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는 마음


 예뻐 보이는 그림을 보여주려고 영화를 찍지 않으며, 이렇게 하려고 영화를 찍는다면 부질없습니다. 재미나 보이는 줄거리를 들려주려고 영화를 찍지 않으며, 이렇게 한다면 영화를 찍는 일이 덧없습니다. 확 잡아당기는 짜임새를 뽐내려고 영화를 찍지 않으며, 이러한 영화라면 영화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습니다. 이름난 배우를 수두룩히 받아들여 돈을 벌려고 영화를 찍지 않으며, 이리 한다면 영화는 아주 형편없이 되고 맙니다. 빼어난 감독이라든지 넉넉한 감독이 있다든지 해서 영화가 아름다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영화 하나 찍어 살뜰히 나누는 길이란, 영화 촬영기를 손에 쥔 사람들 마음밭에 땀이라는 씨앗과 사랑이라는 손길을 바쳐 맛나고 싱그러울 푸성귀나 곡식을 일구는 길입니다. 영화를 보는 사람은 재미 삼거나 시간 죽이기를 하거나 이름난 작품이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애써 짬을 내어 영화를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영화를 본다고 한다면, 이 영화 하나로 내 마음이 살찌면서 아름답게 거듭나도록 이끌고 싶기 때문입니다. 영화 보는 마음이 고스란히 살아숨쉰다면, 책을 보는 마음 또한 가지런히 살아숨쉽니다. (4343.12.1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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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책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구석구석 아주 천천히 살피며 읽습니다. 오자와 마리 님 새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 2권이 막 나와, 출판사에 볼일이 있어 서울마실을 하는 길에 홍대 앞 〈한양문고〉에 들러 이 만화책을 두 권 삽니다. 한 권은 저랑 옆지기랑 읽을 책이고, 한 권은 서울마실을 와서 만날 고운 분한테 선물로 드릴 책입니다.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일부러 두 권씩 장만합니다.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을 선물로 받을 분이 얼마나 사랑해 줄까 하고 헤아리기만 해도 한결 즐겁습니다. 이 책을 선물로 받아 주는 분이 사랑해 주지 않더라도, 제 마음 깊은 사랑을 담아 드렸기 때문에 그예 즐겁습니다. (4343.12.1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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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28] 눈밭

 시골집에서 시골버스를 타고 시골아이인 우리 사랑스러운 딸아이 손을 맞잡으며 서울 마실을 나오는 길입니다. 시골버스가 천천히 달리는 시골길까지 눈이 쌓이지는 않으나, 온 시골 멧자락에는 눈이 하얗게 덮입니다. 그리 높지는 않으나 끝없이 이어진 봉우리마다 눈구름이 걸쳤고, 눈구름 걸친 둘레는 마치 딴 나라인 듯한 모습, 아니 그예 눈나라로구나 싶은 모습입니다. 스위스 눈나라도 이런 모습일 테고 일본 맨 위쪽 섬나라 또한 이런 모습이겠지요. 설악산이나 지리산이나 금강산이나 백두산도 매한가지일 모습이 아니랴 생각합니다. 아주 높거나 깊은 멧자락만 눈나라는 아닙니다. 조그마한 멧기슭과 야트막한 멧부리야말로 아기자기하면서 어여쁜 멧길 멧숲 멧터일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아이도 아빠도 시골버스 창밖으로 펼쳐지는 눈밭을 바라봅니다. 문득, 서울 마실을 하지 말고 잿고개 이 예쁜 터에서 내려 도로 집으로 눈길을 밟으며 눈밭을 누리며 눈꿈을 꾸면서 천천히 한 발 두 발 씩씩하게 거닐며 온몸이 꽁꽁 얼어붙더라도 호호 입김을 불며 돌아가면 더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서울에 닿으니 눈밭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4343.12.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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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2010-12-09 19:52   좋아요 0 | URL
눈밭만 없다 뿐입니까..
풍경 살벌하죠, 공기도 나쁘죠..-_-

저는 볕도 안들고 공기도 안좋은 동네 살다가
외곽지로 나와서 공기도 전보다 좋고 안방에 볕이 잘드니
기분이 저절로 좋아져요.
집은 전보다 더 늙은 집이지만 주변환경 덕에 전보다 기분 좋게 지내요.

파란놀 2010-12-10 12:22   좋아요 0 | URL
네, 좋은 삶터 좋은 이야기로 좋은 책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책으로 보는 눈 145 : 환경책 읽기

 지난 2007년 봄, 인천 배다리에 ‘사진책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내 마음을, “나중에 내가 읽은 책들로 아기자기하게 펼쳐 보이는 작은 도서관을 열고 싶다”는 꿈으로 이었습니다. 나라나 지자체 도움 없이 오로지 내 손으로 앙증맞을 책쉼터 하나 일구고 싶었습니다.

 이제 이 도서관은 도시를 떠나 시골 멧기슭 한켠으로 옮겼습니다. 집식구 몸을 생각하고 내 몸을 한결 사랑하며 아끼고픈 마음에, 시골자락 품에 안깁니다. 시골‘구석’에 도서관을 열면 사람들이 찾아오기 힘들다거나 누가 찾아오겠느냐 하지만, 참말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이라면, 시끌벅적 어수선한 도시에서가 아닌 시골자락에서 조용히 책을 즐기러 마실을 오리라 생각합니다. 인천에 사진책 도서관을 열 때에도 적잖은 분들은 “어차피 열려면 서울에 열어야 사람들이 더 쉽게 자주 찾아오지 않겠느냐”고 말씀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왜 자꾸 서울로만, 다시 서울로만, 또 서울로만 가야 하나 아리송해요. 인천에도 좋은 사진책 도서관 하나 누군가 열고, 부산이랑 제주랑 목포랑 춘천이랑 진천이랑 문경이랑 옥천이랑 …… 우리네 터전 골골샅샅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책쉼터 하나씩 있으면 더 아름다우며 재미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사진책으로 도서관을 열었으니, 누군가는 만화책으로, 그림책으로, 인문책으로, 철학책으로, 역사책으로, 문학책으로, 어린이책으로, 수필책으로, 잡지책으로, 청소년책으로, 과학책으로 …… 온갖 갈래 살가운 도서관을 열면 더 기쁘리라 생각해요. 자동차 아닌 시골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슬금슬금 찾아가서 책을 즐기다가는 “어어, 이 책들도 좋은데, 이 둘레 멧길과 숲과 논밭 또한 참으로 좋은걸.” 하고 느낀다면 책을 내려놓고 사뿐사뿐 숲마실이나 시골마실을 맛봅니다.

 책이란 삶이고, 삶을 담은 이야기가 책이며, 책이란 다시금 사람이요, 사람이 어우러지는 이야기가 책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책이란 사랑이며, 사랑 나누는 사람들 삶을 책으로 여미어 놓습니다.

 온누리에는 수많은 책이 있습니다. 제가 꾸민 도서관에도 숱한 책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가며 읽을 책을 그러모으는 도서관인데, 이 도서관에 깃든 책을 모든 사람이 모조리 읽을 수 없을 뿐더러, 어느 한 사람이든 이 책을 제 것으로 삼지 못합니다. 책이란, 이 책을 써낸 사람 슬기와 얼과 마음을 담으면서 누구나 이 슬기와 얼과 마음을 받아먹도록 하니까 섣불리 한 사람이 혼자 차지할 수 없는 가운데, 고맙게 받아먹은 슬기와 얼과 마음에 새삼스레 내 슬기와 얼과 마음을 담아 뒷사람한테 이어줍니다. 돌고 돌며, 잇고 잇는 책이에요.

 이들 책이란,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살찌우며 사람을 살피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모든 책은 새로운 책이면서 헌책이고, 어느 책이든 내 삶을 담는 책, 곧 환경책입니다. 자연사랑 환경사랑을 외쳐야 환경책이 아닙니다. 《수달 타카의 일생》도 빛나는 환경책이고 《아톰의 철학》도 예쁜 환경책이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도 멋스런 환경책이에요. 남녘나라에서는 참 안 읽히는 환경책인데, 우리 스스로 우리 누리를 바르며 착하고 참다이 바라볼 때 고이 읽히리라 생각하며 기다립니다. (4343.12.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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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가을날 골목집 꽃그릇에는 마지막 푸성귀가 자란다.

 - 2010.11.26. 인천 동구 송림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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