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말넋 2025.4.4.

오늘말. 가시나


우리말 ‘가시내·가시나’하고 ‘계집’이 낮춤말인 듯 잘못 여기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러면 ‘머스마·머시매’하고 ‘사내’도 낮춤말일까요? 아닙니다. 어릴적부터 말밑과 말결을 제대로 안 가르치고 못 배우는 탓에 우리말을 고루두루 짚는 눈빛을 바로 우리 스스로 잃습니다. ‘가시내’라는 이름은 ‘갓·가시·가다’가 밑동은 뜻깊은 말씨요, ‘머스매’라는 이름은 ‘머슴·머리·메’가 뿌리인 뜻있는 말결입니다. ‘계집’은 ‘계시다·짓다’를 이루는 엄청난 이름이요, ‘사내’는 ‘살다·살림’를 이루는 대단한 이름입니다. 좋은말이냐 나쁜말이냐 하고 가를 까닭이 없습니다. 낱말마다 오랜 삶길에 담아낸 속빛을 골고루 읽으면서 여러빛을 알아볼 때라야 누구나 마음을 열면서 생각을 트게 마련입니다. ‘여남·남녀’라는 한자말이 나쁘지 않되, 이래저래 우리말 속내를 못 읽도록 가리거나 감추는 무리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이모저모 따질 노릇입니다. ‘딸·아들’이란 낱말에 어떤 빛이 서리는지 헤아리고, ‘숲’과 ‘순이’가 맞닿는 길을 여러모로 살펴봐요. 온마음을 기울여 온말을 잇는 온넋이기에 누구나 온빛으로 반짝일 만합니다.


ㅍㄹㄴ


고루·고루고루·고루두루·골고루·고루눈·고루눈길·고루길·고루빛·고루보다·두루·두루두루·두루치기·두루눈·두루눈길·두루보다·두루길·두루빛·두루넋·두루얼·가지가지·갖가지·갖은·많다·여러 가지·여러 갈래·여러모로·여러길·여러빛·여러빛깔·열다·트다·빗장열기·빗장풀기·빗장트기·요모조모·이모저모·아기자기·알게 모르게·이래저래·이러니저러니·이런저런·그런저런·요런조런·온갖·온갖길·온갖빛·온갖빛깔·온빛 ← 다방면, 다면(多面)


가시내·가스나·갓님·따님·딸·딸내미·딸아이·숲씨·숲이·아이·작다 ← 영애(令愛)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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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말넋 2025.4.4.

오늘말. 용쓰다


왜 쇳덩이를 몰지 않느냐고 핀잔하는 이웃님을 곧잘 만납니다. 빙그르 웃으면서 “전 힘들게 살지 않아요. 쇳덩이를 몰려고 손잡이를 쥐면 책을 못 쥐는걸요? 게다가 붓을 못 쥐니 노래를 못 쓰고 글도 못 써요.” 하고 여쭙니다. 왜 어렵게 사느냐고 나무라는 이웃님을 자주 만납니다. 방글방글 웃으면서 “전 용쓰며 살지 않아요. 말글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든 말글이 마음을 담는 줄 알기에, 이 삶을 그리는 말글에 흐르는 사랑을 고스란히 살펴서 나눌 뿐입니다.” 하고 얘기합니다. 어느 갈래에서 일머리를 잡듯 말글이 바탕입니다. 몸을 쓰는 일이어도 말로 가르치거나 물려주고, 글을 남겨서 두고두고 이을 수 있습니다. 눈치를 보느라 붓이 휜다면 길눈을 잃고 길꽃을 잊어요. 자리는 지키고 돈을 쉽게 얻는 둘레에 깃들 수 있을지라도, 마음이라는 시렁에 꿈씨앗을 놓는 하루하고 매우 멀지요. 이를 악물고서 글을 쥐어짤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곁에서 집안일을 하는 틈틈이 기쁘게 글을 적으면 느긋합니다. 마지막까지 힘써서 겨우 책을 내야 하지 않습니다. 살랑살랑 철바람을 헤아리는 밭자락에서 멧새노래를 함께 부르며 일손을 여밉니다.


ㅍㄹㄴ


갈래·가르다·가름·갈라내다·곳·고리·곬·길·길눈·길꽃·데·자리·자위·께·녘·대목·둘레·언저리·즈음·쯤·마을·밭·쪽·판·나누다·나눔·얼개·얼거리·틀·틀거리·일집·일채·일터·일터전·시렁·실·칸·터·터전·테·테두리 ← 분야(分野)


어쩔 길 없다·어렵사리·어렵게·힘들게·억지·어거지·용·용쓰다·악·악쓰다·악물다·겨우·가까스로·꼼수·쥐어짜다·짜다·짜내다·마지막·마지막힘·끝·끝힘 ← 고육지책(苦肉之策)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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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말넋 2025.4.3.

오늘말. 두메


전라남도 두멧고을로 마실을 오는 분은 하나같이 “이렇게 멀고 외진 시골에서 어떻게 사나?” 하고 절레절레 흔듭니다. 아마 경상북도 두멋골로 나들이하는 분도 비슷하게 말하며 혀를 내두를 테지요. 그러나 처음부터 겹겹메가 즐거워서 고즈넉이 깃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주 많지는 않아도 멧실을 반기는 분이 꽤 많습니다. 이른바 새뜸(신문·방송)에 한 해에 한 자락이라도 이야기가 실릴 동 말 동 하는 깊은골이 수두룩합니다. 궂은일이건 기쁜일이건 아예 새뜸에서 안 다루곤 합니다. 아무래도 두메 이야기는 들숲바다와 해바람비와 풀꽃나무 살림길일 테니, 서울사람한테는 심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널리 읽는 글은 으레 서울 이야기입니다. 서울을 좋아하니 서울 한복판을 들여다보고, 서울을 추키고 서울에서 이름을 올리려고 합니다. 온통 서울을 우러르고 높이고 섬기고 모시는 결입니다. 굳이 깊메를 받들거나 내세우거나 올려야 하지는 않아요. 오직 우리 스스로 우리 보금자리에서 포근말을 짓고 상냥하게 살림을 지으면서 스스로 하늘빛으로 물들며 내남없이 들고나는(드나드는) 매무새이기에 빛납니다. 나무 한 그루가 북돋우는 멧숨을 누려 봐요.


ㅍㄹㄴ


모시다·섬기다·우러르다·높이다·띄우다·받들다·떠받들다·내세우다·세우다·올려세우다·올리다·기리다·꼽다·들다·들어가다·밀다·밀어주다·북돋우다·불어넣다·좋다·좋아하다·좋은말·따뜻말·포근말·상냥말·손꼽다·첫손·첫손가락·첫손꼽다·추다·추키다·추켜세우다·추켜올리다·치켜세우다·이름을 올리다·이름이 오르다·헹가래·우쭈쭈 ← 추대(推戴), 추앙(推仰)


그루님·그루지기·그루터기 ← 주주(株主)


멧골·멧실·멧줄기·멧줄·줄기·겹겹골·겹겹골골·겹겹메·겹겹멧골·겹골·겹메·겹멧골·깊은골·깊골·깊은멧골·깊은곳·깊은메·깊메·깊멧골·두메·두멧골·두멧속·두멧고을·두멧마을·두멧자락·두멧터 ← 산맥(山脈)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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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말넋 2025.4.3.

오늘말. 저물녘


비둘기는 곧고 힘차게 날갯짓합니다. 제비는 날렵하게 빙그르르 돌다가 훅 곤두박을 하더니 다시 솟구칩니다. 할미새는 포로롱 날다가 스르르 떨어지는 듯하더니 다시 포로롱 올라가고 새삼스레 털썩 내리듯 하다가 다시 앞으로 날아갑니다. 그저 앞만 보며 펄럭펄럭 날갯짓을 하는 새가 있고, 내리꽂듯 휘날리는 새가 있습니다. 다 다른 삶결처럼 다 다른 매무새입니다. 사람살이에서도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나란합니다. 지는길과 뜨는길이 갈마듭니다. 지는꽃과 피는꽃을 갈마보고, 저물녘과 돋는녘을 마주봅니다. 힘들 적에는 주저앉습니다. 기운날 적에는 일어섭니다. 그냥 안 된다기보다 와장창 깨지거나 아예 접어야 할 때가 있고, 그냥 잘 된다기보다 샘솟거나 흐드러질 때가 있어요. 고꾸라지거나 거꾸러졌으니 바닥에 드러누워서 한참 쉽니다. 못 이기는 일을 억지를 부려서 덤비고 싶지 않습니다. 스스럼없이 자리를 낮추면서 고개를 숙입니다. 더 배울 일이기에 밀려납니다. 새로 익힐 삶이기에 스러집니다. 낮이 떠나기에 해가 넘고, 어느새 어둑살이 번지니 별이 하나둘 돋습니다. 저녁해를 굳이 안 붙잡습니다. 폭 잠들면 이튿날 아침해를 맞아요.


ㅍㄹㄴ


고꾸라지다·거꾸러지다·곤두·곤두박질·곤두박다·곤두박이·굴러떨어지다·떨어지다·떨구다·꺾다·꺾이다·끌어내리다·나뒹굴다·날아내리다·낮잡다·낮추잡다·낮추다·내려가다·내려다보다·내려앉다·내려오다·내리꽂다·내리다·내림길·내리막·내리막길·못 이기다·이기지 못하다·무너지다·밀리다·밀려나다·스러지다·쓰러지다·와르르·와그르르·와장창·우르르·자리낮추기·자리내리기·저물다·저물녘·해거름·해질녘·해넘이·저녁놀·저녁노을·저녁빛·저녁해·접다·주저앉다·지다·지는길·지는꽃·쪽박·털썩·폭삭·허물어지다 ← 하향(下向), 하향세, 하향곡선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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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4.3. 집



  나래터(우체국)에서 글월을 부치고서 저잣마실을 한다. 이제 등을 쉬려고 볕바른 데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노래 한 자락 쓴다. 갑자기 담배내음이 난다. 덩치 큰 젊은이가 바로옆에서 담배를 태운다. 해를 더 쬐고 싶었으나 콜록거리며 얼른 자리를 뜬다.


  피울 몫(권리)처럼 안 피울 몫이 있다. 등짐을 지고서 글을 쓰며 걷자니 시골아재가 위아래를 홅으며 “안 추워?” 하고 구시렁댄다. 시골아재는 언제 나를 보았기에 깎음말(반말)을 갑자기 구시렁댈까? 그쪽을 쳐다볼 값어치도 없어서 조용히 걷는다. 아재 그대는 그늘진 데에서 해를 멀리하니 춥겠지.


  시골에 젊은이가 자리잡거나 돌아오려면 어떡해야 할까? 시골과 작은고을이 마냥 늙고 낡다가 죽어가는 길이란 무엇일까? 오늘도 고흥군청은 “산불금지 협박” 마을알림을 30분마다 쩌렁쩌렁 틀어댄다. 그러나 이런 마을알림을 아무리 날마다 끝없이 틀어대도 시골 할매할배는 아무 데에서나 ‘농약병·비료자루·멀칭비닐’을 그냥 활활 태운다. 이러는 김에 할매할배 집에 있는 쓰레기도 덩달아 태운다. 이미 시골에서는 어떤 마을알림도 보람이 없는데, 군청과 도청과 면사무소는 똑같은 마을알림을 틀어대면서 “공무원으로서 할 일을 다했소!” 하고 외친다.


  올들어 나무도 풀도 냄새가 옅다. 아무래도 시끌소리(소음공해) 탓이다. 서울을 비롯한 큰고장은 거리불(가로등) 곁에서 살아야 하는 나무가 철을 잊을 뿐 아니라, 밤새 못 쉬느라 몹시 고달프다. 서울사람들은 “나무한테 무슨 마음이 있느냐?”는 둥, “나무가 무슨 말을 하느냐?”는 둥, 그야말로 나무를 너무 모르는데, 나무도 밤에 자고 싶으며, 나무도 시끌소리를 안 듣고 싶다. 사람이 자는 곳에 밤새 불을 켜놓으면 사람도 잠을 못 이루듯, 나무도 밤에는 길거리 불을 다 꺼야 비로소 제대로 쉬면서 큰고장에 넘실거리는 매캐한 기운을 풀어낼 수 있다.


  해마다 제비가 줄어든다. 그래도 아직 돌아온다. 해마다 들숲이 줄고 부릉길이 늘면서 하늘이 매캐하다. 널뜀날씨(이상기후)는 ‘그들’이 아닌 바로 우리가, 두다리로 안 걷고 들숲과 철새텃새를 모조리 잊은 우리가 스스로 일으킨다. 우리가 눈을 떠야 날씨가 차분하다. 우리가 마음을 틔워서 푸르게 가꾸어야 푸른별이 아름답다.


  얼뜬 우두머리는 곧 목아지가 잘린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그곳만 쳐다보느라 정작 들숲바다가 얼마나 앓는지 등지고 만다. 걱정하거나 조바심을 낼 까닭이 없다. 얼뜨기는 한동안 힘을 거머쥐는 듯 보여도, 또 제법 오래 주먹을 휘두르는 듯 보여도, 어느새 가뭇없이 사라진다. ‘종신독재자’를 하려던 이승만·박정희가 1948년부터 1979년까지 윽박질렀지만, 어느새 한 줌 모래알로 사라졌다. 더 사납게 ‘종신독재자’를 노린 전두환은 고작 일곱 해도 안 되어 우리 손에 끌려내려왔다.


  ‘그들이 힘을 쥔 한때’는 서른 해 일 수 있고, 일곱 해 일 수 있고, 두어 해일 수 있다. 다만 갈수록 그들은 힘을 쥐는 해가 줄어든다. 이 대목을 눈여겨보자. 우리는 우리 길을 그릴 노릇이다. 우리 스스로 들숲메를 잊기에 그들과 함께 들숲메를 망가뜨린다. 우리 스스로 아이곁에 서지 않으니까 아직도 배움불굿(입시지옥)이 안 사라진다.


  나는 집에서 나와서 걷는다. 논두렁도 걷고 골목도 걸으며 가볍게 바깥일을 보고서 집으로 간다. 우리집 새소리와 풀꽃내음을 그린다. 걷고 걷고 걷는다. 걷느라 퉁퉁 부은 다리를 시골버스에서 토닥이면서 하루쓰기를 하노라니 어느새 내릴 곳에 이른다. 마을앞에서 내려 고샅을 거닐며 집으로 가자니 큰아이가 통통통 가볍게 달려나온다. 열여덟 살에 이른 큰아이는 “우리집 동박꽃이 활짝 피었어요!” 하고 노래한다. 다른 곳은 동박꽃(동백꽃)이 벌써 다 졌다지만, 우리집 동박나무는 넷쨋달이 가장 빛나게 타오르는 꽃잔치이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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