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63) 속의 11
타임 캡슐 속의 필통
《남호섭-타임 캡슐 속의 필통》(창비,1995) 책이름
타임 캡슐 속의 필통
→ 타임 캡슐에 넣은 필통
→ 타임 캡슐에 있는 필통
→ 타임 캡슐에 담긴 필통
→ 타임 캡슐에 들어간 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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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를 붙이면 뜻이나 느낌이 두루뭉술합니다. 무엇을 가리키거나 나타내려 하는지 제대로 안 드러납니다. 이 글월은 무엇을 말하려는 뜻이었을까요? 타임 캡슐에 ‘넣은’ 필통일까요, 타임 캡슐에 ‘있는’ 필통일까요, 타임 캡슐에 ‘담긴’ 필통일까요, 타임 캡슐에 ‘들어간’ 필통일까요?
‘-의’를 붙이면 이 모두를 뜻하지 않습니다. ‘-의’를 붙여서 이 모두를 뜻하려 했다면, 글을 엉터리로 쓴 셈입니다. 이것도 뜻하고 저것도 뜻하며 그것도 뜻하는 말씨란 없습니다. 타임 캡슐과 필통이 서로 어떻게 얽히는지 똑똑히 밝혀서 적어야 제대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4347.1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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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424) 속의 8
일본에서는 1967년에 마지막으로 황새가 자연속의 자라는 나무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김황/김정화 옮김-황새》(우리교육,2007) 100쪽
자연속의 자라는 나무
→ 자연에서 자라는 나무
→ 숲에서 자라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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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속의 자라는 나무”는 어떤 나무를 가리킬는지 궁금합니다. 알쏭달쏭합니다. “자연 속의 나무”도 아닌 “자연속의 자라는 나무”는 무엇일까요? 설마, ‘自然中の成長の木’을 고스란히 한글로만 옮겨적은 글은 아닐까 궁금합니다.
이 보기글이 글다우려면 “자연 속에서 자라는 나무”로 고쳐써야지 싶습니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자라는”도 올바르지 않습니다. “자연에서 자라는”으로 적어야 알맞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하면, 나무가 ‘자연’에서 자라지, 어디에서 자랄까요? “자연에서 자라는 풀”이나 “자연에서 자라는 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숲에서 자라는 풀·꽃·나무”입니다. 또는 “들에서 자라는 풀·꽃·나무”입니다. 때로는 “시골에서 자라는 풀·꽃·나무”입니다.
시골에서 자라는 나무
숲에서 자라는 나무
들에서 자라는 나무
이 보기글은 동물원에서 태어난 황새나 동물원에서 돌보는 황새 이야기를 다룹니다.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사람이 부러 심지 않고 스스로 자라난 나무에서 보금자리를 튼 황새 이야기를 하려고 “자연에서 자라는 나무”라고 적었구나 싶습니다만, ‘숲’이라고 적어야 제대로 어울리겠다고 봅니다. 4341.6.16.달/4347.1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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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1967년에 마지막으로 황새가 숲에서 자라는 나무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자연(自然)’은 그대로 두어도 될 만하지만, ‘사람이 따로 나무를 심어서 가꾸는 공원’이 아닌 곳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는 보기글이니, ‘숲’으로 손볼 때에 잘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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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607) 속의 9
이 사진집 속의 사진들에 대략적인 순서를 부여해 봤다
《드레이튼 해밀튼/권희종 옮김-한 미국인이 렌즈로 바라본 20년 간의 한국풍경》(생각의나무,2008) 9쪽
이 사진집 속의 사진들
→ 이 사진책에 실린 사진들
→ 이 사진책에 담은 사진들
→ 이 책에 실은 사진들
→ 이 책에 담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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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이니 사진이 실립니다. 사진책이니 사진을 싣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사진책에 실린”이나 “사진책에 실은”으로 고쳐야 알맞을 텐데, 사진책에는 으레 사진을 담기 마련인 만큼, ‘사진책’이라 하지 않고 ‘책’이라고만 해도 넉넉합니다. 이리하여 “이 책에 실은 사진”이나 “이 책에 싣는 사진”처럼 적으면 한결 단출합니다. 4341.11.18.불/4347.1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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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은 사진에 얼추 차례를 매겨 보았다
‘대략적(大略的)인’은 ‘얼추’나 ‘엉성하나마’나 ‘성기게’로 다듬고, “순서(順序)를 부여(附與)해 봤다”는 “자리를 잡아 보았다”나 “차례를 매겨 보았다”로 다듬어 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