같은 거였어, 간만의 차를 이용해 노를 저으며 드나들었지

《이시무레 미치코/김경인 옮김-슬픈 미나마타》(달팽이,2007) 187쪽


 간만의 차를 이용해

→ 밀물썰물을 살피며

→ 미세기에 따라서

→ 차고 비는 물을 보며

→ 물때에 맞춰서

→ 물때에 맞추어

 …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에, 학교에서 〈자연〉 공부를 할 때면 으레 “서해안 조수 간만의 차”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벗어나면 동네에서는 누구나, 어린 동무들끼리이든, 동네 어른들 사이에서든, 늘 ‘밀물썰물’을 말했어요.


  학교에서 시험을 치를 때에는 언제나 ‘간조’와 ‘만조’만 답으로 적도록 했습니다. ‘썰물’이나 ‘밀물’ 같은 말은 늘 뒷전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한국말을 한국사람이 뒷전으로 내몰았을까요? 오늘날은 달라졌을까요? 오늘날에도 학교에서는 한국말 ‘썰물·밀물’ 같은 낱말은 안 쓰려나요?


 간조(干潮) → 썰물

 만조(滿潮) → 밀물

 미세기 = 밀물썰물


  고등학교를 마친 뒤 서울에서 두 해 반쯤 대학교를 다니면서, 고향 아닌 곳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때, 바닷가 아닌 데 사람이나 서울사람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밀물·썰물’이라는 말을 못 알아듣거나 이런 낱말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모습을 봅니다. 바닷가라고 해도 동쪽과 남쪽 사람들 또한 비슷했어요. ‘왜 바닷물이 밀려갔다가 돌아와?’ 하며 못 믿어 하는 얼굴이거나 ‘밀물이 뭔데? 썰물이 뭔데?’ 하는 이야기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밀물을 본 적이 없으니 밀물을 모르겠지요. 썰물을 지켜본 적이 없이 책으로만 살짝 배우고 지나갔으니, 또는 ‘간조·만조·간만의 차’라는 말만 얼추 듣고 지나갔으니 마음이나 머리에 안 남을 테고요. 밀물과 썰물 이야기는 대학입시에 나오지 않으니 더더욱 모르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한자말 ‘간만(干滿)’은 “간조(干潮)와 만조(滿潮)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한자말로는 ‘간조’와 ‘만조’일 테지만, 한국말로는 ‘썰물’과 ‘밀물’입니다. 썰물과 밀물을 아우를 적에는 ‘밀물썰물’이라 합니다. 따로 ‘미세기’라고도 합니다.


  한국사람은 어떤 말을 써야 할까 궁금합니다. 학교에서는 어떤 말을 써야 올바를는지 궁금합니다. 학자는 어떤 말로 학문을 하고, 교과서와 책은 어떤 말을 써야 알맞을는지 궁금합니다. 4341.1.21.달/4347.11.2.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배라고는 하지만 나룻배 같았어, 물때에 맞추어 노를 저으며 드나들었지


“나룻배 같은 거였어”는 “나룻배 같았어”나 “나룻배와 같았지”로 다듬습니다. ‘이용(利用)해’는 ‘살피며’나 ‘알아보며’로 다듬고요.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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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86] 사랑천



  마루와 씻는방에 쓰려고 커튼천을 아홉 마 끊습니다. 낮에 우편으로 받습니다. 저녁에 상자를 끌릅니다. 일곱 살 큰아이가 옆에서 거듭니다. 두 가지 천을 꺼내어 방바닥에 놓으니, 아이가 문득 “사랑이 가득 있네. ‘사랑천’이야?” 하고 묻습니다. 이 천에는 사랑을 나타내는 ‘하트’ 무늬가 가득 있습니다. 다른 천에는 순록 무늬가 큼직하게 있습니다. 아직 순록과 노루와 사슴과 고라니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일곱 살 어린이는, “와, 이건 ‘사슴천’이네!” 하면서 웃습니다. 나는 마당에 나가서 길다란 대나무를 들고 들어옵니다. 이레쯤 앞서 미리 잘라 온 대나무입니다. 마루문 길이에 맞게 자른 대나무를 커텐봉으로 삼습니다. 빨래집게로 천을 집습니다. 마루문 위쪽에 못을 박아 걸칩니다. 두 아이는 마루문에 드리운 ‘사슴천’에 몸을 가리면서 놉니다. 이제 씻는방에 ‘사랑천’을 댑니다. 바깥바람이 들어오는 쪽에 하나를 대어 가리고, 씻는방을 드나드는 자리에 하나를 댑니다. 이 일을 하면서 ‘사랑천’이라는 이름을 곰곰이 욉니다. 천을 보자마자 아이가 붙인 이름을 두고두고 마음에 새깁니다. ‘사슴 무늬 천’이나 ‘사랑 무늬 천’이라 할 수 있지만, 무늬라는 낱말을 덜고 ‘사슴천’이나 ‘사랑천’이라 이름을 붙이니,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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