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먹기



  밥먹기는 영양소 먹기가 아니다. 이를 안다고 말하려면 이를 제대로 몸으로 옮겨야 맞다. 머리로만 생각해서 밥을 차리면, 나도 똑같이 ‘영양소 먹이기’가 될밖에 없다. 밥먹기가 어떤 삶인가 제대로 느끼고 알 때에 아이들과 즐겁게 한 끼를 누린다. 우리 몸이 되는 밥을 먹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나 놀이를 신나게 할 수 있는 기운을 얻으려고 밥을 먹는다.


  밥 한 그릇에 온 사랑을 담자. 밥 한 그릇에 온 마음을 싣자. 밥 한 그릇에 온 노래를 담자. 밥 한 그릇에 온 웃음을 싣자. 날마다 새롭게 생각한다. 밥을 짓다가 문득문득 고개를 들어 부엌에 붙인 그림을 바라본다. 어떤 마음이 되고 어떤 사랑이 되어 이 밥을 짓는지 되새긴다. 찬찬히 수저질을 하면서 밥그릇을 비우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이 밥이 우리한테 무엇인지 제대로 보고 느끼자. 4347.1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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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110. 2014.10.23. 가을풀밥



  가을에 돋는 우리 집 풀을 즐겁게 뜯는다. 가을에도 따순 볕이 내리쬐니, 이 가을볕을 받은 풀이 싱그럽게 돋는다. 따순 볕과 찬바람이 어우러지면, 슬슬 갓이랑 유채가 올라온다. 갓잎이나 유채잎이 어른 머리통만큼 커지지 않도록 바지런히 뜯는다. 뜯고 또 뜯으면 겨우내 보드라우면서 상큼한 풀밥을 누릴 수 있다. 아침마다 신나게 뜯어서 헹군 뒤 물기를 털어 잘게 썬다. 석석 버무린다. 오늘은 삶은달걀을 작게 썰어서 함께 섞는다. 동그란 꽃접시에 옮겨 담아 밥이랑 함께 밥상에 올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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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경제신문'에 싣는 책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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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어머니와 살기



  아이들은 누구나 어머니와 삽니다. 왜냐하면 아이로 태어나려면 먼저 열 달 동안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보내지 않고서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천천히 자라고 난 뒤 이 땅에 태어납니다.


  어머니는 씨앗 한 톨을 사랑스럽게 품어 오롯한 사람으로 키웁니다. 젖만 물 수 있는 갓난쟁이를 포근하고 부드럽게 가슴으로 안아서 젖을 물립니다. 어머니한테서 젖을 받아먹으며 자라는 갓난쟁이는 차츰 손과 발에 힘이 붙고, 팔과 다리가 야뭅니다. 아이 스스로 씩씩하게 서서 걷거나 뛰거나 달립니다.


  혼자 걷거나 뛰거나 달릴 수 있는 아이를 지켜보는 어머니는 아이한테 말을 가르칩니다. 아이가 제 마음을 오롯이 드러낼 수 있게끔 또렷하게 한 마디씩 가르칩니다. 어머니는 학문이나 지식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말을 가르칩니다. 사람과 사물을 가리키는 이름을 아이한테 가르칩니다. 어머니는 아이한테 ‘삶이 고스란히 묻은 사랑이 어린 말’을 아이한테 가르칩니다.


  어머니한테서 몸을 받고 말을 물려받은 아이는 차근차근 놀이를 즐깁니다. 어머니가 가르치는 놀이를 즐기기도 하지만, 아이가 손수 놀이를 지어 즐기기도 합니다. 손수 흙과 돌과 모래를 만집니다. 손수 나무와 풀과 꽃을 쓰다듬습니다. 스스로 바람을 마시고, 스스로 빗물을 받으며, 스스로 밥을 씹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어머니는 바지런히 실을 잣고 천을 짜서 옷을 깁습니다. 나날이 자라는 아이 몸에 맞게 새로운 옷을 입힙니다. 몸 구석구석 알뜰히 씻기면서 나중에 아이가 스스로 몸을 잘 씻도록 이끕니다.


  아이는 언제나 어머니 곁에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한테 하늘과 같습니다. 포근하게 어루만지고 따사롭게 품습니다. 밥과 옷과 집을 주는 어머니는 말과 마음과 사랑을 함께 줍니다. 아이는 어머니한테서 삶을 물려받는 한편, 사랑이 그득한 씨앗을 이어받습니다.


  그림책 작가로 이름이 높은 사노 요코 님이 쓴 《나의 엄마 시즈코상》(이레,2010)이라는 수필책이 있습니다. 사노 요코 님은 이녁 어머니와 얽힌 이야기를 글로 풀어냅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하고 부대낀 이야기를 꾸밈없이 드러내고, 나이가 든 뒤로 어머니하고 부딪힌 이야기를 낱낱이 밝힙니다. “비록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라고 해도 나도 들어가기 싫은 곳에 있게 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29쪽).” 하고 스스럼없이 말합니다. 네, 사노 요코 님을 낳은 어머니는 양로원에 들어갑니다. 사노 요코 님은 그림책을 빚어서 얻은 돈을 ‘어머니 양로원 시설에 쏟아붓’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그림책을 빚어서 얻은 돈으로 양로원에 대지 말고, ‘그림책을 안 그리면서 어머니와 함께 지낼’ 만하지 않을까 하고요. 그러나, 사노 요코 님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하고 수없이 부딪혔다고 해요. 어머니가 더없이 못마땅했고, 어머니와 떨어져 살기를 바랐다고 해요. 이녁을 낳은 어머니가 몹시 포근하면서 따사로웠으면 어떠했을까요? 이때에는 아마 사노 요코 님이 어머니하고 떨어져 살 생각을 안 했겠지요. 어머니와 늘 함께 지내면서 조용히 지낼 만하겠지요. 그러면, 사랑스러운 어머니와 함께 살며 빚을 그림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깃들 만할까요? 사랑스럽지 못한 어머니와 멀리 떨어진 채 양로원에 돈을 대는 삶으로 빚는 그림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까요?


  사랑은 늘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사랑이 아프게 다가올 수 있고 기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만, 사랑은 늘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사랑이 늦게 다가온다고 여길 수 있고 사랑이 언제나 감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만, 사랑은 늘 사랑이지 싶어요.


  사노 요코 님을 낳은 분은 “서른두 살의 나이에 여섯 아이를 낳고 한 명을 떠나보낸 다섯 아이의 엄마였다(40쪽).”고 합니다. 제국주의 일본이 전쟁에서 질 무렵 ‘다섯 아이 어머니인 서른두 살 여자’는 어떤 삶을 일구어야 했을까 헤아리면서, 이와 비슷한 무렵에 ‘일제강점기에서 겨우 벗어났다 싶더니 한국전쟁 불길에 휩쓸리면서 다섯 아이 어머니인 서른두 살 여자’는 한국에서 어떤 삶을 일굴 수 있었을까 헤아립니다.


  나라가 다르고, 사회와 경제와 정치가 다릅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라는 이름은 같습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어머니는 언제나 어머니입니다. “가난은 괴로운 일이었지만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35엔짜리 라면을 반씩 나눠 먹기도 했다. 나는 그보다 맛있는 라면을 지금껏 먹어 본 적이 없다(113쪽).”는 말처럼, 우리 곁에는 이웃이 있고 동무가 있습니다. 가난해도 함께 가난하고, 넉넉해도 함께 넉넉합니다. 기쁠 적에는 기쁨을 나누는 이웃이요, 슬플 적에는 슬픔을 나누는 이웃이에요.


  그러면 요즈음 우리는 어떤 어머니나 아버지로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는 어머니나 아버지입니까. 아이와 함께 사랑을 꽃피우려는 어머니나 아버지입니까. 아이한테 가장 아름다운 말을 물려주는 어버이입니까. 아이한테 가장 즐거운 노래를 들려주는 어버이입니까. 아이한테 가장 따스한 밥 한 그릇 내주면서 가장 반가운 옷 한 벌 마련하는 어버이입니까.


  아이들은 학교에 다녀야 배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맨 먼저 집에서 배웁니다. 아이들은 교과서와 책으로 배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누구보다 어버이한테서 배웁니다. 학교가 바로서야 아이들이 슬기롭게 배울 수 있기도 하지만, 학교에 앞서 여느 살림집이 바로서야 하고, 여느 마을이 바로서야 합니다. 정치나 경제나 문화나 복지에 앞서, 여느 사람들 보금자리가 바로서야 합니다. 여느 마을에 있는 여느 집에서 여느 어버이가 여느 아이를 따사롭게 돌보면서 즐겁게 삶을 지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아이들이 씩씩하게 자랍니다.


  교육부 장관이나 교육감이나 대통령이나 지자체 일꾼도 잘 뽑아야 할 테지만, 이에 앞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곧은 마음으로 착한 꿈을 키워 따순 사랑을 건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 아이들이 아버지와 함께 삶을 짓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에 붙들려도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자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회사를 다니더라도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쉬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집밥을 먹고, 집살림을 익히며, 집숲을 가꿀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집터부터 튼튼히 세워서 삶터와 일터와 놀이터와 꿈터와 사랑터를 모두 슬기롭게 지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7.1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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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77. 나하고 같이 보겠니



  아이들과 같이 지내다 보면, 어버이가 아이를 부르는 일이 잦고, 아이가 어버이를 부르는 일이 잦습니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것이 있으면 어버이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저희 눈에 곱게 보이는 것이 있을 적에도 어버이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저희 마음에 즐겁게 드는 것이 있을 적에도 어버이를 부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맛난 것이 있을 적에 혼자 다 먹지 않고, 동생을 부르든 언니를 부르든 어버이를 부르든 동생을 부르든, 누군가를 꼭 부릅니다. 왜냐하면, ‘좋은 것을 함께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갓 태어난 뒤부터 찍은 사진을 조그마한 사진첩에 그러모읍니다. 아이들은 가끔 이 사진첩을 들여다봅니다. 아이들은 저희가 이렇게 어린 모습으로 지낸 줄 미처 못 떠올리고는 합니다. 깔깔깔 웃으면서 무척 재미있어 합니다. 이러면서 어머니나 아버지를 부르면서 사진을 보여줍니다. “이것 좀 봐요! 하하하!”


  사진을 찍는 우리는 이 사진을 누구하고 보고 싶은 마음이 될는지 곰곰이 돌아봅니다. 나 혼자 돌아보면 즐거운 사진인지, 한솥밥 먹는 한집 사람들과 돌아보면 즐거운 사진인지, 가까운 이웃이나 동무하고 돌아보면 즐거운 사진인지, 낯선 수많은 이웃하고도 돌아보면 즐거운 사진인지 돌아봅니다.


  내가 즐겁고 기쁘면서 곱게 찍은 사진은 나한테 낯선 이웃한테도 즐겁고 기쁘면서 고운 빛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나한테 낯선 다른 이웃이 즐겁고 기쁘면서 곱게 찍은 사진은 나한테까지 즐겁고 기쁘면서 고운 빛을 베풀어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이 나한테 낯선 누군가한테까지 푸른 숨결로 다가갈 수 있는지 없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내가 활짝 웃으면서 찍은 사진이라면, 내 웃음이 천천히 흘러 ‘웃음을 바라는 이웃’ 가슴으로 살며시 다가갈 만합니다. 내 이웃이 까르르 노래하면서 찍은 사진이라면, 내 이웃 웃음이 가만히 흘러 ‘웃음을 기다리는 내’ 가슴으로 조용히 다가올 만합니다.


  재미난 책을 함께 읽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맛난 밥을 함께 먹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기쁜 노래를 함께 부르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아름다운 숲길을 함께 걷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사진을 함께 보면서 어깨동무하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나는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아이 마음’을 아이한테서 늘 새롭게 배웁니다. 4347.1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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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76. 언제부터 찍었을까



  밥을 먹기 앞서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아침부터 바지런히 차린 밥상을 바라보다가 ‘내가 차린 이 밥상이 퍽 예쁘네’ 싶어서 한 장 찍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밥을 먹다가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일곱 살과 네 살 어린 아이들이 수저질을 하면서 밥을 먹는 모습이 참 예쁘구나 싶어서 한 장 찍습니다. 밥을 맛나게 먹은 아이들이 마당에서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신나게 웃고 노래하는 모습이 예쁘다고 느껴서 한 장 찍습니다.


  사진기가 없으면 모두 눈으로 지켜봅니다. 눈으로 지켜본 뒤 마음에 담습니다. 눈으로 지켜본 모습을 마음에 담아 이야기로 새록새록 갈무리합니다.


  나는 사진을 언제부터 찍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두 손에 사진기를 쥐기에 사진을 찍는다고도 하지만, 두 손에 아무것이 없었어도 ‘눈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느껴요.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가 바로 ‘첫 사진’입니다. 이를테면, 일곱 살 적에 동네 동무들과 누리던 소꿉놀이가 ‘첫 사진’입니다. 동무들과 웃고 떠들면서 뛰놀던 이야기가 ‘첫 사진’이고, 이마를 타고 줄줄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 달리던 이야기가 ‘첫 사진’입니다.


  사진으로 찍어서 이야기가 남습니다. 사진으로 안 찍으나 이야기가 남습니다. 사진으로 찍었으나 그만 사진을 잊거나 잃으면서 이야기를 잊거나 잃습니다. 사진으로 안 찍고 마음으로도 잊거나 잃어서 이야기가 하나도 안 남습니다.


  사진으로 찍기에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어서 남겨야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놀려서 한 장 남기기 앞서, 먼저 마음에 아로새기면서 누리는 이야기입니다. 사진기를 놀리기까지, 먼저 마음이 움직이고 흐르면서 즐겁게 짓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을 찍고 싶다면 사진기를 장만해야 할 텐데, 사진기를 더 빨리 장만해야 사진을 더 많이 더 잘 찍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기 앞서까지 내 눈을 거쳐서 내 마음이 흐뭇하게 살찌거나 자라는 이야기를 아름답게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4347.1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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