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217) -의 : 19살의 사회인


육상에선 무명인 19살의 사회인이야

《하야세 준,야지마 마사오/문미영 옮김-제3의 눈 1》(닉스미디어,2001) 98쪽


 19살의 사회인이야

→ 열아홉 살 사회인이야

→ 열아홉 살 일반인이야

→ 열아홉 살 보통 아이야

→ 열아홉 살 여느 아이야

→ 아직 선수가 아니고 열아홉 살이야

 …



  보기글에서 말하는 ‘사회인’은 ‘운동선수가 아닌 사람’을 가리키지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사회인’이라고 할 때에는 “사회에 있는 사람”이나 “군대 같은 곳에 매이지 않은 여느 사람들”을 가리킬 때입니다. 보기글에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일본에서는 ‘여느 자리에 있는 사람’을 ‘사회인’으로 가리킬는지 모르는데, 한국에서는 ‘일반인’이나 ‘보통 아이’로 적어야 잘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아니면 ‘선수가 아닌 사람’이라고 적습니다. 4341.1.27.해/4347.1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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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에서는 안 알려진 열아홉 살이고 아직 선수가 아니야


‘무명(無名)인’은 ‘이름이 없는’이나 ‘알려지지 않은’으로 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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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202) -의 : 유디트의 달아오른 뺨


소피는 유디트의 달아오른 뺨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케 드브리스/박정화 옮김-두 친구 이야기》(양철북,2005) 63쪽


 유디트의 달아오른 뺨을 바라보며

→ 유디트 뺨이 달아오른 모습을 바라보며

→ 뺨이 달아오른 유디트를 바라보며

 …



  서양말을 한국말로 옮기든, 일본말을 한국말로 옮기든, 중국말을 한국말로 옮기든 늘 마찬가지입니다. 바깥말을 한국말로 옮길 적에는 우리 말법과 말씨와 낱말을 헤아려야 합니다. 거꾸로, 한국말을 서양말이나 일본말이나 중국말로 옮길 적에는, 서양 말법이나 낱말이나 말씨를 헤아려야겠지요. 일본 말법과 낱말이나 말씨를 헤아리고요.


  보기글을 봅니다. 서양 문학을 한국말로 옮긴 책에 나온 글입니다. “유디트의 달아오른 뺨”이라고 적는데, 이런 말씀씀이가 한국말이나 한국 말씨나 한국 말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이 나라에서는 입시교육만 있고 말 교육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적어 놓고도 무엇이 어떻게 뒤틀렸는지 못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옆에서 누군가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도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어요.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x)

 책을 읽으면서 (o)


  보기글을 곰곰이 뜯어 봅니다. (1) 소피는 유디트를 바라본다. (2) 유디트는 뺨이 달라올랐다. (1) + (2) = 소피는 유디트를 바라보는데, 유디트는 뺨이 달아올랐다. → 소피는 뺨이 달아오른 유디트를 바라보았다. ‘안긴 월’입니다. 4341.1.10.나무/4347.1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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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209) -의 : 간만의 차


배라고는 하지만 나룻배 같은 거였어, 간만의 차를 이용해 노를 저으며 드나들었지

《이시무레 미치코/김경인 옮김-슬픈 미나마타》(달팽이,2007) 187쪽


 간만의 차를 이용해

→ 밀물썰물을 살피며

→ 미세기에 따라서

→ 차고 비는 물을 보며

→ 물때에 맞춰서

→ 물때에 맞추어

 …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에, 학교에서 〈자연〉 공부를 할 때면 으레 “서해안 조수 간만의 차”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벗어나면 동네에서는 누구나, 어린 동무들끼리이든, 동네 어른들 사이에서든, 늘 ‘밀물썰물’을 말했어요.


  학교에서 시험을 치를 때에는 언제나 ‘간조’와 ‘만조’만 답으로 적도록 했습니다. ‘썰물’이나 ‘밀물’ 같은 말은 늘 뒷전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한국말을 한국사람이 뒷전으로 내몰았을까요? 오늘날은 달라졌을까요? 오늘날에도 학교에서는 한국말 ‘썰물·밀물’ 같은 낱말은 안 쓰려나요?


 간조(干潮) → 썰물

 만조(滿潮) → 밀물

 미세기 = 밀물썰물


  고등학교를 마친 뒤 서울에서 두 해 반쯤 대학교를 다니면서, 고향 아닌 곳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때, 바닷가 아닌 데 사람이나 서울사람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밀물·썰물’이라는 말을 못 알아듣거나 이런 낱말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모습을 봅니다. 바닷가라고 해도 동쪽과 남쪽 사람들 또한 비슷했어요. ‘왜 바닷물이 밀려갔다가 돌아와?’ 하며 못 믿어 하는 얼굴이거나 ‘밀물이 뭔데? 썰물이 뭔데?’ 하는 이야기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밀물을 본 적이 없으니 밀물을 모르겠지요. 썰물을 지켜본 적이 없이 책으로만 살짝 배우고 지나갔으니, 또는 ‘간조·만조·간만의 차’라는 말만 얼추 듣고 지나갔으니 마음이나 머리에 안 남을 테고요. 밀물과 썰물 이야기는 대학입시에 나오지 않으니 더더욱 모르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한자말 ‘간만(干滿)’은 “간조(干潮)와 만조(滿潮)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한자말로는 ‘간조’와 ‘만조’일 테지만, 한국말로는 ‘썰물’과 ‘밀물’입니다. 썰물과 밀물을 아우를 적에는 ‘밀물썰물’이라 합니다. 따로 ‘미세기’라고도 합니다.


  한국사람은 어떤 말을 써야 할까 궁금합니다. 학교에서는 어떤 말을 써야 올바를는지 궁금합니다. 학자는 어떤 말로 학문을 하고, 교과서와 책은 어떤 말을 써야 알맞을는지 궁금합니다. 4341.1.21.달/4347.1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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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라고는 하지만 나룻배 같았어, 물때에 맞추어 노를 저으며 드나들었지


“나룻배 같은 거였어”는 “나룻배 같았어”나 “나룻배와 같았지”로 다듬습니다. ‘이용(利用)해’는 ‘살피며’나 ‘알아보며’로 다듬고요.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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