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 동생이 생겨 좋은 일


 첫째가 입던 배냇저고리를 둘째가 입는다. 거의 세 해 만에 배냇저고리를 입혀 보자니 낯설지만, 몇 초 만에 금세 익숙하게 손을 놀린다. 갓난쟁이를 가슴에 안는 일도 처음 몇 초 동안은 서툴구나 하고 생각하다가는 이내 익숙하게 보듬어 본다.

 첫째를 낳은 어버이가 둘째를 낳을 때라면 누구나 나이를 더 먹기 마련이다. 어느 어버이라 하더라도 몸으로 쓰는 힘은 줄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첫째보다 둘째가 수월하더라는 말마따나 나이를 더 먹은 뒤 낳는 둘째 돌보기는 첫째 때와 견주어 조금은 수월하다고 살짝 느낀다.

 그러나, 애 아버지하고 애 어머니는 다르다. 몸으로 젖을 먹일 뿐 아니라, 벌어진 엉덩이뼈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뿐더러, 아기방 또한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 어머니가 아니니, 이렇게 말한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기저귀를 갈아 본 사람이 기저귀를 안 갈아 본 사람보다 더 잘 갈기 마련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다스려 본 사람이 아이들을 안 다스려 본 사람보다 더 잘 다스리기 마련이다. 몸으로 해 본 사람이 무엇이든 처음에는 익숙하게 잘 하겠지.

 하던 그대로 해야 하는 삶이라면, 언제나 처음부터 오래오래 하던 사람 혼자서 할 노릇이다. 함께 즐기거나 누리며 아름다울 삶이라면, 처음 하는 낯선 사람이든 아직 겪지 못하거나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든, 서로서로 허물없이 웃고 울면서 천천히 하면 좋을 삶이다.

 아이 기저귀를 온누리에서 첫손가락 꼽도록 가장 잘 갈아야 하지 않는다. 아이 기저귀 빨래를 온누리에서 가장 알뜰히 잘 빨아야 하지 않는다. 아기한테 젖을 가장 잘 먹여야 하지 않는다. 아기를 가장 잘 안아야 하지 않을 뿐더러, 아이한테 가장 값있고 훌륭하다는 옷을 입혀야 하지 않는다. 그저 사랑할 아이요 사랑받을 아이일 뿐인 한편, 그예 사랑할 어버이요 사랑받을 어버이라고 느낀다.

 첫째 아이한테 동생이 생겼기에 첫째한테, “자 보렴. 동생이 누나 옷을 물려입는구나.” 하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째는 어린 나날부터 제 옷을 물려입힐 뿐 아니라, 제 옷도 물려입는 줄 천천히 깨달으며 배우겠지. 첫째는 둘째한테 제 삶을 종알종알 이야기하면서 서로서로 사이좋게 싸우기도 하면서 씩씩하게 살아가겠지. (4344.5.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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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뻐꾸기 소리와 책읽기


 들판과 멧자락에서 우짖거나 노래하는 새가 무슨 새인지 다 알지 못합니다. 둘째가 어머니 배에서 바깥누리로 나와 비로소 함께 햇살과 바람과 흙을 살결로 느낄 수 있던 어제 첫날, 텃밭에 낸 거름에 덮을 흙을 둘레에서 퍼서 뿌리는데, 뻐꾸기 한 마리가 집 가까운 어느 쪽에선가 몹시 높으면서 고운 목청으로 노래가락을 뽑았습니다.

 뻐꾸기는 스스로 알을 품어 까지 않습니다. 뻐꾸기가 태어나자면 다른 알들이 죽어야 합니다. 참 미운 짓이라 할 수 있고, 뻐꾸기로서는 이렇게 해야 살아남으니 자연 흐름에서는 참 자연스럽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람 귀로는 결이 고우면서 맑은 뻐꾸기 소리를 들을 때면 뻐꾸기 한살이를 자꾸자꾸 생각하곤 합니다.

 나로서는 이름을 다 알지 못하고, 또 시골사람이래서 모두 다 멧새 들새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모든 풀을 샅샅이 꿰뚫는 시골사람이 있을 테며, 아는 풀만 아는 시골사람이 있겠지요. 오늘날 시골사람은 모든 살림살이를 들판과 멧자락에서만 받아들이지 않기에, 들판과 멧자락 모든 풀을 다 알아채거나 느낄 수는 없어요.

 도시사람이래서 골목길을 다 꿰지 않습니다. 도시사람이기에 버스길을 다 알거나 온갖 물질문명을 다 누리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날 도시사람은 제아무리 집안에서 꽃그릇을 돌보거나 아낀다 하더라도 자연이 어떠한가를 살갗 깊숙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합니다. 도시에는 자연이 없으니까요.

 자연하고 살아가지만 자연을 다 알지 못하는 오늘날 시골사람으로서 뻐꾸기 소리를 듣습니다. 뻐꾸기는 아침과 낮과 새벽과 저녁과 밤에 울 때에, 그때그때 어떤 느낌과 생각과 삶과 이야기일까 헤아려 봅니다. 내가 이름을 아는 새가 우짖거나 노래하는 소리에 따라 새 한 마리 날갯짓을 생각합니다. 내가 이름을 모르는 새가 우짖거나 노래하는 소리에 따라 새 한 마리 둥우리를 헤아립니다. 내가 이름을 아는 사람이 쓴 책을 읽으며 이이가 펼치는 삶과 넋과 말을 생각합니다. 내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쓴 책을 읽으며 이분이 들려주는 삶과 넋과 말을 헤아립니다. 내가 이름을 아는 사람이 쓴 책이기에 이이 삶과 넋과 말 또한 한결 잘 알아 더욱 잘 곰삭이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쓴 책이라서 이분 삶과 넋과 말 또한 한결 잘 모르거나 못 받아들이거나 못 삭이는지 궁금합니다. 두 시 반에도 네 시 반에도, 또 여섯 시에도 뻐꾸기를 곱게 울다가 곱게 조용합니다. (4344.5.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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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5-24 15:40   좋아요 0 | URL
어제가 첫날이라니 축하드립니다*^^*
둘째도 큰아이처럼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겠지요?
두 시 반에도 네 시 반에도, 또 여섯 시에도 뻐꾸기를 곱게 울다가 곱게 조용하다가....앞으로 어른시간말고 아기시간대로 움직이시려면 다른 새소리도 한참 듣겠네요~

파란놀 2011-05-24 18:09   좋아요 0 | URL
음... 하루 스물네 시간을 거의 깨어서 지내니까... 뭐 ^^;;;
아기를 낳아 키우면 하루 스물네 시간 가운데 느긋하게
눈 붙일 겨를은 그야말로 없어요 ㅠ.ㅜ
 



 핏물 기저귀 빨래


 종이달거리가 아니라 천달거리를 쓰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난다. 그렇지만, 기계빨래를 벗고 손빨래로 돌아오는 사람은 그닥 안 늘어나는 듯하다.

 모든 사람이 손빨래를 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참 좋으리라 생각하지만, 몸이 아프거나 힘든 사람이라면 기계힘을 빌 수 있다고 느낀다. 아프고 힘드니까.

 바쁜 사람들도 기계힘을 빌 만하다고 여기지만, 바쁜 사람들이라 한다면 더더욱 손힘을 누리며 빨래를 맞아들일 노릇이 아닌가 하고 느낀다. 바쁘니까.

 바쁘니까 바쁜 겨를을 쪼개어 책을 읽는다. 바쁜데, 바쁜 틈을 나누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꿈을 북돋운다. 바쁘기 때문에 내 손과 몸과 일과 삶을 아끼는 길을 걸어간다.

 요즈음 사람들은 기계힘을 빌면서 “빨래를 한다”고 이야기한다. 기계힘을 빌리는데 빨래를 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옳게 말하자면 빨래를 하는 삶이 아니라 “기계를 쓰는” 삶이라 해야겠지.

 기계빨래라고 손쉽다고 느끼지 않는다. 기계빨래를 한대서 집일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느낀다. 집일은 늘 고만큼 있다. 집일이란 내가 살아가는 만큼 나 스스로 해야 하기 마련이다. 손을 써서 빨래를 하는 동안 내 손을 더욱 사랑할 수 있고, 손을 놀려 빨래를 하기에 내 옷과 빨래를 한결 사랑할 수 있다.

 옆지기 핏물 기저귀 빨래를 한다. 첫째를 낳은 지난 2008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핏물 기저귀 빨래를 신나게 했다. 핏물 기저귀 빨래를 마감한다 했더니, 이때부터는 천달거리 빨래가 이어졌다. 2010년 가을에 둘째를 밴 뒤로는 천달거리 빨래가 그친다. 2011년 오월에 둘째가 태어났으니 이제부터 핏물 기저귀 빨래가 다시 생긴다.

 핏물 기저귀이든 천달거리이든 북북 문지른대서 핏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핏물 기저귀는 그때그때 빨아 말려야 하니 늘 삶을 수는 없지만, 아침부터 낮까지 나오는 핏물 기저귀라면 두어 장 모아 삶을 수 있고, 아기 보랴 집일 하랴 눈코 뜰 사이 없으면 목초물 뿌린 물에 담가 둔다. 처음에 물을 조금씩 뿌리며 한손으로 핏자국을 살살 문지르면 제법 핏기가 빠지는데, 이렇게 핏기를 뺀 기저귀를 목초물 뿌린 물에 담근다고 하겠다. 삶을 때에도 목초물 뿌린 물에 한동안 담고 나서 삶으면 핏기는 더 잘 빠진다.

 집식구들 몸에서 나온 때를 내 손으로 느낀다. 살붙이 몸에서 나온 피를 내 손으로 받아들인다. (4344.5.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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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56] 갓난쟁이

 갓난아기를 바라봅니다. 요 갓 난 아기를 바라봅니다. 이 땅에 갓 나온 아기는 어머니젖을 물다가는 잠이 들다가는 잠이 깨다가는 할머니나 아버지 품에 안겨 두리번두리번 멀뚱멀뚱하다가는, 곁에서 누나가 조잘조잘 재잘재잘 노래하는 소리에 귀를 쫑긋합니다. 어머니 배에서 열 달을 사는 동안 늘 듣던 조잘조잘 재잘재잘 노래하는 소리는 갓난아기한테는 어떠한 느낌이었을까요. 갓난아기가 새근새근 잠들 무렵 시끄러우면 안 되니까 피아노를 치지 말라 했지만, 갓난아기가 제법 큰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는 모습을 보고는, 동생이 듣도록 피아노를 쳐 주렴, 하고 말하니 금세 피아노 뚜껑을 살며시 열면서 신나게 또당또당 두들깁니다. 누구한테서 딱히 배운 적이 없는 아이 마음대로 가락에 따라 이 소리 저 소리 부드러이 들려줍니다. 생각해 보면, 고작 세 해 앞서만 하더라도 어린 누나는 제 어린 동생과 마찬가지로 갓난쟁이였습니다. 갓난쟁이에서 제법 큰 아이는 이제 어엿하게 누나 노릇을 하고, 누나 노릇을 하는 어린이를 키우는 어버이 또한 이제는 늙수그레한 나이로 접어드는 아버지요 어머니이며, 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낳은 분들은 갓난쟁이였을 적에 어떤 모습인지 떠올리기 힘든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살아갑니다. (4344.5.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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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겁게 살고 싶어 책읽기


 
 즐겁게 살고 싶어 책을 읽습니다. 돈을 벌고 싶어 책을 읽지 않습니다. 예쁘게 살고 싶어 책을 읽습니다. 이름값을 얻을 뜻으로 책을 읽지 않습니다. 착하게 살고 싶어 책을 읽습니다. 힘(권력)을 누릴 마음으로 책을 읽지 않습니다. 맑은 꿈을 믿으면서 밝은 넋을 나누고 싶어 책을 읽습니다. 상을 받으려는 나머지 책을 읽지 않습니다.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는 삶이 사랑스러워 책을 읽습니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거머쥐겠다며 책을 읽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기운을 차리면서 책을 읽습니다. 더 많이 읽어도 되고 조금만 읽어도 되며 못 읽어도 됩니다. 백 쪽이나 천 쪽쯤 읽어도 흐뭇하고, 열 쪽이나 한 쪽을 읽거나, 아예 한 줄조차 더듬지 못하더라도 기쁩니다. 나는 책 하나에 깃든 모든 알맹이를 받아먹을 때에도 반갑지만, 글 한 줄에 서린 조그마한 씨눈을 얻어먹을 때에도 웃음이 납니다. (4344.5.2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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