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하고 옆산을 탄다. 아이를 아빠 품에 안고 산을 탄다. 산을 조금 타니 판판한 길이 나온다. 산길을 걷다가 아이 사진을 한 장 찍으려는데 아이는 언제나처럼 '세 살 브이'를 한다. 저 브이 모양을 어느 동네 언니가 하는 모습을 한 번 본 뒤로 내내 저 모양이다. 어찌 되었든 넌 산골아이야. 

- 201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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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숩게 껴안을 내 이웃과 벗과 살붙이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2] 《북한동포의 일생》(국제문화사,1987)


 사진책은 따순 손길을 기다립니다. 책으로 엮인 사진을 따스히 돌아보거나 사진이 묶인 책을 포근히 보듬을 고운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진은 사진대로 따사로이 감싸며 책은 책대로 넉넉히 헤아릴 맑은 사람을 바랍니다.

 아이는 따순 손길을 기다립니다. 사랑을 담아 따스히 돌보거나 어깨동무할 고마운 어버이를 기다립니다. 믿음을 실어 넉넉히 껴안거나 손잡고 놀 동무를 바랍니다.

 따순 손길은 따순 삶에서 비롯합니다. 입으로 벙긋벙긋한다고 따뜻할 수 있는 삶이나 손길이 아닙니다. 몸으로 부대끼며 따뜻할 삶입니다. 머리에 앎조각을 넣는다고 따스함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가슴에 애틋함을 품어야 비로소 따스한 넋을 북돋웁니다.

 우리 집 아이가 제 아버지하고 더 놀고 싶어 우산을 붙잡고 늘어집니다. 아버지는 바삐 길을 나서야 하는데, 이모저모 짐을 챙긴 다음 집을 나설 무렵 우산을 함께 챙기려 하니 우산을 붙잡고 씨익씨익 웃습니다. 도시처럼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 시골인 까닭에, 두 시간에 한 번 지나가는 버스를 타려면 버스 타는 데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조금 실랑이를 하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싶어 아이가 우산을 갖고 놀라고 해야겠다 생각하며 부랴부랴 집을 나섭니다. 아이는 아버지가 우산을 갖고 더 놀지 않고 나가 버리니 엉엉 웁니다. 엉엉 울며 우산 가져가라고 제법 멀리까지 좇아 나옵니다.

 누군가 ‘아이가 엉엉 우는 모습’만을 크게 잡아당겨 사진 한 장 찍었다면 이 사진만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무엇을 느끼거나 생각할까 궁금합니다. 아이랑 아빠가 우산을 붙잡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놓으면 이 사진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무엇을 살피거나 헤아릴는지 궁금합니다. 치고박는 싸움이 벌어졌을 때에 어느 한쪽이 때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는데 정작 때린 쪽은 딱 한 번 때렸을 뿐이고 숱하게 얻어맞아 나자빠졌다면, 이 사진을 보는 사람은 어떤 마음을 품을는지 궁금합니다.

 북녘사람은 남녘사람하고 견주어 무척 가난하고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모든 북녘사람이 가난하거나 힘겹게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남녘사람은 북녘사람하고 대면 참 넉넉하며 즐겁게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모든 남녘사람이 넉넉하거나 즐겁게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관계기관에서 사진을 얻어’서 엮었다고 하는 사진책 《북한동포의 일생》은 1987년 9월에 나옵니다. 1987년 9월이라면 무척 어수선하다 싶은 때라 할 수 있지만, 다른 눈길로 바라보면 비로소 군사독재 울타리를 벗어내는 때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한테는 기득권과 정권이 아슬아슬한 때이며, 누군가한테는 숨통을 트며 꽁꽁 닫힌 입을 조금이나마 열 수 있는 때입니다.

 ‘관계기관 사진으로만 엮은’ 《북한동포의 일생》은 책이름 그대로 북녘사람이 보내는 한삶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사진책에 실린 사진으로 북녘사람을 바라보면 하나같이 불쌍하고 딱하며 안쓰럽습니다. 모두들 안타까우며 슬프고 고달픕니다.

 책을 덮고 생각에 잠깁니다. 그래요, 북녘사람이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살아간다는데, 북녘사람 삶이 이렇다면 우리들 남녘사람은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북녘사람 터전이 이토록 쪼들린다면 우리들 남녘사람은 어떡해야 하나요.

 남녘과 북녘이 손을 맞잡고 모든 총칼과 탱크와 전투기와 군함을 녹여 호미와 낫과 쟁기로 바꿀 수는 없을까요. 군인들이 쳐 놓은 쇠가시울타리와 지뢰밭을 허물어 논밭으로 바꾸며, 오순도순 지낼 조촐한 살림터와 마을을 일굴 수는 없는가요.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공장이나 더 빨리 달릴 찻길과 기찻밀 말고, 스스로 조용하며 아름다이 살아갈 예쁜 마을을 온누리 곳곳에 마련할 수는 없을는지요.

 사진을 찍는 이라 한다면, 내 사진 한 장에 꽃씨 하나와 같은 마음을 심어 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이라 한다면, 내 그림 한 장에 열매 하나와 같은 가슴을 나누어 놓으면 무척 기쁘겠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이라 한다면, 내 글 한 줄에 구름 하나와 같은 넋을 실어 본다면 아주 예쁘겠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깎아내리는 사진이나 그림이나 글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여 어깨동무할 사진이나 그림이나 글로 거듭나면 반갑겠습니다. 서로 총칼을 겨누며 해코지하는 사진이나 그림이나 글은 털고, 나란히 어깨를 겯고 씩씩하며 튼튼하게 놀이와 일을 즐기는 이웃과 동무로 사귈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글에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그림에는 기운이 있습니다. 사람을 살찌우는 기운이 있습니다. 사진에는 꿈이 있습니다. 사람을 살아가도록 하는 꿈이 있습니다. (4343.9.15.물.ㅎㄲㅅㄱ)


― 북한동포의 일생 (관계기관 자료제공,국제문화사,1987.9.25./판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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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이야기 원고를 지난달에 하나 마무리지은 다음 한 달 남짓 사진책 이야기 쓰기를 쉬었다. 이 원고를 책으로 내줄 곳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제 잘 쉬었으니 세 번째 원고를 써야겠지. 세 번째 원고를 쓰기 앞서, 검색이 안 되는 사진책 이야기를 걸쳐야겠다.)


 사랑으로 이루는 삶과 사진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8] 김동규, 《김동규 사진집》(서울시립대학교,2001)



 낮에 인천에 볼일이 있어 식구들이 함께 다녀올까 했지만, 푹푹 찌는 무더운 날씨에 세 식구가 함께 먼길을 움직이자니 썩 좋지 않을 수 있어 멀리는 가지 않고, 가까운 이웃마을로 나들이를 갔습니다. 느티나무가 우람하게 자라 퍽 많은 사람들한테 그늘을 베풀어 주는 버스역으로 가서 읍내 버스를 기다립니다. 토요일 아침이어서인지 마을 어르신들이나 마을 안쪽에 깃든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제법 모여 있습니다. 어른 두 사람 버스삯은 2100원이고, 광벌에서 음성 읍내로 가는 데에는 이 마을 저 마을을 거쳐 10분입니다. 버스로는 고작 10분이니, 우리한테 자가용이 있어 자가용으로 이 길을 달렸다면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겠지요. 하기는, 자전거를 타고 읍내를 다녀올 때에 고개 넘어 다니는 데에 20분 즈음 걸립니다. 가장 빠르기로는 자가용이지만, 시골버스를 기다리며 타도 괜찮고, 자전거를 타고 낑낑거리며 고개를 넘어 오가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자가용으로 달리면 너무 빨리 씽씽 지나치며 마을을 제대로 살필 수 없습니다. 시골버스는 천천히 달리니 그럭저럭 마을 구경도 해 보는데, 자전거를 달리며 마을을 살필 때만큼 차근차근 돌아볼 수 없습니다. 가장 좋기로는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어 오가는 길입니다. 퍽 힘들기는 할 테지만 아이가 어느 만큼 커서 엄마나 아빠한테 안기거나 업히지 않고 다닐 수 있을 때에는 한 시간 남짓 걸어 읍내로 마실을 다녀와도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읍내 마실을 하며 목에는 사진기를 걸어 놓습니다. 읍내 사람들한테는 늘 같은 모습일 터이고, 저 또한 이 마을을 여러 해 오가며 들여다보고 있자니 여러 해째 늘 같은 모습이라 굳이 사진으로 담을 만한 모습이 없다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해째 늘 같은 모습을 보면서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서울 같은 큰도시처럼 미친 듯한 막개발 바람이 이런 시골 읍내까지 불지는 않는다지만, 시골에도 개발 바람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우리 집하고 가까운 다른 읍내인 무극으로 가 보면, 이곳도 꽤 깊은 시골 읍내임에도 새로 올라선 아파트가 마을에 수두룩하고, 일산이나 분당만큼은 아니지만 무척 넓은 자리에 꽤 높은 아파트를 새로 짓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참 무섭도록 무시무시하게 아파트 공사가 시골 읍내까지 파고들어요. 서울 강남하고 고속도로로 이으면 퍽 가깝고 땅값 싸며 공기와 물이 좋으니, 충청북도 시골자리까지 서울에서 돈 좀 있다는 이들 아파트 투기가 퍼지는구나 싶어요.

 이리하여 음성 읍내 곳곳을 두 다리로 누비며 사진을 찍습니다. 인천에서 골목마실을 하며 사진을 찍듯 음성 읍내에서도 읍내 골목을 오가며 사진 한 장 두 장 담아 봅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뻔하다’고 여길 만한 시골 살림집들 모습을, 또는 읍내 살림집들 모습을 사진으로 차곡차곡 갈무리하는 사람은 이 나라에 거의 아무도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일본으로 여행을 가거나 프랑스로 나들이를 가거나 스페인으로 순례를 가는 이들은 이들 나라 여느 살림집 모습을 사진으로 신나게 찍으면서 ‘이야, 참, 아름답구나!’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정작 이 나라 시골 곳곳에 깃든 작으며 곱고 어여쁜 살림집을 바라볼 때에는 ‘에이, 참, 꾀죄죄하구나!’ 하고 여기며 ‘이런 낡은 집 얼른 안 헐고 뭐 한담!’ 하고 느끼지 않느냐 싶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 나라 여행꾼을 비롯한 숱한 사람들은 이 나라 여느 살림집이 여느 마을마다 어연번듯하게 뿌리내리며 고운 숨결 나누고 있음을 못 느끼거나 안 바라보고 있구나 싶습니다.

 세 시간 남짓 읍내를 돌고 읍내 중국집에서 바깥밥을 사먹고 나서 우리 산골마을 집으로 돌아옵니다. 저녁에 큰길가에 있는 보리밥집 쪽으로 찾아온 서울 손님이 있어 얼굴이라도 보려고 갔더니, 예전에 이 산골마을에서 살 때에 이웃하며 지내던 상준 씨네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엄마 품에 안긴 갓난쟁이가 어느새 큰 아이로 자랐습니다. 이제 스물넉 달째 맞이하는 우리 딸아이는 “언니!” 하고 부르며 달려들고, 옆에서 함께 노는 상준 씨네 셋째한테는 “오빠!” 하고 부르며 달려듭니다.

 상준 씨네 작은 아이 둘이랑 살짝 떨어져 혼자 놀던 상준 씨네 큰 아이는 우리 아이 엄마가 고무줄로 별 모양 만들기를 하니 가까이 다가와 요모조모 물으며 배웁니다. 시골마을 네 아이가 시골 밥집 마당가에서 복닥이며 놉니다. 살짝 나온 마실이라 빈몸으로 나올까 하다가 사진기를 챙겼는데, 네 아이 복닥이는 모습을 무척 재미나게 담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 안 챙겼으면 속으로 얼마나 답답해 했을까요. 네 아이가 물놀이를 하고 고무줄놀이를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너희 넷이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 뒤에 오늘 찍은 사진으로 조금은 남다른 지난 삶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아니, 생각한다기보다 사진기 단추를 누르는 내내 이런 느낌이 몽글몽글 샘솟습니다.

 아침부터 낮잠 거의 없이 놀던 아이는 해가 떨어지고 어두워지니 몹시 힘들어 하며 이내 곯아떨어질 듯하지만, 이러면서도 엄마한테 달라붙어 떼를 씁니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이 닦고 투정 좀 부리다가 새근새근 잠듭니다. 잠든 두 식구를 조용히 바라보는 아이 아빠는 아침부터 다시금 꺼내어 들추고 있는 묵은 사진책 하나를 곰곰이 되새깁니다. 시중 책방에 나온 적이 없을 뿐더러, 시중 헌책방에서조차 만날 길이 거의 없는 사진책 가운데 하나인 《김동규 사진집 1954∼1976, 1998》을 생각합니다.

 이 사진책을 내놓은 김동규 님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건축공학과 교수로 일하다가 2001년 4월에 정년퇴임을 합니다. 김동규 교수는 여느 교수들이 ‘정년퇴임 기념 논문집’을 내는 흐름하고는 다르게 ‘정년퇴임 기념 사진책’을 내놓습니다. 다른 사람들한테서 ‘칭찬하는 글’을 잔뜩 받아 살짝살짝 우쭐거리는 논문집이 아닌, 당신 스스로 당신 한길을 걸어오는 동안 당신 삶과 넋을 크게 건드리거나 움직인 사진을 알뜰히 모아 책 하나로 여미어 내놓았습니다.

 사진학과에 있던 교수가 정년퇴임을 한다 하더라도 이런 사진책을 내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니, 제법 드문 일입니다. 사진학과 학생들이 졸업 사진책을 내는 일은 있으나, 사진학과 학생들 졸업 사진책은 아직 학생들 스스로 ‘사진하는 마음’이 제대로 영글지 않은 가운데 어느 만큼 뽐내는 느낌이 짙어 썩 달갑거나 내키지 않곤 합니다. 스스로 무르익거나 스스로 고개숙일 줄 아는 가운데 아름다이 일구어 온 사진삶을 담은 ‘사진학과 대학생 졸업 사진책’은 이 나라에서는 좀처럼 나오기 어렵습니다.

 사진삶이라고 해서 반드시 마흔 해를 찍었다든지 쉰 해를 찍었다든지 해야 무르익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꼭 열 해만 찍었든 이제 다섯 해째 찍었든 겨우 두 해를 찍었든, 나 스스로 걸어온 사진길을 나 스스로 당차고 씩씩하고 즐겁게 갈무리했다면, 이만 한 깊이와 너비로 무르익혀서 사진책 하나로 그러모으면 됩니다.

 사진책 《김동규 사진집 1954∼1976, 1998》 끄트머리에 김동규 교수님 쪽글이 몇 달립니다. 이 쪽글 가운데 퍽 오래된 이야기 하나 눈에 뜨입니다. “‘이 眞寫 자네와 나의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보내는 것이네.’ 이것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한 교우가 나에게 준 중학교 수험용 사진의 뒷면에 연필로 적어 넣은 글이다. ‘眞寫’라고 앞뒤를 바꾸어 써 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후에 대학의 전공인 건축에도 관련이 되어 사진을 만져 보게 되면서 ‘眞寫’가 과연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眞’이 앞서야 한다면 ‘寫’는 저 뒤로 밀려가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영어로는 ‘포토그래피’라고 했으니 빛의 그림이라는 말이 된다. 물론 빛으로 비추면 진실이 드러나겠지만 명백한 진실 말고도 暗默의 진실도 있을 것이니, 사진이란 우리 말이 더욱 그럴듯하다. 또 한편 생각해 보면, 사진은 진실만이 아니고 거짓을 거짓 그대로 거짓없이 묘사하는 것이라고 할 때 포토그래피라는 서양말이 객관적 타당성을 갖는다(1988.1.신동아 수필).” 1936년에 태어난 김동규 님이니, 국민학교를 마칠 때라면 1950년 무렵이었겠군요. 이때에 증명사진 한 장은 얼마나 비싸고 드문 사진이었을까요. 오늘날하고는 견줄 수 없는 값과 뜻이 있는 작은 사진 하나였겠지요. 이제 막 중학생이 되려 했다는 동무는 사진 한 장을 선물로 건네며 ‘진사’라는 말을 썼는데, 한자로 말놀이를 했다는 느낌이 아닌, 사진 하나에 삶 하나를 깃들이려는 살가운 마음결을 나누려 했다는 느낌입니다. 날이 갈수록 ‘사진’이라 말하는 사람은 드물고 ‘포토’라 말할 뿐 아니라, ‘사진기’라 말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카메라’라 말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기계이니 ‘사진기’이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니 ‘사진가’입니다만, 다들 영어로 멋부리듯 ‘카메라’요 ‘포토그래퍼’요 뭐요 하고 떠들기에 바쁩니다. 이러는 가운데 ‘카메라’를 읊는 이들 스스로 ‘카메라’가 무슨 뜻이 있는 물건인지 살피지 않으며, ‘포토그래퍼’라 내세우는 이들 스스로 ‘포토그래퍼’가 어떠한 값어치를 나누는 사람인지 돌아보지 않습니다.

 정년퇴임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더없이 조용하게 마련해서 내놓은 《김동규 사진집 1954∼1976, 1998》에 실린 사진을 새삼스레 되넘깁니다. 풀집이 있는 수원 화성 길거리, 낡은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올리는 1970년대 서울 시내, 떠들썩한 관광상품으로 굴러떨어지기 앞서 호젓하며 수수한 중국인거리, 1950년대 여느 살림집 안팎 모습이 알뜰살뜰 담겨 있습니다.

 어느 사진 하나 티내는 모습이 없습니다. 어느 사진 하나 뽐내는 느낌이 없습니다. 어느 사진 하나 꾸미는 겉치레가 없습니다. 어느 사진 하나 콧대 높은 얼굴이 아닙니다. 살며시 웃음을 띠며 들여다볼 만한 사진입니다. 소담스러운 기록물이라서 뜻깊은 사진이 아닌, 바로 우리들 여느 사람 누구나 보내온 삶자락을 사진쟁이 스스로 이 땅에서 당신들과 똑같이 이웃으로 지내는 가운데 즐기고 마주하고 어깨동무했다고 하는 삶자락으로 옮겨냈기에 사랑스러운 사진입니다.

 서울시립대학교 건축공학과에서 김동규 교수님한테서 학문을 배운 이들은 이 정년퇴임 사진책을 들추면서 건축공학이라는 학문과 직업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나누며 무엇을 즐겨야 하는가를 한 가지쯤이나마 느끼거나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4343.8.1.해.ㅎㄲㅅㄱ)


― 김동규 사진집 1954∼1976, 1998 (김동규,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2001/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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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집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골목집 안쪽과 바깥쪽이 어떻게 다른가를 얼마나 느끼고 있을까. 한창 더운 여름날은 집집마다까지는 아니나 제법 많은 집이 문을 반쯤 열어 놓고 지낸다. 이때에 비로소 적잖은 골목집 '마당 살림'까지 엿본다. 살며시 엿보면서 '마당 살림'을 비롯해 '안 살림'이 얼마나 아기자기하며 어여쁠까를 헤아려 본다. 

- 2010.8.27. 인천 중구 송월동3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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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글쓰기


 아이를 안고 비알진 멧기슭을 천천히 탄다. 아이는 아빠가 하듯 나뭇가지를 한손으로 들어서 앞을 틔운다. 판판한 길이 나오니 아빠 등에 붙은 나뭇잎과 잔가지를 털어 준다. 아이는 어디에서 이런 몸짓을 배웠을까. 엄마나 아빠가 하는 양을 보다가 따라했을 테지. 엄마나 아빠가 다른 양을 보여주었다면 다르게 움직였겠지. 그리 굵지 않은 나무가 띄엄띄엄 선 풀숲 한복판에 조용히 앉아 우리 살림집을 내려다본다. 멧기슭을 고작 조금 올라왔을 뿐인데 사뭇 다르게 보인다.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 아이가 자라나고, 내가 바라보는 곳에서 아이 눈높이가 자라며, 내가 사랑하는 글을 아이가 읽으며 큰다.

 잠자리에 들기 앞서 아이를 품에 안으며 엉덩이와 등을 토닥인다. 아이한테 바라는 말을 조곤조곤 들려주고, 아이가 얼른 고뿔이 나아 더 씩씩하게 놀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천천히 이부자리에 앉아 아이를 눕힌다. 아이 이마와 가슴과 어깨에 살며시 성호를 그리니 “또또와 또또와 아멘.” 한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참답고 착하며 고운 사랑을 물려주어야 한다. 내가 쓰는 글을 먼 뒷날 아이가 커서 읽을 무렵에 아이는 내 글에 참답고 착하며 고운 사랑이 깃들어 있다고 느낄 수 있겠는가. (4343.10.19.불.ㅎㄲㅅㄱ)
 

(그래, 너 세 살이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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