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니 리펜슈탈


 레니 리펜슈탈을 옳고 바르게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레니 리펜슈탈을 깎아내리거나 추켜세우지 않습니다. 레니 리펜슈탈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레니 리펜슈탈을 꾸밈없이 바라보며 찬찬히 곱씹습니다. 레니 리펜슈탈은 레니 리펜슈탈이지 라니 리펜슈탈이나 니레 옹펜슈탈이 아닙니다.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은가를 깨닫는 사람은 그리 안 많습니다.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은가를 깨달은 다음, 내가 하고픈 일에 내 모두를 바치는 사람은 더 적습니다. 내가 하고픈 일에 내 모두를 바치면서 온통 빠져드는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어느 과학자는 핵폭탄을 다 만들고, 실험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뿐 아니라, 널리 만들어 사고팔도록 하고 나서야 겨우 핵폭탄 만드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가 하고 털어놓습니다. 온통 엉망진창으로 해 놓고 나서 느즈막하게 뉘우치는 사람이라 할 텐데, 이런 사람들은 뜻밖에도, 그동안 저지른 짓을 놓고 이렇게든 저렇게든 화살을 받지 않습니다.

 레니 리펜슈팔이 ‘린 리펜슈팍’이었다면 어떠했을까 헤아려 봅니다. 여자 아닌 남자로서, 그동안 어떠한 사람(남자)도 이루지 못하던 일을 이룰 뿐 아니라, 어떠한 사람(남자)보다 튼튼한 몸과 힘과 머리와 재주로 새 문화와 삶을 헤쳐 나간다고 한다면, 이이를 바라보거나 마주하거나 사귀려는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곱씹어 봅니다.

 이사도라 던컨은 이사도라 던컨일 뿐입니다. 앙리 까르띠에브레송은 앙리 까르띠에브레송일 뿐입니다. 최승희는 최승희일 뿐이요, 박경리는 박경리일 뿐입니다.

 레니 리펜슈탈은 하느님도 성모도 아닌 자그마한 한 사람이며, 여자입니다. 곧은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여자이고자 하던 레니 리펜슈탈이지만, 이러한 삶결을 바라보는 사람은 당신 스스로 얼마나 아름답고 작은 한 사람이며, 남자이거나 여자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수잔 손탁은 레니 리펜슈탈을 말할 수 없습니다. 레니 리펜슈탈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알려고조차 하지 않으면서 불바늘로 쿡쿡 쑤시는 글을 함부로 쓸 수 없습니다. 글이란 따스한 사랑으로 아리땁게 어루만지는 이야기이지, 불바늘 괴롭히기가 아닙니다. 수잔 손탁은 사랑을 찾아 글을 써야 하고, 사람들이 스스로 잃거나 내다 버린 사랑을 되찾거나 아낄 수 있도록 북돋우는 글을 써야 했습니다. 어쩌면, 수잔 손탁부터 스스로 사랑을 잃거나 내다 버렸을는지 모르는데, 사랑 없는 눈으로는 사람과 삶을 읽을 수 없으며, 사람과 삶을 읽는 사랑을 보듬지 않고서야 사진도 책도 작품도 문화도 예술도 과학도 철학도 교육도 역사도 사회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레니 리펜슈탈을 읽으면 레니 리펜슈탈이 살았던 한때를 읽는 셈입니다. 레니 리펜슈탈을 읽으면 레니 리펜슈탈을 둘러싼 사람들을 읽는 셈입니다. 레니 리펜슈탈 둘레에는 착한 사람이 몇쯤 있었을까요. 레니 리펜슈탈 가까이에는 참다운 사람이 얼마쯤 있었을까요. 레니 리펜슈탈을 바라보는 이 가운데에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누가 있었을까요.

 레니 리펜슈탈은 당신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사랑을 받고 삶을 선물받으며 당신 스스로 꿋꿋하게 걸어갈 길을 씩씩하게 아파하고 슬퍼하면서 튼튼하게 한 발 두 발내디뎠습니다. (4344.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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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넋과 책읽기


 제 넋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좋은 책’ 하나란, ‘훌륭한 책’ 하나란, ‘아름다운 책’ 하나란, ‘즐거운 책’ 하나란, ‘맑은 책’ 하나란 무슨 뜻이나 값이 있으려나요.

 옆지기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 살아가는 인천 용현1동 골목집으로 먼 마실을 옵니다. 아침부터 집에서 부산을 떨고, 낮 한 시 반에 길을 나서니, 저녁 일곱 시가 다 되어 드디어 닿습니다. 자가용 있는 요즈음 사람들이라면 두어 시간이면 닿을 길인지 어떠한 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가용 없이 살아가는 우리 살붙이는 시골버스와 시외버스와 전철과 택시를 갈아타며 몸에 지치고 절며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 댁에 닿습니다. 퍽 작다 할 만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은 퍽 작다 할 만하기 때문에 작은 방에며 작은 마루에며 온 살붙이가 도란도란 둘러앉습니다. 차곡차곡 붙어 앉습니다. 어느 방에 있건 부엌일 소리가 온 방으로 울려퍼집니다. 작은 목소리 하나이든 큰 목소리 하나이든 서로서로 나눕니다. 좋은 소리이든 궂은 소리이든 모두 얼싸안습니다.

 시골버스를 타고 음성 읍내에 닿아 시외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자리 번호가 없는 표만 팔기에 줄을 섭니다. 줄을 잘못 섰다가는 세 사람이 따로따로 앉을 수 있거든요. 오늘은 아기 표까지 한 장 삽니다. 다섯 살까지는 표를 끊지 않고 한 자리를 얻어 타도록 하는 이 나라 법이지만, 막상 명절날처럼 사람들 붐비는 때에는 어느 버스기사도 이러한 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다섯 살까지는 표를 팔지 않으면서(팔지 않으니 살 수도 없고), 어른들 앉을 자리가 모자란다 싶으면 아이는 엄마나 아빠 무릎에 앉히라 윽박지릅니다. 아이 키우는 어버이들은 누구나 겪는 짜증스러운 윽박지름이기에, 헛돈을 써야 하는 줄 뻔히 알면서 ‘표 없는 아기 몫’ 표까지 끊습니다. 이래저래 여쭈면, 초등학교에 드는 예닐곱 살까지는 표삯을 안 내고 타도록 한다지만, 막상 표삯을 안 내고 타면 자리 하나 내주지 않습니다. 이럴 바에는 아기들한테도 표삯을 받고 자리를 주어야 올바를 텐데, 이런 일이 날마다 곳곳에서 숱하게 되풀이되지만 정책 다루는 이들이든 공무원이든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 일꾼은 표를 받으면서 ‘손님 표’를 잘라서 돌려주지 않습니다. 내가 차에 타면서 스스로 잘라서 ‘회사 표’를 건네야 합니다. 반드시 ‘손님 표’를 챙깁니다. 나중에 “자리 없는데 아이 무릎에 앉혀요!” 소리를 안 들으려면 손님 표를 꼭 챙겨 놓아야 합니다.

 동서울역에 닿습니다. 동서울역 뒷간은 아름다운 뒷간이라나 뭐라나 하는 상을 받았다지만, 이 아름답다는 뒷간에는 어린이가 똥오줌을 눌 수 있는 자리는 한 칸조차 없습니다. 한국땅에서는 어디에서나 어린이는 사람 몫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아이하고 여러 해 복닥이며 움직이는 동안 이 나라가 얼마나 어린이를 깡그리 짓밟는지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몸소 아이를 낳아 키운다 하더라도 더 잘 알지는 못할 터이나, 몸소 아이를 낳아 키우지 않는 숱한 진보 목소리들 가운데 이러한 대목을 짚을 줄 아는 목소리는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아니, 진보와 보수를 넘어, 나 스스로 옳고 바른 사람이라면 이러한 대목을 얼마나 제대로 짚을 수 있으려나요.

 전철을 탔습니다. 명절날인 터라 아이를 안거나 이끌며 다니는 사람이 많지만, 이들 가운데 빈자리를 얻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아이가 여느 때보다 많아 그럴는지 모르지요. 여느 때이든 명절 때이든 누구나 다리가 지치기 때문일 테지요. 어느 할머니는 제 손자가 귀여운 나머지 이리 안고 저리 안으며 놀다가 그만 우리 아이 머리를 당신 할머니 손자 발로 걷어찬 셈이 되지만 미안하다는 말도 없을 뿐더러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그 할머니네 손녀는 우리 아이를 그냥 밀치면서 놉니다. 그 할머니이든 그 아이네 어버이이든 그 아이이든, 나쁜 사람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제 넋이 없는 사람입니다.

 생각없는 사람을 탓할 만큼 기운이 남지 않았기에 옆 칸으로 옮겼습니다. 옆 칸에는 손자를 안은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손자는 할아버지 무릎에 안겨 영어로 뭐라뭐라 쏼라쏼라합니다. 내릴 때까지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며 영어로 떠듭니다. 용산역에 닿아 주안역으로 가는 빠른전철을 갈아탑니다. 갓난쟁이 안은 젊은 아빠가 빈자리 없이 한쪽 구석 벽에 기댑니다. 처음으로 자리를 얻어 앉은 나라도 일어나 줄까 싶으나, 내 코가 열 자 백 자인 터라 차마 자리에 앉으라는 말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저 모르거나 못 본 척입니다. 갓난쟁이가 전철이 퍽 힘든지 끄응끄응 울 즈음 비로소 할머니 한 분이 앉으라고 자리를 내줍니다.

 주안역에서 내리고, 붐비는 사람숲을 헤치고 밖으로 나와서, 가방을 싣고 아이를 안고 택시에 타니 비로소 호젓한 한때를 맞이합니다. 용남시장 들머리에 문을 연 과일집에 들러 능금이랑 귤이랑 감이랑 사들고 골목집으로 찾아갑니다. (4344.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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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받는 책읽기


 어떤 책이든, 읽으면 도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도움을 받지는 않아요. 눈을 뜨고 가슴을 열며 손을 잡아야 비로소 책읽기로 도움을 받습니다.

 어떤 책이든, 읽는다고 도움을 받지 않아요. 그러나 적잖은 사람들은 도움을 받거나 못 받거나 무턱대고 책을 읽어요. 눈을 안 뜨고 가슴을 안 열며 손을 안 잡는 채로 책을 마주하면서 지식만 자꾸자꾸 쌓고 말아요.

 내가 더 잘하지 못하는 줄 깨닫기에 책을 읽습니다. 내가 더 잘하기를 바라며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내가 잘못 헤아리거나 아예 살피지조차 못하며 사는 줄 알기에 책을 읽습니다. 내 생각을 더 다부지게 붙잡거나 내 마음을 더 굳세게 뿌리내리기를 꾀하며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는 마음은 삶을 읽는 마음이고, 삶을 읽는 마음이란 사랑을 읽는 마음이며, 사랑을 읽는 마음은 사람을 읽는 마음이요, 사람을 읽는 마음은 목숨을 읽는 마음입니다. 내 삶이 어떠한가를 돌아보도록 돕는 책읽기입니다. 잘난 내 삶이냐 못난 내 삶이냐를 따지려고 읽는 책이 아닙니다. 내 삶을 꾸밈없이 바라보도록 이끄는 책읽기입니다. 옳게 느껴 옳게 사랑하는 길을 찾는 책읽기입니다. 삶도 사랑도 사람도 가르치지 않으나, 삶도 사랑도 사람도 모두 내 가슴속에 조그마한 씨앗으로 옹크리며 기다리니까 이를 스스로 깨달으라 하는 책읽기입니다.

 내 가슴속 조그마한 씨앗을 깨달을 수 있으면, 내 이웃 가슴속 조그마한 씨앗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 이웃 가슴속 조그마한 씨앗을 깨달을 때에, 살가운 책씨란 멀디먼 도서관 숱하디숱한 책더미가 아니라, 교보문고 영풍문고 어마어마한 책바다가 아니라, 바로 내 살붙이들 꾸덕살과 발바닥과 주름살에 깃들며 조용조용 빛나는 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한테서 먼저 보아야 내 이웃과 동무한테서 함께 봅니다. 나한테서 보지 못하는데 내 이웃이든 동무이든 살붙이든 어떤 책씨를 품에 모시거나 섬기는지를 읽을 수 없습니다.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그저 쥐어들어 훑는다 해서 ‘읽기’이든 ‘책읽기’이든 되지 않습니다. 책읽기란 지식쌓기가 아닙니다. 책읽기는 지식나눔이 아닙니다. 책읽기는 지식자랑이 아닙니다. 책읽기는 지식소개가 아닙니다. 책읽기는 오로지 하나, 삶읽기입니다. 삶을 읽도록 도와주는 책읽기입니다. (4344.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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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부대와 책읽기


 예나 이제나 이 땅 한국에서는 미군부대가 도사립니다. 미군부대는 이 땅에 오래오래 도사리면서 미군부대 도서관에 있던 책을 뭉텅뭉텅 뱉어 냅니다. 지구별 미군부대 도사린 곳마다 미군부대 도서관은 저희 책을 뭉텅뭉텅 뱉습니다. 지구별 미군부대마다 도서관은 아주 훌륭하며 알차게 가꿉니다. 그런데 이들 미군부대 도서관은 퍽 묵은 책들을 아낌없이 뱉습니다. 책이 나빠서 뱉지 않습니다. 책이 좋기에 일부러 뱉습니다. 지구별 미군부대 도사린 나라마다 ‘미국땅 문화와 사회와 정치와 교육과 학술과 과학과 예술’을 속속들이 퍼뜨리려는 생각으로 미국에서 큰돈과 뭇땀으로 일군 훌륭하거나 멋지거나 아름다운 책을 누구나 아주 적은 돈으로 사서 읽거나 간직할 수 있게끔 꾸준하게 뱉습니다.

 미군부대 병사들은 지구별 어디에서 총을 들거나 헬기를 몰거나 전차를 굴리든, 더없이 훌륭하거나 아름다운 책을 읽습니다. 책은 책대로 훌륭하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마주하고, 영화이든 노래이든 춤이든 연극이든 …… 참으로 훌륭하거나 아름다운 삶을 다룬 작품을 마주하거나 스스로 선보입니다.

 좋은 책만 읽을 수 있으면,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괜찮다 할 만할까 궁금합니다. 과학자로서 돈이나 연구실 걱정이 없다면, 어디에서 어떤 과학 연구를 하든 괜찮다 여길 만한지 궁금합니다요. 좋은 터전에서 학문을 느긋이 파고들 수 있기에, 대학교 재단이 어떠한 짓을 하든 괜찮다 생각할 만한가 궁금합니다. 나라살림 꽤 치솟아 굶어죽는 사람 없다 하는 이 나라이니까 그닥 걱정할 일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군부대는 예나 이제나 ‘불온도서’라 하는 이름으로 책을 뭇칼질합니다. 이런 이름으로 책을 뭇칼질하지 않더라도 군대에 들일 수 있는 책은 몇 가지밖에 안 됩니다. 삶을 밝히거나 사람 삶을 파헤치는 책은 군대에 들이지 못합니다. 내 머리를 가다듬고 내 마음을 갈고닦는 책은 군대에 갖추지 못합니다. 남녀가 사랑만 속삭이다 끝나는 소설책이랑 빨간잡지랑 스포츠신문이랑 조선일보랑 국방일보랑 샘터랑 좋은생각이랑 들이는 군대입니다.

 좋다 하는 책을 읽히는 미군부대이든, 궂다 하는 책만 읽을 수 있는 한국부대이든, 군부대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라 할 만한지 알쏭달쏭합니다. 아니, 군부대는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되는지 아리송합니다. (4344.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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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글과 책읽기


 좋은 넋을 담은 좋은 글이기 때문에, 출판사 일꾼은 이러한 글을 맨 먼저 알아보고는 책으로 엮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이 좋은 넋을 어떻게 얼마나 알아볼 수 있을까요. 좋은 글을 알아보고 읽은 뒤에는 나 스스로 무엇을 바꾸면서 살아가려나요. (4344.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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