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21] 밤하늘

 시골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합니다. 이 하늘이 언제까지 파랄 수 있을까 하고. 볼일을 보러 도시로 나오며 낮하늘을 올려다볼 겨를이 없습니다. 바쁜 사람들 물결에 나 또한 바쁜 사람 하나로 휩쓸립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시골 살림집으로 돌아올 무렵이면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볼 겨를을 내는데, 애써 하늘을 올려다보려 하지만 하늘은 꽁꽁 막힙니다. 건물에 막히고 건물 지붕에 막히며 찌뿌둥한 잿빛 먼지구름에 막힙니다. 낮에는 낮대로 낮하늘을 껴안기 어려운 도시이구나 싶은데, 처음에는 이렇게 느끼지만, 이내 도시사람 삶이란 참 슬프겠다고 느낍니다. 제아무리 먼지구름 가득한 가을하늘일지라도 틀림없이 가을하늘이거든요. 밤에는 갖은 등불로 너무 밝아 별빛 하나 찾을 수 없지만, 이런 밤하늘이라 하더라도 꼭 밤하늘이에요. 밤낮이 없거나 밤낮이 바뀐다는 도시인 터라, 아침에는 어마어마하게 몰려다니는 사람이 낮이 되면 거의 안 보이다가 어둑어둑할 때에 다시금 어마어마하게 몰려다닙니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친 다음 도시에서도 살짝 먼지구름이 걷혀 낮하늘은 파란하늘이고 밤하늘은 초롱초롱 별하늘이거나 까만하늘이곤 합니다. 나는 도시로 볼일을 보러 나온 때에도 밤하늘을 헤아리며 아주 조그마한 별을 찾습니다. (4343.11.10.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을과 글쓰기


 도시에서는 가을을 맞이하더라도 가을임을 느끼기 힘들구나. 이 좋은 가을에, 이 고운 가을에, 이 맑은 가을에, 이 멋진 가을에, 이 기쁘며 슬픈 가을에, 도시에서 살아가며 무슨 빛과 그늘을 느낄 수 있는가. 가을이 없으니 도시를 떠나 멀리 자연 품은 시골을 찾고, 봄도 여름도 겨울도 없으니까 철 따라 방학이나 휴가 때 겨우 한 번 새숨을 마시려고 시골을 찾는구나. 새숨을 쉬지 않으면 답답할 뿐 아니라 메말라 버리는 줄 몸으로 느끼면서 왜 철을 잊는 데에서 이처럼 복닥복닥 해야 하나. (4343.11.9.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과 글쓰기


 바람 부는 만큼 하늘빛은 다릅니다. 빨래대 휘청거리고 나뭇가지 흔들리며 바람소리로 잠을 깨우는 날에는 하늘빛이 눈부시도록 파랗습니다. 이 차가우며 거센 바람이 하늘가에 티끌과 먼지가 함부로 서리지 않도록 내모는 듯해요. 낮에는 꽤나 빨리 흐르는 흰구름 올려다보고, 밤에는 초롱초롱 빛나는 별무리를 올려다봅니다. (4343.11.9.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내가 못 본 지리산 - 사진가 이창수의 산마을 십 년
이창수 지음 / 학고재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 사진을 찍을까
 [찾아 읽는 사진책 5] 이창수, 《내가 못 본 지리산》(학고재,2009)


 1985년부터 사진기자로 열여섯 해 일을 하다가 2000년부터 지리산과 섬진강이 어우러진 악양골 노전마을에서 살아가며 차 농사와 감 농사를 짓는 가운데 순천대학교 사진예술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한다는 이창수 님이 내놓은 사진책 《내가 못 본 지리산》을 진작에 읽었습니다. 이창수 님은 “먼 길 달려온 햇빛이 논에 내려 빛잔치를 벌입니다(61쪽).” 하고 말할 줄 압니다. “마지막 모내기가 바쁜 논은 연둣빛 호수입니다(42쪽).”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산중에 사는 즐거움이란 바로 계절의 뒤바뀜을 실시간으로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30쪽).” 하고 말하며 웃겠지요. 그러나 이 사진책에서 빛잔치와 연두빛 호수와 꾸준히 뒤바뀌는 철을 찬찬히 느끼기는 어렵구나 싶습니다. 사진과 글을 담은 이창수 님부터 “노전마을에서 우리 집 가는 길은 악양면의 ‘스카이웨이’입니다(34쪽).” 하고 말하거든요.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며 아름답고 살갑다 할 만한 시골 삶자락을 고이 선보인다 하는 책 《내가 못 본 지리산》인데, 아직까지 도시에서 하듯이 ‘스카이웨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진작에 이 책 읽었던 지난해 어느 날, 책을 덮으며 끝자락에 석 줄을 적바림했습니다.

 첫째 줄.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글을 썼을까.

 둘째 줄.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서 사진을 찍었을까.

 셋째 줄. 무엇을 나누고 싶어서 책을 냈을까.

 74쪽에 실어 놓은 나락빛 사진이 참 좋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이 사진 하나가 좋다고 느꼈습니다. 다른 사진을 볼 때에는 ‘빛잔치’가 무엇일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했습니다. 연두빛 호수라 하던 사진은 이창수 님이 스스로 이렇게 말했으니 연두빛으로 물든 못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철이 바뀌는 산골마을이라 말은 하면서 정작 철이 바뀌는 사진을 찬찬히 실어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바로 이 한 장’이라 할 만한 사진이 없기 때문인지 모르지요. 그러나 ‘바로 이 한 장’이라 할 만한 사진은 없어도 됩니다. 마음으로 와닿는 사진이면 넉넉합니다. 지리산골 예술쟁이들 사진을 잔뜩 싣거나 이들 이야기를 찬찬히 늘어놓기보다, 그저 이창수 님이 살아가는 터전에서 이창수 님이 가슴으로 받아안은 고운 빛잔치를 찬찬히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빛잔치라 했지 글잔치라고는 안 했지요? 빛잔치라 하셨지 사람잔치라고는 안 했잖아요.

 시골사람을 만나 삶을 귀담아들으면 되는데, 구태여 취재를 하듯 다가설 까닭이란 없어요. 시골사람 시골살이를 차근차근 누리거나 즐기면 넉넉하지, 따로 글로든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옮겨야 할 까닭은 없어요. 반드시 글로 옮기거나 그림으로 다시 그리거나 사진으로 거듭 찍어야 하는 삶이 아닙니다. 가붓이 즐기면 넉넉하고, 살뜰히 어루어지는 그대로 느긋합니다.

 글에 서린 빛을 보여주고 싶을 수 있고, 사람에 어린 빛일 담고 싶을 수 있겠지요. 어느 빛이든 더없이 좋았기 때문에 혼자서만 즐길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서두른다고 일이 되지 않아요. 서두른다고 글이 멋있어지지 않아요. 서두른다고 사진이 아름다울 수 없어요. 마을 이장님은 이창수 님한테 한 마디 툭 뱉습니다. 아니, 마을 이장님은 당신이 살아온 결 그대로 당신 삶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사랑스레 건넵니다. “아녀, 지금이 딱이야. 봄이 바빠야 가을이 넉넉하지. 이제 일할 때가 되니 겁나나(46쪽)?” 서둘러도 안 되고 늦추어도 안 됩니다. 딱 이때에 이만큼 해야 합니다. 글이든 사진이든, 또 이창수 님이 대학교에서 맡은 강의이든 언제나 딱 고만큼 고 자리에서 고롷코롬 해야 합니다. 빛잔치란 빛이 넘치기에 이루어지는 잔치가 아닙니다. 빛이 모자라다고 이루어지지 않는 잔치 또한 아니에요.

 “라면을 끓여 먹던 도회지 생활은 바빴습니다. 정신없이 흘러갔습니다. 나름 의미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이 뒤섞이며 그렇게 지냈습니다. 도회지에서 원없이 일했고 원없이 놀았습니다(21쪽).” 하고 말하던 이창수 님은 아직까지 라면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라면을 먹든 말든 무슨 대수랍니까. 시골사람도 라면을 즐기는데요, 뭐. 도시사람 가운데 라면을 안 즐기는 사람이 있고, 시골사람 가운데 라면을 아주 즐기는 사람이 있어요. 도시사람이면서 바쁜 일에 얽매이지 않으며 내 삶을 따숩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시골사람이지만 너무 바쁜 일에 허우적거리며 허둥지둥 ‘소담스러운 하루와 한때’를 깡그리 놓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창수 님은 도시에서도 몹시 바빠 도시살이 아름다움을 놓쳤고, 시골에서도 지나치게 바빠 시골살이 아리따움을 놓치지는 않나 걱정스럽습니다.

 라면 한 그릇을 아주 느긋하게 끓여 매우 느긋하게 즐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밭에서 거둔 푸성귀랑 멧자락에서 캐거나 뜯은 나물이랑 밥상을 차렸지만 헐레벌떡 주워먹기 바쁜 사람 또한 많습니다. 누군가는 스스로 농사를 지은 쌀을 손수 빻아 몸소 쌀을 일고 씻어 불린 뒤 밥을 하는 가운데 다른 찬거리를 마련하여 밥상을 차립니다. 누군가는 손전화 꾹꾹 눌러 바깥밥을 시켜 카드로 긁어 후딱 먹고는 비닐봉지에 대충 묶어 아무 데나 내놓거나 땅에 파묻습니다.

 사진은 손이 아닌 마음이 찍습니다. 밥은 손이 아닌 마음으로 마련하여 마음으로 먹습니다. 찍는 사진이나 찍힌 사진이나 마음으로 바라보며 즐깁니다. 차려 놓은 밥상이든 차리는 밥상이든 마음을 담아 나눕니다. 찍혀 준 사람이나 찍어 주는 사람이나 마음과 마음으로 사귈 때에 바야흐로 사진이 태어나고 사진이 빛납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살림을 하는 사람이나 마음과 마음으로 두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땀을 흘리며 사랑을 바칠 때에 비로소 삶이 아름답고 삶이 빛납니다.

 《내가 못 본 지리산》 74쪽에 실은 나락빛 사진이 좋았다고 말했는데, 이 나락빛 사진을 보면서 정인숙 님 사진책 《풍경》에 실린 나락무리가 떠올랐습니다. 《내가 못 본 지리산》 18쪽에 실린 층층논 누렇게 익은 나락 사진을 보면서 안승일 님 사진책 《굴피집》이 떠올랐습니다. 이창수 님은 이창수 님 사진을 찍고, 정인숙 님이나 안승일 님은 정인숙 님 사진이나 안승일 님 사진을 찍을 테지요. 그러면 이창수 님 사진에는 어떠한 ‘이창수 사진 빛’이 있다 말할 수 있으려나요. 이창수 님이 지리산 악양골 노전마을에 깃들어 지내며 담은 사진에는 어떤 ‘지리산 사진빛’이나 어떤 ‘지리산 악양골 사진빛’이나 어떤 ‘지리산 악양골 노전마을 사진빛’이나 어떤 ‘지리산 악양골 노전마을 이창수’ 사진빛이 감돈다 할 만한지요. 잡지사와 신문사 사진기자 노릇을 하던 때 버릇을 고스란히 움켜쥔 채 시골자락 삶결을 마구 헤집거나 후벼파지는 않나 근심스럽습니다.


.. “늙은 할망구 얼굴 찍지 말어.” “고우세요.” “곱기는 왜 아침부터 사진기 들고 다녀.” “어여 가.” ..  (37쪽)


 마을사람들은 이창수 님한테 말 한 마디 톡톡 뱉습니다. 바삐 일하느라 고단한데 말을 거니까 톡톡 뱉습니다. “아녀! 사월 이십칠일에 못자리 내려면 이제 해야 돼(40쪽).”  “없이 살다 보니 예까지 왔지, 있이 살면 이 험한 골로 누가 오나(52쪽).” “책상에서 숫자 가지고 노는 놈들이 농사를 알겠어(62쪽)?” “마누라 해 주는 게 맛있제, 내가 헌 게 맛있는가(66쪽)!” “사진쟁이는 복조리 많이 사 가서 많이 노나 줘(85쪽).” “누가 벌어 주나요, 내 안 벌면. 허리가 아파도 먹고살려면 해야지(98쪽).”

 차분한 빛 한 줄기여도 즐겁습니다. 따스한 사진 한 장이어도 기쁩니다. 살가운 글 한 줄이어도 곱습니다.

 더 많이 받아들여야 할 빛은 아닙니다. 더 많이 찍어야 할 사진은 아닙니다. 더 많이 써야 할 글은 아닙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한결 오순도순 살아가면 좋을 터전입니다. 내 살붙이하고 있든 감나무하고 있든 참으로 알콩달콩 속삭이면 좋을 보금자리입니다. 그예 올망졸망 손을 잡으면 좋은 이웃마을입니다. 내 살림집 자리잡은 마을도 좋고 내 살림집과 이웃한 마을도 좋아요. 천천히 거닐면 됩니다. 논둑길이든 멧등성이길이든 천천히 두 다리로 오가면 됩니다. 뭐가 그리 바빠서 짐차를 타고 대학교까지 강의를 하러 다닙니까. 무슨 가르칠 꺼리가 그리 많아서 짐차를 몰아 대학교까지 들락 날락 하며 사진 이야기를 쏟아내야 하겠습니까.

 스스로 빛나는 고운 사진잔치가 되어 《내가 못 본 지리산》이 아닌 “내가 본 지리산”이나 “내가 사는 지리산”으로 거듭날 수 있으면, 이 사진책 하나를 가슴에 품으며 사진을 찍으려 하는 어린 뒷사람한테 좋은 길잡이책으로 스며듭니다. 강의도 학문도 예술도 장사도 살림도 농사도 고스란히 책 한 권에 녹아들도록 마음을 바치는 굳은살이 그립습니다. (4343.11.9.불.ㅎㄲㅅㄱ)


― 내가 못 본 지리산 (이창수 사진·글,학고재 펴냄,2009.10.7./15000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ㅇi 2010-11-10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 내리는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글이란게 이런거구나 싶네요. 호기심 탓에 그간 내놓으신 글을 찾아봐야겠다 기억해 놓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장터목 산장 곁 경사에 앉아 석양에 넋을 놓던 기억이 십여 년 전이니, 그간 뭐하느라 한 번 찾질 못했나 싶은 자책이 쓸쓸해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0-11-11 05:05   좋아요 0 | URL
이 나라 교수나 작가나 수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예쁘며 착하게 살아가며 예쁘고 착한 책을 내놓을 날을 꿈꿉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 베틀북 그림책 68
데이비드 맥키 글 그림, 민유리 옮김 / 베틀북 / 200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빛깔 고운 자연은 도시에도 있습니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6] 데이비드 맥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베틀북,2005)



 여느 도시에서는 겨울을 코앞에 둔(또는 겨울날) 저녁 여섯 시 무렵이면 한창 일할 때이거나(아니면 한창 일을 마무리짓고 일터를 나설 때이거나) 슬슬 놀 때이지 싶습니다. 여느 시골에서는 겨울이 눈앞에 이른(또는 겨울 한복판) 저녁 여섯 시 즈음이면 하루 일을 마감하며 잠자리를 추스를 때입니다.

 도시에서 사는 동안 아이는 참 늦게 잠들었습니다. 저녁 여섯 시이든 여덟 시이든 아랑곳하지 않으며, 밤 열 시나 열두 시까지 뛰어놀려 했습니다. 골목동네 작은 2층집 불을 다 꺼 놓아도 길거리에는 등불이 환하게 켜 있습니다. 하나도 어둡지 않고 조금도 어두울 수 없습니다.

 시골로 처음 옮겨 왔을 무렵, 아이는 도시에서 살듯이 저녁 여덟 시이든 열 시이든 잠을 안 자려 합니다. 한여름이라 하더라도 일곱 시 무렵이면 어둑살이 내려요. 집 바깥은 온통 깜깜하지만, 아이 몸은 도시에서처럼 일찍 깨고 늦게 자는 데에 버릇이 들었으니, 아이 엄마나 아빠로서는 몹시 고단합니다.

 한 달을 지내고 두 달을 지내며 석 달을 지내니, 아이는 차츰 시골 어두움에 익숙해집니다. 까까를 사러 동네 구멍가게에 손쉽게 찾아갈 수 없을 뿐더러, 멧기슭에 자리한 살림집 둘레에서 가까운 이웃집조차 까마득합니다. 한두 시간에 한 번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타는 데까지 이십 분은 넉넉히 걸어가야 합니다. 처음에는 여러모로 읍내로 마실 갈이 잦았으나, 하루이틀 지나며 딱히 읍내로 마실 갈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시골자락에서 조용히 지내는 나날이 길어지니, 저녁에 불을 켜고 아이 엄마가 뜨개질을 하거나 아이 아빠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아이 또한 곱게 잠들어 줍니다.


.. 옛날에 어떤 장군이 다스리는 큰 나라가 있었습니다. 큰 나라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는 나라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그 나라에는 전쟁이 나가기만 하면 이기는 힘센 군대랑 커다란 대포도 있었으니까요 ..  (4쪽)


 아침과 낮과 저녁, 새벽과 밤, 비와 눈, 바람과 햇살, 물과 하늘, 바다와 흙, … 모든 자연은 시골에만 있지 않습니다. 모든 자연은 시골과 도시에 나란히 있습니다. 도시라 해서 자연이 없을 수 없고, 자연이 없지 않아요. 다만, 도시라는 곳은 도시사람 스스로 자연을 느끼거나 살피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게끔 울타리가 놓여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자연이 아닌 돈을 보고 이름값을 거머쥐며 힘을 누리도록 하는 데에 사람들 눈길이 쏠리게끔 짜여 있습니다.

 느긋하게 살아갈 때에,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자연을 느낍니다. 넉넉하게 사랑할 때에,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자연을 살피어 껴안습니다. 스스로 곱게 살아가고픈 꿈을 키울 때에, 도시와 시골 어디에서 살더라도 자연을 맑고 밝게 받아들입니다.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을 읽습니다. 아이는 이 그림책을 퍽 즐겨 펼칩니다. 아이 스스로 혼자 자주 펼치곤 합니다. 책에 나오는 그림이 재미있는지, 책 얼거리가 재미난지, 혼자 그림책을 볼 때에 고양이 그림책이랑 린드그렌 할머님 그림책이랑 이 전쟁 얘기 그림책을 으레 펼칩니다.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에 나오는 ‘싸움꾼 장군’은 언제나 싸움을 벌입니다. 왜냐하면 ‘싸움꾼 장군’이 할 일이란 ‘싸움’이거든요.

 군대라는 곳은 ‘싸우라’ 있습니다. ‘싸우지 말라’며 있는 군대는 온누리에 한 군데도 없습니다. 군대를 마련한 까닭은 ‘나라 지키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웃나라 넘보기’를 헤아리며 군대를 추스릅니다.

 이리하여, ‘싸움꾼 장군’은 자꾸자꾸 이웃나라로 쳐들어갑니다. 이웃나라가 ‘싸움꾼 장군’이 다스리는 나라를 해코지하거나 괴롭히거나 들볶거나 못살게 굴지 않지만, ‘싸움꾼 장군’은 싸움을 그치지 않습니다. 더 싸우고 싶으니 쳐들어갑니다. 이 양반이 할 일이란 싸움이니까 싸움을 자꾸자꾸 벌입니다. 마지막까지 모든 나라를 군대힘으로 짓밟을 때까지 칼을 들고 대포를 쏩니다. 사람을 죽이고 식민지로 삼습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이라 할 만합니다. 참말 전쟁이란, 싸움이란, 그지없이 끔찍한데, 어떻게 전쟁이라는 낱말 앞에 ‘행복한’ 같은 꾸밈말을 붙일 수 있는지 소름이 돋습니다.

 생각해 보면, 오늘날 사람들은 총이나 칼이나 대포를 들지 않으면서 싸우는 셈이라 할 만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컴퓨터로 싸웁니다. 서류로 싸우고 행정과 정책으로 싸웁니다. 정치꾼은 늘 싸우고, 기자와 지식인과 교수 또한 노상 싸웁니다. 대통령은 사람들하고 싸우고, 생채기를 입거나 아픈 사람들 또한 못된 사람들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권리를 빼앗겨서 싸우고, 집과 삶터를 앗겨서 싸웁니다. 돈을 더 벌려 싸우기도 하고, 모든 돈을 혼자 차지하려 싸우기까지 합니다. 버스와 전철 같은 데에서 빈자리를 차지한다든지 먼저 타거나 내리려고 싸웁니다. 자동차를 몰며 더 빨리 달리고픈 마음에 싸웁니다.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려고 싸우며, 내 가게 장사가 조금 더 잘 되도록 하려고 싸웁니다.

 온통 싸움판인 나라입니다. 운동경기 가운데 싸움이 아닌 운동이 없습니다. 운동을 한다면서 안 싸우는 사람이 없어요. 문학이든 예술이든 서로서로 겨루거나 다투거나 맞섭니다. 어디에서나 피가 튑니다. 어느 곳에서나 등수를 매깁니다. 학교에서마저 아이들을 싸움판으로 내몰며 등수를 매기는데요. 슬기롭게 일구면서 아름다이 북돋우는 문화나 문학이나 예술이나 교육이나 학문을 마주하기란 꽤 힘듭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싸움나라라 할 만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싸움판입니다.


.. 장군은 집에 돌아와서 무척 기뻤어요. 비록 큰 나라가 예전과는 조금 달라 보였지만 말이에요. 밖에 나가면 작은 나라의 거리에서 맡았던 음식 냄새가 풍겨 왔어요. 작은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던 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지요. 어떤 사람들은 작은 나라 사람들의 옷을 입고 있었어요. 장군은 웃으며 생각했지요. “그래, 이게 다 전쟁에서 이긴 덕분이지!” ..  (25쪽)


 ‘싸움꾼 장군’은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한 나라를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예 쳐들어갑니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한 군데 나라는 참말 작은 나라라서 ‘싸움꾼 장군’으로서는 딱히 쳐들어가서 얻을 만한 무언가가 있으리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남았겠지요. 다른 나라들은 ‘싸움을 일으켜 쳐들어가’면 ‘빼앗거나 거머쥐거나 사로잡을’ 만한 보배가 많았겠지요. 싸움을 일으키는 까닭은 그냥저냥 싸움이 재미있기 때문이겠습니까. 싸움이 즐거워 싸움을 자꾸 벌이기도 했겠지만(참 두려운 일입니다), 이웃사람이 알뜰히 누리는 삶을 빼앗는 즐거움(이 또한 몹시 무섭습니다) 때문에 끝없이 싸움을 벌입니다.

 싸움이란, 나한테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대단히 크거나 많이 있다 할지라도 더 갖고 싶거나 더 누리고 싶거나 혼자만 차지하고 싶기 때문에 일으킵니다.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거나 사랑을 나누고 싶은 사람은 싸우지 못합니다. 아니, 싸움이라는 낱말부터 몰라요. 사랑을 하고 싶은데 무슨 싸움을 하나요. 믿음을 섬기는 사람이 싸울 수 있을까요. 믿음을 참다이 섬기는 사람은 ‘교회 크기 싸움’을 하지 않을 뿐더러 ‘예배당에 나와서 하느님 믿으셔요’ 하는 다툼을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을 섬기는 아름다운 삶을 조촐하며 나 스스로 고즈넉하게 꾸릴 뿐입니다. 그저 내 삶이 나와 내 이웃한테 따사롭게 펼치지도록 마음을 기울일 뿐입니다.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에서 ‘싸움꾼 장군’은 마지막 한 나라로 무시무시하며 어마어마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갑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나라에는 군대가 없습니다. 무시무시하며 어마어마한 군대가 쳐들어왔으나 따로 맞서 싸우며 ‘나라 지키기’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싸움이란 모르고, 싸울 무기란 없기도 하니까요. 총이나 칼이 아닌 낫과 호미가 있고, 대포가 아닌 쟁기가 있는 작은 나라입니다. ‘지키는 군대’가 아닌 ‘싸우는 군대’는 이웃나라로 쳐들어가거나 군대를 이어가자며 ‘군량미’라고 하는 먹을거리를 무척 많이 갖추어야 합니다. 작은 나라는 군대가 없으니 따로 군량미 같은 먹을거리를 챙기지 않을 뿐더러, 무기를 만드느라 돈이나 품이나 틈을 쓰지 않기 때문에, 무시무시하며 어마어마한 군대가 쳐들어왔어도 이들을 총칼로 때려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당신들한테 ‘조금 더’ 있는 밥과 옷을 나누어 줍니다. 잠자리를 나누어 주고 함께 놀이를 합니다. 이맛살을 찌푸리며 ‘요놈한테서 무얼 빼앗거나 요놈을 어떻게 괴롭히다가 죽일까?’ 하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이는 어떤 삶을 꾸려 왔을까?’ 하고 생각하며 살가이 마주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이라는 그림책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아이를 바라보며 곱씹어 봅니다. 어쩌면 우리 아이는 그냥저냥 그림만 보지 않으랴 싶습니다. 이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에 나오는 군인들은 군인이라고는 하나 그림으로 보기에는 그저 짜리몽땅 귀여운 인형처럼 보이거든요. 무시무시한 군대가 대포를 쏘아대며 이웃나라 사람들을 죽이는 모습을 보면 피를 흘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널브러져 있습니다. 아이가 보기에 ‘넘어진’ 모습이기만 합니다.

 그림책을 옆으로 밀쳐 놓습니다. 가만히 헤아립니다. 싸움꾼 나라에서 싸움꾼 사람들이 되도록 다스리는 싸움꾼 장군은 당신 삶에서 무엇이 아름답거나 무엇이 참답거나 무엇이 착한 일인지 하나도 깨닫지 않습니다. 깨달을 가슴이 없고, 깨달으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싸움꾼 장군이 살아가는 나라에도 나무는 자라며 새는 지저귀고 바람이 붑니다. 싸움꾼 장군이 군대를 거느리는 나라에도 농사짓는 사람이 있으며 옷을 깁거나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가 있습니다. 맑고 밝게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으며, 파란하늘과 푸른숲이 있겠지요.

 바닥에 쌓인 그림책들을 책꽂이에 하나하나 꽂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이라는 그림책을 다시 쥡니다. 아무래도 이 그림책은 이름을 잘못 붙였습니다. “온누리에서 가장 어리석은 싸움”쯤으로 이름을 고쳐 붙여야지 싶습니다. “가장 바보스러운 싸움”쯤으로 이름을 다시 달아야지 싶습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랑스러운 사람을 몰라보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내 둘레에 서린 아름다운 터전을 몰라보는 사람은 바보스럽습니다. (4343.11.9.불.ㅎㄲㅅㄱ)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 (데이비드 맥키 글·그림,민유리 옮김,베틀북 펴냄,2005.1.25./85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