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76. 언제부터 찍었을까



  밥을 먹기 앞서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아침부터 바지런히 차린 밥상을 바라보다가 ‘내가 차린 이 밥상이 퍽 예쁘네’ 싶어서 한 장 찍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밥을 먹다가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일곱 살과 네 살 어린 아이들이 수저질을 하면서 밥을 먹는 모습이 참 예쁘구나 싶어서 한 장 찍습니다. 밥을 맛나게 먹은 아이들이 마당에서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신나게 웃고 노래하는 모습이 예쁘다고 느껴서 한 장 찍습니다.


  사진기가 없으면 모두 눈으로 지켜봅니다. 눈으로 지켜본 뒤 마음에 담습니다. 눈으로 지켜본 모습을 마음에 담아 이야기로 새록새록 갈무리합니다.


  나는 사진을 언제부터 찍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두 손에 사진기를 쥐기에 사진을 찍는다고도 하지만, 두 손에 아무것이 없었어도 ‘눈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느껴요.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가 바로 ‘첫 사진’입니다. 이를테면, 일곱 살 적에 동네 동무들과 누리던 소꿉놀이가 ‘첫 사진’입니다. 동무들과 웃고 떠들면서 뛰놀던 이야기가 ‘첫 사진’이고, 이마를 타고 줄줄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 달리던 이야기가 ‘첫 사진’입니다.


  사진으로 찍어서 이야기가 남습니다. 사진으로 안 찍으나 이야기가 남습니다. 사진으로 찍었으나 그만 사진을 잊거나 잃으면서 이야기를 잊거나 잃습니다. 사진으로 안 찍고 마음으로도 잊거나 잃어서 이야기가 하나도 안 남습니다.


  사진으로 찍기에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어서 남겨야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놀려서 한 장 남기기 앞서, 먼저 마음에 아로새기면서 누리는 이야기입니다. 사진기를 놀리기까지, 먼저 마음이 움직이고 흐르면서 즐겁게 짓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을 찍고 싶다면 사진기를 장만해야 할 텐데, 사진기를 더 빨리 장만해야 사진을 더 많이 더 잘 찍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기 앞서까지 내 눈을 거쳐서 내 마음이 흐뭇하게 살찌거나 자라는 이야기를 아름답게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4347.1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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