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86] 사랑천



  마루와 씻는방에 쓰려고 커튼천을 아홉 마 끊습니다. 낮에 우편으로 받습니다. 저녁에 상자를 끌릅니다. 일곱 살 큰아이가 옆에서 거듭니다. 두 가지 천을 꺼내어 방바닥에 놓으니, 아이가 문득 “사랑이 가득 있네. ‘사랑천’이야?” 하고 묻습니다. 이 천에는 사랑을 나타내는 ‘하트’ 무늬가 가득 있습니다. 다른 천에는 순록 무늬가 큼직하게 있습니다. 아직 순록과 노루와 사슴과 고라니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일곱 살 어린이는, “와, 이건 ‘사슴천’이네!” 하면서 웃습니다. 나는 마당에 나가서 길다란 대나무를 들고 들어옵니다. 이레쯤 앞서 미리 잘라 온 대나무입니다. 마루문 길이에 맞게 자른 대나무를 커텐봉으로 삼습니다. 빨래집게로 천을 집습니다. 마루문 위쪽에 못을 박아 걸칩니다. 두 아이는 마루문에 드리운 ‘사슴천’에 몸을 가리면서 놉니다. 이제 씻는방에 ‘사랑천’을 댑니다. 바깥바람이 들어오는 쪽에 하나를 대어 가리고, 씻는방을 드나드는 자리에 하나를 댑니다. 이 일을 하면서 ‘사랑천’이라는 이름을 곰곰이 욉니다. 천을 보자마자 아이가 붙인 이름을 두고두고 마음에 새깁니다. ‘사슴 무늬 천’이나 ‘사랑 무늬 천’이라 할 수 있지만, 무늬라는 낱말을 덜고 ‘사슴천’이나 ‘사랑천’이라 이름을 붙이니,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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