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 살뜰하게 짓거나 엮으려면


.. 상인이 재산을 불리기 위해 수입을 떼어 저축하듯이 훌륭한 사람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권력과 재능을 기꺼이 잃을 준비가 되어 있다. 정신의 문을 열 때 자신의 성공을 가능하게 한 재능과 기술, 그들의 명성과 능력은 신성한 교감을 향한 목마름에 자리를 내주고 스스로 뒷전으로 물러서는 것이다 ..  《자발적 가난》(그물코,2003) 31쪽/랄프 왈도 에머슨


 향긋한 꽃냄새는 우리 코를 틔웁니다. 빛고운 꽃잎은 우리 눈을 맑게 해요. 시원한 샘물 한 모금은 우리 목구멍을 씻습니다. 부지런히 일해서 흘리는 땀은 우리 몸에 군살이 없게 하며, 몸을 튼튼하게 가꾸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이끕니다. 살뜰한 책 한 권은 우리 가슴을 열도록 이끌고 머리를 산뜻하게 다독입니다.

 찬찬히 헤아려 보아요. 살뜰한 책 한 권은 어떻게 나올까요. 바로, 책을 짓고 엮는 이가 내 모두를 바칠 때 나옵니다. 내 모든 머리와 가슴을 바칠 때 나옵니다. 책을 짓고 엮는 사람은 내 모두를 내놓고 펼칠 때 오히려 더 크게 깨닫고 더욱 깊이 알아채며 한결 큰 사람으로 자랍니다. 키는 스물 안팎에 다 자란다지만, 마음은 마흔이나 예순이나 여든에도 무럭무럭 자랍니다.

 내 모두를 내놓지 못한다든지, 고작 한두 가지만 펼친다든지, 아무것도 내놓거나 펼치지 않고 꿍하니 간직하거나 혼자만 품는다면 고이기 마련이에요. 썩어 버려요. 우쭐우쭐거리다가 제풀에 걸려 넘어집니다.

 책 한 권 내놓아 사람들한테 살뜰하게 다가가는 일이란, 나를 가꾸는 일입니다. 오늘 내 모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입니다. 나부터 새롭게 거듭나는 일입니다. 이웃들한테는 미처 몰랐던 일을 깨우치도록 돕고, 나로서는 진작부터 알았던 일을 더욱 잘 알게 거드는 일입니다.

 다만 내 모두를 바치고, 나 스스로 가장 낮은 자리에 설 수 있을 때에만 이렇습니다. 그저 내놓고 펼칠 때라야 비로소 살뜰한 책 한 권이 됩니다. 제대로 내놓거나 펼치지 않는다면, 내놓거나 펼치면서 내 이름을 내세운다든지 우쭐거린다면, 책은 책답게 되지 않습니다.

 꽃잎, 줄기, 뿌리 하나도 씨앗 하나가 모든 알맹이와 속살을 바쳤기에 돋아나고 올리며 내릴 수 있습니다. 농사꾼이 하루라도 허투로 일하거나 땀흘리지 않거나 게으르다면 나락과 남새가 제대로 자라기 어려워요. 노동자가 살짝이라도 한눈을 팔거나 딴전을 피운다면 기계가 멈추거나 고장나기 좋습니다. 온누리 어느 곳에서라도, 그 어느 일이라든지, 한동안 쉬거나 멈출 수는 있지만 온몸과 온마음을 바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되는 일이란 없어요.

 책을 짓고 엮는 일도 이와 똑같습니다. 어느 곳 하나라도 마음을 안 둘 수 없으며, 어느 때 살짝이라도 몸을 안 쓸 수 없습니다. 한결같은 몸과 마음으로 내 모두를 바칠 때라야 비로소 아름답고 살뜰한 책이 되어 이 땅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책방에 아름답거나 살뜰하다 싶은 책이 드물다면, 그만큼 내 모두를 바쳐서 짓거나 엮은 책이 드물다는 소리라고 느낍니다. 이것저것 바치기는 했어도 적게 바쳤거나, 애써 바쳤다고는 해도 우쭐대는 넋이라거나, 돈을 너무 밝히면서 냈기에 아름다움과 살뜰함하고 멀어집니다. 남김없이 바치고 아낌없이 내놓으니 텅텅 비어 버린다 할 텐데, 텅텅 비우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참말 아주 가난하며 쪼들리는 살림이지만, 용케 굶어죽지 않습니다. 되레, 텅텅 비우는 가난한 사람들이 조촐하고 즐거이 살림을 꾸리면서 빙긋 웃습니다. (4337.5.10.처음 씀/4344.1.16.글투 손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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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책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헌책방과 책을 생각하면서 쓴’ 책인지, ‘글을 쓰는 나 혼자만을 생각하면서 쓴’ 책인지를 살핀다면 ‘헌책방과 책을 생각하면서 쓴’ 책은 판이 끊어진 《공진석-옛책, 그 언저리에서》(학민사,1990)를 빼고는 없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또한 책을 이야기하는 책 가운데에도, ‘사람이 즐기고, 사람이 만들었지만, 오히려 이 책이 나중에 사람을 가꾸고 보듬기까지 하는 책’을 이야기하느냐, ‘그저 잘 팔릴 만하도록 사람들 입맛에 달짝지근하게 맞추거나 책에만 지나치게 무게를 두느냐’를 헤아릴 때에도 앞엣쪽에 들 만하다 싶은 책은 몹시 드물다고 느낍니다.

 제가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는 이름을 붙여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책을 펴낸 까닭은, 참으로 ‘사람을 생각하는’ ‘헌책방 이야기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즐기는 헌책방’이고, ‘사람이 즐기는 헌책’이며, ‘사람이 즐기는 책’입니다. ‘사람 냄새가 밴 헌책방’이며, ‘사람 냄새가 가득한 헌책’이고, ‘사람 냄새를 담은 책’이에요.

 책은 없어도 사람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 없이 책은 없어요. 삶이 없이 책은 없습니다. 곧, 책이 있다 한다면, 사람과 삶 다음에 있는 책입니다. 사람과 삶이 바탕이 되어야 비로소 나올 수 있는 책이에요. 그래서 저는 곰곰이 생각하고 살아가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더라”도 “책을 많이 읽은 사람”보다 됨됨이가 더 아름답고 알차면서 훌륭한 이가 많다고 봅니다. 삶을 볼 줄 알고 사람과 부대낄 줄 아는 매무새가 맨 먼저라고 느낍니다. 이 같은 몸가짐을 갖추지 않고 책만 가까이한다면, 우리 사람과 우리 삶을 헤살 놓거나 흐트리거나 망가뜨릴 천덕꾸러기이자 말썽꾸러기가 되기 쉽다고 보아요.

 책도 좋고 헌책도 좋고 헌책방도 좋습니다. 그러나 어느 무엇보다도 사람이 가장 좋고 우리 삶이 참으로 보배롭습니다. (4337.5.25.처음 씀/4344.1.16.글투 손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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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2.21. 

서울 종로구 사직동 한켠에 '새마을 문패'가 남은 곳이 있다. 집 생김새나 문패나 무엇으로 보나 문화재이다. 서울시에서 이 집 분들한테 겨울날 따스히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이 집 모양을 고이 건사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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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8. 

서울사진축제에 아빠하고 마실 온 어린이. 아빠가 사진 이야기를 떠들 때에 조용히 놀아 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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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7. 

그리고 또 그린다. 그리며 놀아 줄 때에 좀 쉴 수 있어 고맙다. 

 

책을 보아 줄 때에도 고맙다. 

 

노래 공연을 할 때에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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